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얼마 만에 듣는 목소리인가. 조진주가 자신만의 소리를 담은 ‘보이스(VOICE)’ 시리즈로 돌아왔다. 5년 만의 시간, 이번엔 바이올린과 함께 성장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이름의 주인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이름의 느낌이 생긴다 했다. ‘조진주’ 이 세 글자의 이름은 대중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2006년 몬트리올 콩쿠르 1위, 20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콩쿠르 1위, 2011년 윤이상국제콩쿠르 2위, 2012년 앨리스&엘레노어 쇤펠드 콩쿠르 1위, 그리고 2014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1위. 콩쿠르는 대중에게 어떤 연주자를 소개하는 가장 간단하고 편한 방법이다. 일반 명함 속 소속이 그들에게는 콩쿠르가 되는 것처럼, 앞선 다섯 개의 문구가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를 소개하는 명함이 될 테다. 그런데 그녀는 2014년을 마지막으로 그 명함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어떤 결과에 상관없이 강한 확신과 믿음으로 내 연주를 사랑해주는 것에 내가 목말라 있었다는 걸” 깨달은 후였다. 그녀는 이후 자신을 많은 도전 속으로 던졌다. 다양한 형태의 연주와 교육을 비롯해 음악회를 기획하고, ‘앙코르 챔버 뮤직 캠프’를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미국을 떠나 캐나다 맥길 대학 부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 그녀가 2014년 이후 5년 만에 ‘보이스(VOICE)’ 시리즈를 선보인다. ‘지난 밤, 꿈 속의 이야기’라는 부제와 함께다.
‘보이스 시리즈’로는 오랜만이다. 이번 무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있나?
이번 공연은 오래도록 동경하던 피아니스트 이타마르 골란과의 협업이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온다. 1부는 그의 연주를 보며 영감을 받았던 슈만 소나타 2번과 멘델스존의 소나타를 연주한다. 2부는 열 살 즈음부터 들어오던 음반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던 소품들을 뽑아 연주할 예정이고.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했던 곡들이 많아서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곡도 다양하지만, 이타마르와 내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뜨거운 에너지에 본능적·즉각적으로 어울리는 곡들로만 구성했기 때문에 관객에게도 더욱 가슴 떨리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보고자 한다’고.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조금 더 어릴 때는 ‘세상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내 생각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되고 어린 친구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직책을 짊어지게 되면서는 점점 ‘나 먼저 잘하자’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 삶의 모습으로 내가 믿는 가치를 서서히 증명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질문하게 되었고.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는 ‘음악이란 정말 멋진 일’이라고 느꼈던 첫 기억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입시나 경쟁 때문에 지치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예술로 인해 어린 시절이 더 다양하고 풍성했던 것 또한 사실이니까.
공연마다 주제를 선정하고 메시지를 담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연주자에게는 큐레이션이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과 결과물에 많은 보람과 의미를 느끼고 있고. 프로그램과 주제를 선정하고 조사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다행히 체력도 좋고,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 다양한 방면에 관심이 많아서 여기저기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차이콥스키의 어록 중에 ‘영감은 게으른 자를 찾지 않는 손님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그 이후에는 동적·정적 경험의 데이터를 몸과 머리 안에 축적하려고 노력한다. 동료나 학생 연주도 물론 많이 가려 하고 무용이나 전시 등 새로운 창작 작품들을 많이 접하고 동시대의 화두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이제는 습관화되었다.
지난 인터뷰에서 “예술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는 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의 모습과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답을 최대한 깊이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열여섯 살 때 썼던 일기에도 똑같이 쓰여 있다. 스스로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의 결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그렇다면 당신이 추구하는 예술은?
생명이 담긴 듯 꿈틀거리는 음악적 색채, 시공간을 초월해서 한 인간(작곡가)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는 것. 마지막으로 그 내면과 현재의 인간을 비교 분석하며 과거와 동시대의 욕망을 함께 이해하는 것.
그러한 예술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에게, 혹은 그 범위를 더 확장해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제 서른하나인 내가 감히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다만 상황이나 인간관계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하고, 그것만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캐나다 맥길 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을 떠나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맥길 대학에서의 생활과 분위기는 조진주에게 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주와 교육 활동의 이상적인 균형 조건 때문에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웃음) 몬트리올은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젊고 예술적이기 때문에 아직은 관광객처럼 휴일마다 여기저기를 찾아다니고 있다. 특히 라이브로 보지 못했던 연주들도 많이 보고 있고. 1월에 있을 마리 슈이나르 무용단의 공연도 기대하고 있다. 맥길 대학교는 상당히 진보적인 톤을 유지하는 곳이어서 나와 잘 맞을뿐더러 특히 바이올린과 동료 교수님들이 한참 어린 나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연주자로서의 활동이다. 하지만 기획이나 교육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연주자로서 자극이 부족할 것 같다. 에너지가 많아서 할 일이 넘치게 많지 않으면 좀 우울해지기도 하고. 바쁘게 살 운명인가 보다.(웃음)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지치지도 않고 예술을 하는 커피 드링커.
마지막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2020년은 앙코르 페스티벌이 5주년을 맞는 해라 좀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협주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 기쁘기도 하고. 내년 7월에는 처음으로 쇤펠드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게 되어 기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롯데콘서트홀 토요 엘콘서트 등 신나는 협업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음반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 어떻게든 발매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계속하던 대로 연주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새해가 되길!
글 이미라 기자
조진주·이마타르 골란 듀오 리사이틀
12월 1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슈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121, 파가니니 ‘칸타빌레’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