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서울 출생
2012 예원학교 입학, 금호영재콘서트 데뷔
2014 레오폴드 아우어 콩쿠르 1위
2015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 1위
2016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 에네스쿠 콩쿠르 2위
2018 서울국제음악콩쿠르 1위
2019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멋모르고 도전한 인생 첫 콩쿠르에서 보기 좋게 예선 탈락했다. 낙담할 수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소년은 가슴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었고, 실패에 대한 분함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활을 고쳐 잡았다. 스스로 상상이나 했을까.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세계 무대에서 그의 이름 석 자가 호명되리란 것을. 김동현이 그의 가능성을 처음 알린 것은 2012년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서였다. 이후 2014년 레오폴드 아우어 콩쿠르와 이듬해 개최된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출전해 우승을 거뒀다. 예원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2017년, 여러 콩쿠르에 지원했지만 초반부터 낙방을 거듭했다. 그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묵묵히 연습을 계속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 그러했듯, 그 시간을 자극제로 삼아 새로운 결실을 거뒀다. 지난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3위에 오르는 쾌거를 낳은 것이다. 김동현의 목소리에선 한결같이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이제 분명히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어떤 실패의 경험도 내일의 나를 위한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어디로 부딪혀도 그곳에는 성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를 신뢰하니 자유를 얻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기로 했다는 그의 눈빛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나의 스승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한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예원학교에 출강하시던 김정현 선생님을 만났다. 이듬해에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통해 김남윤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다. 김정현 선생님께서는 연주하다 보면 놓칠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 예를 들면 마음가짐이나 자세 등에 대해 가르쳐주신다. 한편, 김남윤 선생님께서는 전체를 볼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신다. 이는 곧 전반적인 연주의 퀄리티 상승으로 이어진다. 두 분께 여전히 배움을 얻고 있다.
일찍 찾아온 캠퍼스 라이프
예원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다. 시간상으로 굉장한 특혜를 봤다. 또래보다 2년 먼저 대학 과정을 수료했고, 재학 중 출전한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해 군면제 혜택을 받아 2년을 더 아낄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음악적·인간적으로 나 자신을 단련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한편으로는 학창 시절이 남들보다 짧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게임·운동 등 평범한 취미 활동을 즐길 시간이나, 음악을 안 하는 또래 친구들이 경험할 법한 다양한 일들을 겪을 기회도 적었던 것 같다.
나의 영감, 나의 음악
영상물의 이미지들로부터 가장 영감을 많이 받는다. 직업 특성상 악기 없이 여행을 다니며 많은 걸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얻은 영감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길을 닦는 과정이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불안정한 부분을 갈고 닦기보다는, 내가 생각한 색깔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요소를 청소하고, 보다 전달력을 높이는 작업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전환점이 되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전환점을 맞게 한 사건이었다. 콩쿠르 이후로 이전보다 공연이 많아지면서 연주자로서 갖춰야 할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하나의 무대를 준비하면서도 좀 더 넓고 깊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진 연주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제 곡마다의 다른 색을 표현하거나 나의 해석을 드러내기 위해 여러 요소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중요히 생각한다. 연주자는 작곡가와 관객을 잇는 매개체이니까. 책으로 치면 ‘옮긴이’에 해당한다. 독자에게 저자의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연주자에게는 자신의 해석이나 색을 가미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연주자들과는 다른, 나만이 가진 색을 찾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곳에서 본 세상
작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모스크바 음악 거리에서 몇 주간 지냈다. 이전까지 러시아 사람들은 차갑고 딱딱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직접 겪어보니 아니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언제든 내게 도움을 주려 했다. 또, 한정된 색과 유행하는 디자인의 옷을 주로 입는 한국과는 달리, 러시아 사람들은 각각 개성 넘치는 옷을 입고 있더라. 옷에 아기자기한 장식도 많았다. 러시아의 전통 공예나 인테리어도 마찬가지였다. 콩쿠르에서 만난 러시아 출신의 연주자들은 타 지역에서 온 연주자들과는 사뭇 다른 차이콥스키를 선보였다. 보통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은 덩치와 힘이 있는 음악으로 인식하곤 했는데, 러시아의 문화를 직접 겪어보니 이들의 음악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길거리에서 본 것처럼, 아기자기한 장식과 풍부한 감성이 우선시되고 있었다.
리사이틀 무대에 불어올 산뜻한 바람
4월 9일 금호아트홀에서 있을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은 여러 요소가 적용된 결과물이다. 우선 공연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레퍼토리를 소개하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작품에서 오는 신선함이 관객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필요할 것 같았다. 이전까지 독일음악을 더 많이 접했는데, 최근에는 보다 새로운 시선을 느껴보고자 프랑스 작품을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연주회는 르클레르·포레·생상스 등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으로 채웠다. 그사이에 삽입된 스트라빈스키의 디베르티멘토는 르클레르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서 함께 소개하고 싶었다. 무겁지 않고 율동적인 느낌이 강한, 예쁜 곡들이다.
앞으로의 목표와 올해 일정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연주를 들었을 때 연주자가 궁금해지는, 그런 연주자가 되는 게 목표다. 그들에게 기억되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독일로 유학을 가는 것이다. 가장 선호하는 도시는 베를린. 21세기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많은 선배 예술가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쉽게도 교향악축제에서의 부천 필(박영민 지휘)과의 협연은 취소됐지만, 금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박영성과 리사이틀을 갖는다. 8월에는 첼리스트 심준호의 제안으로 클럽M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지난 3월에 취소된 티엘아이 아트센터에서의 리사이틀도 8월로 연기됐고, 같은 달 춘천시향과의 협연도 예정돼 있다. 8월 9일에는 클래시컬 네트워크에서 주관하는 롯데콘서트홀 ‘현악본색’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굉장히 바쁜 여름이 될 것 같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차이콥스키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러시아 태생의 작곡가인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를 기념하여 1958년부터 개최되어온 음악 콩쿠르이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벨기에), 쇼팽 콩쿠르(폴란드)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린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4년 마다 개최되며, 피아노·바이올린·첼로·성악 부문이 있다.
역대 한국인 입상자
1974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최초로 한국인 입상자가 등장했다. 화려한 카퍼레이드의 수호를 받은 정명훈(1953~)이 그 주인공. 피아노 부문 2위에 올랐다.
1994 피아니스트 백혜선(1965~)이 1위 없는 공동 3위에 올랐다. 당시 12명의 심사위원들은 두 시간 넘도록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몇몇 심사위원은 러시아 텃세가 강하게 작용한 심사결과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2 성악 부문 최초의 한국인 입상자다. 바리톤 김동섭이 남성부에서 3위를 거뒀다.
2011 ‘K-클래식’의 저력을 보여준 해다. 피아노 부문에서는 손열음과 조성진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이지혜가 3위에 올랐다. 성악 부문에서는 소프라노 서선영과 베이스 박종민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9 바리톤 김기훈이 성악 부문 남성부에서 2위,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1999~)이 3위를 수상했다. 첼리스트 문태국이 4위, 호르니스트 유해리가 새로이 개설된 금관 악기 부문에서 7위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