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슈베르트와 쇤베르크, 그 어울림에 대하여
가사가 붙지 않은 음악에도 행간은 있다. 그것은 작곡가마다, 그리고 작품마다 모두 다르기에 그 의미를 어떻게, 얼마나 잘 읽어내느냐에 따라 연주의 느낌이 달라진다.
피아니스트 틸 펠너가 오는 10월, 다시 한번 한국을 찾는다. 지난 7월, 서울시향과 함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들려준 것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내한이다. 이번에는 금호아트홀연세를 찾아 슈베르트 소나타 20번과 21번, 그리고 쇤베르크 ‘3개의 피아노 소품’ Op.11을 들려줄 예정.
뜨거웠던 지난여름, 서울시향과의 협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던 피아니스트 틸 펠너와 만났다. 그가 두 작곡가의 음악 속에서 찾아낸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1997년 슈베르트와 제2빈악파(쇤베르크·베르크·베베른)를 프로그램으로 유럽에서 세 개의 콘서트로 구성된 사이클을 진행한 이후 슈베르트와 쇤베르크를 종종 함께 연주한다. 쇤베르크는 19세기 당시 베토벤만을 찬양했던 대부분의 음악가들과는 달리 슈베르트의 음악적 가치 또한 알아보았던 초기 음악가 중 한 명이다. 쇤베르크는 훌륭한 스승이었고, 바로크·고전 음악에도 능통했다. 동시에 그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기도 했다. ‘3개의 피아노 소품’은 그에게 터닝 포인트 같은 곡이다. 3개의 소품 중 1번과 2번은 앞선 전통을 따르고 있으나, 3번은 전혀 다르다. 정의할 수 없는 무질서함이 존재한달까. 이와 비슷한 분위기는 슈베르트 소나타 20번 2악장에서도 느낄 수 있다. 두 곡 모두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굉장히 현대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슈베르트와 쇤베르크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은 것처럼 그는 새로운 작품을 접할 때마다 작곡가의 언어와 그 캐릭터를 먼저 그려본다.
“작곡가마다 지닌 음악적 언어가 다르다. 그래서 그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슈베르트는 자신의 작품에 굉장히 많은 악센트를 적어놓았다. 또 그가 쓴 악보를 보면, 간혹 피아니시모(pp, 매우 여리게) 표시 뒤에 디미누엔도(dim, 점점 여리게)가 있고, 다시 피아니시모(pp)가 적혀 있다. 과연 무슨 의미일까? 자칫 계속 작은 소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사이에 피아노(p, 여리게)와 메조 피아노(mp, 조금 여리게)로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바흐와 베토벤의 피아노 레퍼토리 또한 집중적으로 탐구해 왔다. ECM 레이블을 통해 바흐 평균율곡집 1권과 인벤션 2·3부를 담은 앨범, 나가노 켄트/몬트리올 심포니와 함께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5번 음반을 발표했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뉴욕·워싱턴·도쿄·런던·파리·빈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사이클을 가졌다.
“너무 늦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해보는 것일 뿐이다. 바흐 평균율과 베토벤 소나타는 피아노 레퍼토리에서 구약과 신약성서로 일컬어질 만큼 중요하다. 특히 베토벤 32개의 소나타는 무엇하나 높고 낮음을 평할 수 없을 만큼 모두 다른 스타일을 보인다.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 그에게 반복이란 없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작품을 만들었다.”
틸 펠너의 음악적 관심은 현대에도 닿아있다. 2016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선보였던 한스 젠더의 작품과 가장 최근에 초연한 알렉산더 스탄코프스키의 피아노 독주곡을 비롯해 해리슨 버트위슬, 토마스 라르허, 킷 암스트롱의 작품을 초연해왔다.
“킷 암스트롱은 알프레드 브렌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가 피아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매우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작품을 의뢰했다. 킷이 “연주하기 어려운 곡을 원하세요, 아니면 소리만 어렵게 들리길 원하세요?”라고 묻길래 “킷, 네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내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거야. 그러니 후자가 좋겠어.”라고 답했다. 얼마 후 그가 곡을 보내주었는데, 연주하는 것도 들리는 것도 모두 어렵더라. 나중에 그가 “만들어 놓고 보니 연주하기는 아주 어려운데, 그에 비해 소리는 그리 어렵게 들리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웃음)”
현재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연주를 펼치고 있는 그가 피아니스트로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것은 1993년, 21세에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부터다.
“그전에도 연주를 하긴 했지만, 콩쿠르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승 직후 네빌 마리너가 이끄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 멕시코시티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등 세계 유수의 악단과 협연하고,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지의 페스티벌에 초청되며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음악에 있어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라면, 삶의 터닝 포인트 된 순간은 언제였을까?
“알프레드 브렌델과의 만남.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 18세였다. 그 앞에서 한 번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슈만 ‘클라이슬레리아나’와 베토벤 소나타 ‘열정’을 연주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왔다. 알프레도 브렌델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이다. 전반적인 것부터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음악을 다각도로 바라본다. 한번은 그 앞에서 리스트 ‘순례의 해’ 중 ‘페트라르카 소네트’를 연주했는데, 연주를 마치자 브렌델이 “너는 지금 39도 정도의 열기로 연주하고 있어. 이걸 37.9도 정도로 낮춰도 충분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가 얼마나 섬세한 음악가인지 알겠는가?”
알프레드 브렌델 같은 좋은 멘토를 만났듯, 틸 펠너 역시 취리히 예술대학에서 젊은 음악가들의 멘토가 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강조한다.
“작곡가의 시선으로 먼저 다가가야 한다. 나는 작곡가에 대한 존경이 느껴지지 않는 연주나 연주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극적인 연주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이 먼저고, 그다음이 연주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강태욱(Workroom K)
틸 펠너 피아노 독주회
10월 17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연세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59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