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작곡된 크리스마스 합창곡

새 노래로 구주의 탄생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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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2월 2일 9:48 오전

THEME RECORD

우리 시대의 합창을 위한 종교음악

 

어느덧 다가온 연말, 한 해를 떠올려보며 상념에 젖기도 하고, 들뜬 연말 분위기에 마냥 즐겁게 취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괜히 설레는 마음은 크리스마스 때문이 아닐까. 올해도 크리스마스이브의 막연한 기대감은 어김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클래식 음악이 빠질 수 있으랴! 슈츠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헨델의 ‘메시아’ 중 1부, 베를리오즈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리스트의 ‘크리스투스’ 중 1부, 생상스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 예수의 탄생은 시대를 불문하고 중요하고 흥미로운 음악적 소재였다. 종교음악이 종말을 맞았다는 20세기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달에는 20세기에 작곡된 크리스마스 합창곡 중에서 세 가지 음반을 선택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

먼저 스위스인 부모로부터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했던 작곡가이자 ‘프랑스 6인조’의 일원이었던 아르투르 오네게르(Arthur Honegger, 1892~1955)의 ‘크리스마스 칸타타’(1953)이다. ‘프랑스 6인조’는 1920년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여섯 작곡가의 음악회에 참석했던 평론가 앙리 콜레가 붙인 이름으로, 그들은 이 이름 덕에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바그너와 드뷔시 풍의 인상주의를 반대하고 감각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통적인 음악적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었기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들의 음악은 제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었다. 결국 루이 뒤레(Louis Durey, 1888~1979)가 이듬해에 이들과 노선을 달리함으로써, 여섯 작곡가가 함께 활동했던 기간은 사실상 2년이 채 되지 못했다.

오네게르는 탄탄한 구조와 풍부한 음향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했던 만큼, ‘크리스마스 칸타타’에서도 규범적인 면모와 중후한 화음을 들을 수 있다. 오르간의 음침한 저음에서 시작하고, 오르간의 엄숙한 저음으로 끝나는 아치 구조는 전체 구조를 꼼꼼히 설계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 오라토리오 ‘다윗 왕’(1921)과 오페라 ‘쥬디트’(1925)에서 보여준 극적 표현력은 30년 후에 작곡된 그의 최후의 작품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 칸타타’에서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심오한 음향의 깊이와 표현의 복잡성은 오네게르의 완숙한 경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는 그의 예술적 성취를 담고 있는 걸작이다.

그런데 이 곡에서 특이한 점은 가사의 언어다. 시작 부분에는 저음이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라틴어로 ‘심연으로부터(De profundis)’를 부른다. 그리고 밝아지면서 ‘오, 임마누엘이여 오소서(O viens, ô viens Emmanuel!)’를 프랑스어로 부르고 곧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이스라엘아, 기뻐하라(Freu dich, freu dich, o Israel!)’를 독일어로 부른다. 이렇게 세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의도는 언어가 내용 전달이라는 일차적인 목적을 넘어, 언어 자체가 갖는 이미지와 음향적 뉘앙스를 이용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극적인 스토리텔링과 결합하여 그 효과는 배가된다. 마틴 니어리가 지휘하는 윈체스터 성당 합창단과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EMI)는 각 장면이 그리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음산한 첫 부분부터, 신비한 긴장감이 감도는 천사의 장면, 기쁨의 소식을 듣게 된 사람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인용되는 부분, 민속춤을 추듯 활기차게 찬양하는 장면, 그리고 웅대한 피날레에 이르기까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그려냈다.

 

음악적 유머가 깃든 종교 작품

오네게르와 함께 ‘프랑스 6인조’에 속한 프랑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 1899~1963)의 ‘네 개의 크리스마스 모테트’(1951~1952)는 종교 작품이면서도 모처럼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 풀랑크 특유의 음악적 유머가 깃든 작품이다. 두 번째 곡과 세 번째 곡이 1951년에 먼저 작곡되었으며, 나머지 두 곡은 이듬해인 1952년에 작곡되었다. 이 곡을 작곡한 계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네 명의 친구를 위한 선물이었던 것 같다. 초연은 1952년 마드리드에서 첫 곡의 헌정자인 펠릭스 드 노벨이 지휘하는 네덜란드 실내 합창단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10분 남짓의 이 곡은 풀랑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대작과는 차별되는 고도의 집중도를 갖고 있으며, 풀랑크의 후기 음악을 받치고 있는 근본적인 정서를 오롯이 담고 있다.

