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SCENE
카메라
뒤에
선 남자
사진작가 마르코 보그레프
31년간의 예술가들 관찰기
(좌측상단부터)
➊ 첼리스트 안너 빌스마
➋ 아폴론 무사게테 콰르텟
➌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
➍ 더블베이시스트
우시아 마르티네스 보타나
우리는 마르코 보그레프(Marco Borggreve, 1965~)를 알고도, 모른다. 이 낯선 이름을 검색해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쏟아져 나오는 건 익숙한 음악가의 얼굴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안너 빌스마, 마사아키 스즈키, 안드리스 넬손스, 랑랑,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 루카스·아르투르 유센, 클라우스 메켈레, 그리고 김선욱, 손열음, 클라라 주미 강, 에스더 유 등에 이르기까지 세대도 국적도 다양하다. 보그레프는 이들을 마주하고 셔터를 누르는 사진작가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유통되는 많은 사진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화려한 포트폴리오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보그레프의 공식 사이트에는 그간의 작업물을 모아놓은 섹션과, 이메일 주소 하나가 전부다. 그 이름의 주인이 궁금해졌다. 꽤 오랜 세월 이어진 듯한 클래식 음악계 관찰기도 듣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남겨온 기록물이 그 자체로서 조명받았으면 했다.
보그레프는 정작 그런 보상이나 인정에 별 관심이 없다. 클래식 음악을 삶의 일부로 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촬영에 임하는 그의 자세를 들어보니 어떤 음악가의 모습도 엿보인다. 자신의 개성을 덧입히기보다 대상의 고유함을 포착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더욱이 그는 “사진과 음악은 서로 닮은 언어”라고 했다. 템포와 리듬을 따라 균형과 조화를 찾는 예술이라는 점에서다. 어쩌면 보그레프의 정체는 악기 대신 카메라를 든 음악가인 건지도 모른다.
처음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여행 중이라고 했다. 출장이었나?
늘 여행 중이다. 음악가가 있는 곳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에 다녀왔다.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1977~)의 촬영이 있었다.
세계의 공연장과 음악가들이 사랑하는 사진작가다. 당신의 매력이 대체 뭘까?
그 답은 그들이 갖고 있다. 31년째 클래식 음악계에서 일하면서, 유행을 따르지 않은 게 한몫한 것 같다. 내가 쫓는 건 음악가와 음악이다. 매번 음악가의 고유한 매력을 담은 결과물을 만들고자 한다.
촬영이 계획된 음악가의 공연도 가본다고. 그 고유함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인가?
음악가를 만나기 전 촬영 콘셉트를 생각하는 일은 없다. 대상 연구가 우선이다. 음악가의 레퍼토리는 뭔지, 공연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등을 파악한다. 음악가를 알아가다 보면 그가 추구하는 음악에 닿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장 개인적인 사진이 나온다.
늘 촬영 대상의 공연까지 가볼 정도로 공을 쏟는 게 지치진 않나? 작업량이 매우 많은 편인데.
늘 촬영 대상의 공연까지 가볼 정도로 공을 쏟는 게 지치진 않나? 작업량이 매우 많은 편인데.
최근에는 공연 참관이 촬영 과정의 일부가 되도록 일정을 짠다. 혹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 대화할 시간이 없더라도 리허설이나 공연 중 관찰한 모습이 다음날 촬영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31년이 지나니 이 모든 게 더 이상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좌측부터)
➊ 피아니스트 김선욱
➋ 클라리네티스트
외르크 비트만
➌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➍ 이반 피셰르
➎ 지휘자
마사아키 스즈키
촬영 현장에서는 음악가들과 어떻게 교류하나?
오래 일하면서 파악한 몇 가지.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조율되지 않은 악기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고, 피아니스트들은 촬영 전 뭐라도 잠깐 쳐본다. 인물에 더 알아보고자 2년에 걸쳐 특별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인 베토벤 소나타 27번 Op.90의 2악장을 연주해달라고 하는 거다. “아침 9시에 연주해달라고 하다니!”하며 놀라는 이도 있었고, “손이 지저분해서 연주 못 한다”던 사람도 있었다. 아주 유명한 어느 피아니스트는 “재미없는 작품”이라며 손사래 쳤다. 제각각인 반응은 결국 음악이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촬영 전략이다.
전략이라기보다는, 사실 이 작품에 관해 질문이 많았다. 단순하고 연주하기도 쉬운 이 작품을 왜 좋아하는 건지 이유를 찾고 싶었다. 곡의 템포, 리듬, 프레이징 등에 관해 여러 피아니스트의 생각이 궁금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앞서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30여 년간 클래식 음악계의 사진은 어떤 변화를 거쳤나?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을 무렵엔 음악가들이 사진 촬영을 꺼렸다. 상업적으로 느껴서다. 시간이 흘러 사진작가가 ‘웃으세요’하면 그들은 가까스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때 영국에서는 음악가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의 사진이 유행했다. 그들 중 실제로 자전거를 즐겨 타는 이는 내가 아는 한 거의 없었다. 최근에는 많은 프랑스 첼리스트들이 지붕 위에 오르고, 현악 4중주단은 산을 탄다.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물에 빠져 있다. 멋진 사진이긴 한데…, 나는 그런 사진 못 찍는다.(웃음)
꾸며낸 이미지처럼 느껴지는 건가?
