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박경민
꿈꾸는 자, 꿈을 닮아간다
비올리스트 박경민이 2019년 11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단원이 되었다. 세계 최정상 악단으로 알려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수습 단원으로 입단한 지 약 21개월 만에 전한 낭보였다. 그녀는 보통 2년 정도 걸리는 수습 기간을 4개월 정도 앞당겨 끝내면서 한국인 최초 베를린 필의 종신 단원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1882년 결성된 베를린 필하모닉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클라우디오 아바도·사이먼 래틀 등 역사적 마에스트로의 손길을 거치며 음악사에 획을 긋는 뛰어난 업적들을 이뤄왔다. 어린 시절부터 바라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꿈을 이룬 그녀. 2020년 새로운 길 위에서 힘찬 첫걸음을 내딛는 그녀를 응원한다.
최초의 한국인 비올리스트 종신 단원이 된 것을 축하한다. 정말 기분 좋고 행복하다.
베를린에서의 일상은 어떠한가. 보통 여가 시간에는 주로 집에서 보내며 청소를 하거나, 먹고 싶었던 음식을 직접 요리도 하고, 책도 읽으며 지낸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조깅도 즐긴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당시 입단 오디션을 치르며 느꼈던 소감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오디션 때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아 긴장도 많이 했지만, 오디션이 끝나고 합격 발표가 났을 때는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다들 그냥 집에 가는 줄 알았는데, 모두 빠짐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축하해 주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전에 스웨덴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최연소 수석을 지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는 다른 음악적인 특성이 있는 단체다. 이 두 악단의 음악적인 특성,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추구하는 방향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제 갓 입단했기 때문에 조금 더 경험을 쌓고 얘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스웨덴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단원과 음악감독, 솔리스트 모두 열정이 넘치고 대자연에서 길러진 풍부한 음색이 어느 오케스트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성이 돋보이는 단체다. 그곳에서의 활동이 음악적인 성장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현재 소속된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단원들이 지어준 별명이나 애칭은 없나. 내 이름이 발음하기 힘들고 외우기는 더 어려운데도 단원들은 정확히 내 이름을 불러준다. 그럴 때 정말 감동이고 고맙다. 물론 나를 부르는 별명이 있기는 하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항상 ‘미미’라고 부른다.(웃음)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각 시절마다 얻을 수 있었던 것, 깨달음들은 무엇인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유학 생활을 시작했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많이 경험하면서 대인관계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다. 콩쿠르를 준비하고 입상하는 과정은 내 정신력을 강하게 훈련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음악적으로 어떤 깨달음과 배움을 얻는 시간은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연주할 때다. 솔로 곡을 연주할 때에 비해 다양한 악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다 보면 음악적인 시야가 넓어져서 더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지금의 박경민이 되기까지 겪어온 음악 활동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 최근 유럽 실내악 페스티벌에 갔었는데, 실력뿐 아니라 성품까지 훌륭한 음악가들과 연주하면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감히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음악적 영감을 얻게 되었고, 음악을 대하는 겸허한 태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어느 때 가장 기쁨을 느끼고 어느 때 가장 좌절하나. 오랜 시간을 들여 연습이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주해보니 원하는 만큼 안 될 때 좌절을 느낀다. 반면 연주를 하면서 원하는 표현과 소리가 나올 때, 그리고 그 소리를 듣는 청중도 같이 함께 공감한다고 느꼈을 때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음악’은 박경민에게 어떤 존재인가. 음식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것. 식상한 말이지만 진심으로 음악 없이는 못 살 것 같다. 하루도 빠짐없이 음악을 듣거나 연주 한다.
많은 연주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다. 자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연주란 무엇인가. 누가 보고 들어도 진심이 느껴지는 연주가 훌륭한 연주라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만 심취해서 하는 연주가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표현과 느낌을 청중에게 호소력 있게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연주 말이다. 그 역량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음악적인 감동이 클 수도, 적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지금 이 시대에 클래식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내가 아는 것 중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이 세상 언어 중 가장 순수한,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머리를 따뜻하게 녹이고 마음을 위로해 주고 힘이 들 때 용기를 주며 일상에서 잠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클래식 음악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혼자 행복한 삶을 누리기보다 내가 가진 재능을 통해 많은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다. 그렇게 내가 잘하는 연주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며 다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이 꿈이다.
