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영재교육원, 콩쿠르 강국 한국의 예술 새싹을 키우는 곳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6월 21일 9:00 오전

“COVER STORY 한국예술영재교육원”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콩쿠르 강국 한국의 예술 새싹을 키우는 곳

 

 

 

 

 

 

part 1  한국의 예술영재를 키우는 리더들 _박서정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원장 이성주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봉렬

part 2  영재원 출신 예술가들의 추억 _임원빈

part 3  같은 전공, 다른 길 _장혜선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 래퍼 릴러말즈(김민겸)

part 4  해외 예술영재 교육 사례 _박찬미

part 5  국내외 예술영재교육 기사 돌아보기 _박찬미


 

part 1   한국의 예술영재를 키우는 리더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원장 이성주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봉렬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설립 배경부터 교육 철학, 미래를 논하다

콩쿠르에서 별을 딴 수상자의 경력은 세상에 공개된다. 피와 땀으로 일군 시간이다. 그중에는 대개 빠지지 않는 한 줄도 보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혹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다.

천재(天才)가 하늘이 내린 인재라면, 영재(英才)는 아직 열매를 맺지 않은 꽃이다. 학계에서는 영재를 동일 연령대의 상위 30%까지 넓게 보기도 한다. 영재교육 진흥법(2000년 제정)은 영재를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숨은 봉오리를 틔우는 것은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제공해주는 ‘교육’이다. 2008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하 영재원)이 개원할 때 가장 큰 관심사는 국립이라는 점이었다. 값비싼 사교육 위주의 예술 분야에서 국가가 영재교육에 나선 첫 사례였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영재교육 진흥법에 따라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가 운영하던 예술실기 과정 예비학교를 예술영재교육원으로 전환하고 운영을 위탁했다. 예비학교 출신의 김선욱·손열음·조진주 등 10대 콩쿠르 스타를 배출해내며 한예종이 대내외적으로 성과를 인정받던 때였다.

초대 영재교육원장을 지낸 이영조 당시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킨다는 것과 전액 국비로 한다는 것”을 영재원의 운영원칙으로 삼았다. 음악원·미술원·무용원·전통예술원 등 원별로 운영되던 예비학교를 통합해 영재원 안에 네 개 분야로 설립했다.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실기 교육과 전공을 뒷받침할 기초과목에 대한 교육이 이뤄졌다. 한예종의 교육 인프라에 전액 장학금이라는 국가의 지원이 더해져 “가난한 예술영재가 태어나느냐”는 기대가 모였다. 다만 한정된 국가 예산에 맞추기 위해 선발 인원을 100명으로 한정하면서 기존 예비학교 정원의 1/4로 줄인 점은 한계로 지적됐다. 교육의 수혜 대상을 넓히는 것이 초창기 영재원에 주어진 과제였다.

 

더 많은 영재와 만나기 위해

2020년, 개원 13년 차를 맞은 영재원은 세종특별자치시와 경상남도 통영시에 지역캠퍼스를 세웠다. 시범 운영까지 모두 마치고 올해 정식 개원한다. 지역캠퍼스에 서울 본원(서울시 종로구)까지 합하면 이제 교육생 수는 300명을 훌쩍 넘긴다. “학생 수가 늘어나야 우수한 학생이 나타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같은 확률이라도 분모가 커지면 분자도 커지는 법이다.” 김봉렬 한예종 총장의 말이다. 김 총장은 영재 발굴에 있어 교육의 저변 확대를 강조한다. 제때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면 잠재된 영재성이 발휘되지 못할 수 있어서다. 당사자에게는 물론 국가적으로 봤을 때도 손해다.

영재교육 논의가 뜨겁던 2000년대 초반, 김 총장이 한예종 교학처장으로 학교 현장에서 인재 선발의 중요성을 지켜보았다면, 이성주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은 미래의 바이올리니스트 키우기에 한창이었다. 이 원장은 1994년 음악원 교수로 부임하며 한예종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의 제자들은 조진주와 김영욱 등으로, 지금은 어엿한 음악가가 되어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고 있다. 올해 원장직에 취임한 그는 영재원을 이끌 적임자이기도 하다. 그 자신이 아홉 살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크게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조기 교육의 명과 암에 대해서라면, 몸소 깨달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열다섯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에서 갈라미언과 딜레이 교수를 사사했다. 세계적인 대가로부터 가르침 받으며 실력을 키웠지만, 타지에서 홀로 고초를 겪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영재원의 지역캠퍼스 설립을 가장 반긴 이 또한 이 원장이다. 지역의 학생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곳 가까이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영재원은 여러 지역의 캠퍼스를 거점 삼아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 본원은 지금처럼 전국구로 모집하되, 세종캠퍼스는 충청권, 경남통영캠퍼스는 경상권 학생의 지원만 받는다. 보다 다양한 학생들에게 교육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전라권의 캠퍼스는 2023년 개원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미래의 예술가를 가꾸고 키워내기 위한 움직임이 더욱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에서 김 총장과 이 원장을 만나 영재 발굴과 육성, 환원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최근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으로 취임한 이성주 신임 원장의 포부를 듣는 자리이기도 했다.

 

인터뷰에 앞서, 먼저 개념을 정립하고 싶다. ‘한예종 예비학교’ ‘한국예술영재교육원’ ‘한예종 예술영재 선발제도’는 각각 어떻게 다른가?

김봉렬     ‘예비학교’는 말 그대로 한예종 예술사과정 이전의 예비 과정을 뜻한다. 우수한 신입생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밭을 깊게 경작해 거기서 될만한 싹을 거둬들인다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예비학교가 영재원으로 전환될 때 중요한 관점의 변화가 있었다. 학교의 인재가 아닌, 국가의 인재를 키운다는 생각이다. 입시 기관이 되어버리는 순간 영재교육은 실패한다. 폭 좁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국가 영재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 환원이기 때문이다. 해외 유학이나 본인이 좋아하는 다른 교육 환경을 얼마든지 찾아가도 좋다. 굳이 대학에 갈 필요 없이, 바로 프로로 전향해도 충분한 학생들도 있다.

이성주     ‘한예종 예술영재 선발제도’는 한예종 입학 전형 중 하나다. 17세 이하의 학생을 대상으로 조기입학을 할 수 있게끔 한 제도다. 전체 선발 인원 중 1~2명 정도는 영재원 출신 중에서 뽑기도 한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일찍이 대학과 유학 과정을 마치고, 남보다 앞선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영재원이 실기뿐만 아니라, 전공의 기초가 되는 시창·청음과 이론, 외국어 과목 선행교육을 중시하는 이유이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만들어주고자 한다.

영재원은 초3~고3 연령대의 청소년이 다닌다. 뛰어난 기교로 주목받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평범해지는 것은 ‘영재의 비극’이다. 많은 논의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재’라는 개념에 대한 정설은 없는 상황인데. 영재원에서는 ‘예술영재’를 어떻게 정의하나?

