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클래식의 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0월 18일 9:00 오전

“SPECIAL
경상도 클래식의 힘!”

경상도 클래식의 힘!

구국제오페라축제 9.10~11.7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 10.15~11.28

포항음악제 11.5~11

한국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수도 서울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 전쟁기에 피난 간 음악가들은 점차 경상권에 자리 잡았고, 이후 음악 교육과 공연의 터전을 일구었다. 이러한 뿌리는 공연장과 예술단 설립이라는 줄기로 뻗어나갔고, 오늘날에는 축제라는 잎사귀와 열매로 맺혔다. 이번 특집은 이러한 역사와 동력을 토대로 다져지고, 다져나갈 경상권의 음악 축제들을 소개한다.
인터뷰·프리뷰·리뷰 정갑균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예술감독 & 공연 소개 /
리뷰 한경진 WOS 비르투오소 챔버 악장 & 공연 소개
박유신 포항음악제 예술감독 & 공연 소개

INTERVIEW 1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9.10~11.7

예술감독 정갑균

말은 제주도로, 오페라는 대구로

오페라는 처음에 작곡가의 산물이었다. 베르디·푸치니와 같은 유명 작곡가가 오페라의 발전을 이끌었다. 칼라스·카루소·파바로티 등 인기 성악가들이 오페라 붐을 일으키던 20세기를 지나 오페라는 이제 연출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독일 레지테아터 극장을 시작으로 화제의 중심에 연출가가 서고, 같은 작품이라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대구오페라하우스(대표 박인건)는 신임 예술감독으로 오페라 연출가 정갑균을 선임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제작극장으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2013년부터 예술감독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정 예술감독은 국내에 오페라 연출의 토대가 마련되기도 전인 1995년부터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14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대구와도 깊은 인연을 자랑한다. 그간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통해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2008),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2010), 김성재 ‘청라언덕’(2012), 진영민 ‘가락국기’(2015), 베르디 ‘운명의 힘’(2019)까지 굵직굵직한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지난해 코로나로 연기된 이후 2년 만에 개최된다. 신임 예술감독 취임 이래 처음 선보이는 축제라 더욱 기대를 모은다. 정갑균 예술감독에게 이번 축제의 방향과 예술감독으로서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지난 4월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 먼저 소감을 듣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오페라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극장이 몇 군데 존재하지만, 운영시스템을 살펴보면 여느 문화예술회관과 성격을 달리 보기 힘들다. 그러나 대구오페라하우스는 1년 내내 오페라만 공연할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는 감사하게도 선배 예술인들의 노고가 있었고, 뛰어난 예술적 감성을 지닌 대구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말은 제주도로, 오페라는 대구로”라는 표현이 떠오를 만큼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20년에 달하는 긴 역사 속에서 오페라 전문 제작극장으로 발전해온 방향성을 앞으로도 잘 유지하겠다.
연출가가 아닌 예술감독으로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이끌게 됐다. 올해 축제에서 선보이는 여러 작품들을 ‘연출’이라는 코드로 묶어본다면, 어떤 방향성을 안고 있나? 장기화된 코로나의 영향으로 지쳐가는 시민들과 예술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치유’를 주제로 삼았다. 축제에 있어 주제란 축제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기 때문에, 주제 선택부터 선정된 작품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다만, 올해는 작품별로 공통된 주제의식을 담기보다, 위로와 치유라는 예술의 역할에 주목했다.
수십 년간 세계 각국의 축제와 공연 현장에서 쌓은 경험은 큰 자산일 테다. 롤모델로 삼는 축제가 있는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지역적 요소가 잘 녹아들어 있다. 국가와 도시의 위대한 음악적 자산인 모차르트의 작품은 물론이고, 현대오페라를 발굴하고 기존 작곡가의 작품을 제작하는 데도 변화의 물결을 잘 반영한다. 이런 점에서 대구국제오페라축제도 대구라는 지역에 잘 어울리도록 발전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나아가 아시아에서 유일한 오페라 축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직 노력해야 할 단계다.
