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연극 만들기, 공동창작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7월 20일 9:00 오전

SPECIAL 3

 

새로운 연극 만들기

공동창작

 

©극단 신세계

HISTORY 공동창작으로 한국연극이 얻는 것들

INTERVIEW 연출가 윤한솔 & 김수정

COPYRIGHT 연극 공동창작에서의 저작권 문제

 

 

오늘날 국내 연극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작 방식은 ‘공동창작’이다. 기존의 연극 창작 방식은 흔하게 작가가 대본을 쓰고, 연출가가 대본을 따르고, 배우는 연출의 디렉션을 소화하는 순차적·수직적 방식이었다. 이에 반해 공동창작은 극작가, 연출가, 배우 등 창작진 간의 수평적 관계를 통해 공연을 제작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러한 공연 제작 과정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 왔다. 최근 젊은 연극인들 사이에서 공동창작이 유행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터. 먼저, 국내 공동창작 역사와 현 상황을 분석한 뒤, 이어서 동시대 연출가들에게 공동창작을 지향하는 이유를 묻는다. 마지막으로 공동창작 현상이 늘어날수록 유의해야 할 저작권 문제를 짚어본다.

 

 

HISTORY

공동창작으로 한국연극이 얻는 것들

최근 연극 현장에서 ‘공동창작’ 제작방식의 공연들을 자주 접한다. 한 편의 공연은 작가, 연출가, 배우와 스태프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크레딧 타이틀에 작가 이름 대신 ‘공동창작’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동창작’은 공연 제작과정에 특정 작가가 참여하는 대신 공연팀 전체가 작가적 책임을 ‘공동’으로 지는 형태를 말한다. 즉 대본 없이 연습을 시작하고, 주로 배우와 연출가가 ‘공동’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를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1980년대 대학극에서 시작된 마당극 운동,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가속화된 젊은 실험극단들의 해체 재구성 공연, 그리고 최근 ‘미투’ 운동 이후 연극제작 과정에서 위계적 관계를 거부하고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는 경향 속에서 배우 중심의 공동창작이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세 가지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거친 연극, 그러나 생명력이 강한 공연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공동창작이 필요하게 된 것일까? 1980년대 마당극 운동에서 그 현실적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대학 탈춤반과 연극반 활동에서 시작된 마당극 운동은 검열이 존재하고 언론이 통제당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검열이 존재했으나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고, 언론이 통제 당했으나 알리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마당극 운동이 다루었던 이야기들은 1980년 광주 5·18로 대변되는 정치적 현실, 그리고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었다. 마당극 운동은, 미학적 검토를 거치며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가 대본보다 관객에게 빨리 가져갈 수 있는 공연 대본이 필요했다. 그리고 시위 현장의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언제든 변형 가능한 유연한 대본도 필요했다. 마당극의 공동창작 과정에서는, 작가 대본 없이 간단한 에피소드식 구성의 주제별 장면 흐름만 공유한 상태에서 배우들의 즉흥적인 움직임과 대사로 거친 대본이 만들어졌다. 비록 ‘거친 연극’이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고 관객의 공감이 컸던 생명력 강한 공연이었다.

그러나 1987년 절차적인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거리와 시위의 연극은 다시 극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90년대는 ‘대학로’가 ‘연극의 메카’로 자리 잡기 시작하던 때였다. 공연법 자유화로 소극장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수많은 소극장들이 생겼고, 한국연극은 소극장 전성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문제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소극장 공연의 대부분이 ‘번역극 범람’ ‘저질 상업극 양산’으로 비판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번역극 재탕’ 공연들은 늘어난 극장 수에 비해 양질의 콘텐츠가 부족했던 현실을 반영한다. 여기에 1997년 IMF 경제위기로, 극단 실험극장, 극단 미추 등 기성 극단과 연극인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대신 그 빈 공간을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실험공연이 채우기 시작했다.

