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ORCHESTRA CEO 도쿄 필 대표 이시마루 교이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월 11일 9:00 오전

GLOBAL ORCHESTRA CEO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대표 이시마루 교이치
재원 조성과 안정의 중요성

 

일본 무사시노 음악대학에서 팀파니 전공

독일 베를린 예술대에서 팀파니 전공

1973년 도쿄 필하모닉 팀파니 주자로 입단

현) 도쿄 필하모닉 대표, 가루이지와 오가 홀 집행이사

 

일본은 장인 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다. 몇 대에 걸쳐 만들어지는 물건들을 보면, 치밀하고 끈질긴 일본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역시 일본 장인 정신에 한 획을 긋는 역사를 가졌다. 1911년 창단되어 11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도쿄 필은 일본 교향악단의 선두주자로서 1년에 400회 이상을 공연한다. 현재 160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일본 최대 오케스트라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지휘자 정명훈이 2016년부터 명예음악감독으로 선임됐다. 수석지휘자는 안드레아 바티스토니, 객원지휘자는 미하일 플레트뇨프이다.

도쿄 필의 대표 이시마루 교이치와 인터뷰를 했다. 일본의 정서를 담은 오케스트라의 수장답게 그의 답변들은 세밀하고 꼼꼼했다. 경영인으로서 가장 염두에 두는 ‘재원’에 대한 이야기, 현재 오케스트라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질문에 고심하며 대답하는 이시마루 교이치의 모습에서 도쿄 필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미 그의 삶 속에는 음악이 깊이 녹아들어 몸의 일부가 된 듯했다. 그의 묵직한 목소리에서는 연륜이 느껴졌고, 신중한 성향의 경영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은 이시마루 교이치와의 일문일답.

 

먼저, 일본의 클래식 음악 수용사를 설명해 줄 수 있나?

19세기 중반 메이지 유신의 영향으로 서양음악이 들어오면서 오케스트라도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때부터 국민들이 ‘도레미파솔라시도’ 계이름을 알게 됐고, 정규적인 음악 교육이 펼쳐졌다. 이후 오케스트라의 중요성이 조금씩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동양 국가에 비해 클래식 음악이 일찍 들어온 것 같다.

도쿄 필은 일본에서 역사가 가장 긴 악단이다. 일본 최고(最古)의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을 텐데.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원이 중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단원들에게 월급을 많이 줄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좋은 악단이라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결국 재원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오케스트라의 근본이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재원 조성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유럽의 오케스트라는 50% 이상이 정부 지원이고, 미국은 기업·개인 기부는 물론 정부에서 세금 혜택을 준다. 그러나 일본은 국립 오케스트라가 없으므로 당연히 정부 지원도 없다. 일본은 아직 사회적으로 예술 지원의 당위성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면 부족한 편이다. 정부는 오케스트라에 연간 약 10억 원의 지원금을 준다. 이는 공연 제작비용 명목으로 주는 것이다. 정부에서 주는 비용은 전체 제작비 중 1/4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나 공연에서 발생한 수익금을 정부에 다시 환원해야하고, 나머지 비용이나 단원 월급은 오케스트라가 자체적으로 충당하고 있다. 현재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수입원은 기획사·공연장·기업·방송국(NHK)·학교 등에 공연을 파는 것이다. 다른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단 모두 같은 상황일 것이다.

한해 오케스트라 예산은?

약 210억 원이다. 자체 공연보다 기획사·공연장 등에 공연을 팔아 얻는 수입이 20배 정도 더 많다.

소속 단원이 160명이 넘는, 일본 최대 규모이다. 단원 관리에 있어서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

우리에게 단원은 단순히 직원이 아닌, 개개인의 예술가이다.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세계 어디서든 마찬가지겠다.

거의 자국민만으로 단원이 이뤄진 이른바 ‘순혈주의’ 오케스트라라고 알려져 있다. 특별히 일본인을 더 채용하려는 내부적인 의지가 있는 건가?