글 국지연 기자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 부수석 심효비
우연이 만든 운명
춤추고 노래하는 걸 참 좋아했던 아이, 심효비는 어릴 적부터 넘치는 끼로 피아노부터 바이올린, 성악, 해금까지 다양한 악기와 만났다. 그러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비올라를 접하게 되었고, 첫 스승인 강창우와 만나며 비올라 특유의 따뜻하고 깊은 울림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그렇게 우연은 운명이 됐다. 심효비는 현재 미국 미네소타의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 비올라 부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1959년 창단해 한 해 130여 회 이상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2004년부터 상주 지휘자 대신 예술감독과 예술파트너 체제로 운영 중이다. 예술파트너로는 조너선 코헨, 제레미 덴크 등이 있다. 연주 단원은 총 24명이며, 한국인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규영(예술감독 겸 바이올린 수석)·유니스 김· 고은애, 그리고 클라리네티스트 김상윤이 있다. 지금 심효비의 손에는 이탈리아 제작자 조반니 피스투치가 1800년대에 제작한 비올라가 들려있다. 원하는 소리를 가진 악기를 찾아 나선 지 2년째, 뉴욕의 한 딜러샵에서 운 좋게 찾아낸 것. 깊고 힘 있는 소리로 솔로는 물론 실내악과 오케스트라까지 어느 용도로도 잘 어울린다는 심효비의 비올라는 왠지 주인을 닮은 듯하다.
고등학교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찍 유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선화예술학교 재학 중 미국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오롯이 음악을 위해 이곳에 모여 열정적으로 배우고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이곳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때마침 커티스 음악원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운 좋게 합격하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유학 생활’을 본인의 음악적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았는데. 한국에서는 악기 연주에만 치중했고, 항상 음악을 즐기라고 강조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유학길에 올라 처음으로 다닌 커티스 음악원에서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연주 등 다양한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며 나도 모르게 서서히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특히 실내악 연주를 하면서 내 음악적 정체성을 찾았다.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모습을 알아갔달까.
지금의 ‘비올리스트 심효비’를 이루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였나. 강창우 선생님. 적성에 맞는 악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를 받아 주셨고, 하나부터 열까지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덕분에 비올라의 매력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고 노래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동안 독주와 실내악 무대도 많이 선보여 왔는데,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방향성을 잡게 된 계기가 있는가? 실내악 연주를 가장 좋아한다. 다른 연주자와 교감하는 것만큼 즐거운 게 없는 것 같다. 오케스트라는 실내악 연주의 확장이고, 브람스나 말러 교향곡 등 규모가 큰 작품이 주는 감동은 또 다르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활동하면 솔로·실내악·오케스트라 이 세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도 하고. 전부 놓치고 싶지 않다!(웃음)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객원 연주자로 함께한 첫 만남부터 편안했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정식 단원 오디션 당시 이곳은 다른 여느 오케스트라와는 달리 오디션 곡목에서 오케스트라 엑섭보다는 독주나 실내악곡에서 따온 엑섭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파이널 라운드가 끝나고, 마지막 관문인 리사이틀 라운드만을 남긴 상태였다. 단원들 앞에서 독주와 실내악 두 곡씩을 준비해 연주해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컸지만, 오히려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 큰 긴장 없이 내 연주를 보여줄 수 있었다.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가진 특별함이 있다면? 대부분의 연주가 지휘자 없이 이루어진다. 이에 따르는 힘든 점도 많지만, 단원들이 똘똘 뭉쳐 실내악 연주처럼 세심하게 듣고 음악을 표현해내는 모습을 관객들이 좋아한다. 상주 지휘자가 없는 대신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파트너를 맺고, 시즌의 절반 정도를 함께 연주한다. 최근에는 비올리스트 타베아 치머만을 초빙해 베토벤 교향곡 1번과 비올라 버전으로 편곡한 슈만 첼로 협주곡을 선보였다. 어떤 연주자가 오느냐에 따라 다른 음악적 캐릭터가 나오기 때문에 항상 흥미롭다. 그만큼 세심한 연주가 필요하기도 하고.
