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FOCUS
견고한 피아니즘으로 주목받고 있는 파비앙 뮐러, 그가 추구하는 음악세계
1990년 독일 본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파비앙 뮐러는 가장 주목할 만한 독일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2017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ARD 콩쿠르에서 2등에 입상하며 세계 음악계에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 사실 2017년 ARD 콩쿠르는 우리에게 더욱 각별하다. 바로 이 해에 피아니스트 손정범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기 때문이다. 콩쿠르의 결선 영상은 독특한 풍경을 보여준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무대는 연주 시작 전 오케스트라와 독주자 간에 팽팽한 긴장이 흐른다. 비장한 독주자와 고압적인 오케스트라는 피아니스트의 압승으로 끝날 때까지 대결을 펼쳐간다. 경쟁의 의미가 두드러진 협연이었다.
반면 피아니스트 파비앙 뮐러의 무대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오케스트라가 그를 향해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보인다. 뮐러의 협연은 조화와 협력의 분위기가 어우러졌다. 물론 두 독주자의 성향 차이도 있겠지만 오케스트라를 한 음악인을 둘러싼 환경이라고 보았을 때, 어떤 환경 속에 그가 놓여있는가는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2등은 기억하지 않는’ 경쟁적 사회에서 자란 한국인들이 세계무대에서 이룬 눈부신 성취는 한편으로는 눈물겹다. 게다가 본고장이 아닌 클래식 분야에서 한국음악가가 최고로 인정받는 일은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까지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2등이 여기 있다. 본 태생의 피아니스트 파비앙 뮐러에게 음악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배경이자 삶 그 자체이다.
좋은 취향의 본보기
위대한 음악가들의 토양에서 성장한 뮐러는 지속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2013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부소니 콩쿠르에서는 언론 심사위원상과 함께 부소니 작품 최고 연주상과 현대작품 최고 해석상을 받았다. 그는 ARD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을 뿐만 아니라 브라더 부슈상, 제뉴인 클래식스 특별상, 헨레상, 그리고 청중상에 이르기까지 4개 부분의 특별상을 휩쓸었다. 그는 등수로만 평가할 수 없는 특별한 피아니스트인 것이다. 2016년 발표한 데뷔 음반 ‘아웃 오브 도어스’에서 뮐러는 라벨·버르토크·메시앙, 그리고 베토벤의 소나타 ‘전원’ 등으로 자연에서 받은 다양한 인상을 참신하게 표현하며 ‘가디언’지로부터 “좋은 취향의 본보기”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별히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브람스의 음악에 매료됐다. 2018년에 뮐러는 오직 브람스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두 번째 음반을 발표했다. 놀랍도록 다양한 음색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독창적인 시선이 이 음반에 담겼다. 그라모폰지는 “만족스러우면서도 예술적으로 특색 있는 이 음반은 뮐러가 계속해서 주목할 만한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뮐러는 같은 해에 뉴욕 카네기 홀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홀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독주와 음반 활동 외에도 뮐러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하이델베르크 봄 페스티벌, 루르 피아노 페스티벌 등 명성 높은 음악축제에 초청받고 있다. 또한 본 베토벤 하우스를 비롯해 유서 깊은 무대에서도 그의 음악적 지문을 남기고 있다. 뮐러는 내년 2020년, 본 태생의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해 가장 활발한 음악 활동이 기대되는 젊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목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되는 것
다음은 지난 8월에 첫 내한 연주를 가진 파비앙 뮐러와 연주를 앞두고 행해진 인터뷰다.
이번 연주회에서 슈만, 브람스, 그리고 베토벤의 작품을 선택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작품들의 특징과 매력은 무엇인가? 이 작품들의 어떤 특징들이 당신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가?
나는 본 태생이다. 본은 베토벤이 탄생하고 슈만이 죽음을 맞이했으며, 브람스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도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항상 이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과 함께 성장했다. 그 작품들이 내 연주 곡목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번 연주회에서 나는 매우 열정적이고 열광적인 성격의 작품을 선택했다. 압도적인 폭풍 같은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2번과 피아니스트가 대결할 수 있는 가장 큰 전투 중 하나인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 그리고 매우 자유롭고 유연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브람스의 작품들을 함께 연주한다.
