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8년 만이다. 소니 클래시컬에서 발매한 세 번째 음반을 들고 임동민이 대중 앞에 섰다
누구나 내가 상상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이 있다. 무대 위의 모습을 보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우므로, 우리는 그 사람의 일상을, 성격을, 말투를 상상에 맡겨본다. 가끔은 그렇게 나만의 아티스트를 그려낸다.
피아니스트 임동민. ‘객석’과는 2008년 커버스토리가 마지막이었고, 그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또한 굉장히 오래전의 것이었다. 어쩌면 내 기억 속의 그는 쇼팽 콩쿠르 한국인 최초 3위, 임동혁의 형, 신비스러운 피아니스트 등의 키워드로 남아있었다. 다른 인터뷰나 영상 속의 그는 굉장히 말을 아끼는 사람 같았다. 솔직하지만 아는 체 하지 않는 사람. 대체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예상 가능한 여느 인터뷰와는 다르게 도대체 이야기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약속시각 15분 전, 압구정의 한 카페에 도착해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자리를 잡았다.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마치 태풍 ‘링링’을 앞두고 온 나라에 흘렀던 긴장이 공간을 채우는 것 같았다. 약속시각을 1분 앞두고 누군가 카페 안으로 뛰어들었다. 임동민이다. 오랜만의 인터뷰,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바쁘게 지냈다. 학교도 벌써 개강했고.
새로운 음반이 나왔다. 무려 8년 만에! 오랜만에 연주를 준비하며 음반도 함께 남기면 어떨까 생각했다. 음반은 평생 남는 것이니까. 쇼팽과 슈만의 두 작품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도 했고.
완성된 마스터링은 들어보았는가? 들어봤다. 마음에 든다.
녹음 과정은 어땠나? 편안했다. 최진 감독님과는 이전 독일에서 녹음한 쇼팽 앨범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이었다. JCC아트센터에서 3일 동안 진행했다.
완전히 새로운 레퍼토리인가? 쇼팽 스케르초는 십여 년 전, 아주 어릴 적에 한 번 다뤄봤고, 슈만 ‘어린이 정경’은 새로운 레퍼토리다.
두 작품을 한 음반에 넣은 이유는? 처음에는 슈만 대신 슈베르트 소나타나 차이콥스키 ‘어린이를 위한 앨범’도 생각해 봤다. 그런데 차이콥스키 ‘어린이를 위한 앨범’의 경우 대중은 물론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이 아니어서, 이보다는 조금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을 선택했다.
대중성을 고려한 프로그램인가? 그게 중심이 된 것은 아니다. 슈만이라는 작곡가 자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는 ‘어린이 정경’을 가장 좋아하고. 이 작품은 특히 유럽에서 많이 연주되는데, 호로비치도 말년에 항상 이 작품을 연주했었다.
쇼팽은 어떤가? 그는 완벽한 작곡가다. 피아니스트를 위한 작곡가고. 슈만과는 또 다르다. 피아니스틱한 면에서 보았을 때는 쇼팽이 더 훌륭한 작곡가라고 생각한다.
음반 발매와 함께 리사이틀도 앞두고 있는데. 그게 문제다! 녹음 직전 곡을 공부하기 위해 유럽에 다녀왔다. 음반은 다녀오자마자 녹음을 해서인지 잘 나온 것 같은데, 리사이틀은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라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음악이라는 게 느낌이지 않나. 그 순간의 느낌!
대개 슈만의 작품은 그 길이나 형식에 있어 연주자나 관객에게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 같다. ‘어린이 정경’의 경우 기술적인 어려움보다는 음악적 이해도가 더 중요하다. 물론 슈만의 음악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쇼팽이 더 어렵다. 피아니스트 입장으로서 말이다. 무엇을 딱 짚어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테크닉이나 음악적으로 더 어렵게 느껴진다. 쇼팽 자신은 제대로 연주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곡을 어렵게 해놓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쇼팽에 더 쉽게 끌리지 않나. 내게 쇼팽은 항상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다. 뭘 연주해도 어렵다. 표현하는 것도, 소리도, 호흡도, 테크닉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인연이 깊은 작곡가가 아닌가! 콩쿠르도 그렇고(임동민은 한국인 최초로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동생 임동혁과 함께 2위 없는 3위에 올랐다). 어릴 때는 어려운 줄 모르고 쳤던 것 같다. 직감적이고 본능적으로. 나이가 들며 새롭게 깨닫는 부분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하다. 시간이 흐르며 무뎌질 수밖에 없는 감각적인 부분은 더 많은 노력으로 채워가고 있다.
슈만과 쇼팽, 누구의 삶에 더 공감하는가? ‘삶’으로만 보았을 때는 쇼팽이 더 행복했을 것 같다. 물론 그도 망명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테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귀족 출신으로 파리에서 그럭저럭 어렵지 않은 생활을 이어갔다. 반면 슈만은 말년에 정신병을 앓았고, 여러 가지로 인생에 불행이 찾아왔었다.
삶의 변화는 음악의 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임동민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어릴 적에는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 같다. 항상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며 자연스레 사라졌다. 예전보다 무대를 바라보는 데 있어 긴장도 조금 줄어들었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 깡이 늘어서일지도.(웃음)
자신의 20대를 ‘좌절·고독·연습’이라고 답했었다. 30대를 지나온 지금은? 연습이야 항상 하는 거고. 여유? 예전보다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쇼팽 콩쿠르에 나갔던 시기는 항상 열정과 감성을 중요시했던 때였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지적인 요소와 절제미가 내 음악적 방향에 영향을 주었다. 이번에 음반과 리사이틀을 준비하면서는 또다시 열정으로 돌아온 것 같다. 돌고 도는 게 인생이니까.
스페셜리스트 vs 멀티플레이어? 두 단어 모두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쇼팽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나 스스로 나를 규격화시키고 싶진 않다.
무대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 무대보단 연습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은 해봤다.(웃음)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난 청중을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 작곡가를 위해 연주한다.”라고 했었다. 내가 그랬나? 대중이 있어야 아티스트도 있는 거다. 물론 음악은 주관적이라서 같은 곡을 연주해도 아티스트마다 다른 색깔을 띠고, 예술성과 대중성이 항상 같이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결국엔 대중이 있어야 아티스트도 있는 것이므로 대중적인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인터뷰 시간 동안 끊임없는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이 사람 참 알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매력적이다!’ 모르면 모른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는 아이 같은 솔직한 대답에 오히려 웃음이 났다. 그의 이런 솔직함과 예상치 못한 생각들이 이번 음반 속 슈만 ‘어린이 정경’과 쇼팽 스케르초에도 담겨있지 않을까. 이제 그의 연주를 직접 들으러 공연장에 가봐야겠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봄아트프로젝트
임동민 피아노 독주회
10월 28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11월 15일 오후 7시 30분 광주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
11월 17일 오후 5시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
11월 21일 오후 7시 30분 대구 수성아트피아 용지홀
12월 12일 오후 7시 30분 인천 엘림아트센터 엘림홀
12월 14일 오후 5시 통영국제음악당 슈만 ‘어린이 정경’, 쇼팽 스케르초 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