혜화동1번지 2기 동인이었던 최용훈(극단 작은신화), 이성열(극단 백수광부), 김광보(극단 청우), 박근형(극단 골목길)이 그들이다. 이들은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배경 아래, 해체 재구성의 실험극을 공연했고, 해체의 방법론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공동창작’이었다. 작가는 없지만, 작가적 권위를 대신하는 ‘연출가의 연극’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젊은 극단들의 공동창작 열기를 통해 1990년대 후반은 창작극이 활성화되었다. IMF 체제에서 ‘긴급지원’의 형태로 이들 젊은 연극인들에게 각종 지원금 혜택이 집중된 것도 1990년대 창작극이 활성화되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

 

연극 만들기의 새로운 확장, 혹은 새로운 세대의 연극 만들기

강량원(극단 동), 윤시중(극단 하땅세), 윤한솔(극단 그린피그), 이경성(크리에이티브 바키), 김수정(극단 신세계) 등은 각각 연출가의 색깔이 강한 연출가들이다. 이른바 ‘연출가의 연극’ 흐름을 잇고 있는 연출가들이다. 동시에 이 극단들은 ‘공동창작’ 작업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극단들이기도 하다. 극단 동의 ‘게공선’과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소설 원작이 있고 각색자가 있는 경우라도, 철저히 배우들의 즉흥연기를 통해 장면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다. 극단 하땅세의 ‘위대한 놀이’ 또한 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 1992~2011)의 소설 원작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배우들의 즉흥연기를 통해 완성한 공연이다. 이 작품들은 서사를 충실히 따라가기보다는 배우 움직임 중심의 연극성이 강한 작품들이다. 문자 텍스트가 아닌 배우의 몸과 움직임을 통해 연극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공연들이다.

이에 비해 극단 그린피그의 ‘나는야 쎅스왕’, 극단 신세계의 ‘그러므로 포르노’,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워킹 홀리데이’ 등은 배우 개인의 기록, 일상 대화와 연습 과정 중의 토론, 인터뷰, 동영상, 실시간 촬영 등 연극만이 아니라 무대 공간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다양한 매체들을 적극적으로 통합하고 편집한다. 다양한 매체를 연극 무대 안에 통합하는 ‘다원’ 공연들이다. 이 공연들에서 배우들은 직접 카메라를 조작해서 실시간으로 영상을 송출하거나(‘워킹 홀리데이’), 자막이나 영상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한다(‘그러므로 포르노’). 공연을 멈추고 특정한 개념에 대해 강의를 하거나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나는야 쎅스왕’). 이 공연에서 배우들은 다양한 매체를 운영하고 그 자리에서 연극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수행자로서의 역할이 크고, 연출가 또한 구성과 편집을 통해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방송국 프로듀서와 같은 역할이 크다. 해석자가 아닌 수행자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이 공연들에서는 기존의 연극성이 확장되거나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매체에 익숙한 세대의 새로운 연극 문법이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미투’ 이후 기존의 권위적 연출가 중심의 제작방식에서 대안으로 모색된 배우 중심의 수평적 관계에서 시도되고 있는 공동창작의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주로 여성 배우와 페미니즘 연극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극단 사막별의오로라는 배우 김정과 황은후가 여성의 몸을 키워드로 신체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공연을 목표로 결성한 극단이다.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시리즈 공연 등에서 배우 김신록의 움직임 워크숍과 연계된 느슨한 연대의 형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이번 생에 페미니스트는 글렀어’는 페미니스트 극작가 모임 호랑이기운과 페미니즘 연극 전문 기획사 페미씨어터가 연대한 공연이다.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 등 일련의 퀴어 연극에서 한국 현대사를 퀴어 담론으로 전복하고 있는 극단 쿵짝프로젝트 임성현 연출 또한 페미니즘 연극의 자장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몸짓과 목소리로 표현하고 스스로 해방되는 ‘배우의 연극’의 힘이 느껴지는 공연들이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남산예술센터

 

위대한 놀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INTERVIEW

극단 그린피그 윤한솔 연출가

가장 중요한 건 태도의 변화


‘불온한 상상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며 2006년 창단한 극단 그린피그. 이 극단이 추구하는 연극의 방향은 언제나 ‘질문’을 향해있다. ‘의붓기억 – 억압된것의 귀환’(2010), ‘아무튼 백석’(2011),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2013)’,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2014), ‘나는야 연기왕’(2016) 등 그린피그의 공동창작 작품들은 각각의 주제에 대해 단원들이 공동으로 공부하고 고민해온 과정을 관객과 함께 나눈다. 이로써 극장을 하나의 담론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작업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매번 낯설고도 새로운 연극 만들기를 이어가고 있는 극단 그린피그의 연출가 윤한솔(1972~)에게 그가 생각하는 공동창작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윤한솔 ©두산아트센터

 

그린피그 작업 중 윤한솔 연출이 맡은 작품 중 유난히 공동창작 작품이 많은데요. 어떤 식으로 주제를 정하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지요?