오케스트라 안에서 인종·정치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인 바순 수석(최영진)과 클라리넷 수석(조성호)이 있다. 오디션 지원 자격은 평등하다. 연령·성별·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다양한 국적의 연주자들이 모이면 조화를 통해 오케스트라 색깔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예전 유럽 오케스트라는 여성 단원을 선발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전에도 그러진 않았다. 다만 우리는 실력 있는 연주자를 선호한다.

교향악·오페라·발레 등 다방면에 걸쳐 활약하고 있다. 다장르에서의 활동이 악단 음악성에 어떠한 영향을 준다고 보는가?

우리는 여러 나라의 지휘자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한다. 따라서 단원들은 빠르고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을 갖췄다. 단 한 번의 리허설로 특정 지휘자의 스타일을 순식간에 익힌다.

정명훈이 명예음악감독이고, 정민이 부지휘자로 있다. 부자(父子)가 한 악단에서 함께하고 있는 것인데.

두 지휘자는 우리에게 가족과 같다. 20년 전 정명훈이 도쿄 필에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깊은 신뢰가 있었다. 정민은 정명훈 지휘자의 아들이긴 하지만, 각자 다른 독립된 지휘자로 본다.

팬층이 두꺼워서 늘 매진 사례라고 들었다.

우리는 일본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오케스트라이기에 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가 변하면서 오케스트라 역시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꼭 저녁 연주만을 고집하지 않고 낮 공연을 하는 것처럼, 사회 변화에 따른 요구에 발맞춰 가는 도쿄 필이기에 두꺼운 팬층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오케스트라 변화는?

전 세계의 모든 예술 단체가 겪는 어려움은 대동소이하다. 우리 역시 한동안 공연을 못해서 재정 상황이 심각해졌다. 지난 7월부터 다시 공연을 재개했다.

주로 산토리 홀, 도쿄 오페라 시티, 분카무라 오차드 홀, 신국립극장에서 연주한다. 각 공연장의 특징을 알려준다면.

일단 산토리 홀과 도쿄 오페라 시티, 오차드 홀의 음향은 모두 훌륭하다, 굳이 차이를 두자면 산토리 홀은 카네기 홀과 같은 클래식한 이미지의 공연장이고, 오차드 홀은 좀 더 캐주얼한 느낌이라는 것. 신국립극장은 오페라를 즐기기에 좋다.

오케스트라 대표에겐 어떤 자질이 중요하다고 보나?

특정 오케스트라의 배경과 구조를 잘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표로서 악단 운영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누차 강조하지만 재원 조성이다. 후원자들은 오케스트라 내부가 아니라 외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왜 도쿄 필을 후원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건 늘 힘든 작업이다.


명예음악감독 정명훈

정명훈은 2001~2010년까지는 도쿄 필 특별예술고문으로, 2011년에는 명예지휘자로, 2016년부터는 명예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정기공연·오페라·발레 등 다채로운 공연을 펼쳐왔다. 그동안 정명훈과 도쿄 필은 말러 교향곡 2번, 베토벤과 브람스 전곡 연주,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주해 주목받았다. 2012년에는 정명훈이 지휘한 도쿄 필 100주년 특별 콘서트가 산토리 홀에서 열렸다. 그는 2012/13 시즌부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 객원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도쿄 필은 정명훈을 두고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가 중 한 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수석지휘자 안드레아 바티스토니

1987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안드레아 바티스토니는 세계적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타 지휘자다. 2013년 제노바의 테아트로 카를로 펠리스의 초대지휘자로, 2016년에는 도쿄 필의 수석지휘자로 임명됐다. 도교 필과 함께 ‘나부코’ ‘리골레토’ ‘아이다’ 등의 오페라와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등을 연주해 호평 받았다.


INTERVIEW

도쿄 필 바순 수석 최영진

 

도쿄 필 입단 계기는?

독일 유학 시절, 트론헤임 심포니에서 계약직으로 활동했다. 이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하노버로 돌아왔지만 꿈만 같았던 그 시절을 잊지 못했다. 오케스트라 감각을 막 익힌 시점에서 하루빨리 오디션을 봐야겠다는 결심을 섰다. 그 시절엔 동양인이 오디션 초청받기가 힘들었는데 트론헤임에서의 경력 때문인지 세계 여러 악단에서 초청장을 받기 시작했다. 그 첫 오디션이 도쿄 필이었다.

