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이 궁금하다고요?
‘모차르트 모자이크’
10월 5일 오후 3시 | 아트센터 인천
숨어있는 모차르트 음악, 그리고 그와 함께 호흡한 동시대 작곡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아트센터 인천의 토요 스테이지 ‘모차르트 모자이크’는 휴식과 음악 감상을 동시에 하고 싶은 사람들이 들으면 좋을 만한 부담없는 음악회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모차르트의 음악을 이해하기에도 좋은 시간이었다.
마치 큰 그림의 작은 조각을 맞추듯 음악회는 편안하고 재미있는 해설과 안정된 앙상블의 연주로 호흡을 맞추며 진행되었다. 최수열이 지휘하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슈만과 브람스, 호른의 매력이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호른 연주로 시작한 첫 곡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Op.15, 7번은 피아노 선율의 맑고 투명한 감성과는 다른 부드럽고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매력이 있었다. 브람스 교향곡 1번 역시 호른의 섬세한 음색이 돋보였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내면을 음악 속에 응집한 브람스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곡은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안정된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2부는 ‘최수열에게 묻다’ 코너로 시작했는데,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의 재치있는 입담과 지휘자 최수열의 친절한 답변이 호흡을 이루며 자연스러운 토크콘서트로 이어졌다. 만약 브람스 교향곡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브람스의 음악 속에 다가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연주와 함께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해 내며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한 사람 뿐 아니라 애호가들에게도 생각할 만한 주제를 던지며 흥미를 이끌어 냈다.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호른 객원수석을 지낸 김홍박의 정교하고 자신감 넘치는 연주는 이 날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모차르트 모자이크’ 무대의 매력은 단순히 클래식 음악을 쉽게 설명해 주는 해설 음악회가 아닌, 클래식 음악이 궁금한, 혹은 낯선 악기의 소리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편안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음악의 본질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장치로 기획된 무대였다는 점이다. 또한 연주 레퍼토리가 모두가 아는 유명한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를 모아서 연주하는 무대만은 아닌 것도 인상적이었다. 연주 전 나눠준 커피와 머핀, 아름다운 연주홀과 바다를 품은 외관, 훌륭한 기획과 연주, 그리고 청중이 만나 이룬 공연장의 분위기는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을 선물하기에 충분했다. 이 공연을 통해 호른의 매력과 브람스 음악의 깊이를 느낀 청중이라면 언젠가 클래식 음악 무대를 찾게 될 것이다. 이슬비처럼 삶 속에 스며드는 클래식 음악회란 이런 것일 것이다. 국지연
우리가 만들어갈 클래식 스타
‘열혈건반-더 듀오’
10월 8일 오후 8시 |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단숨에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음악 전공생이나 애호가는 물론,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그의 이름은 단숨에 알려졌다. 조성진의 연주라면 수도권이나 지방이나 아이돌 콘서트에 버금가는 속도로 순식간에 티켓이 매진되었고, 여전히 그 인기는 현재 진행형에 있다.
조금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중적으로 높은 인지도와 티켓파워를 가졌던 ‘스타’ 피아니스트를 떠올려 본다. 백건우, 임동혁, 손열음···. 물론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클래식 음악을 즐기지 않는 주변인들에게 물었을 때 익숙하다는 반응이 나왔던 이름들이다. 그러나 현재 클래식 음악 강국이라는 인정받는 대한민국에 내세울 연주자가 이들밖에 없는가? 대답은 ‘노(No)’.
지난 10월 8~12일 영아티스트포럼앤페스티벌(YAFF)과 세종문화회관이 ‘열혈건반’이라는 이름으로 페스티벌을 선보였다. “뛰어난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너무 많다”는 믿음 위에 펼쳐진 판이었다. 부소니 콩쿠르·프라하 봄 콩쿠르·헤이스팅스 피아노 협주곡 콩쿠르·에피날 콩쿠르 등 어린 나이에 이미 굵직한 커리어를 쌓고, 국내외 무대에 오르고 있는 8인의 피아니스트가 페스티벌의 중심이었다. 이들은 솔로·듀오·협연 등 다양한 구성과 기획안에서 무대를 선보였다.