김봉렬     본래 영재란 개념 자체가 불확실하다. 0.01%의 천재와는 다르다. 대략 상위 10~30%까지로 보는데, 폭이 넓어서 그중 누가 성공할지 모른다. 1년 단위로 재평가하여 자꾸 판별해내는 수밖에 없다. 시도해보고 능력이 안 되거나 적성에 안 맞는 학생들은 떠나야 한다. 이게 기본적인 영재교육의 시스템이다. 기차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기차가 궤도를 돌고 있으면 승객이 타고내리면서 저절로 빈자리가 채워진다. 영재교육을 받던 학생이 다른 적성을 찾아 나가기도 하고, 시험에 떨어졌던 학생이 실력이 늘어 새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게 추려져서 남은 이들이 영재다. 낚시하듯 한 번에 집어내는 방법은 없다. 이론상으론 그렇다.

이성주     영재원은 2학기를 마치고 연말마다 원생을 새로 뽑는다. 간혹 어려서는 뛰어났는데 갈수록 실력이 뒤처지는 경우도 본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영재원을 졸업할 때까지 다닌다. 애초부터 워낙 소수정예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40년 넘는 음악 인생에 비추어보면, 영재인지 아닌지는 들어보면 안다. 확실히 다르다. 타고난 자질은 어느 정도는 가르침 없이도 나온다. 그걸 간파할 수 있는 교육자가 필요하다. 발굴한 이후에 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 역시 교육의 영역이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서초캠퍼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경남통영캠퍼스(투시도)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세종캠퍼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예술영재 조기 발굴 및 양성을 목표로 2008년 개원했다. 초3~고3에 해당하는 나이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악·무용·전통예술·융합 분야로 나누어 선발한다. 방과 후와 주말, 방학을 활용하여 연간 총 120시간 이상 수업 시간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으며, 수업료는 전액 무료다. 사회적배려대상자를 위한 ‘예술영재 발굴 아카데미’를 실시하고, 찾아가는 공연을 여는 등 사회공헌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2010년에는 하노버 음대 부설 하노버 영재교육원과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한 명을 위한 맞춤형 교육

영재원만의 교육 체계와 커리큘럼을 자랑해달라.

이성주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원생들은 한예종의 세계적인 교수진으로부터 일대일 맞춤형 교육을 받는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현직 교수의 과외는 불법이나, 예술교육의 특수성이 인정된 사례다. 특히 음악은 악기를 배우고 터득할 때 학생들과 개별적으로 소통해야 할 상황이 많다. 나아가 예술가로서의 사고를 심어주는 데도 일대일의 수업 방식이 필요하다. 어떤 때에는 학생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업 시간의 반을 대화만 나누기도 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이 정도로 수준 높은 교육은 국가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의 예술영재들은 기술적(기교적)으로는 훌륭하지만, 감성적(표현력), 혹은 해석력에선 다소 부족하다는 평이 있는데.

이성주     나의 스승인 대모 딜레이가 늘 강조한 것이 있다. 열여섯 살 전까진 악기를 충분히 연마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예술적 표현은 그다음 순서다. 악기를 잘못 다루면 어떤 표현과 해석을 해도 악기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올바른 자세와 체형이 중요한 무용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바탕이 될 때 창의적인 예술도 할 수 있다. 영재원은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아이들이 제대로 기초를 쌓는 곳이다.

영재교육이 유의미한 분야가 따로 있나? 영재원은 2008년 개원 당시 미술·음악·무용·전통 4개 분야로 운영되다가, 1년 만에 미술 분야를 폐지한 바 있다.

이성주     실기가 주가 되는 공연예술일수록, 어릴 때 기초교육이 잘 이뤄져야 한다. 나쁜 습관이 한번 잘못 들면, 그걸 고치는 데만 3~4년이 걸린다. 이점이 미술과는 다르다. 현재 미술 분야는 없지만, 어린 학생들의 창의력과 표현력을 키우는 데 미술 교육은 안팎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김봉렬     무엇을 미술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9세기까지의 미술은 잘 그리는 기술이 필요했다. 반면 현대미술은 잘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림을 아예 안 그리는 세계적인 작가도 많다. 생각과 머리와 말로 다 한다. 창의력이 중시되는 거다. 그런데 창의력은 조기에 발현되기가 어렵다. 인문학적 공부와 많은 경험이 쌓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 천재’는 분명히 있으나 영재, 즉 어려서 태어나는 건 아니다. 미술 영재는 음악 영재와는 다른 개념으로 구축해야 할 것이다.

무용분야 한국예술영재교육원생. 왼쪽부터 전지율(발레·중등1), 구성모(발레·중등3), 송지우(발레·중등1)

 

변화하는 시대, 변화하는 예술교육

영재원은 올해 ‘융합’이라는 분야를 신설했다. 어떤 과정인가?

이성주     미디어 아트·영상·프로그래밍 등 미디어를 활용한 시각·공연예술 전반을 다룬다. 깊이보다 넓게 알고 아우르는 재능이 더 중요한 분야다. 또 다른 개념의 예술영재라고 볼 수 있다. 음악·미술은 서구에서 오래된 예술 장르라, 우리가 교육 모델을 많이 참고했는데 융합은 아직 실험 단계다. 이곳에서부터 찾아내야 한다. 무대 연출이 연주 못지않게 중요해진 시대인 만큼, 영재원이 융합예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관련 교육을 선도하고자 한다.

김봉렬     선발 방식도 좀 다르다. 다른 분야는 실기 실력으로 뽑는데 융합은 선호도가 크게 작용했다. 적성이 곧 재능이라고 본 것이다. 현대 영재이론의 큰 줄기를 이루는 ‘다중지능이론’이 근거가 됐다. 어찌 보면 현대의 예술교육은 전공 실기 중심의 콘서바토리만으로는 불충분한 측면이 있다. 현대미술의 경향을 보면 오히려 철학에 가깝다. 예술가로서 나만의 독특한 생각을 해야 한다. 예술의 변화에 따른 교육의 변화가 영재원에서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가 있다. 올해부터 세종시와 통영시에 캠퍼스를 연다. 영재원 지역캠퍼스는 어떤 필요로 설립했나?

이성주      영재원의 초기 모델이 된 곳이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다. 매주 토요일만 수업하는 방식부터 여러모로 참고했다. 어릴 적 줄리아드 예비학교 다닐 때를 떠올려보면, 미국이 워낙 땅이 넓어서 플로리다에서 비행기 타고 하루 올라오던 학생이 기억난다. 우리 영재원도 서울의 교수들에게 교육받기 위해서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여든다. 오가느라 시간 낭비도 심하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그런 부담을 줄여주고, 서울까지 올 수 없는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자 지역캠퍼스를 마련했다. 굳이 서울까지 안 오더라도 훌륭한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고, 서울의 교수진이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지역캠퍼스를 찾을 예정이다. 지역 출신 제자들을 여럿 두고 있는 터라 수준을 잘 알고 있다. 교육의 혜택을 넓히면, 좋은 학생들이 더 많이 생기리라 확신한다.