대부분의 경우 제가 일단 어떤 제안을 합니다. “한국 전쟁을 공부해보자” “국가보안법을 공부해보자” “전통을 공부해보자” 이런 식으로요. 공부하다 보면 그 주제에 대한 각자의 관점이나 태도가 생겨나고, 그걸 바탕으로 공연화된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거죠. 주제는 제 관심사일 때도 있고, 그 관심사를 공부하다가 파생되어 새로운 주제를 찾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을 준비하다가 “전통에 대한 연작을 하자”로 의견이 모아져서 다음에는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을 공연하게 됐어요.

그린피그 공동창작의 특징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완성된 서사를 보여주기보다는 그에 대한 단원의 생각을 담고, 때로는 고민 과정 자체를 무대 위에 드러낸다는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의 완성된 공연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을 엿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저는 연출가로서 공연을 만드는 데 있어 완성을 전제하지 않아요. 일종의 멈춤이 있을 뿐이죠. 완성도라는 단어 자체가 객관적 실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인상일 뿐이고, 거기 맞춰서 무언가를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창작 작업은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 작업을 통해 어떤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 결과물 못지않게 중요하거든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 그로 인해 변화된 생각은 공연이 끝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진행되는 거죠. 그래서 무대 위에서도 확실한 엔딩을 지연시키거나 삭제하는 방법을 썼던 것 같아요.

결론이 아닌 과정을 무대에 올리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마무리를 짓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당위의 형태로 끝나는 결론은 아니지만, 늘 최소한의 형식적인 마무리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용적인 끝이라기보다는 행위소로서의 끝이랄까요. 제가 자주 쓰는 방식 중에 다짜고짜 노래로 끝내는 것도 다 그런 형식적인 엔딩의 한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나는야 연기왕’ 같은 경우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끝내면 마무리를 지었어요. 내용상 끝은 아니지만 형식적으로는 하나의 엔딩을 맞이하는 거죠. 나름 엔딩에 대해 고민이 많은 편이에요. 그린피그는 공연 준비기간의 대부분을 주제에 대한 스터디와 세미나, 토론에 할애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린피그의 엄청난 독서량과 공부량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는데, 나중에 보면 꼭 공연에 반영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치열한 공부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요?

태도를 형성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단원들과 제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건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주제에 대한 나의 태도, 연극을 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하기 위해서지요. 예를 들어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를 앞두고 국가보안법을 실제로 베껴 쓰고 사례조사와 전문가 강연을 듣기도 했는데, 그걸 통해 국가보안법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내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고자 했어요. 그런 후에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나의 태도가 달라지죠. 전에는 뉴스에서 듣고 지나치던 용어였다면 이제는 어떤 관점과 태도가 생기니까요. 결국 공동창작 작업의 궁극적 목표가 태도의 변화라는 점에서, 이러한 공부와 토론은 작품 반영 여부와 상관없이 중요한 과정입니다.

텍스트가 있는 작품을 연출할 때와 달리, 공동창작에서 연출가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판을 만들고 지켜보는 거죠. 공동창작을 하다 보면 공부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제가 아무래도 연출가여서, 어떤 식으로든 방향을 정해버리면 단원들이 위축될 수 있어요. 많은 가능성이 닫히게 되니 최대한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연출가가 할 일인 것 같아요. 물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때도 많아요. 경제적이지 못한 방식이죠. 하지만 샛길로 빠지면서 새롭게 얻는 깨달음이 있어요. 과정을 초조해하지 않으면서 지켜보고 함께 가는 것이 연출가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지금 준비 중인 두산인문극장 ‘식사’는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함께하는 공동창작으로 알고 있는데, 극단 작업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지금도 같이 공부하고, 책 읽고, 토론하고, 답사 가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고 있어요. 다만 참여자 대부분이 연극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다 보니, 같은 대상이더라도 바라보는 관점이나 지칭하는 용어가 달라져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요. 각자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펼쳐지고, 그것이 어떤 풍경으로 비칠지는 무대에 올라가야 알 것 같습니다.