당신의 연주에서는 열정과 활력뿐 아니라 사색적인 성격도 드러난다. 음악을 만드는 음악적, 예술적 동기는 어디에서 얻는가? 당신의 예술적 근원은 무엇인가?
가장 열정적으로 느껴지는 음악을 포함해서 모든 훌륭한 음악 뒤에는 강한 장인 정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독일 음악은 매우 견고한 구조를 통해서 음악을 드러낸다. 그것이 바로 독일이 시인과 사색가의 나라로 유명한 이유이다! 위대한 작품들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2017년 ARD 콩쿠르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다. 콩쿠르에서 얻은 경험과 의미가 궁금하다.
사실 나는 콩쿠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경기는 음악가가 아니라 말을 위한 것이다”라는 버르토크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콩쿠르의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 특별히 청중상을 수상한 것은 나에게 가장 고무적인 성과로 느껴진다.
독일 피아니스트로서 독일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 할 때 어떤 아이디어로 접근하는가?
모든 음악은 언어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독일어는 프랑스어처럼 유연하거나 이탈리아어처럼 성악적이지 않다. 자음이 많아 매우 명료하고 명확하며 강하다. 나는 이 음악을 제대로 ‘말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찾으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
데뷔 음반 ‘아웃 오브 도어스’에서 당신은 라벨, 버르토크, 메시앙과 베토벤을 선택했다. 이 작품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항상 모든 작품의 새로운 면을 이끌어내고, 유사성을 결합시키면서도 차이점을 드러내려고 시도한다. 또한 각각의 작품들은 그 하나만으로도 온 세상을 보여주는 좋은 책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첫 번째 연주를 앞둔 심정이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한국에 가게 되어 무척 설렌다. 한국에 관한 멋진 것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 상상만 했던 모든 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생각에 흥분된다.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로서 어떤 예술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
나의 목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되는 것이며, 결코 나의 신념을 팔지 않는 것이다.
자유로움에서 묻어난 순수한 열정
2019년 8월 8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뮐러의 첫 내한 독주회가 열렸다.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의 무대인 금호아트홀의 ‘클래식 나우!’시리즈 중 하나였다. 이 젊은 본 출신의 피아니스트는 브람스, 슈만, 그리고 베토벤 등 정통 독일 레퍼토리를 선택했다. 브람스 음반에 수록된 브람스의 ‘피아노를 위한 3개의 간주곡’을 비롯해 ‘피아노를 위한 2개의 랩소디 Op.79’와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열정’으로 뮐러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나갔다.
뮐러의 연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통성을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의 여유와 자부심, 그리고 압박감 없는 순수한 열정이었다. “음악은 언어와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확신”하는 뮐러에게 독일 음악은 모국어처럼 그의 생각과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브람스에서 뮐러는 고요하고 깊게 침잠했다. 두터운 화음들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겼으며, 충분히 머무르는 쉼표에는 충만한 쉼이 채워졌다. 격렬하게 몰아치는 슈만의 소나타에서도 그는 결코 성급하지 않았다. 뮐러의 손을 거친 부점들은 특별히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마지막 베토벤의 소나타 ‘열정’에서 뮐러는 견고하고 충실하면서도 감각적이고 대담한 해석을 보였다. 이 작품이 단순한 입시 소나타가 아니라 사실은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서사시인 것을 그는 그의 연주로 환기시켰다. 뮐러의 연주는 풍경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이의 표면적인 묘사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머무르는 자의 증언처럼 생생했다. 이러한 확신은 젊은 연주자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낼 필요가 없다.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자신의 신념을 팔지 않고 오직 그 자신이 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그의 목표이자 세상이 그에게 기대하는 바일 것이다.
글 서주원(음악평론가)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