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REVIEW
강원
제1회 PLZ페스티벌 평화와 생명을 향한 노래
강원도(도지사 최문순)와 인제군(군수 최상기), 양구군(군수 조인묵)이 공동 주최하고, 강원문화재단(대표이사 김필국)과 지구와사람(대표 강금실), 하나를위한음악재단(이사장 한세대 교수 임미정)이 공동 주관하는 2019 PLZ페스티벌이 9월 27일 인제 DMZ평화생명동산 오프닝 공연, 28일 양구 통일관 전쟁기념관 음악회, 같은 날 국립DMZ자생식물원 메인공연, 29일 인제 산촌민속박물관 공연을 모두 성황리에 마쳤다. 김필국 강원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우리 재단은 지난 평창문화올림픽을 시작으로 평화 청춘 프린지 페스티벌, PLZ 페스티벌 등 DMZ 내 다양한 문화행사를 추진해 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평화의 물결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DMZ가 평화문화콘텐츠의 상징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9월 26일, PLZ페스티벌은 9월 27일 오프닝 공연 전 12사단 신병교육대 찾아가는 공연 ‘당신을 위한 평화의 노래’를 개최하며 축제의 첫 발을 내딛었다. 군장병 3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펼쳐진 이날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안인모의 해설 아래, 제네바에서 온 앙상블 데 나시옹(전 유엔 오케스트라)이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과 비제의 ‘카르멘’ 등을 연주하며 신병교육대에 내려앉은 가을 저녁을 클래식 음악으로 은은하게 물들었다. 피아니스트 안인모는 장병들에게도 익숙한 피아노곡,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여 장병들의 박수를 한몸에 받았다. 소프라노 도희선은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이흥렬의 ‘섬집아기’를 불러 장병들의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마지막은 12사단 군악대 마운틴 롤러 밴드와 마술쇼가 장식했다. 김광석의 ‘일어나’를 비롯한 가요들을 선보인 밴드의 목소리와 12사단 내 마술사라 불리는 장병의 개인기가 장병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냈다. 이날 행사는 12사단 신병교육대에 피아노를 기증, 음악과 함께 보다 즐겁고 건강하게 군생활을 마치길 바라며 마무리됐다. 다음 날인 9월 27일 저녁 6시 DMZ평화생명동산 야외음악당 오프닝 공연을 통해 본격적인 개막을 알렸다. 이날 행사에는 정만호 강원도 경제부지사, 강금실 지구와사람 대표(전 법무부장관), 최상기 인제군수, 김상만 인제군의장, 김필국 강원문화재단 대표이사, 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등 내빈을 비롯해 각지에서 온 초대 손님과 군장병, 마을 주민 등 약 350여 명의 관객이 야외음악당을 가득 메웠다. ‘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주제 아래 진행한 이날 공연은 예술감독 임미정(한세대 교수)이 DMZ평화지역을 비롯한 모든 곳의 평화를 기원하며 ‘베네딕투스–무장한 사람: 평화를 위한 미사’ 연주를 선보였고, 비올리니스트 최은식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첼리스트 김민지 외 실력파 연주자들이 모차르트와 쇼스타코비치, 멘델스존 등 수준 높은 연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9월 28일 오전 11시에는 전쟁의 상흔이 깊었던 지점이자 을지전망대의 입구인 양구 통일관 앞 전쟁기념관에서 PLZ시그니처 공연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EU대사를 비롯한 시에라리온·크로아티아·방글라데시 등 약 11개국의 대사 및 부대사와 영사, 박진오 강원일보 대표 등 국내외 내빈이 함께했다. 약 20분간의 짧은 공연으로 이뤄진 이 PLZ시그니처 공연은 ‘을지전망대의 모차르트’라는 제목으로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의 바흐 솔로를 비롯해 모차르트 4중주를 선보였고, 전 유엔앙상블인 앙상블 데 나시옹이 단치를 연주했다. 음악회가 끝난 뒤, 모두가 함께 을지전망대를 돌아보고 아름다운 펀치볼과 북녘의 들판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평화를 염원했다. 국립DMZ자생식물원에서 펼쳐진 메인공연은 ‘지혜를 넓히는 사랑의 여정’이라는 주제 아래 음악평론가 장일범이 진행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펼쳐진 이 공연은 소프라노 강혜정이 강창우가 지휘하는 비바체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김동진의 ‘내 마음’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Think of me’를 불러 좌중을 압도했다. 