글 김주연(연극평론가) 사진 극단 그린피그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

 

극단 신세계 연출가 김수정

함께 성장하는 과정


우리 사회에 내재한 혐오를 거대한 스케일로 마주하게 만든 ‘파란나라’(2016), 일상이 포르노가 되어가는 징후를 가감 없이 드러낸 ‘그러므로 포르노’(2015), 한국의 성 착취 역사를 거침없는 시선으로 이어간 ‘공주들’(2018)까지. 김수정 연출과 극단 신세계의 작품은 우리 안의 가장 불편한 지점을 무대 위에 꺼내 그 민낯을 바라보게 만든다. 2015년 극단 신세계 창단부터 지금까지 공동창작 방식을 진행한 연출가 김수정(1983~). 그와 만나 신세계가 지향하는 연극작업을 들여다봤다.

 

김수정 ©두산아트센터

 

극단 신세계의 작업은 대부분 공동창작을 지향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공동창작이란 말이 언제부터인가 공연계에 유행처럼 쓰이고 있는데, 저는 사실 연극 작업이란 그 자체로 이미 공동창작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극단 신세계에서 하는 작업은 모두 공동창작 작품이에요. 초고 텍스트를 제가 먼저 쓰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작품의 완성은 늘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가니까요. 가장 처음 만들었던 공동창작 작품은 ‘그러므로 포르노’였어요. 극단을 만들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연출과 배우 사이의 위계를 없애는 거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동창작 방식으로 진행하게 됐어요.

우리 주위의 불편한 문제를 주로 이야기하는데, 이런 주제는 공동창작의 방식 속에서 찾는 건가요? 아니면 주제를 정한 뒤 공동창작을 선택하는 건가요?

작품에 따라 다릅니다. 극단에서 1년에 한 번씩 다 같이 모여서 한 해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점검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각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흥미로운 키워드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발전시키며 창작이 이뤄집니다.

‘파란나라’에는 작가가 김수정으로 명시됐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공동창작 과정이 포함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파란나라’ 같은 경우는 제가 초고를 썼고, 그걸 배우들이 입으로 읽으면서 대사를 바꾸고, 캐릭터를 만들고, 각 장면을 만드는 과정을 거쳤어요. 그 외에 사전 리서치나 학생 인터뷰도 배우들이 나눠서 진행했어요. 대부분 이런 작업은 조연출이나 드라마투르그가 담당하는데, 당시 극단에 스태프가 저밖에 없다 보니 결국 모든 배우가 돌아가면서 그 역할을 한 셈이죠. 그 경험 덕분에 지금도 배우들이 스태프 역할을 잘 이해해 줘서, 배우와 스태프 사이에 트러블이 적은 것 같아요,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다 보면 서로 충돌하는 지점도 생길 것 같은데요.

일단 장면 발표를 하고 나면, 배우와 스태프 모두 돌아가면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요. 그 후 최종 방향은 연출가가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디렉션을 잡기 전에 충분히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다들 잘 따라줍니다. 초창기에는 작업하다 가끔 의견 충돌이 생기곤 했는데, 그때마다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극단 내부에서 ‘성폭력 위계폭력 지침서’를 공동창작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매 프로덕션을 시작하기 전에 다 같이 읽고 규칙을 공유하니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요. 또 극단 내에 ‘고충처리 상담반’이 있어서 단원이 불만이 생기면 그쪽을 통해 해결하고 조정합니다.

공동창작할 때 연출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공동창작 작품이나, 다른 작품이나, 연출가로서 제가 하는 역할은 동일한 것 같아요. ‘연출가가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답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연습기간 중 한 달 정도는 저를 다 비우고 듣기만 하거든요. 텍스트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단원과 함께 빈틈을 채우면서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밌고, 그 과정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게 너무 좋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어떤 것인가요?