단체 내에서 본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비올라 섹션의 부수석으로, 수석과 함께 단원들을 이끌고 있다. 수석이 자리를 비울 경우 그를 대신하여 비올라 전체를 리드해야 하므로 늘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지휘자 없는 연주가 대부분인 단체의 특성상 단원들이 음악적으로나 심적으로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더욱더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유럽의 경우 아직 외국인 연주자에 대한 장벽이 높은 곳이 많다. 미국 오케스트라의 분위기는 어떤가? 이곳은 다인종 국가여서인지 활동에 있어 내 피부색에 따른 어려움은 없었다.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경우 단원 채용에 있어 지원자의 배경보다는 실력과 인성을 가장 중요시하기도 하고.
미국에서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요즘 특히 비자 문제로 미국에 머무르지 못하고 돌아가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서도 실력 있는 인재들을 위한 비자 제도가 따로 마련하고 있다. 연주자료·기사·리코딩 등 자신의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해 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 자료들이 비자를 받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019년 9월부터는 매칼레스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교육에 있어 가장 중심에 두고 있는 가치는? 학생들에게 무엇이든지 최대한 많이 경험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풍부한 감정과 상상력을 지녀야 한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커티스 음악원 재학 중 존경하는 연주자 첼리스트 피터 와일리가 “사람들에게 너를 소개할 때 ‘비올리스트 심효비’ 보다는 ‘음악가 심효비’라고 말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비올라를 통해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대중에게 전하며, 순간의 감정들을 함께 느끼고 소통하고 싶다.
글 이미라 기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카라얀 아카데미 김규리
성장의 발자국
지난해 9월 카라얀 아카데미에 입단하기까지 커리어적으로 굵직한 사건을 두고 비올리스트 김규리는 곧잘 운명적이었다고 덧붙였다. 흔히 운명론자라고 하면 대책없이 낭만적인 사람을 떠올린다. 그러나 김규리의 답변에서 ‘운명’이란 단어를 읽을 때마다 다가올 나날을 맞이할 준비를 부지런히 마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최선을 다했으니 그 어떤 결과에도 순응하겠노라는. 베를린 필하모닉 카라얀 아카데미는 카라얀에 의해 1972년 설립됐다. 아카데미에 입단하면 2년간 베를린 필 단원들로부터 레슨은 물론, 베를린 필과의 정식 연주 기회를 얻는다. 베를린 필이 운영주체이지만, 카라얀 아카데미 구성원으로 따로 악단이 있을 정도로 독립된 단체이기도 하다. 현 베를린 필 단원의 3분의 1 가량이 카라얀 아카데미 출신이며, 졸업생들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등 주요 오케스트라에 진출해있다. 쾰른 필하모닉 수석 플루티스트 조성현과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제2수석 오보이스트 함경이 카라얀 아카데미 출신이다. 지금, 김규리에게 주목하는 이유다.
비올라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내게 비올라는 듣기에도, 연주하기에도 자연스러운 악기였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소리를 모두 낼 수 있고, 비올라만의 멜랑콜리한 소리도 있다. 어린 시절 첼로와 바이올린을 하면 귀가 아프거나 손에 통증이 있었다. 그런데 비올라를 만난 후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이런 게 운명 아닐까.
입단 전 뤼벡 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수료 중이었다. 오케스트라 활동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베를린은 일곱 개가 넘는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가진 도시다.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나 직장을 다녀서 항상 오케스트라에 대해 들었다. 마침 계획했던 콩쿠르도 끝난 때였고, 베를린에서 누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레 오케스트라 활동에 눈길이 갔다.
여러 오케스트라 가운데 베를린 필하모닉 카라얀 아카데미에 지원한 이유는. 베를린에 살면서 가장 많은 연주를 본 오케스트라가 베를린 필이었다. 늘 듣기만 하던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다면 어떨까 궁금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카라얀 아카데미에 오디션 자리가 났다. 카라얀 아카데미 학생은 베를린 필 단원과 함께 연주하고 레슨도 받는다. 2년 과정이 끝나서 공석이 생길 때만 오디션이 열리니, 운이 좋았다.
