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현악과 만나다
‘현악본색’의 9인
“현악의 본색(本色)을 보여주겠다”는 젊은 연주자들.
8월의 열기보다 더 뜨거워질 그들의 예술온도계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 그런데 이 공연은 좋은 게 ‘많다’. 우선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김재원·이우일·이재형, 비올리스트 이서현·이승원, 첼리스트 강승민·이정현·이호찬까지 내로라하는 한국의 젊은 현악 연주자가 모두 모였다. 하루 동안 세 편의 공연에서 14곡을 연주한다. 연주 형태도 다양하다. 독주에서 시작해, 2중주·3중주·8중주로 확대된다. 많아서 좋고, 좋아서 많다.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현악본색’은 한국의 젊은 연주자와 관객을 잇는 영아티스트포럼앤페스티벌의 기획공연이다. 2019년 선보였던 피아니스트 11인의 ‘열혈건반’에 이어지는 시리즈다. 공연을 두 달여 앞둔 어느 날, ‘현악본색’ 연주자들이 ‘객석’ 사무실을 방문했다. 젊은 혈기를 모두 이 공연에 몰아넣었는지, 간단한 질문에도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마구 넘친다. 생기가 돈다. 잠시 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어보자.
첫 번째 공연 바흐의 아침
오후 12시 | 강승민(첼로), 김동현(바이올린), 이승원(비올라)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3번,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현악본색’이라는 공연 제목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강승민 홍콩 영화 ‘영웅본색’에서 제목을 따온 클래식 음악 공연이라니. 정말 특별하지 않나요? 세 편의 공연을 연이어 연주하는 기획은 외국에서도 페스티벌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을 계기로 클래식 음악이 K-pop처럼 젊은 관객의 에너지로 채워지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총 9명의 현악 연주자가 출연합니다. 연주자 구성과 프로그램 구성, 둘 중 무엇이 먼저였나요?
이승원 프로그램 편성을 먼저 구상했고, 거기에 맞춰 함께 연주할 동료들을 섭외했습니다. 멤버들이 현재 독일·스위스·한국에 떨어져 있는 데다, 코로나19로 출입국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 메시지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친했던 음악동료들이라, 편하게 상의하며 곡을 선정했습니다.
하루 동안 서로 다른 세 편의 공연이 이어집니다. 출발선을 끊는 각오를 들려주세요.
이승원 시간적으로는 종일, 공간적으로는 같은 공연장에서 독주·2중주·3중주·8중주를 모두 연주해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만큼 무대 위에서의 체력 조절이 관건이겠네요. 편성에 따라 밸런스를 조절하는 유연함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동현 같은 날 여러 번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지만, 재밌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러 색깔의 음악을 조합해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모든 연주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는 중입니다.
강승민 맞아요. 실내악 무대 전에 먼저 세 명의 독주를 차례로 선보이는데,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어보시더라고요. 비교와 경쟁은 관객의 몫이기에, 최선을 다해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젊은 피로 채워진 무대가 어떻게 폭발할지 기대해주세요!
두 번째 공연 이정현 첼로 리사이틀
오후 3시 30분 | 이정현(첼로)
베토벤의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 파질 사이 ‘4개의 도시’, 쇼스타코비치 첼로 소나타 외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가 독특합니다. 특히 현대 곡 파질 사이(1970~)의 ‘4개의 도시’는 한국 관객에게는 낯선 곡인데요.
이정현 오랜 외국 생활을 하면서 음악은 만국공통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음악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고,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요. 흔히 클래식 음악하면 유럽의 문화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터키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파질 사이는 ‘4개의 도시’에서 소나타의 전통적인 4악장 구조로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터키를 잘 그려냈어요. 특히 첼로라는 악기의 장점이 돋보이는 곡이라, 한국 관객 여러분께 꼭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2018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 이후, 국내 공연은 오랜만입니다.
이정현 최근까지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바쁘게 활동했어요.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 머물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상주음악가로 활동 중인 퀸 엘리자베스 뮤직 샤펠과 기획한 프로젝트 ‘우리가 당신을 응원합니다!(We’ve got your Bach!)’ 때문에 여전히 정신없지만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 참가한 경험이 음악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요.
이정현 저는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공부했어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잘 몰랐죠. 그런데 윤이상의 곡을 배우고 연주하면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그가 타국에서 느꼈을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제 마음에도 깊숙이 와닿았거든요. 한국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연주자가 되겠다고 다짐하게 됐죠.
현대음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바로크 음악도 즐긴다고요.