굳이 고르자면 ‘공주들’인 것 같아요. 동시대 이야기를 담다 보니, 2018년, 2019년, 2020년 공연의 내용과 결론이 늘 달라졌어요. 2018년의 화두가 ‘미투’였다면, 2019년에는 ‘버닝썬’이었고, 올해는 ‘N번방’이 들어갑니다. 이렇게 동시대 이슈를 다루면 우리 현실을 매번 새로운 눈으로 돌아보게 돼요. 또, 작품을 만드는 우리의 인식도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는 걸 느껴요. 이 작품 초연 때는 한국사회 내부에서 남녀 신경전이 심각했어요. 실제로 배우들도 연습하면서 많이 싸우고 울고 그랬죠. 이후 젠더이슈를 다룬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이제는 서로의 입장에 대한 공감이 깊어진 걸 느껴요. 이제야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극단 신세계가 공동창작을 통해 지향하는 연극적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저는 공동창작이라는 작업방식을 극단 그린피그의 윤한솔 연출가에게 배웠어요. 배우가 단순한 연기자로서가 아니라, 작업의 주체로서 공연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신선했어요. 저 스스로도 배우를 했기 때문에, 자기 말도 아니고 이해도 안 되는 대사를 외워서 연기하는 어려움을 잘 알아요. 그래서 우리 극단은 처음부터 공동창작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연출이 배우에게 저런 걸 왜 시키는지 오해도 받았지만, 이제는 그런 과정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글 김주연(연극평론가) 사진 극단 신세계

 

공주들

 

파란나라

 

COPYRIGHT

연극 공동창작에서의 저작권 문제


‘공동창작’은 연극 작업의 즐거움을 맛보는 과정이다. 그러나 연극에 종사하면서도 공동창작과 관련한 저작권 문제를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후에 감정적인 상흔만 갖게 되고, 급기야는 공동창작 자체에 대한 환멸을 가질 수 있다. 사전에 저작권 관련 지식을 숙지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저작권법에서는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으며, ‘표현’만을 보호한다. 연극·뮤지컬에서 가장 분명하게 저작자적 위상을 누릴 수 있는 직업군은 극작가·작곡가·작사가이다. 구체적인 작업 상황과 계약 관계는 개별 사안에서 따져볼 일임을 밝혀두고, 공동창작에서 저작권 문제에 관해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자.

 

미국 뮤지컬 산업에서 공동창작과 저작권

미국에서 ‘맘스 매블리(Moms Mabley) 사건’(제2연방 항소법원 1991년), ‘세 개의 희곡에 얽힌 사건’(제7연방 항소법원 1994년), ‘뮤지컬 ‘렌트’ 사건’(제2연방 항소법원 1998년)이 공동창작 여건에서 발생한 저작권 문제였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최종 대본 작성에 책임과 지휘 권한을 갖고 구체적인 표현을 기록한 사람(극작가·작곡가)만이 진정한 저작자로 인정됐다는 점이다. 미국 저작권법상 ‘공동저작물’이란, 2인 이상의 저작자가 자신들의 기여분이 단일한 전체와 분리될 수 없거나, 상호 의존적인 부분이 될 것이라는 의사를 가지고 작성한 저작물을 말한다. 공동창작 관련한 사건 심리에서 고려하는 두 가지는 첫째, 당사자들이 하나의 저작물을 위하여 기여할 ‘의사’가 있었는가와 둘째, 각 기여분이 저작권 보호 가능한 대상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공동저작자의 의도를 확인하는 데 있어서 빌링·크레딧이 중요하게 고려됐는데, 이 점을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다. 공연예술 산업의 전문용어 가운데 하나인 ‘빌링’이란, 공연의 홍보물 등에 노출될 경우 사용되는 아티스트나 공연단체 등의 크레딧(공식 명칭)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저작권법 제8조 제1항에도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저작자로서의 실명 또는 이명으로써 널리 알려진 것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표시된 자나, 저작물을 공연 또는 공중송신 하는 경우에 저작자로서의 실명 또는 저작자의 널리 알려진 이명으로서 표시된 자”를 저작자로 추정하는 조항이 있다. 이것은 다툼이 있을 시에 반증이 없는 한 저작자로 취급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작물에 있어서 성명의 표시에 해당하는 빌링은 국내 계약의 현장에서 중요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고, 창작적 기여가 분명하고, 공동창작 경과가 합의된 상황이라면 각종 홍보물 등에 저작자 표시를 정확히 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불어, 국내에서도 공동저작물 성립과 관련해 공동저작물을 작성할 것을 사전에 합의하고 창작에 임했는지는 중요하게 살피기 때문에 상호 간에 ‘공동창작’의 ‘의사’를 갖고, 저작자로서 연극작업에 임하는 것을 합의, 서면화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동창작과 저작권 계약