김봉렬     자칫 서울 본원에는 우수한 학생이 있고, 지역캠퍼스는 실력이 덜 하다고 여길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듯 영재교육의 기본 개념은 ‘순환’이다. 지역 순환버스가 있고, 서울 순환버스가 있는데, 서로 교류하며 옮겨 탈 수도 있는 방법이 생겼다고 보면 된다.

기존의 시도교육청 산하에 있는 영재교육기관과는 어떻게 다른 역할을 수행할지 듣고 싶다.

이성주     우리는 예술영재교육 전담국가연구기관인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과 함께 교육모델을 개발하고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널리 알리고 전하고자 한다. 지역에 계신 선생님들이 오셔서 연수를 받거나, 같이 예술교육을 끌어가기도 하는 아지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주     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아홉 살에 서울시향과 협연하며 데뷔했다. 1966년 전국아동음악콩쿠르(현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에서 갈라미와 딜레이를 사사했다. 1977년 영 콘서트 아티스트 인터내셔널 오디션을 통해 뉴욕 무대에 데뷔했으며,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부임했다.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에 힘쓰며, 1997년 직접 창단한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로 이사장 겸 예술감독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21년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김봉렬     국립 영재교육원으로서, ‘졸업생’ 환원도 중요하지만 ‘교육 모델’을 환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한예종이 우리나라 예술대학의 모델을 변화시켰다는 자부심이 있다. 과거엔 음대 교수를 뽑는데도 박사학위를 요구했다면, 지금은 연주실적을 요구한다. 입시와 커리큘럼도 실기 위주로 바뀌었다. 우리가 먼저 시도해서 바뀔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초·중·고등교육에서도 ‘좋은 예술교육은 이런 것이다’라는 모델을 확산시키고 싶다.

지역캠퍼스 운영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김봉렬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지역마다 예술적인 특성이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통적으로 호남은 전통예술이 강하다. 영재원에 지원하는 인원도 그쪽이 많을 수 있다. 지역 정서상 경남 통영은 음악, 세종은 융합 쪽이 대두될 것으로 예측된다. 세 개의 캠퍼스를 일률적으로 운영할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지역별 특성을 살피고자 한다.

 

건강한 예술계를 위한 해결 과제

며칠 전, 영재원 출신으로 한예종에 영재입학해 재학 중인 첼리스트 한재민(2006~)이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소식을 전했다. 1958년 창설된 유서 깊은 콩쿠르라 의미가 깊다. 영재원의 쾌거라고 봐도 될까?

이성주     난 영재원의 역할을 더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 콩쿠르에서 뭘 꼭 이뤄내야 음악성을 인정받는 분위기에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어린 나이에 콩쿠르 위주로 공부하다 보면, 그 나이대에 꼭 배워야 할 것을 놓치거나 음악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수가 있다. 내가 해외 활동을 할 때 제일 부러웠던 것은 ‘콩쿠르 밖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국의 연주자에게 무대를 마련해주고 후원도 해주더라. 그럼 콩쿠르 입상 경력 한번 없이도, 커리어가 저절로 쌓인다. 특히 세계무대에서는 실력이 동등해도 국가적인 후원이 없으면 경쟁이 안 된다. 앞으로는 학생을 잘 키워주기도 하지만, 뒤에서도 잘 받쳐줄 수 있는 영재원이 되고자 한다.

김봉렬     K-클래식의 고민거리다. 공급은 이제 어느 정도 되는데, 시장이 없는 거다. 세계 시장을 개척하는 동시에, 국내 시장을 키워야 한다. 학교가 거기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기도 한데, 우리라도 해야지.

이성주     국제 교류가 시급하다. 다행히 영재원에 관심 갖는 해외 학교들이 꽤 있다.

개원 당시부터 영재원을 정규 교육과정인 영재학교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운영되는 실정이다. 앞으로의 추진 방향을 말해달라.

김봉렬     최종적으로는 영재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영재원을 다니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 심적 부담이 상당하다.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연습까지 소화하느라 그렇다. 아무리 교과 외 시간에 영재교육이 이뤄진대도, 연습과 공연을 위해 학사 일정에서 빠지거나 배려를 받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이유로 또래 학생들에게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을 수도 있다. 지금은 교육 철학이 평등에 무게를 두면서, 영재학교 논의는 쏙 들어가버린 상황이다. 그러나 예술학교는 그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같은 관심사를 가진 또래 집단을 만들어준다는 의의도 크다. 예술가에겐 동료가 스승이 되기도 하니까.

김봉렬     서울대와 영국 런던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AA Graduate School of Architecture)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27세의 나이에 ‘한국의 건축’(1985)을 출간해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199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부임해 교학처장(2001~2005)과 기획처장(2007~2009), 미술원 건축과장(2012)을 거쳐 2013년 제7대 총장으로 임명됐으며 2021년 8월까지를 임기로 연임에 성공했다. 국가영빈관 삼청장 등을 설계하고 여주 영릉 종합정비계획에 참여한 그는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고건축의 대가’로 손꼽힌다.

교육자로서 수많은 학생을 지켜봐 왔다. 뛰어난 예술가는 타고나나, 길러지나?

김봉렬     살리에르가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 모차르트를 못 이긴다고 하지만, 그 모차르트도 걸작을 짓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널리 알려진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잘하기 위해 하루 3시간씩 노력하면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천재나 영재나 노력 없이는 성공하지 못한다. 학교는 이들이 계속 노력하게끔 유도할 뿐이다.

영재원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빨리 진로를 결정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하지만 중도에 다른 길을 모색하려고 할 때는, 일반 학생보다 더 많은 힘이 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학생들을 위해 어떤 도움을 주는가?