비바체 챔버 오케스트라는 사라사테 ‘카르멘 환상곡’ 4악장을 완벽하게 연주하며 강렬한 여운을 남겼으며, 앙상블 데 나시옹은 이 오케스트라를 기획한 앙트완 마르구이에의 지휘아래 연주했다. 이 자리에는 앞서 밝힌 주한 대사들을 비롯해 정만호 강원도 경제부지사,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조인묵 양구군수, 이상건 양구군의장,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등 내빈을 비롯한 400여 명의 관객이 참여해 자연, 그리고 클래식 선율과 더불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9월 29일 오후 3시에는 ‘인간의 삶을 듣다’를 주제로 인제 산촌민속박물관 야외공연장에서 주민들을 만났다. 인제의 소박한 동네와 그 주민들, 군장병 등 150여 명이 함께 어우러져 일요일 한낮 클래식 음악을 여유롭게 즐겼다. 피아니스트 진영선과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의 사라사테의 서주와 타란텔라로 시작한 이날 공연은 피아니스트 박종화와 비올리니스트 최은식,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미, 김다미, 첼리스트 심준호가 함께 슈만의 피아노 5중주를 연주했다. 또 우리에게 친숙한 가델과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곡들을 연주해 감동을 선사했다.
글 전민진 사진 PLZ페스티벌
INTERVIEW
PLZ페스티벌 예술감독 임미정
PLZ페스티벌의 예술감독 임미정(한세대 교수)이 DMZ에 대한 인식을 PLZ(Peace and Life Zone)으로 바꾸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건 2000년 평양을 처음 방문해 북쪽 음악가들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한 추억을 가슴 깊이 간직하면서 부터였다. 분단선 접경지역에서 과거보다는 미래와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함께 하길 희망했던 꿈이 이루어져 첫 결실을 맺었다. 그녀는 PLZ페스티벌이 지구촌으로 퍼져 아름다운 문화운동이 되기를 꿈꾼다. 축제를 함께 즐긴 모두의 마음 속에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19 PLZ페스티벌 ‘평화와 생명을 노래하다’의 클래식 음악 축제가 막을 내렸다. 축제의 첫 발을 내딛은 소감이 궁금하다. 이번 페스티벌은 좋은 연주와 의미가 결합된 통합적인 성격을 띤 축제였다. 분단과 아픔의 땅 DMZ를 평화와 생명의 공간으로 인식해 한반도를 비롯한 전세계에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된 이번 페스티벌은 바람소리, 귀뚜라미 소리와 초가을 정취가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개인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음악을 넘어 음악이 사회와 세계, 나아가 자연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것 같아 보람이 느껴진다.
인제와 양구, DMZ평화생명동산 야외음악당에서의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인근 주민들과 군인들, 해외 대사들도 초청해 음악회를 가졌다. PLZ페스티벌은 평화와 생명을 위한 목소리를 확산시키려는 문화운동의 일환이고 강원도가 PLZ 문화운동의 시작점이 된다. PLZ는 우리가 처한 전 지구적 위기는 평화를 향한 노력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 없이는 해결하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연 스스로 상처를 회복한 DMZ를 ‘평화와 생명을 노래하는 상징’으로서 전 세계에 귀감을 주는 장소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번 페스티벌의 커다란 줄기는 생태계를 위한 PLZ 포럼과 클래식 음악 축제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이번 포럼은 ‘자연의 권리와 생태적 전환’을 주제로 포럼이 열렸고 국제 포럼으로 개최되어 오클랜드 법학대학원 교수인 클라우스 보셀만, 유엔 하모니 위드 네이쳐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마리아 산체스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환경파괴와 기후위기 등의 현안을 공유했다. 클래식 음악 축제에서는 추상적으로 녹아있는 음악 속 메시지를 연결해 스토리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다. 곡마다 청중들이 의미를 느끼고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선곡한 작품들에 대한 섬세한 프로그래밍에 정성을 쏟았다.