오네게르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연주 장면

이 작품은 성탄의 주요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각 곡이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다양한 특징을 갖는다. 예수의 탄생을 노래한 첫 곡 ‘오 위대한 신비’는 차분하고 신비로 가득한 분위기로 시작하고, 목동들이 이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둘째 곡 ‘목동들이여, 누구를 보았는지 말하라’는 풍부한 울림과 다이내믹의 의도적 재배치를 통하여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동방 박사들과 그들을 인도하는 별을 노래하는 셋째 곡 ‘동방박사들이 그 별을 보았을 때’는 단순함의 미학으로 가득 차 있고, 구주 탄생으로 기쁨에 넘치는 마지막 곡 ‘오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는 기교적인 빠른 패시지를 숨 가쁘게 몰아가면서, 신비로 둘러싸인 경외심을 기쁨이 넘치는 축제로 변화시킨다. 가사는 라틴어다.

구조적으로 곡을 이루는 동기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며, 동기들이 번갈아 가면서 반복된다. 그리고 전체 인성의 수직적 화합보다는 선율에 의한 수평적 진행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화성은 명료하고 가벼우며, 주로 소프라노에 멜로디가 집중되어 이해하기 쉽다. 풀랑크는 멜로디가 돋보이도록 다른 파트의 다이내믹을 크게 줄이거나 입을 다문 허밍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난다. 그러나 멜로디가 비슷하게 전개되는 부분이라도 다른 파트의 반주는 서로 다르게 되어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연주할 때에는 그 차이에 의한 변화를 잘 표현해야 한다. 특히, 곡의 무게를 조절하는 임무를 맡은 베이스의 점멸하는 효과에 귀를 기울여보라.

이 작품을 초연했던 네덜란드 실내 합창단은, 초연 후 46년이 지나서야 녹음을 단행했다. 에릭 에릭손이 지휘하는 이 합창단의 연주(GLOBE)에 초연 때의 단원들이 참여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상징성은 남다르다. 이 합창단은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템포 변화를 극단적으로 대비하여, 감각적이고 활력 있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세세한 표현에 있어서 남다른 점들이 발견된다. 첫 곡의 경우, 서주가 피아니시시모로 시작한 후 다섯 번째 마디에서 등장하면서 소프라노 멜로디가 다소 강조되는 것이 보통인데, 여전히 피아니시시모를 계속 유지하면서 신비하고 종교적인 인상을 남긴다. 두 번째 곡은 일반적으로 느리게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하면, 다소 빠른 템포로 설정한 것은 신선하게 들린다. 셋째 곡은 부분에 따라 음색을 달리하여 마치 지상의 합창과 천사의 합창이 대화하는 듯한 효과를 만들고, 넷째 곡은 리듬을 강조하여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성탄의 신비를 극적으로 표현하다

죄르지 오르반(György Orbán, 1947~)은 유럽의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헝가리 작곡가 리게티와 외트뵈시의 고향 트란실바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 두 작곡가들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다고 할 수는 없지만, 헝가리에서는 중요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리게티나 외트뵈시와는 달리, 트란실바니아가 루마니아가 된 후에 바로 떠나지 않고 클루지나포카 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그러다 1979년에 헝가리로 이주했으며, 1982년에 부다페스트의 리스트 음악원 작곡 교수가 되었다. 합창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전통적인 기도 음악과 바로크의 대위법, 그리고 재즈의 어법이 가미된 독특한 음악을 작곡하고 있으며, 공감도가 높은 음악을 만드는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다.

1998년에 작곡된 그의 대표작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도 성탄의 신비와 극적 표현을 충분히 갖고 있으며, 어느 교회에서 연주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접근성이 높다. 내용은 세례요한의 아버지 스가랴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수태고지·세례요한의 설교·동방박사·천사와 목동·헤롯의 사건 등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고 있으며, 내레이션을 통해 이해를 꾀하고 있다. 비록 대본과 가사가 헝가리어로 되어있지만,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려움 없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달의 추천 음반

오네게르 ‘크리스마스 칸타타’

도널드 스위니(바리톤)/티모시 바이람 위그필드(오르간)/마틴 니어리(지휘)/웨인플릿 싱어즈·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윈체스터 성당 합창단 EMI 7243 5 86172 2 1

풀랑크 ‘네 개의 크리스마스 모테트’

에릭 에릭손(지휘)/네덜란드 실내 합창단 GLOBE GLO 5185

오르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일디코 체르나(소프라노)/사비에르 리바데네이라(테너)/차바 갈(바리톤)/터마시 쉴레(베이스)/다니엘 퓔렙(낭독)/주자 엘레케시(오르간)/제노 랑(타악기)/가보르 바로시(지휘)/벨러 버르토크 합창단과 대학 오케스트라 HUNGAROTON HCD 32546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기고와 해설, 강의 등 다양한 접점으로 우리시대 음악으로서의 클래식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향’ 콘미공 진행자,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자문위원, ‘현대음악앙상블 소리’ 프로그래머, ‘드림싱어즈’ 음악감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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