8인의 피아니스트가 펼친 4일간의 무대 중 첫날 ‘더 듀오’를 찾았다. 네이버 TV를 통해 생중계된 이 공연에서는 홍민수와 이택기, 한상일과 박종해가 짝을 이루어 듀오 무대를 선보였다. 1부의 막이 오르고 홍민수와 이택기가 마이크를 들고 등장했다. 마이크가 어색했던지 두 사람은 긴장감 가득한 모습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했고, 그 떨림이 객석으로, 그리고 첫 곡 모차르트의 도입부로까지 이어졌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경험이 필요하고,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기획이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날은 오히려 두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두 사람은 금세 제 실력을 찾았다. 홍민수의 따뜻한 음색이 이택기의 선명한 터치를 감싸며 밸런스를 맞췄다. 포지션을 바꾸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Op.17에서도 곡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홍민수의 묵직한 울림이 눈에 띄었다. 2부는 한상일과 박종해가 꾸몄다. 같은 듀오 연주였지만, 피아노 배열의 변화와 조금 더 묵직해진 사운드가 다름의 재미를 주었다. 두 사람은 브람스와 드뷔시·미요로 다채로운 사운드를 선보였고, 서로에게 완전히 녹아들며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우리나라 젊은 연주자들의 반가운 소식은 전 세계에서 거의 매일같이 들려온다. 예선에 들기조차 어려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한번 입상하기도 어렵다 하는 일을 몇 번씩 해낸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를 통해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은 지도 벌써 4년이 흘렀다. 그 이후로도 무한한 가능성과 재능을 지닌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전 세계 무대에서 반짝였으나, 아직 그만한 스타로 떠오른 피아니스트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세계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연주자들의 행보에 너무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그들의 노력에 대한 결과를 너무 쉽게,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타’라는 단어에 익숙해진 나머지 너무 인색해진 것은 아닐까. 이번 ‘열혈건반’을 통해 우리는 여덟 명의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가 지켜봐야 할 재능 있는 연주자들은 아직 더 많이 남아있다. 이미라
삶의 본질에 이르는 길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9월 20·21일 | LG아트센터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는 2018년 9월 독일에서 초연했다. 이 작품은 ‘참여형 제작 방식’을 표방하며 긴 연구를 거쳐 완성됐다. 도이체스 테아터와 독일의 훔볼트 포럼은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 일반 시민들과 함께 토론을 거쳐 작품을 발전시켰다. 작품에는 2018년부터 2028년까지, 약 1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사건들이 촘촘히 나열돼있다.
지난한 연구 과정 동안 이들은 기후변화, 난민문제, 재정위기 등 다양한 미래를 예측했을 것이다. 실제로 연출가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복잡한 현상들을 어떻게 100분에 담을지 고민이 많았고, 무대화를 위해 덜어내는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2023년, 이탈리아의 EU 탈퇴 이후 흔들리는 유럽 상황이 작중 배경이다. 어지러이 얽혀있던 문제들이 터져 나오지만, 머릿속에는 ‘정말 10년 뒤에는 저럴까?’ 물음표가 생긴다. ‘정말 10년 뒤에 ‘유럽’은 저럴까?’로 생각이 귀결되다 보니, 작품 속 배경이 낯설다.
‘렛 뎀 잇 머니’는 이번 내한이 첫 해외 공연이다. 이 프로젝트는 아직도 과정 중에 있다. 여러 투어 공연과 관객과의 대화 등을 마친 뒤 2020년에 클로징 콘퍼런스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그렇다면 첫 해외 공연을 한국으로 정한 이유, 한국(아시아 국가)에게 기대하는 점, 한국 관객이 기대할만한 점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대중은 작품이 너무 어려웠고, 전체 스토리에 20프로 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공연보다는 ‘관객과의 대화’가 좋았다고 언급했다. 한 관객은 “무대 위 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발화하지만, 관객은 발언권 없이 앉아있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관객은 무대를 즐기기보다는 자막을 이해하기에 급급했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출가는 작품에 대한 변(辨)을 늘어놓는 상황이 펼쳐졌다.
어쩌면 이 작품은 미래의 시점에서 위기를 제시해주고, 질문을 미리 던짐으로써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의도였다. 사실 암울한 미래는 픽션이기에 안심이었고, 수긍할 수 없는 미래이기에 다행이기도 했다.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퍽 괜찮은 일이다.
작품에서는 기본소득을 하나의 유토피아로 제시한다. 기본소득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고, 급진적인 대책으로 기본소득을 내세운다. 한국이라고 다를 건 없다. 일례로 올해 초에는 한 기업이 차량 공유 카풀 서비스를 추진하자 택시 업계는 거세게 반발했고, 한 택시기사는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그러기에 자신의 직업이 드론으로 대체되어 실직한 전직 배달원 유르겐 바도프스키가 ‘렛 뎀 잇 머니’ 운동가가 된 이유는 납득이 간다. 바도프스키를 통해 기술 발전으로 생계 위협을 받고 있는 이들을 다시금 공감하게 했다.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절실하다.
작품 속 ‘렛 뎀 잇 머니’ 운동 역시 문제적이다. ‘렛 뎀 잇 머니’ 운동가들은 기본 소득과 인공섬 설립 추진자를 납치하고 심문한다. 미디어로 심문을 생중계하고, 천만 명 이상의 팔로워는 온라인 참여 방식을 통해 신속히 상호 작용한다. 10년 후엔 반정부 저항 운동마저 상업성이 된다는 예상, 시청자가 원하는 쇼를 제공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설정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더불어 그것이 정녕 ‘쇼’라면 그들의 심판을 과연 팔로워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도 생긴다. 가늠하기 힘든 온라인 세상에서 무엇을 믿을지 개인의 신념이 필요할 테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삶의 본질을 말한다. 무대 위 새하얀 소금은 삶의 본질을 은유한다. 기본소득도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 생존권을 위한 목소리이다. 소금으로 둘러싸인 바다에 인공섬을 세운 자본가들도 자치권 획득을 위한 움직임이다. 각자의 삶의 본질을 위해 부단히도 싸우는 사람들. 소금으로 뒤덮인 무대를 뒹구는 배우들이 그래서 더 처연했다. 장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