‘지역화’와 ‘세계화’는 언뜻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까? 극장이 어디에 있든, 내가 머무르는 곳에서 최고의 작품들을 만들면 되지 않나. 나의 대표작으로 꼽고 싶은 작품이 두 편 있다. 하나는 1998년 동양인 연출가 최초로 푸치니 오페라 페스티벌 무대에 나를 세워준 ‘나비부인’이고, 또 하나는 창극 ‘나운규, 아리랑’(2016)이다. 후자는 떠나온 세계무대를 그리워하던 나의 가치관에 큰 변화를 주었다. 세계인들이 흠모하는 작품들과 겨뤄보자, 내가 이 작품만큼은 거장 연출가인 로버트 윌슨(1941~)을 이겨보겠다,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작품이었다. 절치부심했던 공연이 끝난 후 어느 관객으로부터 ‘로버트 윌슨의 작품 이후로 나를 이렇게 놀라게 한 작품은 처음이다’라는 찬사를 듣고 그야말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번에 공연되는 6편의 ‘메인 오페라’ 시리즈에서 대구오페라하우스 제작 작품은 푸치니 ‘토스카’(9.10·11)와 베르디 ‘아이다’(10.22·23)로 모두 이탈리아 오페라다. 내년엔 창작오페라 제작을 기대해도 될까? 먼저, 이제는 ‘창작오페라’라는 말을 버려야 할 시대가 온 것 같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발원된 오페라가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독일오페라’ ‘체코오페라’ 등 언어와 국가로 오페라를 분류하는 경우는 있지만 ‘창작오페라’로 분류하는 곳은 거의 전무하다. 언젠가 한국어로 쓰인 오페라가 전 세계 극장에 올라가게 될 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한국오페라’를 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르네상스 시대 오페라의 탄생을 알렸던 연구회 ‘카메라타’처럼 ‘대구오페라 카메라타’를 창설하였다. 이곳에서 이루어질 도전과 노력의 결과물이 대구오페라, 나아가 한국오페라의 모습으로 등용되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축제 부대행사도 마련되어 있다. 그중 30인 이상의 중소규모 단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찾아가는 오페라 산책’, 공연 당일 작품에 관한 기초정보를 알려주는 ‘프레토크’, 오페라 전문 평론가를 초청해 심도 있는 강의를 진행하는 ‘특별강의 오페라 오디세이’ 등 단계별로 준비한 강연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오페라에서 얼마나 통용되는가? 좋은 것은 너무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오페라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의 최고봉에 있다. 굉장히 격조가 높고 풍미, 예술성에 있어서 탁월한 반면 대중에게는 그런 점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취미로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장비를 구입하고 연습하는 것처럼, 오페라를 배우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오페라 관련 사전지식은 물론, 작품과 교감하려는 연습을 거쳐야 할 것이지만, 그 후에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실로 거대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코로나의 여파로 국제 교류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뮤직홀, 크라스노야르스크 국립오페라발레극장과 합작하여 선보일 예정이었던 보로딘의 ‘프린스 이고르’(11.6·7)가 러시아 현지 사정으로 취소되는 난항을 겪었다. 지금의 상황이 개선되면 초청하고 싶은 해외 창작진이 있나. 현대 연극의 거대한 축을 맡고 있는 연출가 로버트 윌슨! 윤이상(1917~1995)의 ‘심청’, 진은숙(1961~)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작품을 필두로 가능한 생존하는 작곡가의 현대오페라를 아방가르드하며 미래지향적인 연출가에게 맡겨 형상화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앞으로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으로서 오페라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고 싶은가. 대구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된 세계 100여 개 도시 중 하나이다. ‘창의(創意)’란 말 그대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옛것을 기반으로 현재를 풍요롭게 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여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창의의 개념처럼 해방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대구의 음악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고자 한다. 특히 내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전 세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와의 교류를 통해 오페라 부문에서 음악창의도시의 가장 선두에 설 수 있는 축제로 틀을 제시하고 나아갈 예정이니 기대 바란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정갑균 중앙대 음악과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로마 연극학교에서 수학했다. 국립창극단 상임연출가와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중앙대, 영남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REVIEW

