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COLUMN
발레음악”
춤을 일구는 음악, 춤에 가려진 음악
발레 음악의 선구자 아당부터 하차투리안까지, 명반으로 살펴보는 발레 음악사
춤은 음악을 볼 수 있도록, 음악은 춤을 들을 수 있도록 긴밀한 관계로 엮여 있다. 발레 음악은 이러한 상호 보완적 존재가치로 인해 특별한 예술성을 띤다. 클래식 음악이지만 ‘발레 음악’으로서의 또 다른 정체성을 지닌 것이다. 이 특별한 예술 장르를 만들어온 음악가들과 그들의 발레 음악을 소개한다.
낭만발레의 주역 작곡가 아당과 푸니
최초의 발레로 기록된 1581년 프랑스 궁정에서의 ‘왕비의 희극 발레’ 이후, 현재와 같은 발레의 춤사위와 전막 발레 형태가 완성되기까지 약 2세기의 시간이 소요됐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막 발레는 1789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고집쟁이 딸’이다. 하지만 초연 당시 ‘고집쟁이 딸’의 음악은 당시의 유행가나 민요를 짜깁기한 것에 불과했다.
발레 음악다운 발레 음악은 19세기의 낭만발레에 이르러서 태동하기 시작했다. 세기의 발레리나 마리 탈리오니(1804~1884)의 등장과 함께 포인트 슈즈를 신고 추는 발레 테크닉이 발전했다. 그녀의 우아하고 가벼운 스타일의 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환상적인 이미지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유럽 발레의 중심지였던 파리를 무대로 소위 ‘탈리오니 스타일’의 낭만발레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1930~1940년대에 그 절정에 달했는데 그 중심에 작곡가 아돌프 아당(1803~1856)과 체사르 푸니(1802~1870)가 있었다.
아당의 대표작인 ‘지젤’(1841) 속 선율은 풍성하나 절제된 로맨틱 튀튀의 선과도 닮았다. 단순함과 우아함을 지닌 가장 발레다운 선율이다. 차이콥스키는 ‘지젤’의 악보를 어렵게 구해 교과서 삼아 발레 음악을 공부했다고 할 정도로 발레 음악으로서의 ‘지젤’은 후대에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몇 안 되는 ‘지젤’의 음반 중에 1961년 카라얀/빈 필하모닉의 연주 음반(Decca)❶을 소개한다. ‘지젤’은 초연 이후 개정이 거듭 이루어졌는데, 이때마다 새로운 음악이 추가되곤 했다. 이 음반은 최대한 아당의 원본 악보를 따라 연주한 녹음을 담고 있다.
푸니는 평생에 걸쳐 약 100편이 넘는 작품을 쓰며 발레 음악 외길만 걸었다. 유럽에서 러시아로 발레의 중심이 옮겨지는 흐름에 나란히 함께하며 낭만발레와 고전발레를 위한 음악을 모두 남겼다. 푸니의 발레 음악은 극적인 표현은 다소 부족하지만 다양한 동작을 끌어내는 리듬의 변화, 듣기 쉬운 선율이 돋보인다. 이 때문에 그의 음악은 춤곡의 나열에 불과하거나 춤을 위한 반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저평가되기도 했지만, 무용수가 오로지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큰 장점이다. 대표작으로는 ‘라 에스메랄다’(1844), ‘라 비반디에르’(1844), ‘파드카트르’(1845), ‘파라오의 딸’(1862) 등이 있다.
이렇게 아당과 푸니의 손끝에서 19세기 낭만발레가 꽃을 피웠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발레 음악은 대본과 안무에 종속된 ‘발레를 위한 음악’ ‘발레의 반주 음악’에 지나지 않았다.
아당을 잇는 계보 들리브
프랑스 낭만발레의 역사를 이은 마지막 작곡가가 있었으니, 바로 ‘코펠리아’와 ‘실비아’를 작곡한 레오 들리브(1836~1891)다. 들리브는 아당의 제자로, 발레 음악을 보다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 다양한 음악 형식을 발레에 도입했고, 연주회용 관현악 모음곡으로 편곡한 ‘발레 모음곡’을 창안했다. 또, 캐릭터 댄스의 효시가 되는 민속 무곡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담기도 했다.
