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김택수, 또 하나의 클래식 한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6월 8일 9:00 오전

또 하나의

클래식 한류

작곡가 김택수

 

미국 창작음악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에겐
부지런한 하루가 영감이다

 

지난 1월, 지휘자 롱 유가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은 김택수(1980~)의 작품 ‘스핀-플립’을 초연했다.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뉴욕 필 무대에서 연주된 것은 진은숙을 제외하고는 전무했다. 김택수는 현재 뉴욕 필 외에도 오리건 심포니·LA 필·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등 미국의 여러 악단으로부터 주목받는 작곡가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타지에서 탄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그의 비결을. 이에 몇 개의 질문을 담아 메일을 보냈다. 빼곡하게 채워져 돌아온 답변지는 언젠가 슈만이 했던 말을 떠오르게 했다. “1파운드 무게의 철은 그 자체로는 거의 값어치가 없지만, 천 개의 시계태엽으로 만들어지면 값비싼 가치가 생긴다. 그 철 한 덩어리, 충실히 사용하라.”

김택수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촉망받는 화학도였다. 작곡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건 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지만 그는 천 걸음을 충실히 내디뎌왔다. 알찬 일상이 맞물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음악성은 정제되어 나갔다. 그렇기에 오늘 발하는 빛은 자연스러운 멋까지 품었다.

 

미국에서 작곡과 교육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근황은 어떤가? 미국은 학기가 봄에 끝나, 방금 막 시러큐스 대학생들의 학점 입력을 마쳤다. 이제 8월 중순까지는 방학이다! 올가을 학기부터는 샌디에이고 대학에서 강의한다. 최근 강의 외에도 많은 연주와 이에 따른 여행 일정 덕분에 바쁘게 지냈다. 뉴욕 필·오리건 심포니·뉴월드 심포니 등에 꾸준히 작품이 오르고 있는데 최대한 연주자와 관객을 직접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공연이 없는 요즘엔 내년 선보일 작품들을 높은 퀄리티로 완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뉴욕이라는 도시에 정착해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작곡 활동은 뉴욕 외에서도 하고 있어서, 교육자의 이력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인디애나 음대 박사과정이 끝나가던 2014년, 포틀랜드로 거처를 옮겨 루이스 앤 클라크대와 포틀랜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작곡은 혼자 하는 작업인 데다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반면, 교직은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반응을 바로 볼 수 있으니 거기서 오는 다른 기쁨이 있더라. 그러던 2018년 시러큐스 대학에 초빙돼 뉴욕으로 오게 됐다. 결국 직장 따라 이동한 셈이다.

지난 1월엔 오리건 심포니와 뉴욕 필의 연주로 ‘스핀-플립’(2014)이 미국 관객에게 소개됐다. 두 악단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가? 포틀랜드에 거주하면서 근처에 있던 오리건 심포니의 연주자들과 개인적으로 작업을 하곤 했는데, 서로 코드가 잘 맞았다. 그래서 연주자들이 심포니 관계자에게 나를 추천해주었다. 마침 객원지휘자로 온 김은선(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도 그 작품을 연주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했다고 한다. 뉴욕 필 연주가 어떻게 성사된 건지는 사실 모르겠다. 내 작품을 연주하고 싶으니 악보를 받아볼 수 있겠냐는 메일을 받았다.

미국과 한국 작곡계의 차이는? 합창과 관악 합주가 미국 클래식 음악계의 큰 축을 이루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보다 활발하게 작품 위촉과 연주가 이루어진다. 관객층은 창작 음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애호가’를 중심으로 형성돼있다. 한국에서는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클래식 음악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한국 연주자로서 한국인의 작품을 연주하고 싶다는 바람과, 새롭고 ‘힙’한 것에 대한 흥미가 맞물린 결과가 아닐까.

현 뉴욕 필 상임지휘자인 얍 판 츠베덴은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뉴욕 필의 오랜 전통”(객석 2월호 커버스토리)이라고 말했다. 작곡가로서 이런 기회를 체감하는가? 다양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는 운동(Composer Diversity)의 영향도 있다. 바흐, 베토벤 같은 백인 남성 작곡가 이외에 여성 또는 백인이 아닌 작곡가의 음악을 선보여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곡가의 기존 작품 수가 적기에, 위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뉴욕 필이 작년에 추진한 ‘프로젝트 19’가 있다. 미국의 19번째 헌법 개정(여성 참정권을 인정하는 조항)을 기념해, 작곡가 진은숙을 포함, 총 19명의 여성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했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을 빚다

2014~2016년 코리안심포니 상주작곡가로 활동하면서 ‘더부산조’를 완성했다. 오는 6월 다시 한번 코리안심포니의 연주로 무대에 오르는데. ‘더부산조’는 한국의 전통음악인 산조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변화시켜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특히 가야금 산조를 택한 이유는 오케스트라 소리와 가장 이질적인 악기군이 가야금, 거문고 등의 탄현악기이기 때문이다. 상주작곡가를 하면서 파악한 연주자의 기량을 보여주기에도 ‘산조’라는 장르가 적합했다.