이성주     애착심을 가지고 가르친 원생들이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면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준다. 음악은 긴 시간 집중력을 요구하는지라 음악을 잘하는 학생들은 어느 분야든 성과를 일궈내더라. 실제로 내 음악 동료 중에 다른 분야에 가서도 성공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첼리스트 요요마는 음악원 교육을 받다가 하버드 인류학과에 진학했고, 의사가 된 줄리아드 음악원 동기도 있다. 악기는 계속 취미로 즐긴다더라. 어릴 때 받아놓은 교육은 어디 안 간다. 예술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더 좋은 길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영재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과도한 교육열을 꼬집는 말인데, 영재원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 혹은 학부모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성주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음악이 나온다. 음악에만 몰두하라고 가르치면, 그거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자란다. 사람을 키우는 예술교육을 하겠다. 그러려면 학부모님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교사-학생-학부모 삼각 시스템이다. 이렇게 키워놓은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리더가 되어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간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이것이 영재원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글 박서정 기자 커버 사진 박진호(studio BoB)

 

 

 

 


part 2   영재원 출신 예술가들의 추억

그때 그 시절, 우리의 방황과 성장

작은 교실에서 키운 큰 꿈. 고민과 성장통 속에 그들은 행복했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한국예술영재교육원 외

 

피아니스트 임윤찬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있는 곳

피아니스트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어릴 적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어요. 단지 음악이 좋아서 한 길을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죠. 그러다 보니 영재원을 입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더라고요. 영재원 입학 후 또래 친구들보다 진로를 빨리 정하게 된 만큼 다른 친구들이 놀 때 연습에 쏟아붓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놀고 싶은 적이 당연히 있었죠. 하루는 피아노 연습을 안 하고 싶어서 온종일 쉰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을수록 피아노 앞에 더 오게 되더라고요. 영재원에 다니며 가장 좋았던 것은 저랑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옆에 있었다는 거예요. 친구들이랑 대화하며 음악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마음이 어렵거나 음악적으로 해결이 안 될 때 서로 도움 되기도 하고요. 하루는 손민수 교수님께 음악을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그 질문의 답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영재원에서 음악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임윤찬(2004~)은 2015년 금호영재 콘서트 데뷔 이후 2016년 예원 음악 콩쿠르 1위, 2018년 클리블랜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2위, 같은 해 쿠퍼 콩쿠르에서 최연소 3위, 2019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었다. 현재 한예종에 재학 중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음악의 새로운 지표 삼은 곳

영재원에 입학해 ‘어린아이’에서 ‘연주자’로 한 걸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심리적인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재원에서 꿈을 키워가던 모든 예술가가 그 과정을 묵묵히 받아들였기에 저 또한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했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론·실기 수업 외에도 저에게 자극이 되었던 것은 학우들이었습니다. 입학 당시 저보다 한참 앞서가는 실력의 또래들, 범접할 수 없는 선배들의 연주 하나하나가 저에겐 나아가야 할 새로운 지표가 되었습니다. 간혹 영재원 출신 연주자들이 감정적인 표현이나 해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들의 해석과 표현력이 부족하기보다 배움의 과정에서 그 중요성이 기술과 연습만큼 덜 강조되는 것 같은데요, 같은 길을 걸을 후배들은 이것을 더 중요하게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점을 개선하기 위해 때론 좋은 ‘청중(Listener)’이 되어보기도 해야 그 속에서 느끼는 무언가가 우리에게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남기도 합니다. ‘좋은 청중’이 되어야 ‘좋은 연주자’가 됩니다.


김동현(1999~)은 2012년 금호 영재콘서트 데뷔를 시작으로 2014년 레오폴드 아워 콩쿠르, 2016년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한예종을 졸업한 그는 현재 뮌헨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플루티스트 조성현   넓은 세계를 만나는 곳

한예종 예비학교가 일반 예술학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앙상블 수업입니다. 저는 영재원에서의 앙상블 수업을 통해 오케스트라라는 걸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오케스트라 속에서 여러 악기와 호흡을 맞추는 것에 매력을 느꼈어요. 많은 합주를 통해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훈련과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영재원을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따듯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악에는 연주자의 인생이 묻어나기 때문이죠. 그리고 더욱 호기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과 앙상블 환경이 있다고 해도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없으면 이기적인 음악이 됩니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악기 외의 다른 분야 수업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재원에서도 학생들의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실내악 수업이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실내악의 가장 큰 장점은 음악적 시야가 넓어질 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에 대한 호기심도 자연스레 생긴다는 것입니다.


조성현(1990~)은 한예종 예비학교를 수료하고 미국 오벌린 음악원 하노버 음대를 졸업한 뒤 베를린 필하모닉 카라얀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쾰른 필하모닉 수석을 역임한 그는 현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첼리스트 주연선   영재원에서 찾은 음악의 길

저는 예원학교를 다니던 중학교 2학년 때 한예종 예비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실내악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접할 기회가 적었죠. 예비학교를 들어가면서 실내악을 꾸준히 하게 됐습니다. 지금 서울시향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실내악 수업이 밑거름됐을 겁니다. 그리고 예비학교 전공 교수님들께서 다른 선생님께도 배울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때 다양한 선생님들의 음악 어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곳이었죠.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음악은 연극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배우가 무대에서 열연하는데, 몰입하지 않고 표면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관객역시 그에게, 혹은 캐릭터로의 몰입이 되지 않습니다. 음악도 똑같아요. 음악을 진심으로 느끼지 못하면 무대에서 부족한 점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음악은 그 순간에 빠져들어야 할 ‘순간적인 환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을 느껴야 음악이 살아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연습실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책에도 깊이 빠져보고 다른 분야의 수업도 들어보는 것으로 인생 경험을 쌓아 보면 어떨까요?


주연선(1981~)은 예원학교·한예종 예비학교를 수료하고 서울예고 재학 중 도미해 커티스 음대를 졸업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로 수석, 미국 캔자스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수석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발레리나 이수빈   변화의 시간이 담긴 영재원

중학교 1학년 때, 그저 발레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영재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발레를 전공으로 시작하기엔 늦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했던 탓에 뒤처진다는 열등감과 이를 넘어서려는 열정 하나로 앞만 바라보고 달렸습니다.

훌륭한 무용수가 되려면 그 나이 또래에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부분이 지금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런데도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또 무언가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해요.

영재원에 입학하면서 일찍부터 진로를 결정했지만, 개인적으로 ‘어린이 이수빈’과 ‘무용수 이수빈’ 사이의 갈등과 방황 같은 건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소심했던 탓인지 마음에 담아둔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을 춤에 담아 표현할 때 행복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학교 교육을 통해 또 다른 내가 되어가는 것을 즐겼습니다. 영재원은 그런 추억과 배움, 변화의 시간이 담긴 곳입니다.


이수빈(1998~)은 영재원과 선화예술학교를 졸업했다. 2012년 서울국제무용콩쿠르, 2013년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2014년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 등에서 입상했다. 현재 보스턴 발레단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작곡가·해금 연주자 황재인   ‘순간의 감흥’을 훈련한 곳

초등학교 때 입학한 영재원에서 해금을 공부했습니다. 예술을 좋아하고 무대를 좋아했지만, 무대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포기해도 영재원을 다니는 나는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반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음악 이론과 시창·청음 등의 과목들을 영재원에서 접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업들에 매력을 느꼈고, 이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서울대에서 서양음악 작곡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전통음악과 서양음악 작곡 모두 전문적으로 배운 덕에 전통음악을 하는 학우들이나 서양음악을 공부하는 학우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영재원은 다양한 분야의 학생이 모인 곳인 만큼 배우는 폭이 넓었습니다. 다만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보면 그때 즉흥연주를 보다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사실 영재원을 입학하던 해에 처음 즉흥연주 과목이 개설되었는데, 저의 관심사와 달리 수업의 중요성은 다른 수업에 밀렸던 것 같아요. 음악가에게 ‘순간의 감흥’에 집중하는 훈련은 매우 중요해요. 생각해보면 즉흥연주에 대한 훈련만큼 그 순간에 몰입하기 좋은 훈련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재인(1998~)은 영재원에서 해금을 전공하고 예원학교·서울예고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2009년 난계국악경연대회 전체 대상, 2020년 중강국악상을 수상했다. 2012년 금호영재 콘서트로 데뷔한 그는 현재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있다.

