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S NOTE
기자 공연수첩
그 숨이 뒤흔든 것
김한 클라리넷 리사이틀
1월 7일 금호아트홀 연세
진원에서 발생한 파동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고유한 형태와 속도를 지닌 파동은 지구의 가장 안쪽 구석에 가닿기도, 짧고 굵게 주변을 뒤흔들고 소멸해버리기도 한다. 클라리넷이라는 진원지에서 발생한 소리의 파동은 그 높낮이와 셈여림 등에 따라 양 귀에 다르게 와 닿는다. 다채로운 소리의 파동에 온몸이 휩싸이는 경험을 가능케 하는 게 바로 이 악기다.
2013년 출범한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프로그램에 최초로 관악 주자가 선정됐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1996~)이다. 금호아트홀과 그의 인연은 그의 나이 만 11세에 시작됐다. 금호영재콘서트에서 데뷔하며 이미 한국 관악계의 기대주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후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부수석으로 입단(2018)했고, 독일 ARD 콩쿠르에서 준우승(2019)을 거뒀다. 약 15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김한이 ‘상주음악가’로서 다시 오르는 이 무대에 함께했다.
클라리넷이 유독 ‘음향’ 듣기의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악기 중에서 가장 넓은 음역은 물론, 다이내믹 레인지(최강음과 최약음 사이 범위)를 소화할 뿐만 아니라 유일한 폐관형 구조의 목관악기로 표현력도 풍부하다. 김한은 네 번의 상주음악가 무대를 직접 프로그래밍하며 이런 클라리넷의 다재다능함을 전방에 드러내고자 했다. 악기의 음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진 20세기 음악을 다수 택한 것은, 특히 탁월했다.
펜데레츠키의 클라리넷 독주를 위한 프렐류드에서의 빠른 트릴은 반복되는 두 음에서 서로 다른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의 세밀함을 드러냈다. 이에 대한 감명은 곧 장내 공기를 반으로 쪼개놓는 듯한 고음 글리산도의 강렬함이 대체했다.
스티브 라이히의 ‘뉴욕 카운터포인트’(1985)에서는 아홉 명의 김한이 등장했다. 본래 아홉 대의 B플랫조 클라리넷과 세 대의 베이스 클라리넷을 위해 작곡된 작품인데, 김한은 미리 제작해둔 연주 영상을 무대 벽면에 재생하고 자기 자신과의 협연을 시작했다. 뉴욕 맨해튼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포착한 음표들은 김한의 재치 있는 연출과 만나 리듬감을 더했다. 이외에 선율미가 짙은 베버의 그랑 듀오 콘체르탄테, 다리우스 미요의 스카라무슈를 1부와 2부 각각 마지막에 두어 프로그램의 균형감도 조형해냈다.
오늘의 연주가 비단 공연장 공기만을 뒤흔든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지각변동의 시작으로 보고 싶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아닌 클라리넷을 듣기 위해 공연장으로 발걸음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리라 기대해볼 만했다. 남은 세 번의 공연이 관건이다. 다이내믹의 미묘한 변화를 충실히 캐치해야 하는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등이 전방에 배치돼 있다. 점차 노련미도 더해질 김한의 다음 무대들(6.3/10.7/12.30)이 기다려진다. 글 박찬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춤추는 별의 탄생
한재민 첼로 리사이틀
1월 9일 오후 3시 금호아트홀 연세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만들고, 그들로 인해 채색된다.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역사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길이 되고 이정표가 된다.
이날, 한재민(2006~)과 임윤찬(2004~)의 무대는 10년, 20년, 30년 뒤 그들이 만들어갈 아름다운 길을, 그 이정표를 벌써 기대하게 했다.