국내 사례를 통해 저작권 계약을 생각해보자.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이 작품의 창작과정에는 기획자·제작자·연출가·작곡가·극작가가 모두 관여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작곡가와 극작가는 다른 제작자를 만나서 공연을 하게 되고, 1995년 초연 당시 제작자·기획자·연출가는 후발 공연에 대해서 2004년에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법원은 기획자·제작자·연출가가 극본이 쓰일 당시에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창작에 반영됐다 할지라도 저작자가 될 수는 없고, 이 사건에서 작곡가와 극작가만 저작자로 보았다. 이 경우 초연 기획 당시 공연권의 양도나 이용 허락에 관한 계약서만 있었더라도 제작자들이 공연권을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무대연출에 관한 무단이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재공연을 염두에 둔 계약·공연제작 과정에서의 아이디어에 관한 비밀유지 계약 등을 해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2010년 ‘친정엄마’ 사건은 ‘수필-연극-뮤지컬’의 단계로 이어지는 2차적 저작물 발생에서 생긴 일이다. 원작자인 수필작가가 연극대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각색가가 투입되어 공동창작이 됐고, 수필작가가 후에 다른 제작사를 만나 뮤지컬 대본을 작성하면서 기존 연극 ‘친정엄마’ 대본을 저작권 침해했다는 내용이다. 수필 ‘친정엄마’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대본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저작권 침해를 했다고 하는 내용의 고소를 받은 셈이다. 법원에서는 연극 ‘친정엄마’의 최종대본이 두 사람이 작성한 ‘공동저작물’에 해당함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공동저작(권)자 사이에서 저작권침해행위의 성립 여부 판단에 대해서는 공동저작권자 중 1인이라도 반대하는 경우 그 반대자의 창작 기여 정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저작권침해행위로서 형사처벌한다면, 공동저작물의 이용을 지나치게 제한해 공동저작물이 사장될 위험이 있다고 보아, 공동저작물의 저작권행사방법을 위반하는 것일 뿐이고 저작권침해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 즉, 무죄를 선고했다. 2012년 ‘난타’ 사건은 한국 최초의 비언어극으로서 대사 없이 리듬이나 상황에 의해 극이 전개된다는 기획으로 창작된, 공연 초안 작성자인 연출자와 후발 제작사와의 다툼이었다. 초연 당시 기획자, 배우, 기타 참여자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되어 다양한 시도를 통해 계속적으로 수정하면서 공연이 이뤄졌다. 그러나 후에 지속되는 재공연 상황에서 초연 연출가에게 아무런 보상이 없자,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어떤 공연이 저작권 침해행위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의거관계 혹은 실질적 유사성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법원에서는 제작사가 공연하는 난타가 시나리오에 의거했다기보다는 동시에 성립하였다고 봄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에서는 초연 당시의 연출자가 초연 공연의 초안을 작성한 저작자로 인정하였으나, 당시 이뤄진 계약에서 연출자가 ‘양도계약’을 함으로써 저작자의 권리가 극단 측으로 이양된 점을 주목했다. 저작권 관련 계약에서 흔히 발생하기 쉬운 ‘이용허락 계약’과 ‘양도 계약’에 대한 명확한 주의를 요구하게 되는 대목이다.

연극 ‘공동창작’에서의 저작권 문제는 공연대본이든, 완성된 공연 형태이든 공동저작자로서의 상호 간의 지위와 기여분, 각종 홍보물에 공동저작자 성명표시, 양도계약인지 이용허락계약인지, 이용허락이라면 저작물 사용범위와 방법에 관한 합의를 명확히 하는 실무상의 일들로 귀결된다. 저작권 논의 과정이 불편하다고 계약문제를 회피한다면 현재의 좋은 관계가 악화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겠다.

글 정영미(경희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더하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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