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존 에두제이/뮌헨 심포니(협연 파비올라 김)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협연 클라라 주미 강)
찬란한 두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초상
12월 8일 아트센터 인천 / 12월 10일 롯데콘서트홀
송년이면 자주 들려오는 음악들이 있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큰 물결과 작은 물결이 교차하며 일렁이는 거대한 바다를 연상시킨다. 2019년 12월 8일 아트센터 인천에서는 케빈 존 에두제이가 이끄는 뮌헨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파비올라 김, 12월 10일에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클라라 주미 강이 차이콥스키의 강렬한 선율을 각기 다른 색채의 해석으로 무대 위에 담아 냈다.
12월 8일 뮌헨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은 새로운 기획과 비전으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지휘자 케빈 존 에두제이의 지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룬 자신감 있는 베토벤 스테판 왕 서곡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진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는 파비올라 김의 부드러우면서도 열정적인 에너지가 작품 속으로 스며들어 이 작품의 활력을 더했고, 서정성 깃든 풍부한 울림으로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울한 비애의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오케스트라와 파비올라 김의 호흡은 환상적이었다. 2019년 6월 이들이 함께 작업한 음반 ‘1939-바르톡, 하르트만·월튼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보여주었던 새롭고 다양한 색채가 이날 무대에서도 드러났다. 서로가 서로의 해석을 지지하고 북돋으면서 점점 음악을 확장시키며 몰입하게 했다.
2부에서 이어진 슈만의 교향곡에서 느껴진 우아하고 생동감 넘치는 앙상블은 독일 정통 사운드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12월 10일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현대시가 보들레르의 시 안에서 확고하게 그 뿌리를 내린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음악은 이 곡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고 해도 좋다. 그 첫 음에서부터 음악은 완전히 새로운 맥박으로 뛰기 시작한다”고 말한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의 말처럼 마린스키가 들려준 첫 음은 그가 내다본 미래의 색채들을 품고 있었다. 이어진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클라라 주미 강은 자신만의 색채로 우아하고 차분하게 차이콥스키가 담아낸 고뇌를 풀어냈다. 현란하고 박진감 넘치는 연주라기 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광활한 러시아 오케스트라 앙상블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끌고 간 연주였다. 특히 2악장의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테마는 성숙해진 그녀의 음악세계를 가늠케 했다.
2부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중 한명인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은 피아노 모음곡이 원곡이지만 라벨의 관현악 편곡판이 오케스트라 연주로 많이 연주되어 사랑받고 있다. 이날 연주 역시 라벨의 관현악 편곡판으로 연주되었다. 프롬나드의 시작과 함께 제1곡 난쟁이의 섬세하고 영감이 번뜩이는 음악적 표현들과 일체된 오케스트라 앙상블은 그 뒤에 이어진 전곡의 진행을 하나씩 하나씩 열어가며 집중력을 배가시켰다.
마치 아이들과 유모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듯, 음산한 지하무덤이 눈앞에 펼쳐지듯, 점점 확장되면서 끝내 분출되는 장엄하고 웅장한 피날레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게르기예프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은 팽창되어 나가는 음악이 흩어지지 않고 견고한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큰 품 속에 선율을 감싸 안았다. 찬란한 예술의 마법이 깃든 순간이었다.
글 국지연 기자 사진 롯데문화재단·뮤직클레프
백건우 피아노 독주회
한 발자욱 뒤에서
12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터벅터벅. 내딛는 발걸음만으로 이날의 연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이 이름의 무게를 견디며 지내온 63년의 세월이 그 걸음에 묻어났다 하면 과한 것일까. 이날 연주한 열두 곡의 쇼팽 녹턴만으로 그 평생의 음악을 다 이해하리라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난 세월이 켜켜이 쌓여 이른, 지금 그의 음악이 담겼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백건우는 지난 2019년 2월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쇼팽 녹턴 전곡 음반을 발매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 이후 2년 만이었다. 베토벤 전곡 연주 당시 백건우는 이미 쇼팽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상태였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날 즈음 우연히 들어온 쇼팽 녹턴 악보이지만, 그의 연주는 이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임을 말해주고 있다. 60여 년을 음악과 함께 걸어온 그인데, 지금 백건우의 쇼팽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쇼팽은 17세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거의 평생에 걸쳐 녹턴을 작곡했다. 마치 일기처럼 써 내려간 스물한 개의 녹턴에는 그의 시간과 사람, 그리고 삶이 담겨있을 테다. 청년의 백건우에게 ‘나중에 해아 할 숙제’처럼 느껴졌던 쇼팽 녹턴이 지금 그에게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처럼 느껴진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았을까.
