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 TOUR
국립무형유산원 김연수 원장
소유를 넘어 공유로
전통 유산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공연·전시·교육의 문화요새 만든다
옛 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 전주. 이곳에 2013년 10월에 문을 연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인류의 무형문화재를 보존하고 미래 세대에 온전하게 전승하는 ‘무형유산 복합기관’이다. 우리가 ‘소유’한 무형문화재와 전승자들을 보존·지원하고, 전승 현황을 조사·연구·기록하고,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를 통해 ‘공유’하는 곳이다.
시민들은 누구나 무형문화재를 체험할 수 있고 교육 기회를 제공받기도 한다. 전통공예 이수자들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도시와 국경을 넘나드는 교류와 협력도 주업무. 매년 ‘올해의 무형유산도시’를 선정해 지역 무형문화재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이렇듯 국립무형유산원은 공연·교육·전시라는 황금 삼각형 속에서 무형유산을 가꾸고 있다. 과거의 삶과 일상이 이어지는 곳,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김연수 원장을 만났다.
코로나19로 난리다. 공들여 준비했으나 많은 게 뜻대로 되지 않는 지금이다.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가.
작년에 토요상설공연의 성과가 좋았다. 다양한 무형유산을 공연 형태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나름의 성공으로 인해 자신감도 붙었다. 그래서 4월 말에 오르던 첫 공연을 4월 초로 당겨보았다. 자연스레 횟수도 늘어났다. 그런데 코로나로 쉽게 진행되지 못하여 연기와 취소를 거듭했다. 결국 무관객 공연과 유튜브 채널로 방영했다.
‘무형’유산과 ‘유형’유산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예를 들어 공예 같은 무형유산은 곧 유형유산을 낳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일정한 형태를 갖춰 변함이 없는 유형유산과 달리 무형유산은 세대를 이어가며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유형유산은 무형유산이 낳은 결과물이라 하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문화적인 정체성과 소속감을 찾게 된다. 전 인류가 세계화 속에서 획일화되어가는 상황에 각 나라의 문화 다양성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고.
주로 시각 분야에서 연구와 전시 업무를 맡아왔다. 그런데 국립무형유산원은 유형과 무형유산이 공존하는 곳이다. 과거와 달리 업무 범위와 보폭이 넓어진 셈인데.
미술사(금속공예사)를 공부한 뒤 주로 박물관에서 근무했다. 생존하는 장인들과의 접점이 지금처럼 많진 않았다. 하지만 과거 유물과 그 유물을 만들어낸 전통기술을 대한다는 점에서 유형·무형유산 모두 어색함은 없다. 유형과 무형유산을 대하는 데 공통점이 있다면 이것이 왜 중요한지 그 이유를 찾아내고, 향후 어떻게 전승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전주가 지닌 도시적 분위기와 어떻게 교감하고 교류하는가.
부임하기 전에는 수많은 도시 중에 왜 전주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생활하다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더라. 예향으로서 지켜온 문화가 국립무형유산원과 다양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전주대사습놀이, 전주비빔밥축제 등의 축제를 함께 하고 있다.
공연 관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예전에 국립부산국악원을 취재했을 적에 서울의 관객과 전혀 다른 뜨거움이 느껴진다는 원장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주의 관객은 거의 참여자 수준으로 반응하고 호응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좋아한다. 무대에 선 예인들에게 좋은 추억을 한 아름씩 선물하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은 과거 ‘인간문화재’라 불린 현재의 ‘국가무형문화재’ 제도의 특별함과 중요도를 인식하지 못 한다. 현재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사업이 국경을 넘고 반경도 넓어지면서 외국이 한국의 무형문화재 제도를 우수사례로 꼽기도 하는데.
동아시아 삼국은 무형유산의 보존에 일찍부터 관심을 보이며 보존·전승 시스템을 갖춰왔다. 한편 서양은 이러한 제도가 상대적으로 발전되어 있지 않다.
