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빅 데이터의 시대가 도래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전에는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삶이 전망되고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 앞에 불안만 깊어지고 있다. 최근 두 편의 창작극 ‘남쪽 나라로’(히라타 오리자 원작, 성기웅 재창작ㆍ연출)와 ‘강철로 된 무지개’(이중세 작, 윤한솔 연출)는 4~5년 후 근미래 혹은 30년 후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북한 난민 문제를 다룬다. LG아트센터에서 올라간 독일 극단 도이체스 테아터의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 Which Future?!)’(안드레스 바이엘 작ㆍ연출) 또한 10년 후 미래를 배경으로 유럽의 경제 위기, 난민 문제,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노동력 문제, 네트워크로 대체된 정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렛 뎀 잇 머니’의 미래적 상상력이 바닥에서 발을 뗀 공중 곡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현실에 강하게 발을 디디고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 있다. 지난 1월 고공농성을 끝낸 ‘파인텍’ 노동자들의 이야기인 ‘이게 마지막이야’(이연주 작, 이양구 연출)가 그것이다.
‘렛 뎀 잇 머니’, 유럽의 위기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혹은 음모론?
‘렛 뎀 잇 머니’는 도이체스 테아터와 훔볼트 재단이 일반 시민들과 2년간 리서치와 토론을 통해 만든 공연이다. 공연의 첫 시작은 해설자가 등장해서 2028년 현재 경제 위기의 구제책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정치인과 이를 반대하는 급진적인 운동단체 ‘렛 뎀 잇 머니’가 마치 양쪽에서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두 개의 기차처럼 충돌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빈 무대에는 흰 소금이 덮어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사막화를 소금사막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마치 푸주간의 고깃덩어리처럼 비닐 포장물의 의심스러운 물체가 매달려 있다. ‘렛 뎀 잇 머니’의 리더 일듄, 그녀의 연인 옹즈, 그녀의 딸 지나는 정부 기록을 해킹해 현재 유럽 위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으로 유럽위원회 위원 프랑카 롤뢰그와 새로운 정치 슬로건이 된 ‘우리의 기본소득’ 설립자인 라포 로써를 지목하고 납치한 것이다. 롤뢰그와 로써의 심문 과정은 공중에 걸린 줄에 매달려 아크로바틱 공중 곡예로 표현된다.
“우리에게 더 이상 노동조합은 필요 없다. 우리에게는 네트워크가 있다.”
‘렛 뎀 잇 머니’ 조직의 슬로건이다. 이들은 롤뢰그와 로써의 심문 장면을 미디어로 생중계하고, 팔로워들을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기도 한 연출가 안드레스 바이엘이 무대에서 사용하는 영상과 아크로바틱의 연극적 움직임이 공연의 중요한 시각적 이미지를 이룬다. 긴 머리를 땋아 내린 여성 정치인 프랑카 롤뢰그의 배우 이미지는 지금 현재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연상시킨다. 한편 롤뢰그를 실질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은 유럽중앙은행 총재 프레리히 콘스트의 긴축재정 결정이다. 콘스트는 황금색 정장 수트 차림이다. 그 자체로 황금, 돈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 재정 위기 상황에 마치 구원자처럼 등장한 투자자 슈테판 타르프는 미군 군복 바지 차림이다. 타르프는 페이스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룬 전형적인 미국인 자본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협상의 달인’으로 소개되는 타르프의 이름이 지금 현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패러디한 것으로 읽히는 순간이다.
그런데 롤뢰그와 로써의 정치적 결탁, 콘스트와 타르프의 경제적 결탁 관계를 마치 부정적인 염문 장면처럼 묘사하는 장면은 이 공연이 단순히 유럽 붕괴에 대한 암울한 디스토피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음모론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파킨슨병으로 떨리는 손을 감추며 대중 앞에 서는 롤뢰그의 모습은 최근 건강이상설이 나도는 메르켈 총리의 상황이 연상되고, 위기에 처한 유럽이 늙고 판단력을 잃은 치매환자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불안의 심리를 전해준다. 유로존 붕괴, 난민 문제, 빅 데이터 수집과 정보 유출, 정치 무력화, 미국 투자자를 대신한 홍콩 투자자의 새로운 존재 등 복잡한 사안들이 긴 악몽처럼 펼쳐진다. 너무 복잡해서 이 모든 문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기 이전에 공포 자체가 전달된다. 마치 너무 복잡하게 이야기해서 이슈가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신문기사처럼 ‘팩트체크’가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노동조합도 와해되고, 국가기관이 민영화되고, 국민은 더 이상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 자체를 음모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나마 정치와 법에 기댈 수밖에 없는 힘없는 개인들에게 더 큰 불안을 안겨줄 뿐이다.
‘이게 마지막이야’, 근로기준법과 계약서가 지키지 않는 약속들
‘이게 마지막이야’는 지난 1월 서울 목동에서 426일 동안 세계 최장기간 굴뚝농성을 벌인 ‘파인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무대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이다. 정화는 1년 넘게 굴뚝에 올라가 있는 남편을 대신해서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편의점 야간근무를 하고 있다. 굴뚝에서 내려온 남편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편의점 유리창에는 ‘수입맥주 4캔 만원’, ‘CCTV 촬영중’, ‘금연구역’ 안내 전단지들이 붙여 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공연에서 보이는 장면들은 평범한 장면들이 아니다. 무대는 편의점 뒷마당이다. 이곳에 정화를 찾아오는 사람은 세 사람이다. 점장은 이전에 그만둔 알바생 보람에게 지불할 임금을 미루고 있고, 보람은 만날 수 없는 점장을 대신해서 정화에게 밀린 임금계산서를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위해 매일 찾아온다. 그런가 하면 남편과 함께 굴뚝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노동조합 동료 명호는 남편에게 빌려준 돈 3백만원을 급하게 돌려달라고 부탁하러 찾아온다. 그런데 정화는 첫째와 둘째 학습지 교사에게 석 달째 밀린 회비도 못 내고 있는 처지이다. 이들의 대화는 매장 내에 손님이 올 때마다 울리는 차임벨 소리에 끊겨 제대로 이어지지도 못한다. 각종 알바를 전전하는 보람도 5분 휴식 시간 알람을 맞춰 놓은 채 대화를 이어간다.
밀린 학습지 회비를 대신 내고 있었던 학습지 교사는 하루에 1만원씩이라도 받아가겠다며 정화를 찾아온다. 편의점과 학습지 교사는 지금 현재 근로조건이 가장 취약한 노동현장 중의 하나이다. 이들의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계약관계는 언제라도 쉽게 해고될 수 있는 ‘노동의 유연성’이 극대화된 계약서에 기반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구호를 포스트잇에 붙여놓고 편의점 문을 걸어 잠근 보람을 바라보며 나란히 주저 앉아있는 정화, 명호, 선영의 장면은 현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모두스 비벤디,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계약관계’의 삶이 어떻게 개인들을 고립시키고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LG아트센터·극단 전화벨이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