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더 하이츠’ vs ‘해밀턴’

힙합 뮤지컬의 효시와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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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2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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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를 넘어 세계를 사로잡은 린 마누엘 미란다의 두 작품

 

2008년 ‘인 더 하이츠’로 브로드웨이에 첫선을 보인 창작자 린 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 1980~)는 음악과 극본은 물론 주연까지 맡아 활약하며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이후 여러 편의 공연과 영화, TV를 넘나들며 창작자이자 프로듀서로까지 활동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작곡·작사가이자 래퍼인 린 마누엘의 색채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두 편의 작품은 쉽게 만나기 힘든 새로운 뮤지컬의 매력을 담아낸다.

 

경쾌한 라틴 힙합 뮤지컬 뮤지컬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는 뉴욕 맨해튼 북서부에 위치한 워싱턴 하이츠를 배경으로, 라틴계 이주민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담은 라틴 힙합 뮤지컬이다. 2005년 코네티컷주에서의 트라이아웃 공연과 2007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에 이어 2008년 브로드웨이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이 작품은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로 주목받았다.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쇼툰(Showtune, 뮤지컬을 위해 작곡된 음악으로, 넘버가 개별 곡들을 의미한다면 쇼툰은 음악 전체를 지시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과는 사뭇 다른, 라틴 힙합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었다.

실제 뉴욕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이민 가족 사이에서 자라난 린 마누엘 미란다가 창작은 물론, 사촌 동생 소니와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우스나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전천후 아티스트로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두 사람 외에도 이 작품에는 헤어숍에서 일하는 바네사, 스탠퍼드 대학을 다니는 수재지만 집안의 경제 사정을 생각해 학업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니나,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택시회사의 직원인 베니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우스나비를 키워준 은인이자 극의 주요 매개가 되어주는 클라우디아 할머니, 헤어숍 주인인 다니엘라, 니나의 부모님 등도 젊은이들과 대비되는 어른들의 이야기로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인 더 하이츠’ 공연사진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무더운 여름의 한 가운데인 7월, 독립기념일 연휴인 3일간 맨해튼의 변두리인 워싱턴하이츠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이 중심이다. 갑자기 전기가 끊기거나, 폭동이 일어나기도 하는 궁핍하고 거친 마을에서 클라우디아 할머니가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어 모두 기뻐하지만, 정작 할머니는 우스나비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혼자서라도 떠나려 했던 우스나비는 결국 할머니가 남긴 돈으로 자신의 식료품점을 재건하며 워싱턴 하이츠에 남고, 바네사는 우스나비의 도움으로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다가간다. 니나는 택시회사를 처분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들여 학업을 이어간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인 동네를 배경으로 하기에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전개되는 이야기일 것 같지만, 작품은 경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힙합 리듬으로 시종일관 무대를 꽉 채운다. 주인공 우스나비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는 파워풀한 리듬과 재치 넘치는 가사와 랩으로 오프닝 무대를 가득 채운다. 또 다른 킬링 넘버인 ‘96,000’은 복권에 당첨되는 상황을 꿈꾸는 사람들의 벅찬 감정이 현실과 대비되어 리드미컬한 랩으로 전달되는 곡이다. 머지않아 마을을 떠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고자 하는 바네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잇 온트 비 롱 나우(It won’t be long now)’, 집으로 돌아온 니나와 그녀를 위로하는 베니가 함께 부르는 ‘웬 유어 홈(When you’re home)’, 2막을 여는 니나와 베니의 듀엣 넘버 ‘선라이즈(Sunrise)’, 우스나비와 바네사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함께 부르는 ‘샴페인(Champagne)’ 등도 감미로운 멜로디와 라임이 살아있는 감성적이고 재기발랄한 가사로 쉽게 귀에 감기는 넘버들이다.

2008년 탄탄한 음악으로 인기를 끌며 브로드웨이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 ‘인 더 하이츠’는 그 해 토니 어워드에서 최우수 작품상·음악상·안무상·오케스트레이션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은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뮤지컬 쇼 앨범 부문을 수상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아쉽게도 2011년 1월 막을 내렸으나, 2020년 동명의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다.

 

힙합 리듬으로 풀어낸 미국 건국의 역사

‘인 더 하이츠’가 힙합 뮤지컬의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이었다면, 린 마누엘의 후속작인 ‘해밀턴(Hamilton)’은 힙합을 베이스로 뮤지컬의 영역을 한 뼘 더 확장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이자, 10달러 지폐에 그려져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토대를 닦은 중요한 인물이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재퍼슨 등에 비해 그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흔치 않았다.