 

part 3   같은 전공, 다른 길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 래퍼 릴러말즈(김민겸)

같은 뿌리지만, 열매의 색은 다르다. 한 명은 음표를 읽었고, 한 명은 가사를 읊는다

 

양인모와 김민겸은 2008년에 한국예술영재교육원 1기로 입학한, 그야말로 국가가 인정한 ‘음악영재’다. 그 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로만 운영되던 영재 교육 시스템이 영재원 개원으로 새 변화를 맞았다.

두 사람은 주어진 길을 함께 걸었다. 양인모(1995~)와 김민겸(1995~)은 서울예고 재학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양인모는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거쳐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공부했다. 김민겸은 맨해튼 음대에서 석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오늘’은 다르다. 양인모는 아침에 일어나 악기를 꺼내 연습을 하고, 김민겸은 노트를 펴 가사를 적는다. 같은 ‘예술의전당’을 놓고 두 사람의 활동 반경은 양 갈래로 나뉜다.

양인모는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이후 전문 솔리스트로 발돋움했다. 도이치 그라모폰 데뷔 음반에 이어 지난 3월에는, 두 번째 앨범 ‘현의 유전학’을 발매했다. 그런 그에게 ‘예술의전당’은 단골 무대다. 3월 13일에는 콘서트홀에서 음반에 담긴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리사이틀을 펼치기도 했다.

반면 김민겸은 ‘예술의전당’을 자신의 랩의 가사에 녹여 넣는다. “다음 역은 예술의 전당역이야” 2015년, ‘릴러말즈’라는 예명으로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한 믹스테이프 ‘예술의 전당’의 가사다. 실제 지하철에 ‘예술의전당’이란 역은 없다. 하지만 그곳이 ‘남부터미널’역을 뜻한다는 건 클래식 음악 언저리에 있는 자라면 누구나 안다. 김민겸은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짊어지고 수백, 수천 번 ‘예술의전당역’에서 하차했던 기억을 가사에 적었다. 그는 현재 힙합 레이블 앰비션뮤직에 몸담은 래퍼로 활약 중이다.

동문수학한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됐을까. 그들이 어린 시절에 함께 체험한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의 시간을 반추하며 기나긴 이야기를 나눴다. 줌(zoom)으로 두 음악가를 만났다. 마침 양인모와 김민겸은 함께 베를린에 머물고 있었다.

 

영재원 재학 당시 학교 분위기는 어땠는가.

김민겸 예비학교에 다니던 중 따로 시험을 봐서 영재원에 들어간 기억이 난다. 영재원 입학 정원은 예비학교 학생 수보다 소수였다.

양인모 그러다 보니 영재원 시험에서 떨어진 친구들도 있었다. 영재원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의 연장선 같았다. 획기적인 시스템보다는, 해왔던 공부를 더 높은 퀄리티로 이어가는 느낌이었다.

예비학교와 영재원, 대학 교육까지 함께했다. 사실 국내 음악계는 또래 연주자들의 경쟁 구도로 판이 짜여 있다. 영재원 학생들은 친구이면서도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좋은 우정을 나누게 된 계기는.

양인모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같이 레슨받고, 연주하고, 음악 캠프도 다니고, 해외 연주도 가고… 지금 생각해 보니 럭셔리한(?) 생활을 한 것 같다. 그러한 특권을 같이 누릴 수 있다는 게 행운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전공이 빨리 정해졌다.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을 텐데.

김민겸 그냥 받아들이면서 살게 된 지 너무 오래됐다.

양인모 나의 경우는 일반 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내 삶이 많이 다르다는 걸 일찍 깨달은 편이다. 영재원 시절에는 콩쿠르나 대학 진학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앞만 보며 달렸고.

영재원에 입학하면 국내 최고 교수진에게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생이 합법적으로 교수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루트다. 어엿한 성인 예술가로 성장한 지금, 당시 배운 가르침 중 여전히 토대가 되는 것이 있다면.

김민겸 음… 거의 대부분이다. 특히 국가에서 교육비를 무료로 지원해 준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었다.

 

친구지만, 취향이 달랐다

영재원 시절, 스스로 ‘영재’라는 자각이 있었나.

김민겸 (양인모에게 질문) 넌 있었어? 난 있었어.

양인모 난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웃음)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과 실력 차가 났는데, 영재원에 입학하면서 확인받은 느낌이랄까. 근데 당시 영재원에서 받은 교육 특권에 대해선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 시스템이 좀 익숙했던 것 같다.

영재, 타고나는 걸까? 길러지는 걸까?

김민겸 둘 다!

양인모 물론 타고 난 점이 있어야 한다. 소리에 대한 감 같은 건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잘하는 부분을 빨리 알아차리고 그걸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것.

자화자찬하기엔 좀 민망할 테니, 어릴 때 어떤 부분이 뛰어났는지 서로 칭찬해 주는 시간을 가져보자.

김민겸 우선 우리의 장점은 동일하다. 둘 다 집요하다.

양인모 아마 예민해서 그럴 테다. 어떻게 보면 장점이지만, 어떻게 보면 힘든 점이기도 하다. 정신 건강에도 안 좋고.

김민겸 인모는 어릴 때부터 구조적인 이해가 좋았다.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어서 협주곡 전 악장을 하면 힘들었을 텐데, 긴 길이도 알아서 분배해 끝까지 아무 탈 없이 가뿐히 연주하는 점이 놀라웠다.

양인모 민겸이의 경우는 싸우는 방법을 안다. 어쩔 수 없이 콩쿠르에 함께 나간 적이 많은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 이 친구가 수년간 쌓아온 클래식 음악에 미련을 갖지 않고 새로운 음악에서 좋은 결과물을 선보이는 것도, 확신이 있으면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야 한다는 투지가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영재교육을 받은 사람이 힙합계로 간 경우는 없지 않나. 기억나는 사례가 없는데.

양인모 그런 사례는 거의 없다. 결국 기호의 문제다. 어떤 음악을 하든 가공 과정에서 나와 민겸이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영재교육의  명과 암

세종시(충청권), 통영시(경상권)에 영재원 지역 캠퍼스가 생기는 것에 대해선 어떠한 입장인가.