PLZ페스티벌은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 세계적인 도시 14곳과 연계해 생명과 자연에 대한 성찰, 마음의 벽을 허무는 문화 운동을 계속 해 나갈 계획이다. 사랑이 없이는 생명도 없다. 전쟁과 상처를 가진 사회의 아픔이 우리의 DMZ에서부터 치유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대구
제17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저항이냐 순응이냐, 그것은 운명
지난 10월 13일, 제17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막을 내렸다. 한 달 반 동안 4편의 메인 오페라, 4편의 소극장 오페라, 콘서트 시리즈와 렉처 시리즈, 대구국제오페라어워즈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열렸다. 2004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처음 열리던 무렵이 떠오른다. 지방 최초의 오페라 전용 극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2003년)가 개관한 다음 해로, 그 쓰임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때다. 그동안 범공연용이던 대구시민회관(현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간간히 공연되는 오페라를 봐 오던 시민들이 4층에 발코니까지 있는 전용 극장에 앉아 적절한 음향과 연출 그리고 ‘보는 기분’을 한껏 즐기게 된 것이다. 당시 초겨울 찬 바람에 코트를 차려 입고 오페라하우스를 찾은 시민들의 발걸음엔 이제는 멀리 가지 않아도 갖춰진 오페라를 볼 수 있다는 어떠한 만족감이 있었다. 그러나 건립 초기, 대구 지역의 오페라 수요와 문화예술 인프라가 오페라 전용 극장을 소화해 낼 만큼 넓지 않다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던 만큼 주최 측의 부담도 컸을 테다. 무대 디자인·연출·오페라 코칭 등 제작 전반이 열악했던 시절, 출연진과 스텝들이 합을 맞추기 위해 밤늦도록 연습하는 모습도 보았다. 17년이 흘렀다. 초창기의 사무국은 이제 원숙한 재단법인으로 거듭났다. 베를린 도이치오퍼, 뫼르비슈 오페레타 페스티벌 등 해외 극장, 페스티벌과 교류하며 레퍼토리를 늘리고, 국내 오페라단들과 협업하며 작품의 다회성을 모색한다. 올해는 처음으로 오페라어워즈까지 열려 신인 발굴에서 작품 등용까지 이어지는 지속 가능성을 꾀하고 있다. 올해의 메인 오페라는 ‘운명’을 주제로 도니제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대구오페라하우스 단독 제작), 푸치니 ‘라 론디네’(베를린 도이체오퍼 합작), 창작 오페라 ‘오페라1945’(국립오페라단 합작), 베르디 ‘운명의 힘’(광주시립오페라단 합작)을 뽑았다. 몇몇 아리아와 강렬한 무대 장면들이 부분 부분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정작 국내에선 선뜻 공연되지 않는 작품들로, 각각 도니제티와 푸치니, 베르디의 또 다른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눈에 띄게 파격적이진 않지만 외려 참신하면서도 균형이 느껴지는 구성이었다. 미색 바탕에 먹으로 쓴 각 작품의 포스터와 프로그램북도 간결하고 담백했다.
루치아는 미치지 않았다
9월 5일 개막 무대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가 올랐다. 사랑하는 연인 에드가르도 대신 가족의 강요로 아르투로와 결혼하게 된 루치아의 이야기로, 이들이 모두 죽으며 끝나는 처절한 비극이다. 브루노 베르거고르스키의 연출은 무거운 아치로 좌우 둘러 싸인 무대와 빛의 각도로 가늠하는 어두운 배경, 그리고 무채색의 의상들로 청중이 오롯이 주인공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어둠을 깨는 강렬한 빛이 십자가 형상으로 두 번 쏟아지는데, 루치아와 에르가르도가 각각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2막과 3막 마지막 장면에서다. 십자가는 모든 여성들에게 상징처럼 패용된다. 자기 결정권을 갖지 못했던 낭만주의 시대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은 ‘루치아는 미치지 않았다’는 연출의 해석으로 이어진다. 옥죄는 삶 속에서 광기만이 원치 않는 운명에 저항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 루치아는 피묻은 드레스를 입고 온몸으로 세상에 저항하며 에드가르도와 결혼할 것이라 분명하게 고한다. 이 장면이 첫날밤 루치아가 남편 아르투로를 살해한 뒤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다. 루치아 역의 소프라노 마혜선은 20여 분에 걸친 이 콜로라투라 패시지를 무난히 소화했다.