카라얀 아카데미 오디션은 어떻게 치러지나. 서류심사를 통과하면 베를린 필 단원들이 2라운드에 걸쳐 지원자를 심사한다. 특이하게 이곳은 오케스트라 엑섭이 아닌 솔로곡으로만 오디션을 치른다. 1차에서 호프마이스터 비올라 협주곡을, 2차에서 월턴 비올라 협주곡을 연주했다.
오디션에 합격할 자신이 있었나. 같은 날 입단 오디션과 드레스덴에서의 드레스 리허설이 겹쳤다. 기차를 놓쳐 리허설에 못 가느니, 시간이 길어지면 오디션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원자가 많아 두 팀으로 나뉜 덕에 무사히 오디션을 치를 수 있었다. 심사를 하러 온 박경민 언니가 눈빛으로 ‘너 됐어!’라고 사인을 줬다. 여유롭게 기차를 타러 가면서 한편으론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
카라얀 아카데미는 운영 방식도 남다를 것 같은데. 매달 한 개 이상의 아카데미 프로젝트에 학생 전원이 참여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수석으로 연주할 기회를 주는데, 그만큼 리허설 양도 상당하다. 연습 땐 지휘에 관심 있는 베를린 필 단원이 지휘자로 종종 온다. 단원들이 놀랄 정도로 지휘를 잘하더라.
입단 전에도 베를린 필에 객원연주자로 참여했다고. 아카데미 학생이 된 후 베를린 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는지. 입단 후엔 완벽할 것만 같던 베를린 필 단원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더라. 장난기도 많아서 리허설 중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연주만 시작하면 다들 눈빛이 돌변한다. 각자가 쌓아온 음악 인생이 연주에 녹아있어, 함께 연주하면 그 역사를 체험하는 느낌이다. 베를린 필 부수석인 비올리스트 나오코 시미즈가 나의 멘토인데, 일주일에 한두 번 오케스트라 파트는 물론 솔로 곡까지 많이 배우고 있다.
베를린 필과의 연주부터 카라얀 아카데미 프로젝트와 레슨까지 해내려면 무척이나 바쁜 나날이겠다. 필하모니 연주와 아카데미 연주가 겹치는 때를 우리끼리는 ‘헬 위크’라고 부른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주일 내내 연습한다. 필하모니 내 카페테리아에서 먹고, 연습실에서 쪽잠을 잔다. 짜여진 시간 안에 방대한 악보를 소화하려니 체력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영상으로만 보던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오케스트라에서 호흡하는 게 무엇보다 즐겁다.
비슷한 나이대의(카라얀 아카데미는 27세 이하만 지원할 수 있다) 출중한 음악 동료들과 함께하는 귀중한 경험이기도 하겠다. 아카데미에서 같이 연주를 많이 하다 보니 돈독해졌다.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많다. 특히 비올리스트 사라 카스트로와는 타베아 치머만 클래스에서 같이 공부한 사이다. 한국인도 두 명 있는데, 오보이스트 한이제와 첼리스트 김범준이다. 한이제와는 베를린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았다가 친해진 인연이 있는데, 운명처럼 아카데미에서 만나게 됐다.
지난달 카라얀 아카데미는 작곡가 신동훈의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오브 랫츠 앤 맨(Of Rats and Men)’을 초연했다. 한국 작곡가의 곡을 연주한 소감은. 처음 수석을 맡은 프로젝트에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있어서 반가웠다. 초연되는 곡이라 연습 전에 작곡가님께 직접 총보를 여쭤봤다. 카프카의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작곡가와 만나 곡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것이 현대곡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연주도 성황리에 마쳤다.
