공간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카페 앤 다이닝 테이블
오래된 물건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긴 세월을 아로새기며 수많은 이야기를 온몸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고가구가 전하는 이야기에 매료돼 30년 가까이 앤티크 의자를 수집해 온 이가 있다. 앤티크 컬렉터 주현리는 올해 초 카페 앤 다이닝 테이블을 개장했다. 이곳은 앤티크 가구로 꾸며진 카페이자 문화행사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왕십리 도로변에 위치한 카페 앤 다이닝 테이블은 외관만으로는 언뜻 평범한 카페처럼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도 모던한 인테리어로 인해 수백 년 된 물건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힘들 수 있다. 실은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의자, 테이블, 장식장 그리고 식기까지 고풍스러운 소품들은 모두 주현리가 오랜 시간 모아온 수집품이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카페 앤 다이닝 테이블의 진가는 살롱 오페라나 실내악 등 음악회가 열릴 때 빛을 발한다. 홀 중간에 자리한 청록빛 휘장과 고급스러운 병풍, 화려한 샹들리에는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무대로, 관객들을 바로크 시대로 이끈다. 눈앞엔 어느새 18세기 어느 살롱이 펼쳐진다. 르네상스 이후 프랑스에서 성행했던 살롱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곳이었다. 당대 예술가와 지식인, 애호가가 모여 전시회, 음악회, 시낭송회를 즐겼다. 사교의 장이기도 했던 살롱은 젊은 예술가에게 사회로 진출하는 발판이 됐다. 카페 앤 다이닝 테이블 운영자 주현리는 21세기 살롱을 꿈꾸며 공간을 가꿔나가고 있다. 연습과 공연 장소를 찾아 헤매는 젊은 음악가들이 편하게 와서 연주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개방했다. 앞으로 손님들에게 앤티크 물건·그림 전시회, 시낭송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과거 살롱문화가 귀족 계층의 전유물로 시작했다면, 카페 앤 다이닝 테이블은 누구나 예술을 즐기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주현리는 꽤 넓은 공간을 본인 소유의 가구로 채우고도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정도로 많은 수집품을 보유했다. 전문 수집가에게 재밌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최근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단순하게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시대가 바뀌는 거죠. 정말 옛날 분들은 작은 것 하나도 버리지 않으셨잖아요. 현재의 1인 시대에 걸맞은 현명한 삶의 방식이에요. 저는 컬렉터로서 살았지만, 나이가 있기 때문에 이제는 서서히 정리할 때가 됐어요. 원래 별명이 ‘안 팔아요’였는데 요즘엔 내가 좋아해서 산 물건을 다른 사람이 좋아해 주면 기꺼이 팔아요. 손님들이 와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모은 것들을 내놓는 게 아깝지가 않아요. 저도 시대에 맞게 변해가고 있네요.” 수집 인생의 마침표 아니, 방점을 찍는 공간에서 그는 행복해 보였다. 예술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 다른 이들과의 향유에서 그 가치가 배가된다. 방문객은 미(美)를 향한 열정이 가득한 곳에서 그저 누리기만 하면 된다, 앤티크 가구처럼 오래도록 남겨질 예술의 아름다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