그 순간의 아우라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 ‘토스카’ 올해로 18회를 맞이하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지난 9월 10일 시작되었다. 이날부터 11월 7일까지 6개의 그랜드오페라를 중심으로 오페라 콘체르탄테, 갈라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9월 10일 개막식 행사를 지켜보며 설렘을 느낀 사람이 필자 한 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초가을 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성악가들과 대구시립합창단, 앙상블이 연주한 오페라 아리아와 ‘개선행진곡’ 등 우렁차고 화려한 사전 공연이 있었다. 그리고 참석 내빈 소개와 인사말, 테이프 커팅식, 개막 선언으로 이어지는 익숙하고도 의례적인 그 행사는 새삼 반갑게 여겨졌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고 입장을 위해 체온측정과 QR코드를 확인하느라 분주한 과정이 추가됐지만, 이제는 예년과 같은 풍경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깨지는 벅찬 순간이었다.
이날 공연된 오페라 ‘토스카’는 이런 관객들의 기대를 한껏 충족시켜준 공연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줄리안 코바체프가 이끄는 대구시향은 압도적인 연주력을 바탕으로 성악가들을 뒷받침하며 오페라를 이끌어나갔다. 현악의 유려한 울림과 관악 파트의 명료한 음색에 이르기까지, 푸치니 오페라 특유의 선율과 화성이 갖는 매력을 넉넉하게 보여줬다. 대구오페라하우스 객석 리모델링의 결과 덕분인지 첫 소절부터 더욱 선명하고 풍성하게 들려오는 소리의 변화가 확연히 느껴져 현장에서 감상하는 즐거움이 배가됐다.
연출을 맡은 정선영은 주관이 뚜렷한 연출가로 알려져 있다. 이 오페라에서도 기존에 많이 볼 수 있던 제피렐리 스타일의 ‘토스카’에서 벗어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무대로 승부를 걸었다. 1막 ‘테데움’ 장면이나 2막과 3막에서 쉴 틈 없이 전개되는 긴박한 순간에 보여준 인물의 움직임과 동선은 신선했다. 동시에 인물의 내밀한 심리까지 세심하게 표현하여 공감을 끌어냈다.
그는 무대디자인까지 맡아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무대로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의도를 일관되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최근 우리 오페라에서는 1막에서 카바라도시가 그리는 막달라 마리아의 존재감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게 부각시킨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화가들의 명화 두 점을 재구성한 무대 위 성당 벽화는 은은한 색감 속에 격조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오롯이 음악과 극의 흐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토스카 역할의 소프라노 이명주는 금속성이 느껴지는 예민한 음색과 안정된 발성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풍부한 성량까지 더해지며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절창으로 선보여 큰 갈채를 받았다. 바리톤 정승기는 악역에 걸맞은 부피감이 느껴지는 소리와 연기력으로 강렬하게 스카르피아 역을 소화해냈다. 또한 대구시립합창단과 함께 웅장하고도 숨 막히는 분위기의 ‘테데움’을 연주해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카바라도시를 맡은 테너 신상근 역시 흔들림 없는 미성과 빼어난 연기로 주요한 아리아를 매끄럽게 소화해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만, 주역 3인 오페라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작품에서 섬세한 음색의 소유자인 그와 강한 재질의 가창을 보여준 이명주·정승기의 조합이 완벽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토스카’는 높은 완성도로 좋은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날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진 열광적인 반응의 원인이 이 한 가지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수많은 비대면 공연의 시도가 이뤄졌다. 공연예술도 패러다임 자체가 뒤흔들리는 변동을 겪고 있다. 1년 반 가까이 반강제적 실험을 하고 나니, 공연예술의 변하지 않는 본질적 특성이 오히려 분명해지는 느낌이다. 되살릴 수 없는 현장의 아우라를 함께 만들어 낸다는 것, 이날 밤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다시금 깨달은 것이기도 하다.
글 손수연(오페라 평론가)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PREVIEW