독일에서 개인적인 시간에는 무엇을 하나. 좋아하는 식품관에서 사온 신선한 재료로 정성스레 요리하곤 한다. 먹는 것부터 해서 주변을 정갈하게 하면, 마음도 따라서 정돈되는 것 같다. 음악하는 사람은 내면도 잘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에 들인 습관이다. 짬이 나면 잠깐이라도 여행을 다녀오려고 하는데, 파리는 갈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영감이 충만해서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졸업 후에도 아마 오케스트라에 있지 않을까.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지만, 한국 공연은 늘 반갑다. 2월 6일에는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음악적으로 흥미롭고 영감을 주는 등 콩쿠르를 준비할 땐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비올리스트 김규리가 되기까지, 자신의 성장 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다음 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주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첫발을 떼기 어려울 뿐, 직접 부딪혀보면 걱정만큼 큰일은 아니더라.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다. 독일로 건너와 만난 타베아 치머만 선생님과 친구들, 또 많은 연주를 경험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노하우를 얻었다. 음악뿐 아니라 여러 삶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 박서정 기자
비올리스트 5인이 추천하는 매력적인 비올라 레퍼토리
김사라
베를리오즈 ‘이탈리아의 해럴드’는 표제 교향곡인데 비올라가 주인공 해럴드 역을 맡는다. 혹자는 ‘세상에서 제일 긴 비올라 조크’라고도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밌는 작품이다. 이 곡은 드물게 수석 오디션 엑섭으로도 나온다. 비올라로 시작하는 말러 교향곡 10번도 중요한 엑섭이다. R. 슈트라우스 ‘돈키호테’는 워낙 유명한 곡이다. 약간 비굴하면서도 말을 잘 듣는 비올라 산초 판사의 수다가 재밌다.
김세준
브람스 소나타 1·2번과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슈타미츠 비올라 협주곡은 음역대 뿐 아니라 중후하고 적당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어 비올라와 잘 어우러진다. 버르토크 비올라 협주곡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말년의 투병으로 인한 비참함과 향수병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해내는 비올라의 어두운 음색과 깊은 울림이 인상적이다. 교향곡으로는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로맨틱’과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꼽고 싶다. 특히 브루크너 교향곡 중 느린 악장의 비올라 솔로는 악기의 따뜻하면서도 로맨틱한 사운드를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R. 슈트라우스 ‘돈 후안’과 스메타나 ‘팔려간 신부’ 등이 단골 엑섭이며,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2악장 솔로 부분도 자주 나오는 곡 중 하나다. 특히 수석 시험에서 반드시 나오는 곡은 R. 슈트라우스 ‘돈키호테’의 수석 솔로로, 항상 잘 준비해두어야 한다.
박경민
비올라 협주곡의 선구적인 존재와 다름없는 월턴 비올라 협주곡을 추천한다. 모차르트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364 역시 권하고 싶다. 힌데미트 무반주 비올라 소나타가 대표적이고, 부르흐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가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브람스 비올라 소나타도 강력히 추천한다!
심효비
오케스트라 작품 중에서는 브람스 ‘세레나데’ 2번. 이 곡은 비올라가 바이올린의 자리를 대신한다. 대개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역할은 눈에 띄는 멜로디를 연주하기보다는 다른 악기를 서포트해 주는 경우가 더 많아서 그 매력을 느끼기가 힘든데, 여기서만큼은 비올라의 매력을 아주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다음으로는 월턴 비올라 협주곡. 이처럼 비올라의 매력을 잘 표현 하는 작품이 또 있을까? 비올라 특유의 깊고 부드러움, 따뜻한 선율 속에 묻어나는 슬픔이 잘 드러난다.
김규리
브람스 비올라 소나타 1번과 힌데미트 비올라 소나타 4번, 윌턴 비올라 협주곡을 가장 좋아한다. 최근 틸레만과 연주한 R.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도 매력적이다. 슈트라우스는 연주하긴 정말 어려운데 듣기엔 참 좋은 곡이 많다. ‘돈키호테’와 ‘돈 후안’ 역시 비올라 엑섭에서 빠질 수 없는 곡이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2악장과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도 많이 나온다.