도쿄 필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연주 횟수가 1년에 400회 이상이나 되는 바쁜 오케스트라다. 따라서 두 팀으로 나눠져 단원들이 로테이션으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같은 단원들끼리 반 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기도 한다.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바순 단원이 다섯 명이지만 입단 당시에는 여덟 명이었고 그중 수석이 네 명이었다. 이런 단체는 세계에서도 흔치 않다고 본다. 연주가 많았을 때는 오케스트라가 하루에 3~4팀으로 나눠져 연주를 했다. 여덟 명의 바순 단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최고 인원이 열두 명까지 간 적도 있다.

소화할 수 있는 레퍼토리 폭이 넓다는 점도 도쿄 필의 장점일 테다.

이 정도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다루는 오케스트라가 많지 않다. 틈틈이 영화음악이나 게임음악 녹음도 한다. 도쿄 필에 있다 보니 장르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새로운 곡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오늘도 오페레타 ‘박쥐’를 공연하러 가는데 단원 중에는 오페라가 좋아서 도쿄 필에 입단한 경우도 있다.

목관 연주자들의 해외 오케스트라 입단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어떻게 보면 선두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 몇 년간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참가하면서 훌륭한 후배들을 많이 만났다.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연주자 대부분이 수준급의 한국 연주자들로 이뤄진 것이 신기했다. 훌륭한 후배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다가 매년 여름이 되면 한국 대관령에 모여 연주를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내가 앞세대로서 뭔가를 이뤘다고 하기엔 조금 민망하고, 후배들과 힘찬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오케스트라 입단 절차가 궁금하다.

도쿄 필은 추천서나 초청장 없이도 누구나 응시 가능하다. 1차 영상 심사를 거쳐 각 파트 내에서 2차 오디션을 실시한다. 마지막은 오케스트라 모든 단원들이 전부 심사에 참여해 결정한다. 그 과정에 지휘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수습기간은 11개월이다.

도쿄 필은 유독 일본인 단원을 많이 채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도쿄 필에 입단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입단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단원들에게 전달 사항을 알리는 게시판에 한자가 전혀 없이 히라가나로만 써져 있던 게 기억난다. 단원들은 그 상황이 초등학교 같다며 재밌어했는데 사실 나를 위한 배려였다. 한·일 간에 정치 문제로 시끄러운 시기에는 대기실 TV에서 독도 관련 뉴스가 나오면 단원들이 그냥 채널을 돌리더라. 작지만 세심한 배려들로 감사한 기억이 대부분이다.

단원의 입장에서 도쿄 필 음악적 스타일을 설명한다면?

우선 정명훈 지휘자와의 첫 리허설엔 공통점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연주를 시키곤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지어 보인다. 다음날부터는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간다. 모든 단원이 첫 리허설 때부터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해오는 편이다. 빈틈없이 깔끔한 연주가 도쿄 필의 장점이다. 더불어 지휘자들의 요구에 맞는 색채를 2~3일 동안 다듬어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저력이 아닐까 싶다.

악단에서 제공하는 복지 중 자랑할 만한 것이 있나?

10여 년 전에 허리 디스크로 1년을 쉰 적이 있다. 그 1년 동안 월급이 그대로 나와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도쿄 필은 휴가가 따로 없지만 외부 연주나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경우, 파트 내에서 스케줄 조절이 가능하다.

한국과 일본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일본은 오케스트라의 주인이 지휘자가 아닌 단원들이라는 느낌이다. 일본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주인 노릇을 하는 일이 없다. 젊은 지휘자들이 단상에 서게 되면 말 그대로 도마 위의 생선이 된다. 뭔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단원들에게 핀잔을 듣는다. 한국 오케스트라는 생동감과 스릴감을 느낄 수 있는 반면, 일본 오케스트라는 빈틈없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도쿄 필하모닉

 

최영진은 부산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하노버 음대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수석, 일본 NHK 심포니와 뉴재팬 필하모닉 객원 수석을 거쳐 현재 도쿄 필 바순 수석이자 종신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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