김민겸 박수 쳐주고 싶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예비학교를 다녔는데 1년간 여수에서 왔다 갔다 했다. 한 번 가는데 왕복 12시간이 소요됐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힘들어서 그만두자고 할 정도였다.

양인모 지방에서 오는 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목포나 청주에서 버스 타고 오던 친구들이 기억난다.

한국의 음악영재들은 기교적으로는 훌륭하지만, 표현력에선 다소 부족하다는 평이 있다. 동의하나.

김민겸 대부분 그렇다.

양인모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영재원 다닐 때만 해도 교육이 기교에 치우쳐있었다.

김민겸 우리 영재원 시절에는 콩쿠르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 그 온도를 이겨내지 못한 많은 이탈자도 있었고.양인모 재밌는 건 해외에 나와서 보면, 사실 기교는 풍부하지만, 감수성은 부족한 우리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이 교육방법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악기에 있어서 기교는 중요하니까.

해외 예비학교 사례를 보니 정신 훈련이라 할 수 있는 멘탈 트레이닝이나 알렉산더 테크닉과 같은 프로그램도 있더라.

양인모 피지컬 트레이닝은 정말 중요하다. 요가나 필라테스, 알렉산더 테크닉 같은 걸 추천한다. 악기를 하면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신체 인지를 높이는 수업을 많이 들었다. 한국 학생들은 연습량이 많아서 손을 다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면 내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아야 한다. 무대 매너도 중요하다. 콩쿠르에서도 무대 매너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나라 친구들이 그 점에선 미숙한 편이다. 음악 외적으로도 공부하기 바란다.

이외에도 한국의 음악영재교육 체계 중 보완됐으면 하는 건.

양인모 음악과 상업성에 관한 문제를 교육해 주면 어떨까. 상업적인 음악은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음악과 돈에 대한 이해는 일찍부터 있어야 한다.

김민겸 전적으로 동의한다.양인모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대다수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것이다. 그나마 자리가 많은 직종이니까. 하지만 점점 오케스트라 입단도 어려워진다. 교육 기관을 떠난 후 어떻게 취직을 해야 하는지 등 현실과 직결되는 문제들을 일찌감치 소개해 주면 좋을 테다.

지금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훈련은? ‘그때 이런 거를 배웠더라면 지금 더 좋은 예술가가 되어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민겸 누군가 나에게 ‘바이올린을 잘 안 해도 된다’고 말해줬다면 지금까지 하고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클래식 음악 교육 시스템이 힘들었다. 나의 경우에는 좋아해야지만 일을 시작하는 편인데, 한국 교육 시스템은 그저 발전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음악가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생명력을 키울 방법이 연습만은 아닌 것 같다.

양인모 나는 ‘질문하지 못한 것’이 늘 힘들었다.

김민겸 아, 동의한다. 영재원 시스템의 문제일까?

양인모 우리나라 풍토의 문제겠지. 궁금한 게 많았는데 물어볼 용기가 없었고…

김민겸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양인모 유학을 가서야 질문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레슨 선생님은 “여기서 어떻게 표현하고 싶냐”고 물으시더라.

김민겸 보통 한국은 “여기서는 이렇게 가자”고 하지 않나.

 

음악영재의 ‘바른길’이 있을까?

예민한 사춘기 시절, 스트레스를 푸는 각자만의 방법은 무엇이었나.

양인모 가끔 축구하고 그랬다.

김민겸 나는 중학교 때부터 힙합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클래식 음악 공부만으로도 바빴을 텐데 힙합은 어떻게 접한 건가.

김민겸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 외에는 다 연주자다. 연주자들은 누군가 작곡한 걸 그대로 따라야 한다. 악보에 작곡가가 지시한 그대로 연주하는 게 싫었다. 그런데 힙합 음악은 일차적으로 창작을 한다. 결국엔 창작이 더 재밌어서 이 길을 택한 것이다.

양인모 한 번은 민겸이가 학교에 국어사전을 들고 온 적이 있다. 랩을 하려면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때 단순 취미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사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인모 님은 솔리스트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남다른 기획력을 보여주고, 민겸 님은 힙합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도 바이올린으로 작업을 하곤 한다. 사실 이전에는 음악가들이 다른 프로젝트로 눈을 돌리면 외도한다는 눈초리가 강했는데.

김민겸 맞다. 나 역시 너무 오랫동안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았다. 거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양인모 나도 전형적인 클래식 음악가는 아니다. 그러길 바라지도 않고. 민겸이가 얘기한 것처럼 나 또한 창작욕이 강한 편이다. 해석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게 있다. 민겸이처럼 랩과 노래를 잘 하지 못하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랩이야 가사가 있으니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도 동시대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클래식 음악을 하는 확신이 안 설 것 같다. 오래된 것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다.

‘21세기 예술가’의 형태는 과연 무엇일까.

김민겸 클래식 음악에 많이 해당하는 얘기인데, 많은 사람이 예술이라는 것을 두루뭉술하게 포장하는 것 같다. 예술이라는 건 좀 더 직접적인 무언가다. 직접적인 접촉, 그것으로 인한 반응과 결과. 나 자신도 직접적으로 변하고자 한다. 예술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기 시작했다. 각자 포장을 너무 많이 한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뭔가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양인모 민겸이 말을 듣다가 갑자기 생각났는데,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환경이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도 이루어지면 좋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릴 때에는 좁은 학교에서 주어진 환경에만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교육 기관에서 여유 있게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 환경은 아티스트의 마인드에 많은 영향을 끼치니 말이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크레디아·앰비션뮤직

part 4   해외 예술영재 교육 사례

미국과 유럽에서의 영재교육은?

어떤 비료를 주느냐에 따라 나무는 각기 다르게 자란다. 학생들에게 다채로운 예술성을 길러주기 위해선 교육기관의 프로그램이 중요할 터. 세계 각국의 예술영재교육기관은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2020/2021년 기준)  글 박찬미 기자

 

미국   역시 다양성의 나라

미국은 대부분의 음악대학과 음악원에서 예비학교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예비학교의 특징은 다양한 프로그램이다. 1시간의 개인 지도와 앙상블 연주, 이론 수업, 공연 기회 등이 공통으로 제공되는데, 각 프로그램에는 놀랄 만큼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다.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에서는 클래식 음악과 재즈, 두 개의 큰 커리큘럼 중 선택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커리큘럼에서는 모든 학생이 합주에 참여해야 한다. 학생들은 심사를 통해 9개 대규모 앙상블(필하모닉 오케스트라·심포니 오케스트라·레퍼토리 오케스트라·콘서트 오케스트라·오페라 워크숍·음악극·3개의 합창단) 중 한 곳에 배정된다. 학생 개개인의 역량과 필요를 파악하는 게 심사의 목적이다. 이 밖에도 클라리넷·금관·더블베이스·하프·타악기 앙상블 등 다양한 소규모 앙상블과 실내악에 추가로 참여한다.