남은 축제 기간, 어떤 오페라가 기다리고 있을까?

1 영남오페라단·대구오페라하우스
‘윤심덕, 사의 찬미’
10월 1일 대구오페라하우스
진영민(작곡)/김하나(대본)/김귀자(예술감독)/김봉미(지휘)/정철원(연출)/이화영(윤심덕 역)/이승묵(김우진 역)/노운병(홍난파 역)/디오 오케스트라·대구오페라콰이어 외
일제강점기의 소프라노 윤심덕(1897 ~1926)의 사랑과 인생을 다룬 4막 오페라로 2018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억압된 환경에서도 나라와 예술에 헌신했던 인물들과 대구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독립운동 등 잘 알려지진 않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룬다. 대구 출신 작곡가 진영민, 대구시립극단 상임연출가 정철원이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뭉쳤다.
2 대구오페라하우스
‘아이다’
10월 22·23일 대구오페라하우스
주세페 베르디(작곡)/안토니오 기슬란초니(대본)/정갑균(예술감독)/김덕기(지휘)/이회수(연출)/조선형·김은주(아이다 역)/이정원·하석배(라다메스 역)/양송미·사비나 김(암네리스 역)/디오 오케스트라·대구오페라콰이어 외
베르디 후기 대표작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장군 라다메스와 노예로 끌려온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다. 아름다운 선율의 성악 및 관현악은 물론, 대규모 합창과 발레로 볼거리를 자랑하는 ‘그랑 오페라’의 정석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제15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폐막작으로 올랐던 프로덕션이다.
3 국립오페라단
‘삼손과 데릴라’
10월 29·30일 대구오페라하우스
카미유 생상스(작곡)/페르디낭 르메르(대본)/세바스티안 랑 레싱(지휘)/아흐노 베르나흐(연출)/국윤종(삼손 역)/이아경·김정미(데릴라 역)/사무엘 윤·이승왕(다곤의 대사제 역)/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노이오페라코러스 외
국립오페라단이 세계무대에서 활약 중인 연출가 아흐노 베르나흐, 부드러운 지휘로 서정성을 극대화하는 세바스티안 랑 레싱과 함께 대구를 찾는다.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는 그의 오페라 중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품.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색채의 음악이 생상스의 아름다운 선율과 어우러진다. (테너

국윤종과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의 인터뷰가 궁금하다면 88쪽으로)

 

4 이탈리아 모데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

‘청교도’
11월 6·7일 대구오페라하우스
빈첸초 벨리니(작곡)/카를로 페폴리(대본)/마르첼로 모타델리(지휘)/프란체스코 에스포지토(연출)/줄리오 펠리그라·석정엽(아르투로 역)/데지레 란카토레·김정아(엘비라 역)/엘리아 파비안(리카르도 역)/디오오케스트라·위너오페라합창단 외
기품이 묻어나는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으로 자리잡은 벨리니 최후의 작품 ‘청교도’가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폐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17세기 청교도 혁명을 배경으로 청교도 요새 성주의 딸 엘비라와 왕당파 기사 아르투로의 사랑과 이들을 둘러싼 청교도 장교 리카르도, 엘비라의 숙부 조르지오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끈다. 이탈리아 모데나코무날레극장의 2017년 작품이다.

