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낭만주의자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 아믈랭
아믈랭은 늘 새로움을 주는 쇼팽을 평생 사랑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 아믈랭(1989~)을 어떻게 기억할까. 음악팬이라면 2015년 쇼팽 콩쿠르가 아직 선명할 테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인에게 그는 조성진(1994~)과 치열한 경쟁을 치른 피아니스트로 각인됐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 1위를 하던 그해, 아믈랭은 2위를 했다.
한 작곡가의 스페셜리스트로만 명명되는 걸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연주자들이 있다. 아무래도 ‘그 레퍼토리만 잘하는 연주자’로 대중에게 각인될 것 같은 불안감. 20세기의 쇼팽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타마슈 바샤리(1933~) 역시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인 적 있다. “베토벤을 못 치면 당연히 쇼팽도 못 친다!”
그런데 아믈랭은 꽤 태연하다. 아니, 오히려 쇼팽과 연관되어 불리는 자신을 즐기는 듯하다. 쇼팽 콩쿠르가 자신에게 남긴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늘 새로움을 주는 쇼팽을 그는 평생 사랑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아마 아믈랭은 21세기 낭만주의자로 음악사에 기록될 것 같다.
2015년 9월, 쇼팽의 후기작으로 구성된 그의 첫 솔로 음반이 아날렉타(Analekta) 레이블을 통해 발매됐다. 2019년에는 켄트 나가노/몬트리올 심포니와 함께 쇼팽 협주곡 음반을 내놨다. 지난 2018년, 첫 내한 독주에서는 ‘올(All) 쇼팽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오는 4월 내한에는 쇼팽 콩쿠르에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상을 수상한 그 곡,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한다.
지난 2018년, 첫 내한 독주회를 어떻게 회고하나.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독주회는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한국 관객의 열정이 사랑스러웠다.
연주자가 태어난 국가는 연주자의 음악적 성향에 큰 영향을 준다. 캐나다 퀘벡의 문화적 배경이 당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나? 캐나다에서도 유독 내부 결속력이 강한 도시인데. 클래식 음악은, 솔직히 말하면 ‘캐나다의 스포츠’인 하키만큼 인기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문화에 있어서는 좋은 입지에 있다. 나는 졸리에트(Joliette)라는 아주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약 5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 작은 도시에 음악 교육과 콘서트, 페스티벌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다. 덕분에 현재 졸리에트에는 클래식 음악이 깊게 뿌리를 내렸고, 나도 예술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쇼팽 콩쿠르가 남긴 것들
2015년 쇼팽 콩쿠르의 영향 때문일까. 많은 대중은 당신을 쇼팽과 자주 연관시킨다. 한 작곡가의 스페셜리스트로 명명되는 게 부담되진 않는지. 맘에 든다. 쇼팽은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다. 평생 동안 쇼팽을 연주하고 싶다. 다른 작곡가에 몰두하다가도 결국은 항상 쇼팽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쇼팽 콩쿠르가 당신에게 남긴 것들은. 내가 ‘나의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쇼팽 콩쿠르 수상 덕분이다. 해외 콩쿠르 입상 경력이 없었다면, 아마 난 캐나다 지역으로만 국한된 초라한 이력을 갖고 있었겠지. 좀 더 어린 나이부터 콩쿠르에 도전하는 걸 추천한다. 나 역시 그렇게 시작한 케이스다. 처음에는 작은 도시의 콩쿠르에 도전했고, 다음에는 대도시, 그다음에는 저명한 해외 콩쿠르에 참여했다. 순차적으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 아,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큰 콩쿠르 무대에 선 경험은 한국의 서울국제음악콩쿠르였다! 이 콩쿠르에서 3위를 한 뒤, 쇼팽 콩쿠르에 지원할 용기가 생겼다.
