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너머의 음악 피아니스트 박영성

음악적 동료를 만나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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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2월 9일 9:00 오전

 

성장하는 주인공은 결코 혼자인 법이 없다. 동서고금은 물론이요, 소설·영화·만화 등 장르를 막론하고 그렇다. 호그와트를 구한 마법 소년 해리 포터에겐 론과 헤르미온느가 있었고, 원님 부인이 된 콩쥐는 두꺼비와 새가 도왔으니 말이다. 아직 자신의 가치를 확신치 못하는 주인공 옆엔 그를 알아주는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고, 주인공은 동료들과 함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피아니스트 박영성이 걷는 길엔 항상 같은 질문이 메아리친다. “도대체 왜 독주회는 안 하고 앙상블 무대에만 오르냐”는 것이다. 한예종에서 학사와 전문연주자과정을 마친 박영성은 한국일보 콩쿠르 우승을 비롯, 중앙콩쿠르와 동아콩쿠르에서 각각 2위를 차지하며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바이올린, 첼로 등 다른 악기와의 앙상블 연주는 많이 했지만, 독주회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까 예의 질문을 풀어 말하자면,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왜 반주자를 자처하냐”는 것일 테다. 여기엔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고질적인 편견 두 가지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당연히 솔리스트를 지망해야 한다. 둘째, 반주는 온전한 연주가 아니다.

이 애매하고 복잡한 질문에 대한 박영성의 답은 간결하다. 독주보다 다른 악기와 함께하는 무대가 더 행복하다는 것. 혼자 앉아 피아노만 주구장창 치는 건 너무 허전하단다. 작곡가는 이 곡을 왜 이렇게 썼는지, 이 부분은 어떻게 연주하는 게 좋을지 음악의 바다를 헤맬 때 같은 곳을 향하는 존재는 그에게 무엇보다 절실하다. 동료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그가 나고 자란 항구도시 포항에서 시작된다. “아직도 기억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KBS1 ‘클래식 오디세이’에서 피아노를 처음 봤어요. 바로 부모님께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죠. 그때만 해도 포항은 음악하고는 거리가 먼 도시였거든요. 악기라고는 학교 음악실에 있는 풍금이 다였고, 공연이 열리는 시내 다목적홀을 가려면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은 가야 했죠. 그곳에서 본 제 인생 첫 공연이 백건우 선생님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에요.”

취미로 연주하던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예고 입시 준비 때였다. 음악만 할 수 있는, 음악만 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그 앞에 펼쳐졌다. 음악은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졌다. 한 달에 두어 번 포항에서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가서 음악회도 보고, 콩쿠르도 다녔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갈증은 여전했다. “예고에 진학했지만 학교에서는 입시 공부를 더 중시했어요. 곡을 연습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혼자 끙끙 앓곤 했죠. 답답했어요. 그나마 같은 학교에 다녔던 첼리스트 박유신과 서로 악기는 달라도 음악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 시절부터 자연스레 다른 악기랑 연주하는 걸 익히게 된 것 같아요. 만약 피아노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면 또 달라졌을 수도 있겠네요.”

 

 

마침내 그는 꿈꿔온 세계에 도달했다. 당시 해외에서 활약하며 입시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김선욱과 손열음, 클라라 주미 강을 배출한 한예종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막연히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들 콩쿠르에 나가길래 저 역시 아무 의심 없이 준비했죠. 그런데 정작 리사이틀에 대한 욕심이 안 생기더라고요. 음악은 정말 좋지만, 이 음악을 누군가에게 연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잘 안 들었어요. 그보다는 다른 악기 연주자와 같이 연주를 준비하면서 음악적으로 교류하고, 고민하고, 합일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흥미로웠어요. 그럴 때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었죠. 완벽주의자였던 카라얀은 작곡가가 의도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수없이 레코딩 작업을 했잖아요. 저도 그렇게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음악을 대하고 싶어요.”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지휘자 카라얀을 꼽았다. 그렇다면 박영성에게 앙상블 연주란 솔리스트의 대안이 아닌, 음악을 향한 순수한 탐구심의 발현에 가깝지 않을까.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실현해 줄 파트너를 발굴했던 카라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정말로 박영성은 다른 연주자와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고 했다. “어린 학생들과 리허설하면서도 음악적인 자극을 받아요.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이라든지… 왜 나이가 들수록 클래식의 전형에 가까워지고, 그러면서 걷어내진 것도 많잖아요. 그런데 어린 친구들은 서툴더라도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계속 있단 말이에요. 커티스 음악원 출신 첼리스트 박진영 씨와 협연할 때도 창의적인 해석에 감탄할 때가 많았어요. 최근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텔 리와 연주했는데,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인상 깊었죠.”

현재 박영성은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인 베토벤·슈만·브람스의 세계를 체험하고 싶어 그들의 나라인 독일로 행선지를 정했다고 했다. 유학길에 오르는 것마저 친해지고 싶은 친구의 집을 방문하듯 말하는 모습이 참 그답다. 베토벤과 슈만을 만나고 돌아와 우리에게 들려줄 ‘박영성의 오디세이’를 기대한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김재형(김재형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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