venue & art company

대구 오페라를 빛내는 곳

1 대구오페라하우스
2003년 전국 최초 오페라 전용 단일극장으로 설립된 1,602석 규모의 공연장이다. 상주단체로는 디오 오케스트라와 대구오페라콰이어가 있다. 기획공연과 대형오페라는 물론 자체 제작 오페라가 2010년 중국을 시작으로 독일·터키·폴란드·이탈리아·대만·헝가리 등 해외로 진출하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대표사업인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 건립과 동시에 시작됐다. 국내외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는 축제로, 평균 84%의 객석점유율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올해 축제에서는 관객석 교체공사를 진행해 새롭게 단장한 공연장을 관객에게 처음 선보인다. 시야 방해를 줄이고 음향효과를 개선했다.
또한 실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기 위한 ‘오펀 스튜디오’ ‘오페라 유니버시아드’ ‘영아티스트 오페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시민들의 오페라 입문을 위해 주요 장면에 해설을 곁들인 ‘렉처 오페라’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오페라 이외에도 발레, 콘서트 등 다양한 분야의 공연을 개최해 대구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디오 오케스트라
2004년 오페라 사회문화 중심화와 클래식 대중화에 뜻을 함께하는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오케스트라다. 37명의 해외 유학파 출신 및 경험과 역량을 갖춘 젊은 연령대의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오페라페스티벌오케스트라로 창단되었다가, 2021년 디오 오케스트라(DIO Orchestra, 대구국제오페라오케스트라)로 단체명을 변경했다. 오페라 전문 오케스트라로 시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오페라 연주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상주예술단체로, 대구오페라하우스의 기획공연과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연주를 전담한다. 박은지가 음악감독 겸 악장을 맡고 있다.
3 대구오페라콰이어
2019년 창단된 오페라 전문 합창단으로, 40명의 젊은 성악 전공자들로 구성된 대구오페라하우스 상주예술단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및 오페라 기획공연에 출연하고 있으며,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도 ‘윤심덕, 사의찬미’(10.1), ‘아이다’(10.22·23)의 합창을 맡는다.
글 김민주 수습기자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interview 2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
10.15~11.28
WOS 비르투오소 챔버 악장 한경진
축제와 호흡하는 악단
축제에 의한, 축제를 위한 오케스트라가 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나 루체른 페스티벌을 보면 축제만큼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명성이 자자하다. 국내의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해외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출신 연주자들로 결성된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PFO), 통영국제음악제의 홍보대사 역할을 담당하는 TIMF앙상블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보러 축제를 찾는 관객도 늘어나고 있다.
2013년에 대구에서 시작된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WOS)는 지난해 ‘WOS 비르투오소 챔버’를 창단했다. 각 단원들은 국내외에서 솔리스트로 활동을 펼친 대구 출신 연주자들이다. 특이점은 오케스트라가 아닌 현악 앙상블이라는 점. 규모는 작을지라도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단단함이 깃들어 있다. 올해도 WOS 비르투오소 챔버가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의 한 축을 담당한다.
축제 개막 공연(10.23)을 시작으로 화성(10.26)과 서울(10.27)에서 투어를 진행해 대구 음악의 우수성을 알릴 예정이다. 이번 해에는 지휘자 타니아 밀러(1969~)가 멘델스존 현악을 위한 교향곡 10번, 엘가 ‘서주와 알레그로’를 지휘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은 피아졸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의 협연자로 선다.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며 대구 음악인들을 양성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한경진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악장을 맡아 앙상블을 이끈다.
다시 WOS 비르투오소 챔버와 함께하게 된 소감은? 전도유망한 대구의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작년 공연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난해 코로나 초기에 대구는 유독 더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힘든 시국에 대구콘서트하우스(관장 이철우)의 참신한 기획으로 대구 시민들이 문화에 대한 목마름을 적게나마 해소했다고 생각한다.
WOS 비르투오소 챔버는 대구 지역의 연주자들이 모여서 구성했다. 현재 경북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지역 클래식 음악계의 특징이 있다면? 대구는 서울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오페라 극장이 있을 정도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도시다. 그 어떤 지역보다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의 수준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대구 곳곳에는 좋은 교수진들이 분포해있다. 훌륭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1년 내내 다양한 음악 축제가 열리는 도시다.
언급한 대로 대구국제오페라축제·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등 우리나라 대표 공연 축제가 주로 대구에서 열린다. 이러한 ‘힘’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좋은 연주자들을 섭외하려면 무엇보다 자본력이 탄탄해야 한다. 대구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시민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축제가 대거 탄생했다고 본다.
WOS 비르투오소 챔버는 통영국제음악제와 함께 호흡하는 TIMF앙상블처럼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를 위한 페스티벌 악단이다. 오케스트라가 아닌 체임버 편성으로 악단을 구성한 이유가 궁금하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지만 완성도 있는 연주가 우리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소규모 체임버는 악단 운영에 따른 여러 제약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어서 전략적으로 택하게 됐다.
앞으로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 외에도 다른 연주 활동을 할 계획인가? 상황이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상상도 못했던 가슴 벅찬 일들이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월 23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을 시작으로 경기(10.26/반석아트홀), 서울(10.27/영산아트홀)에서 투어를 이어간다. 수도권 지역에서도 공연을 진행하는 이유는? 우리가 준비한, 풍성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떠오르고 있는 화성시와 대한민국 대표 경제중심지인 여의도에서 대구의 수준 높은 소리를 선물로 드리려 한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 타니아 밀러와 함께하게 됐다. 지난 시즌 KBS교향악단의 지휘봉을 들어 화제를 모은 여성 지휘자인데. 캐나다 출신의 마에스트라 타니아 밀러와 함께 공연하게 되어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린다. 작년에 호흡했던 지휘자 여자경이 참 인상 깊었다. 예리한 분석, 따뜻함과 경쾌함이 공존하는 지휘였다. 타니아 말러는 어떤 모습으로 음악을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대구콘서트하우스
한경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라이프치히 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수원시향 악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북대 조교수이자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 카이로스앙상블 단원으로 활약 중이다.