‘코펠리아’는 1870년에 파리 오페라에서 초연되었다. 이 시기에 이미 낭만발레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러시아에서는 1860년경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영향 아래 고전발레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코펠리아’를 프랑스의 마지막 낭만발레 작품으로 본다. ‘실비아’(1876)의 초연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음악은 ‘코펠리아’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이콥스키는 이 작품을 보고 “음악이 더 부각되는 발레”라며 극찬했다. ‘실비아’의 음악은 이전의 단순한 선율과 반주, 형식화된 구성과 예측 가능한 화성 진행 등을 뛰어넘는 교향악에 가까웠다. ‘실비아’가 초연되었을 당시 프랑스의 발레는 이미 침체기였으나, 이 작품은 모음곡으로 꾸준히 연주될 정도로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실비아’의 명반으로는 1977년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꼽을 수 있는데, 지휘자 장 바티스트 마리의 대표 레퍼토리이자 1979년 프랑스 최고의 음반상 디스크 그랑프리를 수상한 LP이다. 이 녹음은 2009년 리마스터링되어 CD로 재발매(Warner)❷되었다.
프티파의 옷을 입다 밍쿠스와 드리고
프랑스에서 낭만발레가 쇠퇴하면서 발레의 중심은 러시아로 옮겨갔다. 러시아는 개혁 군주였던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정책으로 유럽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발레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황실 소속 발레 아카데미와 황실발레단(현 마린스키 발레)을 출범시키고, 유럽 출신의 뛰어난 안무가와 무용수를 고용하는 등 발레의 발전에 불을 지폈다.
그 중심에는 ‘고전발레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출신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가 있었다. 프티파는 발레 테크닉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보다 세련되고 다듬어진 클래식 발레 스타일을 확립했다. 프티파와 협업한 주요 작곡가가 바로 루트비히 밍쿠스(1826~1917)와 리카르도 드리고(1845~1930) 그리고 차이콥스키다.
밍쿠스의 대표작으로는 ‘돈키호테’(1871), ‘라 바야데르’(1877), ‘파키타’(1881) 등이 있다. 프티파와는 약 20편의 발레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프티파는 음악적으로 요구사항이 많았던 안무가였다. 이는 곧 프티파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음을 방증한다. 이들의 협업 작품은 동작과 음악이 거의 일치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밍쿠스의 음악이 딱 맞는 프티파의 옷을 입은 셈이다.
프티파가 만들어낸 주요 발레 형식 중에 그랑 파드되가 있는데, 밍쿠스 또한 ‘그랑 파드되 음악’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명곡들을 남겼다. 밍쿠스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답게 바이올린의 유려한 독주가 돋보이는 아다지오 곡들을 많이 남겼고, 종종 카덴차를 활용하기도 했다. 리차드 보닝/리차드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녹음된 ‘라 바야데르’의 음반(Decca)❸은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파니 곤리의 화려하고도 안정적인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프티파는 오래된 작품을 발굴해 새롭게 재안무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의 개정작 대다수에 참여한 작곡가가 리카르도 드리고다. 드리고는 본래 지휘자였으나 밍쿠스에 뒤이어 황실발레단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면서 프티파와의 협업을 시작했다. 드리고의 회고록에 따르면 프티파의 개정 작업을 위해 작곡한 곡이 무려 80곡이나 된다. 예를 들어, 푸니의 ‘라 에스메랄다’, 밍쿠스의 ‘돈키호테’, 아당의 ‘지젤’ ‘해적’ 등에 드리고가 작곡한 솔로 변주와 파드되 곡이 다수 삽입되어 있다.