백건우의 쇼팽 연주는 7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졌다. 두 번의 공연 중 7일은 녹턴만으로 이루어진 무대였다. 이날 공연에서는 총 12개의 녹턴이 쉼 없이 이어졌다. 앨범에서 그러했듯 작품 번호순이 아닌 서사적인 방식의 배열이었으나, 음반과는 또 다른 구성을 취하고 있었다. 1번으로 시작해 9, 18, 19, 8, 20번으로 이어진 것이 다시 16, 11, 17, 14, 2, 13번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다시 한번의 해체를 통해 재구성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작곡가와 곡 전체에 대한 탐구, 그에 대한 깊은 사색 없이는 어려운 일이려니와 그에 대한 확신과 설득력이 없다면 듣는 이들의 공감을 사기도 어려울 텐데, 이날 백건우의 연주는 다시 하나의 새로운 그림이 되어 관객의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도 천천히, 섬세하게 흘러간 호흡과 모든 음을 내밀하게 연결하는 레가토는 쇼팽의 뉘앙스를 완벽하게 재연했다. 모든 쇼팽은 더 낭만적이고 감성적으로, 그리고 더 열정적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로잡기라도 하듯, 밀도 높은 묵직함이 절제와 함께 흘렀다.
열 두 개의 녹턴이 연주되는 내내 머릿속에 ‘관조’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그는 분명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으나, 그 뒤로 또 다른 형상이 그려지는 듯했다. 백건우의 연주를 또 다른 백건우가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달까. 작품 속에 담긴 작곡가의 고민과 고백, 강렬한 울부짖음 등 내밀한 감성과 본질이 과한 일렁임으로 넘치지 않았음은 그가 한 발자욱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터벅터벅.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피아니스트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연주는 끝이 났지만, 그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한 관객들의 끊임없는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더 이상의 연주는 없었다. 그저 가슴에 손을 얹고 관객을 바라볼 뿐. 바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없고, 겨울의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추위를 견뎌야 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쇼팽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로 시작해 그 주위로 펼쳐진 수많은 길 끝에 만난 녹턴. 백건우의 녹턴에는 쇼팽의 고백이 담겨있었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빈체로
안네 조피 무터 바이올린 리사이틀
짙은 여운을 곱씹은 밤
11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처럼 관록이 녹아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를 다시금 들을 수 있을까. 짙은 여운을 곱씹은 밤이었다.
안네 조피 무터는 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내가 일반 관객이라면 이 음악가의 연주를 보기 위해서 저녁에 집을 나와 티켓을 사고 공연장까지 가고 싶을까?” 연주자는 관객의 귀한 발걸음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뜻일 테다. 이날 무터는 잔상이 짙게 남는 연주로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지휘자 카라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안네 조피 무터는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를 순회하며 연주해왔다. 소위 ‘거장’ ‘전설’이라 칭하는 명연주자들의 내한 공연을 보면 실망할 때가 많다. 젊은 시절만큼의 기량이 아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타성에 젖어 있는 연주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무터의 연주에서는 완려한 기품이 묻어 나왔다.
무터는 이날 공연에서 대조적인 분위기로 함께 자주 연주되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4번과 5번 ‘봄’, 그리고 9번 ‘크로이처’를 선보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리기 위해 준비된 프로그램이었다. 무터에게 베토벤은 늘 중요한 작곡가였다. 1998년에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앨범을 발매한 이래로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연주해왔다. 언젠가 무터는 자신의 연주 철학은 암보라고 했다. 그래야지만 곡의 디테일을 잘 파악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세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전부 외워서 연주했다. 암보로 인한 효과는 디테일보다는, 이 곡에 대한 자신감으로 비쳤다.
그동안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반짝 스타로 주목을 받다가 사라지는 연주자들이 꽤 많았다. 무터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재할 수 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힘은 강한 ‘개성’이었단 걸 이번 연주를 통해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안네 조피 무터 재단의 학생을 뽑을 때 주로 ‘개성’과 ‘표현방식’을 염두에 둔다고 한다. 열세 살에 카라얀을 만나 음악적 가치관을 형성한 그이기에, 무터의 음악적 개성은 카라얀과 깊게 맞닿아있었다.
특히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그러했다. 무터는 곡 전체를 중심에 두고 연주를 이어나갔다. 세세한 디테일을 살리지만, 그 사소한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혹여 악기를 컨트롤하다가 실수를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밀고 나가는 연륜은 놀라웠다. 거시적 관점으로 곡을 연주하는데도 묻어 나오는 설득력. 4번, 5번, 9번의 연주가 순차적으로 끝날 때마다 그를 향한 신뢰감이 두터워졌다. 그저 무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원한 듀오인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키스와 함께 무대로 걸어 나올 때에는 강렬한 에너지가 전달됐다. 느긋한 걸음걸이엔 확신이 묻어 나왔고, 무대 한가운데에서 오키스를 향해 싱긋 웃을 때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여유롭게 했다. 1988년부터 줄곧 함께한 램버트 오키스와의 호흡은 구태여 논할 필요도 없이 완벽했다. 오키스의 피아노 연주는 엄숙하기보다는 마치 웅변조에 가깝다. 타건은 명쾌했지만, 무터의 음악적 움직임을 온전히 지지하고 있었다. 둘의 연주는 대화가 아닌 의지의 영역에 있었다.
무대 위에서의 어마어마한 존재감. 공연장을 매우는 모든 소리는 오롯이 무터의 개성으로 승화됐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크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