비올라 발전사
비올라의 진가는 오케스트라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비올리스트 유리 바시메트는 “비올라는 단순히 중간 음역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중심에 서있는 악기”라고 했다. 이러한 비올라는 어떠한 역사를 지녔을까? 현대 현악기의 형태는 13세기에 확립됐다. 당시에는 활로 연주하는 모든 현악기를 ‘비올라’라고 불렀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비올라는 찰현악기를 지칭했다. 그 흔적은 비올라 다 브라초(viola da braccio, 팔로 받쳐 연주하는 악기)와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 무릎에 끼워 연주 악기)에서 찾을 수 있다. 비올라 다 브라초는 오늘날 비올라 형태의 기원이 됐다. 독일어로 비올라를 브라체(Bratsche)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비올라를 향한 오해
비올라는 긴 시간 동안 불편한 오해를 받아왔다. 바이올린과 외형, 연주법이 비슷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바이올린을 못해서 비올라 연주자로 전향한 것이냐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올라가 연주할 수 있는 음역은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의 중간 음이다. 바이올린은 높은음자리표를, 첼로는 낮은음자리표를 본다. 반면 비올라는 ‘가온음자리표’라는 특별한 음자리표를 사용해 기보한다. 바이올린만큼 밝지 않고, 첼로만큼 풍부하지 못한 음색을 지닌 악기라며 대중은 꽤 오랫동안 비올라를 외면해왔다.
실내악의 중심이 되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자 기악 악기는 성악만큼 중요성을 획득했다. 실내악이 꽃 피던 시기였다. 주목할 점은 당시 실내악에서 비올라가 중심 역할을 맡았다는 것. 4중주에서는 비올라가 두 대, 5중주에서는 비올라가 세 대 쓰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반면 바로크 작곡가들은 비올라 독주곡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몇 안 되는 비올라 레퍼토리는 텔레만과 헨델의 손에서 탄생했다.
대중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다 상업이 발달한 고전시대에 이르자 일반 대중에게 악기와 악보가 보급됐다. 시민 계층이 음악을 즐기며 기악음악은 본격적인 성장세를 이뤘다. 시대 흐름에 발맞춰 자연스럽게 악기는 개량됐고 작은 사이즈의 비올라를 원하는 수요가 늘어났다. 악기 제작자인 안드레아 과르네리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비올라를 내놓았다. 크기가 커서 쉽게 연주하기가 힘들다는 대중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비올라 레퍼토리에 기여한 18세기 작곡가 3인
반할 슈타미츠 호프마이스터
연주 주법의 발전
고전시대 또 다른 특징은 근현대 오케스트라 형태가 정립됐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는 궁정 오케스트라가 독일 전역에 출현했다. 더불어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이 본격적으로 연주되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역할이 두드러지며 자연스럽게 비올라 연주 주법이 발전을 이뤘다. 주법이 화려해지자 다양한 작곡가들이 비올라 독주곡에 호기심을 보였다. 비올라 연주자들의 기초 교본이라 할 만한 반할·슈타미츠·호프마이스터 협주곡이 이때 만들어졌다. 현악 4중주를 즐겼던 모차르트는 음악의 중간 성부를 좋아해 주로 비올라 파트를 연주했다고 한다. 비올라를 향한 모차르트의 애정은 바이올린과 비올라,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은 당시 유럽 오케스트라 발전으로 인한 다채로운 기교를 반영하고 있다. 비올라 부분은 더 밝은 음색을 위해 개방현을 반음씩 높이는 변칙조율을 사용했다.
개량을 거듭하다
18세기, 현악기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이 그어졌다. 프랑스 출신 악기 제작사 프랑수아 자비에 투르트가 현대식 활을 완성했다. 현악기에서 활은 악기만큼 중요하다. 음색을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대식 활 덕분에 비올라는 더 묵직한 소리를 내는 악기로 발돋움했다. 19세기에도 비올라는 계속해서 변화를 꾀했다. 비올라의 지판이 길어지며 음역대는 넓어졌고, 현의 굵기가 두꺼워지며 저음이 보강됐다. 깊은 울림을 위해 몸체의 길이는 늘어났다. 악기의 음향적 한계가 개선되자 작곡가들은 마침내 비올라 개성이 반영된 작품을 내놓았다. 기존의 악기를 개량하고 새로운 악기를 개발하던 이 시기에 오늘날의 오케스트라 편성이 확립됐다.