차가운 바람이 스치던 토요일 오후, 금호아트홀 연세는 한재민(첼로)과 임윤찬(피아노)이 그려내는 낭만적 색채로 물들었다.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글라주노프 ‘음유시인의 노래’의 피아노 버전을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 소나타 op.40,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op.19로 연결되는 이들의 무대는 매 순간 다른 장면을 만들었다. ‘금호영재오프닝콘서트’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누가 이 무대를 열다섯, 열일곱의 십 대 연주자들이 꾸민 무대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첫 소절부터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섬세하게 밀고 당기는 선율이 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재민의 첼로는 곡 제목처럼 ‘음유시인’이 되어 노래하고 있었다. 첫 무대라는 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첼로에 비중을 더 주려는 의도였는지, 피아니스트의 소리가 조금은 소극적으로 느껴졌다. 이어진 쇼스타코비치 소나타 op.40. 1악장 초반까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밸런스가 아쉽게 느껴지던 찰나, 두 사람의 호흡이 다른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피아노를 타고 첼로가 더 반짝이며 춤추기 시작한 것. 특히 2악장 ‘알레그로’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파워풀한 활의 움직임과 음악은 각자가 지닌 음악적 색채에 시너지를 일으켰다. 마지막 라흐마니노프 소나타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서로의 소리를 타고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듯했다. 어느 한 곳도 비는 부분 없이, 완벽한 풍성함으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본 프로그램 연주를 모두 마친 후 마이크를 들고나온 한재민은 어려운 시기 무대를 찾아준 관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앙코르로 슈만의 ‘헌정’을 연주했다.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을 앞둔 한재민은 이미 음악계 내에 소문난 ‘준비된 스타’다. 2015년 오사카 콩쿠르 1위로 시작해 헝가리 다비드 포퍼 콩쿠르 1위(2017), 독일 돗자우어 첼로 콩쿠르 1위 및 현대 작곡가 특별상(2019)을 받았고, 서울시향·평창대관령음악제·금호영재 20주년 기념음악회·더하우스콘서트 등에 초청받아 연주했다. 특히 지난해 에네스쿠 콩쿠르에 최연소 최종진출자가 되어, 오는 5월 경연을 앞두고 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탄생할 또 하나의 별을 기다려 본다. 글 이미라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복잡한 진화사의 끝, 사랑
연극 에볼루션 오브 러브
1월 8~1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사랑의 형상은 무엇일까. 고작 대책 없는 낭만으로만 보인다면, 그것은 사랑의 일면에만 취한 것이다. 아마 우리는 영원토록 사랑의 형상을 찾지 못할 테다. 모질게도 사랑은 때에 따라 자꾸만 모습을 바꾸기에, 연극 ‘에볼루션 오브 러브’는 사랑의 진화사(進化史)를 훑는다.
작품은 작년 서울연극제에 오른 ‘피스 오브 랜드’와 비슷한 형식을 보인다. 극단 김장하는날은 매해 하나의 주제를 정하여 연극으로 만들어왔다. ‘피스 오브 랜드’는 땅에 관한 이야기다. 한 명의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고, 각 배우들의 대사에 귀 기울이다 보면 한 편의 연극으로 귀결된다.
이번 주제는 사랑. 다양한 장면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이른바 ‘복잡계 플롯’을 따르지만 큰 줄기는 사랑에 기대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단원들의 연애·결혼 이슈는 복잡했고, “사랑은 본능인가, 학습인가?”에 대한 질문이 연극의 시작점이었다. 극단 김장하는날은 작품 기획 단계부터 함께 리서치를 하며 아이디어를 냈고, 이를 이영은 연출가가 수렴해 집필했다. 작품의 목표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통해 ‘사랑의 실체’에 다가가 보는 것이다. ‘진화(evolution)’는 미개함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걸 말한다. ‘에볼루션 오브 러브’는 시대·문화의 차이에 따라 사랑의 모습이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긴 사랑의 역사를 되짚다 도달한 지점은 진부하지만 ‘다양성’이다.
