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9월 13~15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에헤야 디야~!” 둥근 달 아래 춤 잔치가 벌어졌다. 흥을 돋우는 무당, 새처럼 날아드는 선비,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노래하는 소녀, 사랑에 빠진 춘향과 몽룡까지 한자리에 다 모였다. 신명나는 잔치에 타악 춤꾼이 빠질 수 없다. 북·장구·소고 총출동이다. 열두 발 상모까지 농악의 백미도 더했다.
국립무용단이 ‘추석·만월’을 하늘극장에 올렸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데 이어 올해는 김명곤 연출이 합세해 몇몇 레퍼토리를 교체하고 두 명의 재담꾼을 추가했다. 이보다 더 화려할 수는 없었다. ‘종합선물세트’라는 표현에 딱 어울리는, 대형 한국춤 갈라공연이었다.
객석엔 손자·손녀의 손을 잡은 할머니·할아버지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원형 무대가 무대와 객석의 친밀감을 돈독하게 해주는 하늘극장은 3대 가족 단위의 관객으로 가득 찼다. 한복 할인·가족 할인 등으로 티켓 가격 부담까지 던 가족들이 추석맞이 나들이를 남산으로 한 것이다.
총 8편의 춤을 예술감독과 단원들이 나눠 안무했는데, 사이사이 틈새를 재담과 사자춤으로 유연하게 잘 이어주었고, 기존에 보아왔던 해설자의 해설에 비하면 관객과의 소통도 더 잘 이루어져 하나의 극으로 완성된 느낌이었다. 대표 전통춤을 옴니버스로 묶으니 쉽고 볼거리가 많아 온 가족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세월과 함께 민족 대명절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여 동네방네 음식 냄새를 풍기며 시끌벅적하게 잔치를 벌이는 풍경은 점차 사라지고, 단출한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갈수록 늘고 있다. 심지어 추석 연휴가 짧았던 올해는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무용계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특별기획공연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미 명절 ‘대목’ 바람에 합류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춤을 소재로 국립국악원·한국의 집·서울남산국악당 등 수도권에서만도 유사한 공연들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국립무용단은 어떠한 차별성을 가져야 할까. 이들만의 장점은 무엇이며, 어떠한 미션을 수행해야 할까.
무엇보다 작품 ‘추석·만월’을 채운 대표 전통춤들의 출처가 분명했으면 한다. 8편의 춤마다 각각 ‘안무’ 또는 ‘재구성·지도’라는 설명이 있다. 안무자의 창작 순도에 따라 붙여진 부연설명이다. 정직하게 크레딧을 표기한 것이 반가웠다. 그런데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재구성·지도’라고 설명한 춤 중에서 제8호 국가무형문화재 ‘진도 강강술래’ 외에, ‘기도’ ‘사랑가’ ‘장고춤’ ‘소고춤’에 대한 원작자 설명이 필요하다. ‘무엇’을 재구성한 것인지 짤막하게라도 기록해주었으면 한다.
‘한량무’의 매력은 휘날리는 하얀 도포자락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어서일까. 푸른 소나무를 표현한 초록색 도포가 거슬렸다. ‘장고춤’의 시스루 한복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한편 아름다운 외모의 무용수들이 일률적으로 움직이는 춤사위에 감탄을 연발하면서도 우리 민속춤의 다양한 즉흥성과 자연스러운 신명이 부족해 아쉬웠다. 연배가 있는 관객은 그들이 기억하는 전통이 그리웠을 테고,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 관객들은 무대 위의 춤과 의상을 우리의 전통이라고 기억할 텐데, 과연 얼마나 정통성을 갖는지 꼼꼼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립단체로서의 품위와 민속춤의 전통만큼은 제대로 보전하되, 동시대적 감각의 볼거리를 만들어야 하니, 참으로 어렵고 힘든 숙제를 안고 있다.
글 장인주(무용평론가) 사진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