20세기 작곡가 3인
버르토크 힌데미트 월턴
전문 비올리스트 육성
20세기에 접어들며 비올라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바이올린 주자가 비올라 연주를 병행하던 예전과 달리, 전문 비올리스트가 육성됐다. 그 기세를 몰아 작곡가들은 실험적인 비올라 레퍼토리를 앞다퉈 개발했다. 소위 말하는 ‘비올라 3대 협주곡’ 버르토크·힌데미트·월턴 협주곡이 이때 만들어졌다.
현재진행형 악기
비올라를 향한 작곡가들의 관심은 지속적으로 증폭되고 있다. 비올라의 울림에는 멍울진 슬픔이 그득하다. 그래서인지 쇼스타코비치와 버르토크, 다케미쓰 도루와 같은 작곡가들이 인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비올라 곡을 남겼다. 브리튼·시닛케·칸첼리·태브너·구바이둘리나 같은 현대 작곡가들도 비올라를 향한 애정 어린 곡들을 내놓았다. 우리 시대 비올리스트들의 숙제는 끊임없이 현대 곡들을 익혀야 한다는 것일 테다.
글 장혜선 기자 –
비올라 악기 탐구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곳에서 울리는 악기
바이올린 연주자가 비올라 연주자로 전향한다?
“비올라가 같은 현악기군인 바이올린·첼로에 비해 연주를 배우는 연령대가 늦은 건 사실입니다. 악기가 크기 때문에 아이들이 연주하기에는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르거든요. 실제로 어린 나이 때 비올라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바이올린 성인용 사이즈에 비올라 줄을 껴서 연습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바이올린으로 시작한 친구들이 나중에 전공을 바꾸는 경우가 많죠. 그렇지만 처음부터 비올라로 시작했던 친구들이 비올라에 대한 이해력이 더 빠를 수밖에 없어요. 바이올린을 하던 친구들은 중간에 악기 습관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한동안 힘들어 하죠. 예를 들면 악기를 잡았을 때 손가락을 더 벌려야 하는데 이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져요. 비올라를 바이올린처럼 연주를 하려고 하면 잘 안 되죠. 둘은 분명 다른 악기니까, 비올라만의 특별한 음색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비올라와 바이올린의 차이점
비올라와 바이올린은 외형·내부 구조·연주 기법이 매우 비슷하다. 크기·음역·음색에서 차이가 발생하는데,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칠분의 일 정도 더 크며 무게가 무겁다. “비올라 주자들을 패러디한 그림이 많죠.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주자들만 어깨를 움츠리고 앉아있는 그림 말예요.(웃음) 사실 비올라가 바이올린보다 더 크고 무겁기 때문에 실제로 연주할 때 어깨를 더 움츠리고 연주하게 됩니다. 비올라의 커다란 울림통을 다 울리게 하려면 활을 바이올린보다 더 깊게 써야 하거든요. 활에 무게를 싣기 위해 비올라 주자들은 어깨와 등 근육을 최대한 넓게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깨가 움츠러드는 거예요.” 비올라의 음역은 바이올린보다 5도가 낮다.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의 중간 음역을 담당하기 때문에 바이올린보다 가라앉은 음색을 낸다. 같은 음역대의 고음을 연주했을 때 바이올린의 고음은 날카로우면서 시원하고, 비올라는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이올린과 첼로 음역을 넘나드는 것도 비올라만의 매력이다. “비올라를 우리나라 국악기로 비유하면 아쟁과 비슷해요. 국악 관현악에서 아쟁은 곡 전체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죠.”
눈치 보는 악기? 맞아요!
“비올라야말로 눈치를 ‘제대로’ 봐야 하는 악기죠. 실내악에서도 제일 바쁜 악기입니다. 비올라가 없으면 완벽한 화음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화음을 만들어주는 악기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에서 연주를 할 때 바이올린에 붙었다가, 첼로에 붙었다가…. 음악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제대로 따라가려면 눈치는 기본이고 센스가 덤이에요. 비올라는 19세기 이후에서야 솔로악기로서 주목 받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레퍼토리가 많지 않아요. 심지어 바흐 같은 경우에도 바이올린·첼로 무반주 작품은 있는데 비올라만 없는 것처럼…. 사람들이 비올라에 접근하기 힘들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현대 곡들이 많아서 듣기에 난해하다고 하더라고요. 비올라 연주자 입장에서도 현대 곡들을 계속 연구해나가야 하는 숙제가 생기죠.”