pREVIEW

시대와 호흡하는 축제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
첫 시작은 2013년 대구시민회관 재개관 기념으로 열린 아시아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이었다. 2016년 시민회관이 대구콘서트하우스로 개칭한 후에는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매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파리 오케스트라·빈 필하모닉 등 해외 유수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대구 시민에게 경제적 부담 없이 질 높은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는 장기화된 코로나 상황에 발맞춰 해외 지휘자가 이끄는 국내 악단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대구가 사랑하는 코바체프/대구시향(10.15/11.19)은 두 차례의 연주를 선보인다. 개막공연에선 바이올리니스트 정원영이 시벨리우스 ‘슬픈 왈츠’ Op.44를, 19일에는 피아니스트 김규연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함께한다. 백진현/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10.26)은 바이올리니스트 에릭 실버거와 함께하고, 츠베덴/KBS교향악단(10.30)은 베토벤 교향곡 5번으로 대구의 밤을 물들인다. 최수열/창원시향(11.11)은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과 함께 크루셀 클라리넷 협주곡 2번, 알렉세예프/울산시향(11.14)은 호쾌한 타건으로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박종화와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선보인다. 자네티/경기필(11.28)은 스트라빈스키의 ‘아폴른 뮈자제트’ 1947년 버전을 연주하고, 악장 한경진을 필두로 대구의 아티스트가 모여 창단한 WOS 비르투오소 챔버(10.23)는 지휘자 타니아 밀러,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과 함께해 주목을 끈다.
공연 50분 전마다 진행하는 ‘비포 더 콘서트’도 주목할 만하다. 그날 연주되는 곡의 시대 배경에 대한 설명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높인다. ‘위드 코로나 시대의 공연예술 활성화를 위한 오케스트라와 공연장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오케스트라 포럼을 개최해 심도 있는 토론 시간도 펼칠 계획이다.

다음 세대와 호흡하는 축제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는 미래 세대 음악가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축제에선 평소 클래식 음악을 접하기 어려웠던 어린이들에게 교육 프로그램 ‘리틀 클래식 탐험대’를 제공했고, 자체 운영하는 솔라시안 유스 오케스트라를 통해 젊은 연주자들에게 무대 기회를 선사한 바 있다.
올해도 클래식 음악 꿈나무들을 응원하는 프로그램을 여럿 모색한 결과 지휘자와 학교 및 예술단이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지휘자 금난새와 경북예술고등학교를 비롯하여 대구 유스 오케스트라(서찬영), 대구공업고등학교 관악부(강무성), 화성 M.I.H 예술단(박성균), 펠리체심포니오케스트라(이충근)가 매칭되어 뜻깊은 공연을 선사한다. 특히 올해 공연은 관악 학도를 위한 공연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 안희찬/대구관악합주단(11.12), 신병기/코리아윈드필하모니(11.21)의 시원한 관악 팡파르가 대구의 가을밤을 더욱 시원하게 만들 예정이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대구콘서트하우스
2021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
10월 15일 줄리안 코바체프/대구시향(협연 바이올리니스트 정원영)
10월 23일 다니아 밀러/WOS 비르투오소 챔버(협연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
10월 26일 백진현/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협연 바이올리니스트 에릭 실버거)
10월 30일 얍 판 츠베덴/KBS교향악단
11월 11일 최수열/창원시향(협연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
11월 14일 니콜라이 알렉세예프/울산시향
11월 19일 줄리안 코바체프/대구시향(협연 피아니스트 김규연)
11월 28일 마시모 자네티/경기필

venue & art company

대구 오케스트라 문화의 중심

1 대구콘서트하우스

1975년 개관한 공연장으로, 2011년부터 2년간 진행된 공사를 통해 음향시설을 개선하여 2013년 재개관했다. 약 1,200석 규모의 그랜드홀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최적화된 음향을 자랑한다. 무대 면과 객석 사이가 인접해 관객의 몰입감이 높다. 약 200석 규모의 챔버홀은 빛이 쏟아지는 형상을 표현하는 구조로, 음향과 시야 측면에서 연주자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주요 기획 프로그램으로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초청해 공연하는 ‘명연주 시리즈’, 단 200명의 관객만을 초대하는 ‘인사이트 시리즈’가 있다. 또한 2013년부터 마린스키 오케스트라·파리 오케스트라·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국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초청하는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구 아시아 오케스트라 페스티벌)’를 개최해왔다.
올해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는 10월 15일 줄리안 코바체프/대구시향의 정기연주회로 시작해 11월 28일 막을 내린다. 상주예술단체로 대구시립교향악단과 대구시립합창단이 있다.