한국 초연, ‘라 론디네’
푸치니 작품의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남주인공을 기다리다 죽거나 비극적 결말을 맞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주인공 마그다가 연인 루제로를 자발적으로 떠나는 ‘라 론디네’는 여성의 선택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결이 조금 다르다. 마그다는 1막 코르티잔, 2막 첫사랑에 설레는 순수한 학생, 3막은 현실을 자각하고 떠나는 비정한 여인 등 각기 다른 감정선을 표현해야 하기에 소프라노들에게 꽤나 까다로운 역할이다. 이는 후면에 거대하게 그려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통해 암시된다. 1막 뒷벽을 가득 채운 나신은 2막에서 거울을 통해 분할되고, 3막에서는 니스 해변의 맑은 하늘에 실루엣만 남겨진 마그리트 스타일로 변형됐다. 바닥에서 반사되는 조명이 극장 천장을 일렁였다. 연출가로 변신한 테너 롤란도 빌라존이 베를린 도이치오퍼에 올린 오리지널 프로덕션이다. 마그다 주변을 맴도는 마임이스트들의 초현실성, 20세기 초 미국 브로드웨이와 파리의 물랑을 합친 듯한 클럽, 모래가 흩뿌려진 바닷가와 거대한 소라 등 이질적 요소가 한데 섞였으나 과하지 않음은 한여름밤 미풍이 부는 듯한 섬세한 음악과, 감초로서 각 장면을 이어준 프루니에(조반니 살라 분)와 그의 짝이자 마그다의 시종인 리제트(알렉산드라 휴턴 분) 덕이다. 둘이 익살적인 합이 극의 분위기를 한층 밝게 견인했다. 1막의 아리아 ‘도레타의 꿈’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초연이 어색할 법도 했지만, 극의 작은 디테일들과 주연들의 훌륭한 연기가 극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아쉬웠던 ‘운명의 힘’
10월 13일 폐막 공연은 베르디 ‘운명의 힘’. 레오노라의 연인인 알바로가 실수로 레오노라의 아버지를 죽인 뒤 도망하자 오빠 카를로가 그들을 찾아 결국은 레오노라까지 죽이고야 마는 비극이다. 연출은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정갑균이 맡았다. ‘라 론디네’ 무대에 비너스가 있었다면 ‘운명의 힘’ 공중에는 가로로 매달린 예수가 있었다. 심장이 뚫린 채 거대히 매달린 예수는 무거운 운명 아래 놓은 주인공들을 짓누르는 듯했다. 출연진은 레오노라 역에 임세경, 알바로 역에 신상근, 카를로 역에 공병우 등 국내외에서 주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로 꾸렸다. 곧고 짙은 임세경의 목소리는 강인하게 운명에 맞서는 레오노라와 잘 어우러졌고, 신상근과 공병우는 레오노라를 둘러싼 힘을 두 축으로 균형있게 나누었다. 아쉽게도 세 사람 간의 눈빛 교환이나 동작들이 매끄럽지 못했고, 성량의 차이 등 음악적으로도 서사를 풀어 나가는 흐름이 어긋났다. 제스처나 위치, 동선 배치를 적극적으로 수정했어야 한다고 본다. 아슬하게 이끌어 온 분위기는 3막에서 끊겼다. 극의 어두운 긴장을 푸는 중요한 장면임에도, 의아한 역량의 조연이 부른 아리아 ‘라타플란’과 함께 어색한 연기의 앙상블, 비중 없는 아역들, 설득력 없는 무용수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정신없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외 2막의 여관 식당 장면, 4막의 수도원 배급 장면 역시 비슷한 동작을 어색하게 반복하는 지나치게 많은 앙상블을 배치한 의도가 궁금하다. 폐막작이기에 이 의문들이 더욱 아쉬웠다. 대구의 오페라 문화는 차근히 쌓여 왔고 또한 나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 안정기에 접어든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있다. 유수의 극장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연출가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좋은 결과를 낼수록, 더욱 더 공연의 본질을 돌아보고 균형 있게 정진해야 할 것이다. 종합 예술인 오페라는 참으로 다양한 요소들을 가진다. 그러나 항상 그 중심에는 ‘음악’과 ‘무대’가 있어야 할 것. 공연은 오로지 공연으로 말한다. 글 전윤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여수
제4회 예울마루 실내악 페스티벌 나만 알고 싶은 소박한 축제