끊임없이 변동되는 사이즈
바이올린은 성인용 표준 사이즈(4/4)가 정해져 있다. 그에 비해 비올라 악기 사이즈는 일반화시킬 수가 없다. 연주자의 손 크기·팔 길이에 따른 체형에 맞춰 악기 사이즈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정 사이즈더라도 악기의 길이와 넓이에서부터 사이즈 차이가 발생한다. 김남중의 악기는 십육 사분의 삼 사이즈. 보통 성인들이 사용하는 비올라 정사이즈가 십육 이분의 일이니, 매우 큰 편이다. “18세기까지 비올라는 관현악·실내악에서 화음을 이루는 중간성부 역할이 강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튀지 않는 소리를 추구했습니다. 19세기로 넘어오면서 비올라가 독주악기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그 바람을 타서 비올라 주자들도 솔리스트적인 강렬한 소리를 원하게 됐어요. 연주자들이 울림통을 크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한 거죠. 지금도 악기 사이즈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 중이에요. 따라서 비올라를 두고 ‘아직도 발전 중인 악기’라고 합니다.”
체형에 따라 선택하는 어깨받침·턱받침
비올라라는 큰 악기를 목에 끼고 상당 시간 연주하면 몸에 무리가 온다. 어깨받침과 턱받침은 악기를 편하게 연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다. 체형(목 길이·턱과 어깨모양·쇄골 위치)과 습관(악기를 끼는 위치)에 따라서 어깨받침과 턱받침을 선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사용하지 않는 연주자들도 많다. 김남중이 쓰는 어깨받침은 마크 원이다. 사진처럼 어깨에 반듯하게 밀착이 돼야지 연주하기에 편하다고 한다. “어깨받침 같은 경우는 가격을 떠나서 본인 어깨 모양에 따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딱히 어떤 것을 추천하기는 애매해요. 쓰는 사람이 여러 개를 시도해보고 연습한 다음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는 게 최선입니다.”
악기 성향에 따른 줄의 선택
비올라는 네 개(도-솔-레-라)의 현으로 구성돼 있다. 송진과 마찬가지로 줄 역시 악기의 소리를 결정짓는 데 한몫한다. 줄을 만드는 재료는 무궁무진하다. 은·알루미늄·니켈이 감긴 것, 텅스텐·틴·티타늄이 감긴 것, 거트(양창자), 나일론까지 재료에 따라 각각 다른 소리를 불러온다. 저음악기로 갈수록 줄이 두꺼워지는데, 줄이 굵을수록 넓은 파동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줄을 끼느냐에 따라 소리가 사나워지기도, 한없이 늘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악기 특징을 파악해서 표현하고 싶은 음색의 줄을 선택하는 것이 관건이다. “제가 사용하는 비올라는 좀 큰 편이라 줄의 텐션이 부드러운 오블리가토를 씁니다. 그래야 울림이 넓어져요. 만약 제 악기에 에바 피라치 같이 강한 소리가 나는 줄을 끼면 소리가 너무 강해질 거예요.”
비올라에 쓰이는 다양한 송진의 종류 송진은 소나무·잣나무에서 나온 수액을 채취해서 만든다. 끈적끈적한 상태의 송진을 증류시켜 수분이 제거된 순수한 고체 덩어리가 바로 악기에 쓰이는 송진이다. 송진은 활 털이 줄에 잘 달라붙을 수 있게 마찰을 준다. 현악기 종류에 따라 입자가 달라지는데, 바이올린 같은 고음부의 악기는 입자가 고운 송진을 쓰고 첼로·더블베이스 등 저음부로 내려갈수록 입자가 굵어진다. 송진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전공자들이 자주 쓰는 송진은 안드레아·리벤첼러·귀스타브 베르나델 등이 있는데, 선택은 악기 상태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이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도움말 김남중(비올리스트)
비올리스트 김남중은 서울대를 거쳐 인디애나 대학에서 공부했다. 서울시향 비올라 단원, 아시아유스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으로 활동했다.
*‘객석’ 2014년 5월호 악기탐구 시리즈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