음악 이론과 청음 수업은 연령에 따라 교육 내용에 차별화를 뒀다. 이외 선택과목도 흥미롭다. ‘성악가를 위한 연기 수업’ ‘피아니스트들을 위한 고급 실내악 스킬’ ‘클래식 음악 즉흥 기법’ ‘영화음악 작곡’ 등은 학생들이 보다 폭넓은 예술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고, 신체의 감각과 움직임을 탐구하는 ‘바디맵핑’, 올바른 호흡법과 신체 이완을 통해 몸의 긴장을 푸는 ‘알렉산더 테크닉’ 등 음악가를 위한 정신 수련법도 가르친다. ‘리드 만들기’나 ‘오디션 테크닉과 준비’ 등 실용적인 정보도 전달한다. 협주곡과 실내악 경연도 악기별, 나이별로 매해 개최한다.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 학생들은 시즌마다 줄리아드 음악원과 링컨 센터에서 열리는 200여 개 공연에 참여한다. 관현악기를 전공하는 모든 학생은 3개 오케스트라(예비학교 현악 앙상블·예비학교 심포니·예비학교 오케스트라) 중 하나에 필수로 등록해야 한다. 협주곡을 위한 독주자는 내부 경연을 통해 선발된다. 피아노와 오르간 전공자는 ‘피아노 퍼포먼스 포럼’에서 다양한 건반 악기를 경험할 수 있다. 선택과목인 실내악은 지도교사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수강이 결정되면 최소 1년 동안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선택과목으로는 ‘최고 연주자를 위한 정신 스킬’ ‘회복의 과학’ 등 음악가로서 자신의 마음과 신체를 단련하는 법을 배우는 강의가 눈에 띈다.

클리블랜드 음악원 예비학교의 필수과목에는 유리드믹스와 세컨더리 피아노가 포함돼 있다. 유리드믹스는 음악적 리듬을 몸동작으로 표현하게 하는 음악 교육 방법이다. 한편, 피아노 전공자가 아닌 학생들도 세컨더리 피아노 수업을 통해 스케일과 아르페지오를 익히고, 에튀드 등의 독주 작품을 연습하며 피아노 테크닉을 기른다. 폭넓은 시각으로 음악을 경험할 기회를 주기 위한 과정이다.

샌프란시스코 음악원 예비학교는 역시 학생들의 합주 경험을 적극적으로 격려한다. 특징적인 것은, 앙상블이 장르별로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로크 음악을 주로 탐구하는 ‘유스 바로크’나,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네 성부 합창을 위한 작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콜레기움’, 유니슨, 2~3개 성부 합창을 위한 작품을 탐구하는 ‘보칼리제’, 현대음악 앙상블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한편 커티스 음악원은 어린 나이라도 음악적 재능을 보인다면 음악대학에서 제공하는 수업을 동일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예비학교를 운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음대 입학 나이에 제한이 없지만, 어린 나이라면 필수로 실기와 이론 두 영역에 대해 추가 수업을 들어야 한다. 뉴잉글랜드 음악원 예비학교는 영재뿐 아니라 음악에 입문하고자 하는 모든 학생이 입학할 수 있다. 연주력 심사를 진행하지 않고, 입학한 학생들에게 목관·금관·타악·현악·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영국   실내악이 핵심

8~18세를 대상으로 하는 영국 왕립음악원 주니어 아카데미는 실내악을 핵심 요소로 꼽는다. 오케스트라 합주(주 1~2시간)와 함께 실내악을 필수로 매주 1시간씩 이수해야 한다. 이에 학생들은 매해 80여 개의 실내악단을 꾸린다. 리코더 앙상블부터 타악 앙상블까지 악기도 다양하고, 피아노 3중주부터 바로크 앙상블에 이르기까지 편성도 폭넓다. 매해 체임버 뮤직 데이 축제와 콩쿠르를 개최해 우승자에게는 왕립음악원 퍼셀룸에서 공연할 기회가 주어진다.

 

독일   장기적 안목으로

독일 대부분의 음대 역시 예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입학 제한 연령이 평균 10세 이상으로 한국이나 미국, 영국보다는 높은 편이며, 일반적으로 3년간의 교육과정을 밟는다. 개인 지도 시간도 보통 90분으로,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길다.

10~15세 영재를 대상으로 하는 쾰른 음대 예비학교에는 개인 지도와 음악 이론 입문, 화성학과 청음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돼 있다. 추가로 정신 훈련, 요가, 알렉산더 테크닉, 음악치료, 리듬, 움직임 등의 수업을 추가로 수강할 수 있다. 또, 커리어 컨설팅이나 여행, 무대 매너 수업 등도 제공된다.

하노버 음대 예비학교의 입학 연령 폭은 더 좁다. 13~16세다. 총 3년, 연간 34주의 교육 과정을 따른다. 개인 레슨과 음악학 및 청음, 그리고 리듬 교육이 필수과목이다. 선택적으로 실내악에 참여할 수 있고, 이외에 음악사, 제2악기, 반주 등의 수업이 제공되기도 한다.

뮌헨 음대 예비학교에는 현재 기악·성악·지휘·작곡 분야 학생 약 50명이 함께하고 있다. 입학 연령이 따로 지정돼 있지는 않지만, 성악 분야는 15세 이상이 권장된다. 전공 악기 수업 외에 아코디언, 발레, 리코딩, 지휘, 노래, 기타, 시대 악기, 재즈, 작곡 등을 경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격주 토요일에 제공되는 추가 선택과목으로는 음악 이론 및 청음 훈련, 음악사, 음악 분석, 공연 보조, 무대 공포 다루기, 알렉산더 테크닉, 기공(신체 움직임과 호흡 운동, 명상 등이 종합된 자기 치유법) 등이 있다. 앙상블 연습 및 공연 기회는 물론, 작곡 워크숍이나 오페라 견학도 제공된다.

프랑크푸르트 음대 예비학교에서는 개인 지도, 음악이론 및 청음 등을 비롯해 ‘새로운 음악’이라는 과목이 필수로 지정돼 있다. 독일 곳곳의 음대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게르하르트 뮐러 호른바흐 교수의 영향력이 발휘됐다. 합주에 있어서는, 상담을 통해 학생이 참여할 앙상블의 종류가 결정된다. 1~2학기 동안 한 앙상블에서 활동한 후 다른 편성의 앙상블도 경험할 수 있도록 권장된다.