“정말 감사해. 꼭 건강하셔서 매년 와주셨으면 좋겠어!” 10월 11일 늦은 저녁. 이제 막 공연이 끝난 귀갓길. 한 관객은 얼마 가지도 못하고 공연장 로비가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그는 예울마루 실내악 페스티벌을 기획한 첼리스트 양성원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안녕을 빌었다. 공연이 열린 천여 석의 대극장은 10%도 채 안 찬 것 같았지만, 촌스럽게 빈자리를 의식하는 사람은 이방인인 기자뿐이었다. 관객의 면면은 내가 선택한 음악회를 걸어서도 보러 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예울마루 실내악 페스티벌은 공연장을 찾은 여수 관객에게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었다. 지방에 살며 빼앗겼던 문화적 권리를 당당히 누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페스티벌이 열린 GS칼텍스 예울마루는 GS칼텍스가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여수에 지은 문화기반 시설이다. 2012년 5월 개관 이래 피아니스트 조성진·김선욱·손열음, 서울시향·KBS교향악단 등 규모 있는 클래식 음악 공연을 여수 시민들에게 선보여 왔다. 예울마루 실내악 페스티벌은 2016년부터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예술감독 겸 첼리스트 양성원을 주축으로 국내외 음악가들이 단 3일 여수에 모여 공연을 벌인다. 예년보다 축제의 규모는 작아졌지만 대신 더욱 탄탄해졌다. 음악 다큐멘터리 상영, 악기 전시와 강연 등 부대행사는 공연 후 사인회로 대체됐다. 축제 기간 매일 다르게 구성됐던 주제를 올해는 슈베르트로 좁혀 슈베르트의 실내악과 가곡을 알차게 즐길 수 있었다. 기자는 오프닝 무대와 이튿날 오후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왔다. 10월 11일 오프닝 첫 무대의 주인공은 나이위안 후(바이올린)와 엔리코 파체(피아노)였지만,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이는 양성원이었다. 그는 연주될 곡에 대한 친절한 소개로 자리한 관객을 음악 앞으로 한층 끌어당겼다. 곧이어 초로의 두 연주자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듀오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가 두드리듯 가늠하듯 유유히 자태를 드러내자 바이올린이 조금씩 합을 맞추며 서로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원숙함이 돋보이는 연주였다. 다음은 김석준(베이스)·이명주(소프라노)·채재일(클라리넷)·히로야키 야마구치(피아노)가 꾸미는 가곡 무대가 이어졌다. 연세대 재학 중인 김석준은 수줍게 ‘보리수’ ‘마왕’의 감상 포인트를 설명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마왕’에서 온몸을 떨며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연에서 ‘바위 위의 목동’을 부르기는 처음이라는 이명주는 빠르고 경쾌한 파트에선 리듬감이 부족한 듯했으나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2부는 모딜리아니 콰르텟과 양성원(첼로)이 현악 5중주 C장조 D956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10월 12일 오후 공연의 주인공은 단연코 히로야키 야마구치(피아노)였다. 1부에서 김상진(비올라), 엔리코 파체(피아노)와 각각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a단조 D821 ‘네 손을 위한 판타지’로 호흡을 맞춘 그는 모딜리아니 콰르텟이 ‘죽음과 소녀’를 연주하는 2부 때 잠시 숨을 골랐다 3부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3부는 ‘패밀리 콘서트’란 부제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꾸려졌다. 새소리로 노래 부르는 두 명의 퍼포머로 구성된 팀 새들의 노래(Les Chanteurs d’Oiseaux)와 브뤼노 데무이에르(퍼커션), 히로야키 야마구치(피아노)가 한 편의 음악극을 펼쳤다. 두 마리의 새가 힘겨루기하다 결국 화해하는 내용이었다. 새들의 노래는 새소리로 감정을 표현하며 판토마임을 함께 선보였다. ‘Irish pieces’ ‘Loro’ ‘Tombo in 7/4’ ‘Bucimis’ 등 재즈와 민속 음악을 오가는 선율 위로 새소리가 음악처럼 얹혔다. 