전막 발레 대표작으로는 ‘탈리스만’(1889), ‘할리퀴네이드’(1900) 등이 있으나, 이 역시 전막보다는 파드되나 솔로 변주만 갈라 형식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러시아의 고전발레 작품들은 대부분 드리고의 손을 한 번쯤은 거쳐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발레 음악계 에투알 차이콥스키
앞서 언급한 발레 작곡가들의 이름은 분명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이콥스키(1840~1893) 이전의 발레 음악 작곡가들은 사실상 당시 이류, 삼류의, 소위 ‘마이너’ 작곡가로 간주됐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이 가려져 있었던 것은 발레 음악의 태생적 존재감에서 오는 한계 때문이었다. 발레를 위한 음악을 만들어내야 했기에 작곡가의 음악적 자아는 살며시 내려놓아야 했다.
주목받지 못했던 발레 음악의 반전이 바로 차이콥스키로 인해 일어났다. 그는 조역에 머물러 있던 발레 음악을 주역으로 끌어 올렸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은 뛰어난 음악성과 관현악법을 기반으로 한 음악과 춤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차이콥스키 이후 발레 음악이 발레와 동등한 위치로 급부상했고, 더 나아가 하나의 독창적 장르로서 그 예술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은 등장인물의 캐릭터 표현, 정경과 심리 묘사,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음악적 진행, 독창적인 관현악법, 다양한 리듬과 변박의 사용 등, 단순한 춤곡을 넘어서는 예술성이 돋보인다. 마치 춤에 종속되지 않는 듯한 자유로운 표현으로 춤과 극을 한층 성숙하게 했다. 대표작 ‘백조의 호수’(1877),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0), ‘호두까기 인형’(1892)이 ‘러시아의 3대 발레’나 ‘프티파의 3대 발레’가 아닌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많은 음반 가운데 전막 발레의 생생함이 느껴지는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백조의 호수’ 음반(Decca)❹을 추천한다. 앙드레 프레빈이 런던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재직하던 시절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를 모두 녹음한 음반(Warner)❺도 명반이다. 모음곡으로는 주빈 메타와 리차드 보닝의 지휘,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연주로 녹음된 음반(Decca)❻을 들어보자. 그중 메타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은 명불허전이다.
20세기 프랑스 발레,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프티파가 고수하는 고전발레 스타일이 진부해지기 시작했다. 프티파는 그 어떤 새로움과 개혁도 받아들이지 않고 은퇴하기까지 자신만의 고전발레 스타일을 고수했다. 새로운 변화는 파리에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1872~1929)였다.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뤼스는 당대 뛰어난 안무가, 음악가, 의상 디자이너, 미술가와 협업하는 종합예술로서 발레의 가치를 높였다. 디아길레프는 늘 새롭고 재능 있는 예술가를 찾았고, 스트라빈스키, 드뷔시, 라벨과 같은 뛰어난 작곡가들을 발굴했다.
특히 스트라빈스키(1882~1971)는 발레 뤼스의 대표 작곡가로 큰 인기를 누렸다.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인 ‘불새’(1910), ‘페트루시카’(1911), ‘봄의 제전’(1913)은 모두 디아길레프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특히 ‘봄의 제전’은 초연의 대소동이 있은 지 3년 후 관현악곡으로 무대에 오르면서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스트라빈스키 본인도 “이 곡은 발레의 그늘에 음악이 가려져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이 명맥을 이어온 것은 발레가 아닌 음악 때문이다. ‘봄의 제전’은 무용사와 음악사 통틀어 20세기의 획을 긋는 독창성 있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으며, 무용과 음악 모두 모더니즘의 시작과 확장으로 이어지는 데 의의가 있다.
무궁무진한 움직임의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봄의 제전’의 명반으로는 스트라빈스키 본인이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의 음반(Naxos)❼을 꼽을 수 있겠다. 1940년과 1946년에 녹음된 이 음반은 스트라빈스키 3대 발레의 모음곡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그중 ‘불새 모음곡’은 이 녹음을 위해 스트라빈스키가 1945년에 수정한 버전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고의 녹음으로 꼽는다. 리드미컬한 강점을 잘 살려낸 스트라빈스키의 기민한 지휘와 뉴욕 필의 연주가 돋보인다.