린 마누엘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로 백악관에서 진행한 초청공연에서 개발 중이던 ‘해밀턴’의 오프닝 넘버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을 처음으로 공개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살아낸 한 명의 영웅인 해밀턴과 힙합 음악이 무엇보다 잘 어울릴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적중한 것이다. 이 작품의 작곡과 가사, 극작을 모두 담당한 미란다는 사생아로 태어난 가난한 이민자 알렉산더 해밀턴이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 되는 과정을 힙합과 R&B·팝·소울·전형적인 쇼툰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넘나들며 화려하고 풍성하게 풀어냈다. 2015년 오프브로드웨이 퍼블릭 시어터에서의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곧이어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해밀턴’은 평단과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 속에서 2016년 토니 어워드에서 최우수 작품상·극본상·음악상·연출상·안무상·오케스트레이션 상 등을 비롯해 무려 11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작품상과 퓰리처 어워드 작품상을 받으며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해밀턴’ 공연사진 ©Joan Marcus

‘해밀턴’은 대사가 따로 없이 노래와 랩만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작품이다. 서사는 크게 미국 건국의 역사를 따라가며 해밀턴과 그 외 주요 인물들의 발자취를 설명하는 한 축과, 해밀턴의 사랑과 결혼생활을 다루는 또 다른 한 축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앨범 전체를 순서대로 듣는 것만으로도 작품 한 편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오프닝 넘버인 ‘해밀턴’에 이어 알렉산더 해밀턴이 등장해 자신의 뛰어난 말솜씨를 뽐내며 부르는 ‘마이 샷(My shot)’, 스카일러 가의 세 자매인 안젤리카·일라이자·페기가 부르는 ‘스카일러 시스터즈(The Schuyler sisters)’, 존 로렌스와 찰스 리의 결투가 벌어지는 ‘텐 듀얼 코맨드먼츠(Ten duel commandments)’, 1781년 요크타운 전투의 승리를 노래하는 ‘요크타운(Yorktown)’, 애런 버와 해밀턴·토머스 제퍼슨·제임스 매디슨 등이 함께 부르는 ‘더 룸 웨어 잇 해픈스(The room where it happens)’ 등의 대표 넘버들은 압축적이면서도 재치 넘치는 가사와 경쾌한 리듬으로 시종일관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한다. 특히 2막에서 알렉산더 해밀턴과 토머스 제퍼슨이 정치적인 견해차를 랩 배틀로 풀어내는 ‘캐비넷 배틀(Cabinet battle)’은 힙합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넘버다. 그런가 하면 일라이자의 마음이 전달되는 ‘헬프리스(Helpless)’는 R&B만의 풍성한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는 곡이며, 조지 3세가 부르는 ‘유 윌 비 백(You’ll be back)’은 브리티시 팝 느낌의 곡이다.

자칫 어렵고 복잡하게 느낄 수 있는 미국의 역사를 변화무쌍한 음악으로 풀어낸 ‘해밀턴’에서는 창작자인 동시에 알렉산더 해밀턴 역으로 무대에 서는 린 마누엘 미란다의 천재적인 감성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건국의 아버지들 역으로는 백인을 제외한 유색인종 배우들만 기용한다는 점은 힙합과 R&B 음악의 정수를 더욱 배가시키는 부분이다. 개막 이후 나날이 브로드웨이의 흥행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해밀턴’은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

지혜원(공연 칼럼니스트)

 

이달의 추천 음반

❶ 뮤지컬 ‘인 더 하이츠’(2008) 린 마누엘 미란다(우스나비)/카렌 올리보(바네사)/ 맨디 곤잘레스(니나)/ 크리스토퍼 잭슨(베니)/올가 메레디즈(클라우디아)/안드레아 번즈(다니엘라)/퀴아라 알레그리아 휴즈(대본)/린 마누엘 미란다(작사·작곡)/토마스 카일(연출) Ghostlight Records B07W1YWJV7

❷ 뮤지컬 ‘해밀턴’(2015) 린 마누엘 미란다(알렉산더 해밀턴)/필리파 수(일라이자)/르네 엘리스 골즈베리(안젤리카)/레슬리 오덤 주니어(애런 버)/크리스토퍼 잭슨(조지 워싱턴)/다비드 딕스(라파예트 후작·토머스 제퍼슨)/린 마누엘 미란다(극본·작사·작곡)/토마스 카일(연출) Atlantic Records B0135P6P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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