쇼팽을 연주할 때 참고하는 연주자가 있나. 그동안 디누 리파티(1917~1950),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887~1982), 알프레드 코르토(1877~1962), 요제프 호프만(1870~1956), 이그나츠 프리드만(1882~1948)의 쇼팽에 영감을 받았다. 지금은 많이 참고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쇼팽의 음악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찾는 것 같다.
그들의 무엇이 마음을 동하게 했는지. 내가 참고했던 연주자들은 다 정교한 연주를 펼친다. 쇼팽 특유의 ‘양극성’을 섬세하게 잘 찾아낸다. 쇼팽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균형이다.
양극성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균형이라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간의 균형. 판타지와 구조적 통일성 간의 균형. 내향성과 외향성 간의 균형 등.
쇼팽의 실체가 무엇이기에
피아노 연주자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쇼팽을 접한다. 그러나 200곡이 넘는 방대한 피아노 레퍼토리를 하나의 결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특히 성장과 함께 본인만의 음악적 정체성이 진해지면서 쇼팽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질 텐데. 어릴 때와 비교하면 변한 게 많다. 쇼팽의 음악을 잘 연주하려면 화성과 성부 진행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은 대부분 본능적으로 연주한다.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작품을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쇼팽의 음악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 내부 작용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쇼팽의 창조적인 천재성에 빠져든다.
쇼팽의 음악에 있는 아름다운 소리들은 대체 실체가 무엇일까. ‘쇼팽을 쇼팽처럼 친다’는 건 무엇일까. 쇼팽의 음악은 시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언제나 즉흥적인 요소가 있다. 그래서 연주자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많이 준다. 늘 쇼팽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건, 어떻게 쇼팽은 한 개의 프레이즈 안에서 대조적인, 때로는 모순적인 감정들을 넣었는지. 정말이지 한 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내한에서도 쇼팽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지난 내한에 이어 이번에도 쇼팽을 선택한 이유는. 나에겐 쇼팽의 소나타 3번 op.58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쇼팽 콩쿠르에서 이 작품으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상을 수상했다. 한국 관객을 위해서도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연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쇼팽이 남긴 피아노 혁명
내한 공연에서는 쇼팽 외에 베토벤과 멘델스존의 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이다. 이 셋을 단순히 낭만시대로 묶기에는 세심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작곡가 중에는 베토벤과 쇼팽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이 두 작곡가는 완전히 다르다. 멘델스존이 두 작곡가의 큰 ‘연결고리’가 될 것 같다. 피아노 작곡의 완전한 혁명을 불러온 쇼팽과 달리, 멘델스존은 베토벤을 직접적으로 따랐고, 기교적인 부분도 본인의 재능을 다 꺼내서 보여준 듯하다.
쇼팽 콩쿠르 때 선보인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인상 깊었다. 쇼팽의 ‘소나타’와 ‘협주곡’을 칠 때에는 마음가짐이 좀 다른지. 쇼팽의 소나타와 협주곡은 극도로 다르다. 매우 다른 스타일로 쓰였다. 협주곡은 아직도 세상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 많았던 젊은 시절의 쇼팽이 작곡했다. 반면 후기 소나타를 보면 훨씬 심오하다. 예술의 절정에 있는 한 천재가 오롯이 느껴진다. 더 많은 층이 만들어졌고, 정서적으로도 복잡하다. 그래서 쇼팽 작품에서는 항상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게 된다.
쇼팽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을 추천한다면. 네 개의 발라드로 불리는 작품은 쇼팽에 입문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발라드는 쇼팽의 예술성의 많은 부분을 압축하고 있다. 쇼팽의 음악 언어가 그 네 개의 작품을 중심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쇼팽의 명작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주르카를 들어보길 권한다. 쇼팽의 친밀함이 느낄 수 있을 테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번 내한을 통해 가장 기대하는 점은. 단연, 맛있는 한국 음식!
글 장혜선 기자 사진 더브릿지컴퍼니
샤를 리샤르 아믈랭 피아노 독주회
4월 25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 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