러시아 발레 음악의 명맥을 잇다 프로코피예프와 하차투리안
차이콥스키 이후, 멈춰있는 듯했던 러시아 발레의 계보를 다시 이은 두 작곡가가 있었으니, 바로 프로코피예프(1891~
1953)와 하차투리안(1903~1978)이다. 프로코피예프는 ‘로미오와 줄리엣’(1940), ‘신데렐라’(1944)를 하차투리안은 ‘가이느’(1942), ‘스파르타쿠스’(1954)를 작곡했다.
프로코피예프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디아길레프를 만나 ‘강철의 걸음걸이’ ‘방랑아’ 등의 발레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 러시아로 귀향하여 그가 제일 처음 작곡한 작품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프로코피예프는 그동안 서유럽의 모더니즘을 추구해왔지만, 다시 만나게 된 자국민을 위해 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시도했다. 낭만성이 돋보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더니즘에서 낭만주의로 시대를 역행하는 ‘성공적인 후퇴’를 한 작품이다. 낭만과 비극, 양극의 감정을 끌어내는 프로코피예프 음악의 힘은 ‘드라마 발레’라는 새로운 장르의 길을 열었다. 게르기예프/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실황 음반(LSO Live)❽이 주목할 만하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의 키로프 오케스트라(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음반(Philips)❾도 마린스키 발레단과의 오랜 호흡을 자랑하듯 춤을 불러일으키는 연주이다.
하차투리안은 자신의 본국이었던 아르메니아의 민속 음악을 활용해 이국적인 발레 음악을 만들어냈다. 칼춤으로 유명한 ‘가이느’뿐 아니라, ‘스파르타쿠스’에서도 민속음악 요소를 들을 수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에너지 넘치는 남성 군무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20세기의 발레는 더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환기하며 남성 발레의 매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주인공의 파드되인 3막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가이아의 아다지오’가 가장 명곡으로 꼽힌다. 이 곡은 방송, 영화나 TV광고,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 등에 쓰여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이 되었다. 1962년 하차투리안 본인이 지휘한 빈 필하모닉의 연주 음반(Decca)❿이 있다. ‘그라모폰’ 지는 이 음반에 대해 “유난히 강렬하고 매우 좋은 연주”라고 평했다. ‘스파르타쿠스’와 ‘가이느’의 하이라이트가 발췌되어 있다.
클래식 명곡들의 재탄생, 드라마 발레
20세기 들어 발레는 현대무용으로의 새로운 흐름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통을 지키면서 변화를 시도하는 클래식 발레 역시 계속되었다. 그중 음악적으로 주목해야 할 작품은 바로 존 크랑코 안무의 ‘오네긴’(1965)이다. ‘오네긴’은 차이콥스키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만든 드라마 발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쿠르트 하인즈 슈톨체(1926~1970)의 뛰어난 편곡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슈톨체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소품, 오페라 등을 엮으면서도, 라이트모티프 기법을 사용해 전막 발레로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완성했다. 단순히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모아 편집한 것이 아닌, 마치 차이콥스키가 전막 발레로 작곡한 듯 재창조한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클래식 음악을 사용해 드라마 발레를 만드는 것이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전막 발레의 양상 중 하나였다. 쇼팽의 음악으로 만든 존 노이마이어 안무의 ‘카멜리아 레이디’(1978), 마스네의 음악으로 만든 케네스 맥밀런 안무의 ‘마농’(1974) 등, ‘오네긴’을 시작으로 기존의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드라마 발레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형식의 발레 작품이 음반으로 기록된 사례는 ‘오네긴’이 유일하다. ‘오네긴’을 초연했던 슈투트가르트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1999년 발매한 음반(Animato)⓫이다. 국립발레단 공연을 위해 자주 내한하는 제임스 터글의 지휘로 만날 수 있다.
글 김지현(발레 피아니스트·‘발레 음악 산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