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릴리안트 클래식스 레이블, 음반 산업과 음악사(史)로 난 비밀의 오솔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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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2월 17일 9:00 오전

브릴리안트 클래식스 레이블

음반 산업과 음악사(史)로 난 비밀의 오솔길 여행

1996년 네덜란드에 설립된 브릴리안트 클래식스(Brilliant Classics/이하 브릴리안트) 레이블은 저가에 비해 고품질의 박스물 발매로 유명하다. 박스 구성을 위해 기존 음반을 선별하는 감식안도 뛰어나다. 바흐 탄생 250주년이던 2000년에 나온 바흐 박스물(155CD)은 이러한 특장이 한데 모여 있다. 연주자 얼굴을 재킷으로 내세운 다른 레이블과 달리 브릴리안트는 고회화를 내세운다. 연주자 중심의 스타마케팅은 이들의 길이 아니다. 오로지 작품 발굴-발견-복원의 길로 우리는 안내한다. 발굴하는 작곡가와 작품들도 다종다양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현재 듣는 음악과 범위가 얼마나 협소한지 알게 된다.

발굴과 발견으로 작곡가의 이면을 만나다

브루크너(1824~1896)의 피아노 모음곡(①). 이 음반으로 하여금 우리는 교향곡 천재의 이면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브루크너’와 ‘피아노’의 선잇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26세인 1850년대부터 작곡된 그의 피아노곡들은 초기 목록의 많은 수를 차지한다. 24곡의 수록곡들 중 ‘슈타이어마르크 사람들’은 그의 교향곡들과 완연히 다른 분위기다. 한편 ‘D단조의 3월’은 후기 교향곡을 예견한다. 알반 베르크의 가곡들은 한없이 서정적이다(②). 쇤베르크 사사 후 현대음악의 날선 기수로 활약한 ‘베르크’와 ‘서정성’도 브루크너와 피아노의 관계처럼 어색하다. 하지만 수록된 초기 가곡들 속에서 슈베르트, 슈만, 볼프가 미소를 보낸다. ‘현대음악가 베르크’에 가려진 ‘고전 계승자’의 모습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필리포 파리넬리(피아노)의 선두지휘로 녹음된 음반에는 소프라노 고명재가 함께 하여 뭔지 모를 애착이 간다. 그녀는 1911~12년의 가곡(7곡)들을 부른다. 박스물 ‘러시안 실내악’은 묵직하다. 25CD 구성이다. 그중 차이콥스키 실내악의 정수가 담긴 현악 4중주 op.22 옆에는 5중주 무브먼트 B플랫이 놓여 있다. 전자가 차이콥스키 실내악의 간판이라면, 후자는 실연이나 리코딩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희귀곡이다. 모르는 작곡가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쌓아둔 브릴리안트의 음반을 넘길 때, 그 손끝은 음악사의 책장을 넘기는듯하다.

생전에 세고비아와 진한 우정을 나눴던 페데리코 모레노 트로바(1891~1982). 그의 기타독주곡을 모은 앨범(③)으로 우리는 또 다른 스페인 기타 명장을 알게 된다. ‘기타의 파가니니’라 불렸다는 마우로 줄리아니(1781~1828)의 음반은 어떠한가. 이를 통해 빈 살롱에서 인기를 누렸다는 기타·바이올린 2중주를 만나게 된다. 니콜라 안토니오 포르포라(1686~1768)는 낯설지만 영화 ‘파리넬리’를 떠올리면 한결 친숙해진다. 영화의 주인공인 카스트라토 파리넬리(1705~1782)와 요제프 하이든의 스승이었던 인물이다. 베니스 피에타 고아원(Ospedale della Pietà)의 음악교사이자 작곡가였던 그는 꽃을 소재로 한 칸타타를 즐겨 썼다고 한다. 가사가 뿜어내는 음향(響)이 꽃향(香)처럼 스피커 주변을 맴돈다(④). 브릴리안트는 파올로 토스티(1846~1916)의 작품들을 4종의 음반으로 내놓았다. 그의 이탈리아 가곡 모음집에는 80곡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가 모르던 이탈리아 성악유산의 풍부함과 만날 수 있다. 훔멜(1778~1837)의 음반도 총 15종이 나와 있다. 그가 이십대에 작곡했다는 (작품번호 없는) 피아노 협주곡 WoO 24a S.5와 협주곡 op.17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에 스며있는 빈 스타일이 꿈틀댄다.

 

박스물 속엔 또 하나의 박스물이

요제프 하이든의 동생 미하엘 하이든(1737~1806). 28장의 CD로 구성된 미하엘 박스물은 교향곡, 현악·관악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등으로 구성된 입방체다(⑤). 오페라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로 바로크오페라의 이면과 마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작품들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종교음악 시리즈가 박스물의 안방을 차지하니, 그곳에 머물러 본다. 생전에 형 하이든은 물론 세상이 인정했다는 레퀴엠과 미사곡 시리즈 7장을 통해 그를 ‘종교음악가’로 기억하게 된다. 존 다울랜드(1563~1626)부터 자크 모렐(1700~ 1749)로 이어지는 3세기는 비올라 다 감바의 전성기였다. 마랭 마레(1656~1728)의 독주곡과 소품들이 담긴 7장의 CD는 21장 구성의 박스물에서 안방을 차지하며 ‘박스물 속 박스물’로 대우 받는다(⑥).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1991)은 마레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지오반니 레그렌치(1626 ~1690)의 앨범(⑦)에는 오래된 오르간, 바로크트롬본, 코르네토 소리가 담겨 있다. 코르네토는 얼핏 보면 리코드이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아 연주한다. 하지만 소리는 목관과 금관 중간쯤이다. 성악가의 목소리 사이로 코르네토 소리는 이 음반에서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해설지가 대단히 학구적이다. 해설지만 모으면 ‘우리가 모르던 음악사’가 탄생할 것이다. 집필한 이들은 학자보다 음반의 주인공인 연주가들이 많다.

 

글 송현민(편집장·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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