국악관현악곡 ‘아카데미 리추얼’에서는 문묘제례악의 음 끝이 살짝 올라가는 제스처를 곡 전반에 활용했다. ‘더부산조’에는 어떤 독특한 기법이나 실험적인 소리를 담았나? 궁중의식에서 연주되는 문묘제례악은 추성(음 끝을 올리는 장식음)을 특징으로 하는 반면, 남도 민속음악인 산조에서는 퇴성이(음 끝을 내리는 장식음) 훨씬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를 악보에 녹여 넣었다. 연주 기법에서는 장구 채편 소리를 내기 위해 첼로, 베이스 연주자들이 줄을 지판에 치는 주법을 활용했다.

서양악기로 한국 전통음악의 뉘앙스를 이끌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국악은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경우에도 연주자 간의 표현을 각기 다르게 할 수 있다. 반면, 서양음악은 호흡이나 보잉 등을 최대한 통일하는 것이 관례다. 농현이나 추임새 등 국악의 기초 개념도 서양음악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몇 가지 트릭을 말하자면, 특정 악기들을 섞으면 특정 국악기와 비슷한 음색이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잉글리시 호른과 약음기를 낀 금관을 섞으면 피리의 낮은 음색과 얼추 비슷해지더라.

한국적인 것’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찹쌀떡 장수의 외침을 소재로 한 합창곡 ‘찹쌀떡’(2012)이나 교내에서 듣고 자란 체조 음악을 토대로 한 ‘국민학교 판타지’(2018) 등을 보면, 전통음악의 반경 안에서만 그 의미를 찾는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에 한국 작곡가로서 직면했던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한국적이라는 것이 나에게 무슨 뜻일까?’ 어렸을 때 국악을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내 삶에서는 대중음악과 서양음악의 비중이 훨씬 컸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솔직해지자’였다. 한국의 전통이 다른 문화들과 상호작용해 도달한 상태를 한국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근현대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와 그 잠재성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 자극을 받아 알고리즘을 이용한 작곡법으로 ‘숨’(2016)을 쓰기도 했다. 최근 눈여겨보는 소재가 있나?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음악과 치유에 관해 생각 중이다. 고대 철학자들이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고 믿은 이상적 음악도 있고, 굿처럼 실제 치유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들도 있다. 이런 것들을 모아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소셜 미디어와 가상공간에 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또, 10월에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초연할 예정인 ‘소나타 아마빌레’를 마무리 중이다. 조선 시대 기생과 어머니, 무당 세 여성상에 대한 고찰을 세 악장에 나누어 담고 있다. 그리고 부산시향에서 위촉돼 올 10월에 초연할 예정인 ‘짠!!’. 이건 무슨 뜻인지 말 안 해도 알 거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독립운동과 관련한 작품을 먼 미래를 보고 구상하고 있다.

조만간 김택수의 작품을 무대에서 들을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도 궁금하다. 코리안심포니가 예정대로 해외 투어를 하게 되면, 10월에 벨기에에서 ‘더부산조’를 연주한다.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뉴욕 필도 각각 11월과 12월에 이 작품을 연주한다. 내년 2월에는 볼티모어 심포니가 ‘스핀-플립’을 연주한다. 김은선 지휘자와 함께 하는 작업이 될 예정이다. 4월에는 LA 필에서 개최되는 ‘서울페스티벌’에서 비올라 협주곡 ‘코오’가 연주된다. 최근 필라델피아의 멘델스존 클럽에서 12월 초연을 위한 작품 위촉을 받아,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또 짬을 내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작곡가들의 정보를 모아 바이오그래피를 다듬는 일도 구상 중이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객석 DB/심규태

 

정치용/코리안심포니 ‘낭만의 해석 Ⅰ’
6월 3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김택수 ‘더부산조’,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협연 문태국)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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