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베를린 필하모니에서는 한국 전통 악기인 대금이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함께 울러 펴졌다. 한국인 연주자 20명, 그리고 캄머 심포니 베를린 단원 20명으로 이뤄진 독특한 구성의 오케스트라 공연은 독일 라디오 방송 도이칠란트풍크 쿨투어(Deutschlandfunkt Kultur)를 통해 1시간 30분가량 전 공연 방송됐다. 이색적인 공연을 선보인 단체는 여느 국립단체가 아닌 민간단체인 서울튜티앙상블로, 1988년 피아니스트 이옥희가 창단했다. 지난해로 30주년을 맞았으며,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독일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단체의 활동과 목표를 묻고자 창립자 이옥희와 피아니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하는 김지현, 두 모녀를 만났다.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서로 다른 빛깔로 강렬하게 빛났다.
독일에서의 순회공연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지현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교류사업에 선정되면서부터다. 독일까지 가는 건 항공료만 해도 엄청나서 민간단체로서는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선정을 위해선 공신력 있는 현지 기관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한데, 운 좋게도 주독일 베를린 한국문화원과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첫 공연이 좋은 인연이 되어 계속 연락을 해오다가 올해가 독일 통일 30주년이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지 않나. 두 나라의 공통된 화제가 있어 ‘평화’를 주제로 다시금 공연하게 됐다. 베를린 필하모니에선 캄머 심포니 베를린 단원과 우리 단원이 함께 공연을 펼쳤고, 이후 만하임과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서울튜티앙상블만 공연했다. 이러한 공연 기회를 차츰 늘려가고자 한다.
대금연주자 박노상의 협연이 눈에 띤다. 현지인들에겐 익숙지 않은 소리였을 텐데.
김지현 한국 단체가 해외에 나가서 공연하는데, 굳이 그들의 곡을 연주하며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국악기가 들어간다든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한국의 작곡가가 독일 작곡가의 곡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를 들려주고 싶었다. 사실 국악기가 들어간 곡들이 현지에서 훨씬 반응이 좋다. 이번에는 지휘자가 국악기가 든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케이 클래식(K-Classic)’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위상이 높아진 것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이옥희 2016년 공연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했고, 이번에는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했다. 두 곳에서 모두 연주한 단체는 국내에서 경기필하모닉과 서울튜티앙상블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에 입성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음악은 연주가 생명이고, 계속 연주하기 위해 서울튜티앙상블을 창단했다고 들었다. 특히 실내악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 같다. 실내악의 매력, 무엇일까.
이옥희 실내악은 같이 하는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테크닉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 음악을 모아서 맞춰나가는 과정에서는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 웬만한 것은 넘겨주고 참아줘야 한다. 단, 음악만 빼고. 음악을 양보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2008년 창단 20주년 공연 후로는 딸에게 확실하게 경영이나 기획을 넘겼다.
단체를 운영해오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이옥희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을 연주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모차르트 협주곡 중에는 한국에서 연주되지 않은 곡들도 꽤 많다. 1년에 8회씩, 2년간 총 16회의 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 했다. 마지막 공연은 대극장에서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협주곡 전곡 시리즈다 보니 악기별로 잘하는 사람이 모두 참여했고, 지휘자만 15명 정도가 등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협주곡 전곡을 한 단체가 연주한 적은 없다며 주변에서 기네스북에 올려보라고 제안을 하더라. 결과는 좋지 않았다. 선례가 있어서가 아니라, 영국인들이 모차르트 음악에 대해 갖고 있던 자부심이 걸림돌이 됐다. 기네스북 본사는 영국에 있는데,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자신들도 여태 하지 않았던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본인들도 이러한 사례는 처음이라 기네스북에 등재할 수 없다는, 완곡한 거절의 메시지를 받았다.
또 하나의 길
정기연주회 외에도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음악회나 보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김지현 2010년부터 프란치스코 교육회관과 함께 기획하는 월례음악회 ‘카르페 디엠’을 운영하고 있다. 역시 같은 해부터 정동길에 위치한 북카페에서 매월 첫째 주 수요일 무료 월례음악회를 진행한다. 8월 첫째 주로 111회를 맞았다. 이러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2009년 본격적으로 일을 맡으면서 바깥을 다녀보니 단체에 대한 인지도가 충격적일 만큼 낮았다. 음악 하는 사람들, 그것도 약간 윗세대만이 우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수준 높은 음악을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안에서 우리만 좋은 것을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솔직하게 말해, 클래식 음악으로 한 민간단체가 먹고 살려면 일단 관객들에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많은 일반 관객이 클래식 음악 공연에 대한 경험이 없고, 어려울 것이라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문턱을 낮추고자 시작한 활동이다.
이옥희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가면 몸이 아픈 아이들이나 발달 장애우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힘을 돋워주고자 하는 것들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김지현 나름의 운영 계획이 있었다. 처음 3년은 일단 단체를 알리는 것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요즘은 꽤 유행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융·복합 공연을 선보였다. 마임·연극·낭독극 등의 공연에서 서울튜티앙상블이 실연하도록 한 것이다. 연극인 줄 알고 갔더니 클래식 음악이 나오네, 다음번엔 음악만 들으러 가볼까 하는 식으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싶었다. 한 번은 경복궁에서 무용수 황혜민·엄재용과의 공연을 위해 오케스트라 앞에 발레 플로어를 설치한 적도 있다. 그때만 해도 파격적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러한 공연들을 통해 이전보다는 훨씬 많이들 단체를 알아봐 주신다. 운영을 맡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의 목표는 창작곡을 바탕으로 외국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단체가 되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도 어느 정도 먹혔다면 괜찮지 않나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웃음)을 가지고 열심히 해나가려 한다.
이옥희 그런 중에도 1년에 2번 이상 콘서트홀에서 정기연주회를 하며 정통 클래식 음악에 대한 노력과 관심도 지속해나가고 있다.
끝으로 모녀지간이 아니라 음악가 선후배로서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옥희 나라면 저렇게 꼼꼼하게 기획해서 해외에 나가고 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그냥 열정만 가지고 이리저리 부딪혔던 것이다.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하는 운영자의 자리가 결코 쉬운 게 아닌데, 그걸 훌륭하게 해내는 걸 보면서 놀라운 마음이 크다.
김지현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머니처럼 예술 자체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아직도 하루에 3시간에서 6시간씩 연습하신다. 천상 예술가이신 것 같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강태욱(Workroom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