이정현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제 삶의 경구입니다. 배울 것을 찾는 자세가 늘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어요. 항상 바로크 음악을 탐구할 기회를 바랐는데, 한 페스티벌에서 5현 첼로로 연주한 바흐의 첼로 모음곡을 듣고 반해버렸죠. 2018년부터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조지프 크라우치 선생님을 사사하며, 바로크 첼로에 대한 역량을 넓히고 있습니다.
어떤 연주자가 되기를 꿈꾸나요.
이정현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SNS와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과 소통하면서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세 번째 공연 현악본색
오후 7시 30분 | 강승민(첼로), 김동현(바이올린), 김재원(바이올린), 이서현(비올라), 이승원(비올라), 이우일(바이올린), 이재형(바이올린), 이호찬(첼로)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5번, 헨델-할보르센 ‘파사칼리아’, 베토벤 현악 3중주를 위한 세레나데(1·2악장), 쇼스타코비치 현악 8중주를 위한 2개의 소품, 브루흐 현악 8중주 내림나장조
함께 출연하는 연주자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호찬 제 친동생(이재형·이서현)들과 베토벤의 현악 3중주를 위한 세레나데를 연주해요. 베토벤이 젊은 시절 쓴 곡으로 활기차고 희망적인 분위기의 곡이에요. 저희가 가진 색깔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이라 선정했습니다.
이재형 가족과 함께하는 연주도 기대되지만, 선·후배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실내악에 대한 기대가 커요. 바이올린 멤버 넷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남윤 선생님 클래스거든요. 나이는 비슷해도 추구하는 음악과 연주 스타일, 사는 나라와 활동 분야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함께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실내악은 독주나 오케스트라 협연과 비교해 어떻게 다른가요?
이우일 많은 작곡가가 실내악곡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을 남겼어요. 서로 대화하듯 세밀한 음악을 만드는 데 적합한 편성이기 때문 아닐까요? 실내악은 독주만큼 화려하거나, 오케스트라만큼 웅장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음역대를 모두 가지고 있잖아요.
이승원 독주가 무대 위에서 나 자신과의 대화, 관객들과의 소통이라면, 실내악은 여기에 멤버들간의 소통이 더해지죠. 각기 다른 음악적 개성을 가진 연주자들이 모여 합을 맞추고, 섞여들어 하나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실내악만의 묘미죠.
젊은 연주자들이 모여 만드는 음악, 무엇이 특별한가요?
이호찬 확실히 리허설할 때부터 생기가 넘칩니다. 각자 활동한 분야와 경험이 다양해서 음악적 교감을 나누면서 무한대의 가능성을 느낍니다.
이서현 그런데 ‘젊은’ 연주자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요? 흔히 젊은 연주자라고하면,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어리다든지, 열정적이라든지. 사실 연주자 입장에서는 젊어서라기보다, 나와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연주자와 함께 한다는 데서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강승민 아무래도 같은 세대인 만큼, 공감대가 큰 음악이 나올 수 있겠죠.
클래식 음악계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연주자로서 독특한 기획의 공연이 많아지는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재형 앞으로 젊은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공연도 모든 연주자가 기획자의 시선에서 의견을 냈어요.
이서현 안정적인 관객층에 대한 소망이 있어요. 새롭고 자극적인 기획뿐만 아니라 연주 프로그램에 있어서 고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아름다운 것과 뒤틀린 것을 고루고루 찾아주는 관객층이요.
해외에서 활발히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만큼은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가 본받았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김재원 지금의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게 된 데는 파리 유학시절 경험했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의 아카데미 활동이 큰 영향을 미쳤어요. 콩쿠르와 솔리스트로서의 성장만을 중요시 여기는 한국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유럽에서 경험한 훌륭한 오케스트라, 교수님들과의 실내악 연주는 음악적 시야를 넓혀주었습니다. 한국에도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에서 젊은 연주자들이 직접 참여하며 성장할 수 있는 아카데미 시스템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스테이지원
‘현악본색’ 8월 9일 오후 12시·오후 3시 30분·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쇼스타코비치 첼로 소나타, 브루흐 현악 8중주 내림나장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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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에게 듣다, ‘현악본색’ 그 시작
영아티스트포럼앤페스티벌 공동대표 박진학·윤보미
박진학 스테이지원 대표
‘현악본색’은 출중한 실력을 갖춘 아홉 명의 현악 연주자를 위해 기획했다. 올해 공연계는 팬데믹으로 인해 해외 연주자가 내한할 수 없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이했다. 오히려 이 시기가 한국 젊은 연주자들의 매력을 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윤보미 봄아트 대표
신예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한국의 현악 연주자들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주요 자리를 꿰찰 정도로 뛰어나다. ‘현악본색’은 단순히 이들의 연주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현악의 ‘본색(本色)’을 보여주려고 한다. 젊은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적 시너지를 기대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