무대에는 일곱 명의 배우가 선다. 지금까지 선보인 이영은 연출작을 보면 한 명의 주인공이 서사를 이끄는 것보다는 다각도에서 여러 사건을 다루는 작업을 보여 왔다. 이번에는 펼쳐진 이야기를 정리해 관객과 소통하는 ‘해설자’를 두었다. 해설자는 사랑에 관한 다채로운 사례를 관객에게 소개하고, 여섯 명의 배우는 이를 재현한다. 해설자의 대사가 다소 길기 때문에 그동안 다른 배우들은 일종의 자료화면 역할을 해낸다. 넘치고 넘치는 사랑의 사례를 보여줘야 하니 장면은 즉각적으로 변화한다.
첫 시작, 배우들은 유명한 고전 작품을 읊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오텔로’ ‘한여름밤의 꿈’ ‘페드라’ ‘로미오와 줄리엣’…. 무수히 많은 고전은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사랑을 표출해왔다. 총 12장으로 이어지는 연극은 인간의 사랑에 대한 사회·문화·정치·철학·생물학·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하다가 종국엔 사회를 비추어본다. 그러다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지독한 경계(境界). 역사를 훑다 보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존재해 온 오만한 편견과 차별, 폭력이 날카로이 스친다. 인류가 더 나은 사랑을 원한다면 사회적 진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작품의 요지다. 글 장혜선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름답기에 지킨다
무용 플라스틱 버드
1월 9·1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최지연 무브먼트의 ‘플라스틱 버드’는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진 작품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생태계를 파괴했고, 그 결과는 돌고 돌아 다시 인간을 향하리라는 것. 제목인 ‘플라스틱 버드’는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생태운동가 겸 다큐멘터리스트 크리스 조던이 배에 플라스틱이 가득 차 죽어가는 어린 알바트로스 새의 사체를 포착했다.
암전된 무대는 오르골 소리와 함께 밝아진다. 무대 위로 무용수 한 명이 긴 줄 같은 막대기를 쥐고 등장한다. 3m 길이의 길고 좁은 알바트로스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 같은데 쉭쉭 소리를 낼 정도로 위협적으로 휘두른다. 그의 뒤엔 날아오르지 못하는 새가 계속해서 날갯짓하지만, 한데 뭉친 사람들이 그를 무겁게 짓누른다. 무리와 그 무리에서 분리된 일부는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다. 그건 죽어가는 새의 낙오로 비치기도, 자연의 거대한 법칙을 가볍게 무시하는 인간의 오만처럼 비치기도 한다.
‘플라스틱 버드’의 안무가 최지연은 이화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한국 전통춤을 토대로 동시대의 춤을 모색하는 무용단 창무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예술감독을 지냈다. 영화와 연극을 넘나드는 새로운 문법으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최지연 무브먼트를 창단했다. ‘플라스틱 버드’에는 이러한 그의 공력이 집약적으로 반영됐다. 그의 근간을 이루는 한국 전통춤의 요소는 작품 전반에 무용수들의 절제된 동작과 오색 소품에 녹아들어 있었다. 영화문법의 구사는 무대 뒤에 투사되는 플라스틱으로 된 새 영상 외에도 음악의 사용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명상음악, 전자음악, 전통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분위기를 전환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연극적 연출은 작품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해 비언어극에 가깝게 느껴졌다.
중반부에 이르러 무대 위를 가로지르던 여러 무용수는 각각 쥐고 있던 형형색색의 조각을 꺼내 객석 1열과 가까운 곳에 흩뿌린다. 곧 이들은 자신의 몸을 신경질적으로 긁어댄다. 편의에 의해 사용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결국 인간 스스로에게도 해를 입힌 것이다.
알바트로스 새의 죽음의 원인은 분명하다. 바다 위를 활공하던 어미 새가 먹이인 줄 알고 물어다 먹인 것이 독이 됐다. 자연의 무해함을 신뢰하는 동물의 습성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렇기에 어느새 몸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 플라스틱의 무게에 날지 못하고 죽어가면서도 새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작품은 윽박지르지도, 겁을 주지도 않는다. 아름다움은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새의 모습을 비롯해 등장보다 퇴장을 위한 몸짓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사그라드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껴도 되는 걸까. 관객이 그 불경스러움에 고민하는 순간, 이 연약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할 권리가 인간에겐 없다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글 박서정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