2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

1964년 창단된 오케스트라로, 대구콘서트하우스의 상주예술단체다. 정기연주회, 기획연주회, 공연장을 벗어나 관객들을 찾아가는 ‘시민행복콘서트’, 지역 클래식 음악계 유망주 발굴과 육성을 위한 ‘청소년 협주곡의 밤’, ‘대학생 협주곡의 밤’ 등 다양한 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세계무대로 뻗어 나가고 있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를 위한 도쿄·오사카 공연을 시작으로, 도쿄에서 개최된 2011 아시아오케스트라위크 개막 공연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독일·체코·오스트리아 유럽 3개국 투어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불가리아 출신으로 카라얀을 사사하고 1984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한 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가 2014년부터 현재까지 대구시향을 맡아 이끌고 있다. 오는 10월 15일 제478회 정기연주회(협연 정원영)와 10월 28일 제20회 대학생 협주곡의 밤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3 대구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박지운

1981년 만들어진 합창단으로, 대구콘서트하우스의 상주예술단체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전 시대를 아우르는 음악을 소화함과 동시에, 민요와 가곡 등 우리 정서와 신명을 담은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힘쓰고 있다. 싱가포르·독일·프랑스 등에서 초청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상임지휘자 박지운은 경북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프로시노네 국립 음악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작곡·합창 지휘까지 3개 전공의 학위를 획득했다. 오페라 ‘운수 좋은 날’ ‘선덕여왕’ ‘정몽주’ 작곡으로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어, 대구시립합창단의 오페라 부문 발전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번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도 줄리안 코바체프/대구시향과 함께 푸치니 ‘토스카’를 함께 공연했다. 이외에도 정기·기획연주회, 찾아가는 연주회, 국내외 초청연주회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글 김민주 수습기자 사진 대구콘서트하우스

INTERVIEW 3

포항음악제 11.5~11 예술감독·첼리스트 박유신 동해 바다로 모인 실내악
잠깐의 귀향이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즐거운 ‘기억의 시작’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제의 제목도 ‘기억의 시작’으로 지었다. 첼리스트 박유신이 예술감독이 되어 포항시민들에게 처음으로 선사하는 포항음악제이다.
포항음악제와 관련된 보도자료를 보고 좀 놀랐다. ‘철학(鐵學)문화도시 포항’이라. “철(鐵), 현을 켜고 뜨고 두드리며 철(鐵)은 강인하고 차갑지만 그 울림으로 우리 삶은 여유롭고 따뜻해진다”는 문구가 와 닿는다. 포항은 제철 산업이 발달한 곳이고, 도시의 이미지도 이와 직결되어 있다.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도 이러한 도시이미지를 반영한 축제다. 그리고 철은 현악기에서 현을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이지 않은가.
포항에서 나고 자랐다. 음악을 공부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면? 손에 꼽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회가 드문 도시였다. 그래서 표시해두었다가 하나씩 관람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2009년에 정명화 선생이 포항시향과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협연한 공연이다.
페스티벌에 대한 ‘좋은 추억’이 ‘좋은 축제’를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예전에 정명화가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시절에 나누었던 인터뷰에서 “1969년에 스폴레토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 정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드레스덴 국립음대 재학 시절 은사 에밀 로브너 교수를 따라 드레스덴 인근에서 열린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 카잘스 페스티벌 등에 참가하곤 했다. 그중 우트빌 페스티벌이 떠오르는데, ‘작은 마을’의 ‘작은 축제’였지만, 음악에 관한 ‘큰 경험’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주민들의 집에서 음악가들이 홈스테이를 했고, 나 역시 그 혜택을 받았다. 작은 옥탑방에 머물렀는데, 그 공간이 주는 아늑함,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주민들이 공연은 물론 마스터클래스까지 구경하며 음악과 축제의 분위기를 즐겼다.
그런 추억을 토대로 포항음악제를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선사하고 싶나? 관객들을 위해 일단 다양한 음악들을 펼쳐놓았고, 그 음악들을 즐기기 바랄 뿐이다. 그래서 제목도 ‘기억의 시작’으로 지었다. 음악과 만나 생긴 즐거운 ‘기억’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예술감독과 인터뷰를 할 때, 곤란한 질문인지는 알지만 늘 하는 질문이 있다. 예술감독으로서 관객의 수요와 성향 등을 파악하고 있을 텐데, 포항음악제를 찾는 관객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공연을 꼽는다면? 11월 5일 ‘탄생’이라 이름 붙인 개막 공연이다. 이승원의 지휘로 포항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함께 한다. 카푸스틴(1937~2020)의 첼로 협주곡 2번(박유신 협연)과 제럴드 핀치(1901~1956)의 성악곡 ‘탄생의 날’(서선영 협연)을 한국 초연으로 선보인다. 카푸스틴의 음악에는 클래식과 재즈가 융화되어 있어 관객들에게 듣는 재미를 줄 수 있고, ‘탄생의 날’은 말 그대로 축제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선곡했다.
두 초연곡이 있어서 흥미로운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뷰 전에 서선영에게 곡에 대해 물어보니, 자신도 박 감독이 선곡해줘서 처음 공부하는 곡이라고 하더라. 나는 처음에 그녀가 선곡한 줄 알았다. 사실 감독직이란 게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다. 음악가 ‘섭외’가 무대 위에서의 ‘연주’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음악과 나의 애정 관계도 생각해보고 있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살림을 꾸리는 데에서 오는 보람이 있다면? 연주가 무대를 ‘음악’으로 채우는 작업이라면, 페스티벌 감독은 ‘사람’으로 채우는 직업인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모으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고. 하지만 내가 선곡하고 꾸린 곡들이 타인의 연주에 의해 완성될 때의 감동은 연주 못지 않게 크다.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오르는 개막 공연을 제외하고 9개 공연이 실내악 중심이다. 실내악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독주는 물론 피아노 듀오, 연가곡, 현악 4중주 등 다양한 구성의 음악이다. 내가 실내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러한 작은 구성들이 음악의 ‘기본’이자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성이 커지면 오케스트라가 되고, 오페라가 되는 게 아닌가.
바닷가에 뿌린 음악의 씨가 음악의 숲을 일구길 바라는 마음으로 포항음악제도 성장하길 바란다. 철의 도시, 바다의 도시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의 시작을 토대로 본인이 꿈꾸는 페스티벌은 무엇인가? ‘휴식’을 위한 음악축제다. 이틀 내지 삼일 동안 바다와 함께 하면서 여유를 느끼는 동안 그들의 휴식에 음악을 더해주고 싶다. 바닷가의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음악축제를 만들고 싶다.
예술감독은 음악축제를 통해 관객에게 음악과 휴식을 선사하고, 축제가 끝나면 예술감독은 어떻게 휴식을 가질 예정인가? 쉴 틈이 없다.(웃음) 일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한 러시아 레퍼토리 중심의 음반이 나오고, 독일 하노버로 다음 음반을 준비하러 떠날 예정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사진 포항문화재단
박유신 드레스덴 국립음대(에밀 로브너 사사)에서 수학했고, 야나체크 콩쿠르·드레스덴 음대 실내악 콩쿠르·브람스 콩쿠르 등에 입상한 바 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아카데미 단원을 역임했으며, 포항음악제 예술감독 외에 2019년부터 어텀실내악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pREVIEW