재즈 음악 편곡부터 연주까지 맡은 히로야키 야마구치(피아노)는 이 공연에서 멜로디언과 리코더까지 일인다역을 오갔다. 연주회를 지루해하던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활짝 웃었다. 아니 그건 어른인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공연 그 자체가 아닌, 함께 관람하는 관객을 보며 덩달아 즐거워진 공연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지금처럼 소박한 규모의 실내악 편성, 기쁘게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관객의 마음가짐, 서로의 존재에 감사해하는 연주자와 관객의 태도가 합쳐진 덕분일 것이다.
INTERVIEW
예울마루 실내악 페스티벌 연주자
여수와 슈베르트의 자연스러운 만남 선명하게 푸른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불분명할 만큼 청명한 가을날이었다. 이런 바람과 공기를 놓치는 건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명해 피아노 5중주 ‘송어’를 작곡한 슈베르트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일 터. 예울마루 실내악 축제의 둘째 날 공연을 앞두고 여수 바다를 내려다보며 무대를 빛낸 연주자들과 야외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수 예울마루에서 오프닝 공연을 마친 소감은?
엔리코 파체 슈베르트의 가곡에 쓰인 시들은 다양한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물론 슈베르트가 여수의 자연을 본 건 아니지만, 나는 여수의 풍광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연주했다. 바다가 보이는 산속 공연장에서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건 매우 이상적인 일이었다.
나이위안 후 슈베르트가 여수에 왔다면 이곳을 좋아했을 것 같다.(웃음) 나는 청중의 진지한 감상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슈베르트의 작품은 악보는 단순해보이지만, 조성과 선율의 변화가 급격해 음악적으로도, 테크닉적으로도 연주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연주자는 물론이고 관객의 집중 역시 필요하다. 그런데 어제 관객은 정말 훌륭했다.
양성원 슈베르트는 겸손하고 순수한 아티스트다. 우리가 경연에서 하듯 경쟁적으로 연주했다면, 청중은 슈베르트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제 모두가 마음을 모아 연주한 덕에 각 개인은 사라지고 슈베르트가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슈베르트 작품을 연주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김석준 슈베르트의 가곡은 마지막 여운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극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마왕’도 마지막에는 아이가 죽은 뒤의 좌절감과 허망함이 느껴진다. 그 울림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려고 했다.
양성원 슈베르트란 작곡가는 마음을 울리게 한다. ‘음악에 붙임’ ‘자장가’는 너무나 잘 알려진 가곡이지만 이 선율이 베이스·소프라노·피아노·첼로와 어떻게 새롭게 탄생하는지 들려주고 싶었다.
엔리코 파체 슈베르트 하면 서정적인 표현이 가장 먼저고 그 다음이 선율의 방랑이다. 계속해서 조성과 곡의 분위기가 바뀌는 동안 선율은 다양한 색과 음영을 거치며 발전한다. ‘네 손을 위한 판타지’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우울 등 대비되는 감정이 마치 우리의 삶처럼 반복된다. 그래서 슈베르트를 연주할 때는 프레이즈에서 악센트를 언제 주느냐가 중요하다.
나이위안 후 매번 리허설할 때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엔리코 파체와 연주한 ‘그랑 듀오’에서 방랑자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 무의미한 방황이 아니라, 한 단계를 넘어서는 성장 과정으로서의 방랑 말이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예울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