내 사진 언어와 다르다. 선과 구조, 대화와 조화 그거면 된다. 어쩌면 그저 게으른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이 이미지보다 중요한 건 확실하다. 음악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음반 커버나 공연 포스터 등 특정 목적을 지닌 사진도 있다. 이런 경우 사진작가의 창의성이 제한되지는 않나?
내 의뢰인들은 대부분 내가 철저한 개방성을 요구한다는 걸 잘 안다. 물론 예외는 있다. 몇 주 뒤에, 한 바이올리니스트와 작업할 예정인데 그의 바이올린은 한때 이자이가 연주하던 것이다. 이런 경우 바이올린에 더 초점을 두는 게 당연하다.
사진에 담긴 시간 예술
직업관의 중심에 음악이 있는 게 느껴진다. 한때 음악가였나?
예술고등학교에서 클래식 기타를 공부했다. 몸이 안 좋아져서 그만두었는데, 대학생 때 음악을 향한 열정이 여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콘서트홀에서 일하다 공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두 달 정도 지났을까. 벌써 많은 프로젝트를 맡게 됐고, 다니던 대학도 관뒀다. 중간에 무용 사진이나 신문사 의뢰로 인물 사진 등을 찍기도 했는데 늘 음악으로 되돌아왔다.
왜 다시 음악이었을까?
하나의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선 엄청난 원동력이 필요하다. 지치거나 아플 때 음악가인 친구의 리허설을 가곤 한다. 그들이 소통하고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위안과 행복, 그 모든 것을 얻는다. 음악이 내게 카메라를 들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수많은 음악가를 만났다. 특히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 ~2016)와의 오랜 인연이 궁금했다.
커리어 초창기, 처음 맡은 프로젝트 중 하나가 아르농쿠르 촬영이었다. 그는 바짝 긴장해 있던 나를 헤아릴 수 없는 세계로 품었다. 첫 만남 이후 2~3년에 한 번씩 그의 사진을 찍었다. 새 사진을 통해 나의 발전을 확인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나의 멘토다. 다음 촬영에서 더 나은 결과물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뒷짐을 지고 들판을 거니는 사진이 그와의 마지막 촬영이었겠다.
그의 말년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장례식에도 쓰였다. 촬영 당시 그는 이미 노쇠했고, 촬영을 빨리 마무리해야 했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셔터를 누르던 순간은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난 노장에 약한 것 같다.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1923~) 촬영 때 세 번이나 울었다.
루카스·아르투르 유센(1993~·1996~) 형제의 파릇파릇한 시작을 함께하기도 했다.
형제가 여덟, 아홉 살일 때부터 봐왔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은 루카스와 아르투르가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된다는 데 확신이 없었다. 지금 아주 멋진 음악가들로 성장했다. 몇 주 전에는 그들의 도이치 그라모폰 신보 ‘네덜란드 거장들(Dutch Masters)’ 재킷 촬영을 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음악가의 변화를 포착하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 중이다.
새로운 이미지는 대중뿐만 아니라, 음악가에게도 특별하다. 자신도 몰랐던 면모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과 사진의 조합은 끝없는 이미지의 바다로 이어진다.
사진작가로서 개인적인 야망은 없나? 작품이 음악계 울타리 밖에서도 인정받길 바란다거나….
무엇보다도, 사진이 소비되는 순간이 아니라 그를 만드는 과정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내 이름은 사진 예술계보다 음악계에 더 알려졌다. 나도 사진가보다는 우연히 사진을 찍게 된 클래식 음악계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진작가로서 당신의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촬영 대상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종종 음악가의 어머니들로부터 전화나 이메일을 받는다. 사진 정말 고맙다고, 이게 우리 아들, 딸이라고. 내겐 최고의 칭찬이다.
훗날 실험해보고 싶은 촬영 방식이 있나?
보통 촬영 한 차례에 네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면 나도, 음악가도 지쳐버린다. 짧게 여러 차례 촬영하면 어떨까. 어느 날 아침 잠깐 촬영하고, 다음날 오후에 작업을 이어가는 거다. 다른 시간대와 장소에서 한 사람의 다른 상태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또 다른 여행길에 오르게 될 터다.
보스턴 심포니의 월드 투어에 함께 한다. 그중 한 곳으로,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어아인에 들른다. 마치 기숙사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렸을 때 자주 찾던 공연장이다. 그곳에서 며칠 밤을 지내면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아르농쿠르가 그랬듯,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공연장은 변화한 나를 직시하게 한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같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사진 마르코 보그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