국립무형유산원에는 무형유산 보존·제도를 둘러싼 정보와 인력을 교류하는 다양한 국제 행사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원장으로서 체감하는 무형유산 보존과 시스템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작년에 후안 이그나시오 모로 주한 스페인 대사가 방문한 적이 있다. 스페인도 플라멩코, 투우, 토마토 축제 등 무형유산으로 보존해야 할 종목들이 있다. 그런데 모로 대사가 말하길 이러한 것들이 언젠가 사라질 것에 대한 걱정과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한국이 오랜 시간 진행해온 보존제도에 놀라며 많은 관심을 내비쳤다. 무형유산이 처한 운명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의 무형유산 보존 제도는 ‘정답’인가?
100퍼센트는 아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보존에 대한 생각과 실행을 해온 자세와 그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이러한 시스템이 운영됨과 동시에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
오늘날, 전통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두 개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일상문화와의 만남. 전통적인 것만 고수하면 당연히 일상과 괴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전통예술이 또 다른 전통예술과 만나 협업하는 것이다. 사실 둘 다 현대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하지만 전자가 전통과 현재의 협업이라면, 후자는 전통과 전통의 협업을 통해 현대문화에 호응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향성을 녹인 국립무형유산원만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현재 보유자와 이수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창의공방’이 앞서 말한 두 갈래로 진행된다. 수강생들은 국립무형유산원 내에 일정기간 상주하며 작품활동을 한다. 또한 매해 가을마다 열리는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에서는 각종 연회 공연과 함께 공예품 전시, 시연 체험이 이뤄져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앞서 말한 모로 대사도 사라져 가는 무형의 기술부터, 그 과정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유형유산까지 공연·전시·시연 등을 통해 한 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국립 기관이라는 점에 놀라워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시공간이 온라인으로 많이 대체되고 있다. 국립무형유산원에 직접 가보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체험해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립무형유산원의 모든 공연을 녹화하여 보존과 동시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www.iha.go.kr/service/index.nihc)에 탑재하여 누구나 볼 수 있다. 이외 홈페이지에 온라인 전시관을 개관했다. 작년 12월에 개최한 ‘탈놀이, 신명에 실어 시름을 날리다’ 특별전이 온라인에서 진행 중이다.
잘 몰랐던 무형유산을 접하는 이들에게, 흥미를 돋울 수 있는 팁을 준다면?
전국 곳곳에 무형유산을 전수하는 교육관이 있다. 직접 체험한다면 더 큰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전승된 문화보다 20세기에 도래한 근현대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무형유산 향유와 교육은 현장에서 직접 보고 접할 적에 유산에 내포된 시간과 역사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전통공연예술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와 예술이 ‘화면’ 속으로 들어가고, 관객들도 이러한 시류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고 있는듯 하다. ‘체험’을 중요시하는 국립무형유산원의 기조와 방향도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전세계적으로 현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고 있다. 부임하기 전에 근무하던 전시 기관에서도 전시와 3D기술을 활용한 영상 기술을 전시와 자주 접목하곤 했다. 다음 세대는 이러한 기술에 익숙하다. 그래서 그들의 행보에 맞춰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촉감성과 감각을 통해 아날로그 문화와의 균형을 잡는 게 더 중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이러한 감각의 불균형은 더욱 급속화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생의 균형감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의 삶의 일부도 훗날의 무형유산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있는 시공간에는 전근대의 시간과 현대 문화가 뒤섞여 있다. 과거에 일상이던 농경과 어로가 오늘날 무형유산이 되었다. 언젠가 사라지면 훗날 트로트를 지키기 위한 이른바 ‘트로트 보존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장방형으로 길게 뻗은 국립무형유산원은 대·소공연장을 갖춘 얼쑤마루, 기획전시실과 도서실이 있는 누리마루, 상설전시실·수장고가 있는 열린마루, 국제회의장인 어울마루, 교육생 숙소인 사랑채, 교육공간인 전승마루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박제화된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만든 ‘앞선 일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립무형유산원 내는 조용했다. 조금 걸어 나오니 전주한옥마을도 보인다. 조용하다. 김 원장의 말대로 우리의 ‘지금’ 삶과 시간도 언젠가는 무형유산이 될지도 모를 일. 백년 뒤, 지금의 시간과 일상이 어떻게 기록되고 보존될까.
글 송현민(편집장) 사진 국립무형유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