바다와 철 그리고 음악

박유신 예술감독이 안내하는 포항음악제

작년에 개최 예정이었던 포항음악제는 코로나로 인해 무산되었고, 올해 본 모습을 드러낸다.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7일 동안 7개 공연이 메인 프로그램(포항문화예술회관)을 일구고, 3개 공연이 찾아가는 음악회 형식인 포커스 스테이지(포항시청 대잠홀)로 진행된다.
이승원의 지휘로 포항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오르는 개막 공연 ‘탄생’(11.5)은 카푸스틴 첼로 협주곡 2번,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핀치의 성악곡 ‘탄생의 날’이 한국 초연으로 선보여지는 뜻깊은 공연이다. 서선영(소프라노)은 이 곡의 가사가 “작사가가 어린 시절에 느낀 행복과 추억이 담겨 있다”라며, ‘기억의 시작’이란 이번 음악제 주제와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추천했다.
박유신 예술감독은 공연마다 드라마틱한 제목을 붙였고, 이를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다. ‘희로애락’(11.6)에는 “유쾌한 웃음소리를 의심할 만큼 삶의 한편에 괴로움을 안고 살았던 모차르트와 쇼스타코비치·라벨·멘델스존처럼 삶과 음악에 공존하는 희로애락”을 만나보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러한 콘셉트 아래 이번 음악제는 하나의 앙상블이 전 무대를 이끌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곡마다 연주자의 진영을 각기 다르게 구성하여 한 무대에서 다양한 실내악곡을 선보이도록 프로그래밍했다. 일례로 ‘희로애락’ 공연에는 이유라(바이올린), 박유신(첼로·예술감독), 손민수(피아노)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3중주 2번을 선보이고, 김영욱·김재영(바이올린), 이한나·윤진원(비올라), 양성원(첼로)이 멘델스존의 현악 5중주 2번 Op.87을 선보이는 식이다.
이처럼 다양한 구성원이 ‘드라마’(11.7), ‘브람스의 말’(11.9), ‘엔딩’(11.11) 공연에 오르고, 백건우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11.8)을, 노부스 콰르텟은 ‘클래식 피아졸라’(11.10)를 스페셜 무대로 선보인다. 박유신 감독은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들려줄 ‘고예스카스’는 그라나도스가 화가 고야의 전시에서 그의 그림과 사랑에 빠진 후의 영감으로 작곡한 곡으로, 이번 축제를 찾는 연인들에게 적극 추천한다”고 한다. 또한 “노부스 콰르텟가 들려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는 바이올린 협연이 아니라 현악 4중주로 선보이는 버전으로, 포항음악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순간”이라고 덧붙였다.
“평소 독주와 협연에 매진해온 손민수 피아니스트의 실내악 공연”도 만날 수 있다. 손민수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3중주(11.6), 라흐마니노프의 엘리지풍의 3중주 1번과 프랑크 피아노 5중주 M.7(11.7)을 들려줄 예정이며, 라벨의 ‘라 발스’를 임윤찬과 함께 듀오(11.6)로 선보인다.
메인 프로그램이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되고, 포항시철 대잠홀에서 열리는 ‘포커스 스테이지’는 음악가들의 리사이틀로 구성되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11.6), 박유신과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콥스키(11.7), 플루티스트 조성현과 기타리스트 박지형(11.8)의 무대가 준비되어 있다. 악명 높은 리스트의 명작부터, 일상에 잔잔히 흘리고 싶은 포레·생상스·슈만·쇼팽의 소품과 바로크 음악까지 음악가와 악기의 세계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고, 음악에 더 깊이 빠질 수 있는 시간이다. 박유신 감독은 지독한(?) 초심자에게는 쇼스타코비치와 드보르자크의 실내악곡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엔딩’(11.11)”을, 자녀와 함께 하는 가족에게는 현악 앙상블부터 첼로와 소프라노 그리고 넉 대의 바이올린과 함께 하는 협주곡(비발디 RV.580)을 만날 수 있는 개막 공연 ‘탄생’(11.5)을, 연인들에게는 서선영(소프라노)이 선사할 슈만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이 오르는 ‘드라마’(11.7)를 추천한다. 장일범의 음악 강연 ‘왜 클래식인가’(11.9)도 음악을 알아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번 포항음악제는 포항문화재단과 함께 한다. 포항시는 2020년 문화도시로 선정되어 여러 문화예술행사를 활발하게 진행 중이며, 포항문화재단은 포항 출신이거나 포항과 인연이 있는 음악가들을 초빙하는 홈커밍 시리즈 ‘별이 빛나는 포항’을 최근 진행했다. 우주호(바리톤), 유채훈(테너), 최이삭(피아노)이 이 시리즈에 오른 바 있다.
일정 및 출연진
5일 ‘탄생’ 그리그 ‘홀베르그’ 모음곡, 카푸스틴 첼로 협주곡 2번, 핀치 ‘탄생의 날’ 외
6일 ‘희로애락’ 모차르트 피아노 4중주 1번,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3중주 2번 외
7일 ‘드라마’ 드뷔시 플루트·비올라·하프를 위한 소나타, 슈만 ‘여인의 사랑과 생애’ 외
8일 ‘사랑에 빠진 연인들-피아니스트 백건우’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9일 ‘브람스의 말’ 브람스 현악 5중주 2번, 성악·비올라·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노래 외 9일 강연 장일범 ‘왜 클래식인가’
10일 ‘클래식 피아졸라-노부스 콰르텟’ 모차르트 현악 4중주 15·21번, 피아졸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11일 ‘엔딩’ 드보르자크 피아노 3중주 Op.65, 멘델스존 현악 8중주 Op.20 외 포커스 스테이지 임윤찬(6일), 박유신(7일), 조성현(8일)
출연진
바이올린 김영욱·김재영·이유라·임지영
비올라 윤진원·이유라·이한나·김규현·문서현
첼로 박유신·양성원·송영훈·이원해
피아노 백건우·손민수·일리야 라쉬콥스키·임윤찬
플루트 조성현
소프라노 서선영
지휘 이승원
기타 박지형
하프 김지인

venue & art company

포항의 음악 공간과 예술단체

1 포항문화예술회관

1995년 5월에 문을 연 포항문화예술회관은 대공연장(963석), 소공연장(264석), 야외공연장(300석)을 갖추고 있다. 현재 포항시립예술단(교향악단·합창단·연극단)의 정기공연이 오르는 곳이며, 대공연장은 다목적 공연장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2020년 하반기에 새단장했다. 인근에는 형산강이 흘러 영일만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포항음악제의 7개 메인 프로그램과 강연이 포항문화예술회관에 오른다.

2 포항시청

대잠홀 포항시 대잠동에 위치한 포항시청 내의 공연장으로 1층 434석, 2층 156석 규모이다. 포항시청 업무와 관계된 행사장이자, 좋은 음향 조건도 갖추고 있어서 포항문화예술회관과 함께 포항시민에게 음악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도 적극 활용된다. 포항음악제에서 박유신, 조성현, 임윤찬이 선보이는 포커스 스테이지가 이곳에서 열린다.

3 포항시립교향악단

1990년 3월 17일에 포항시립합창단과 함께 창단되어 현재 임헌정 상임지휘자가 이끌고 있다. 70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연 60여회의 정기·기획 공연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협연 이진상)과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선보이며 포항 클래식의 힘을 보여주었다.

4 포항시립합창단

포항시립합창단과 1990년 3월에 창단되어,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의 정기연주회 외에 경상북도와 포항시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연간 60여회 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48명으로 구성되었으며, 현재 제8대 지휘자로 장윤정이 재직 중이다.

5 포항시립중앙아트홀

2008년 구 시민회관이 철거된 자리에 세워진 복합문화공간이다. 지역 예술인들의 대표적인 활동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경북 최대의 독립영화전용관(인디플러스 포항)을 갖추고 있어 연중 상시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한다. 지상 4층으로 2층과 3층에 공연장과 상영관이 위치해 있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