 

헝가리   보헤미아의 역사가 남은 곳

리스트 음악원 영재원은 바이올린·첼로·피아노 분야 영재를 발굴한다. 이외 악기 전공자는 예외적으로 학교장의 승인이 있을 때만 입학할 수 있다. 영재원은 솔페이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솔페이지는 신체로 소리의 높낮이를 익히고 계이름으로 노래하며 청각을 훈련하는 음악교육법이다. 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뒀을뿐더러 입학시험에도 솔페이지 영역을 포함했다. 옥타브에 이르는 음간격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하며 장단조, 증감 화음 등에 대한 지식도 평가 대상이다. 또, 헝가리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으로, 민속음악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돼있다. 학생들은 입학시험 과정 중 출신국가의 민속음악에 대한 지식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part 5   국내외 예술영재교육 기사 돌아보기

객석이 담은 교육현장과 담론

‘객석’은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개원 이전인 1980년대부터 국내 영재 교육의 현황을 살피고, 더욱 건강한 음악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담론을 제시해왔다. 지난 기록은 오늘날 어떻게 해석될지, 이로부터 우리가 다시 고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글·정리 박찬미 기자

 

#1 영재교육의 필요성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국내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피아노 교육에 붐이 일었다. 1984년 8월호에서는 바람직한 피아노 영재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특집기사가 마련됐다.

 

전인교육을 외면한 영재육성은 잘못

4세에 악보를 읽고, 5세에 연주를 시작한 클라우디오 아라우(1903~1991)는 8세에 베를린으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선생은 더 많은 아름다운 음악을 배우고 싶어 하는 어린 신동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대신, 계속 연습곡만 치게 함으로써 음악에 대한 혐오감마저 느끼게 하였다.

이후 리스트의 제자인 마르틴 크라우제(1853~1918) 선생에게 배우게 되었는데 크라우제 선생은 소년을 박물관에 데리고 다녔고, 독서하게 했으며, 또래 친구들과 놀게 했다. 선생은 아라우에게 훌륭한 예술가는 모든 종류의 예술과 인생 그 자체에 흥미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6년 후 선생이 돌아가신 후, 16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라우는 다른 선생을 찾지 않았다. “크라우제 선생은 선생으로서 나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셨다. 더 이상은 나의 힘으로 해 나갈 수 있다.”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체계적인 지도가 필요

대학에서 화성학, 대위법 등의 과목을 배우기는 하지만 학생은 물론 많은 교수들이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에게 이론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도 않는 실정이다. 장래에 유능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이론 영역의 조기교육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2 세계 영재 교육기관 탐방


1991~1993년에 걸쳐 ‘객석’은 미국·영국·러시아·헝가리·일본 등 세계의 음악교육기관을 현장 취재해 연재했다. 그중 영재 교육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러시아 그네신 음악학교와 헝가리 리스트 음악원의 기사를 만나보자. 두 기관은 음악 외에도 성품과 인문과학 지식을 두루 함양한 전인적 예술가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학교, 참된 품성과 전문가적 솜씨 갖춘 음악가를 양성

그네신 7년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1주일에 2~3일, 하루에 2~3시간 이곳에서 음악을, 다른 보통학교에서 일반과목을 공부한다. 모스크바에만 해도 이런 예비학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생활의 한 부분으로서 음악을 받아들인다. 그야말로 음악인구 저변확대를 가능케 하는 교육체계인 것이다.

그네신 10년 특수음악학교는 철저한 영재음악 교육기관이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입학한 6~7세의 어린이들은 음악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 고도의 실기능력과 더불어 다른 일반 학교에서 배우는 공통과목까지 배운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공부량은 엄청나다.

아나 니콜라예브나 선생님은 “음악가는 반드시 광범위하게 교육받은 사람이어야만 해요.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음악이론과 인문과학 분야의 전반적인 학습을 받아야 하지요. 참된 품성과 고도의 전문가적 솜씨를 갖춘 음악가를 길러내는 게 그네신 특수음악학교의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헝가리 리스트 음악원, ‘진짜’ 영재만을 선발

영재를 위한 ‘특수학과’는 정규과정과는 별도로 리스트 음악원 내에 개설되어 있다. 입학시험에 통과한 음악 영재들은 리스트 음악원에서만 주 3회의 개인 레슨을 집중적으로 받고 여기에 주 2시간의 솔페지오·화성법, 그리고 주 1시간의 음악이론 및 음악사를 배운다. 피아노 전공이 아닌 학생들은 여기에 피아노까지 1시간을 더 배운다. 끝이 아니다.

훌륭한 음악가는 전공만을 잘함으로써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는 리스트 음악원의 교육 철학에 따라, 학생들은 각 초등학교나 김나지움에서 음악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다른 학생과 똑같이 이수해야 한다. 특수학과 책임자인 프란치쉬카는 “우리는 일반적인 상식과 지식이 없는 알맹이 없는 천재를 키워 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3 음악원 탄생은 필요한가


국내에서 음악 실기를 전문적으로 갈고 닦을 수 있는 전문 음악원 설립과 그 필요성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음악원과 음악대학의 이원화를 역설한 1984년도 9월의 특집 기사는 그동안 제시해온 해외 영재교육 선진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일부를 살펴보자.

 

음악원과 음악대학의 이원적 교육이 절실

학위수여를 원칙으로 한 현 우리나라 음악교육 제도는 전문적인 직업 음악가를 위한 교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음악학자나 교육자를 위한 교육에 치우친 면이 강하다. 해외 각국에서는 직업음악인 교육과 학자·교육자를 위한 교육으로 이원화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양자를 합친 단일제도이다. 또, 전공학과에 있어서도 상호관련성이 없는 과목이 많을 뿐더러 필요 이상의 많은 과목을 이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제도의 근본적인 원인은 예술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와 동일시하며 또한 학위수여 원칙과 학벌위주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된 것이다.

 

#4 반경을 넓히기 위한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노력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개원과 함께 예비학교 과정을 개설했다. 그리고 2008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 개원하며 예술영재 교육의 박차를 가했다. 영재원은 어딘가에서 반짝거리고 있을 영재를 발굴하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중 2015년 진행된 다문화예술영재발굴캠프는 음악적 재능을 지닌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시간이었다. 발굴캠프 속에서 그동안 연구해온 선진사례의 모습이 보인다.

 

숨어있던 희망의 새싹들, 피어나라!

다문화캠프 선발 심사에 참가한 학생들의 실력 편차는 큰 편이었다. 쇼팽 에튀드로 강한 인상을 보여준 학생이 있던 반면, 악기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심사는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었다.

한 달 후 개최된 다문화캠프 현장을 찾았다. 심사를 통해 선발된 20명의 학생과 부모가 참여했다. 한예종 홍승찬 교수의 ‘하이든의 세 가지 비밀’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비롯해, 한예종 강사진의 개인 레슨, 교수진의 마스터클래스 등이 진행됐다. 그 외에 전통악기, 아프리카 타악기, 발레를 체험해보는 시간과 ‘다문화의 이해’ ‘연극놀이’ ‘글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특히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우들과 가까워지고, 연기를 경험할 수 있었던 ‘연극놀이’가 큰 호응을 얻었다.

캠프의 마지막 날에는 수료식에 앞서 그간 레슨 받은 곡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캠프의 진행을 총괄한 김은지 교육사업팀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특화된 교육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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