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LIGHT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박수길 & 성규동
오페라 아카이브의 첫 시작
한국의 오페라 자료들에는 국내 공연예술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한국 창작오페라는 현제명이 작곡해 1950년 5월 초연한 ‘춘향전’을 효시로 본다. 한국인 주도로 열린 최초의 오페라는 1948년 조선오페라협회가 올린 베르디의 ‘춘희(라 트라비아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기록들이 다 사실일까? 오페라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기 위해 민간 주도로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 설립이 추진된다.
창작오페라 역사가 70년이 넘었지만, 관련 자료를 모은 박물관은 없다. 수많은 악보, 프로그램북, 무대의상 등은 당시 오페라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을 뿐이다. 1회성이 짙은 공연예술 특성상 자료가 사라지면 당시 공연을 복구할 가능성도 사라진다.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범했다. 박물관 추진위원장을 맡은 박수길과 성규동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낡고 빛바랜 자료를 찾아 모으느라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관통하고 있었다.
성규동 회장님은 한국바그너협회에서 이사 및 감사위원으로도 활동하기도 하셨죠. 공대를 졸업하고 현재 반도체 업체를 이끌고 계신데요. 완전히 다른 분야인 오페라에 관심을 둔 계기가 있나요?
성규동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님이 성문사에서 10장짜리 LP판을 사 오셨어요. 4장이 각국 민요, 3장이 이탈리아와 독일 가곡, 나머지 3장이 오페라 아리아와 합창곡으로 구성되어 있었죠. 그 LP를 닳도록 들으면서 음악과 가까워지게 됐습니다. 더구나 운 좋게 학창시절 내한공연을 가졌던 칼라스·테발디 등 역사적 명가수들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고, 로열 오페라 공연 중 테너 존 비커스(1926~2015)의 ‘피터 그라임스’를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바그너는 제 평생의 멘토이기도 합니다.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 추진위원장으로 추대됐을 때 어깨가 무거우셨을 것 같아요.
박수길 성규동 대표님과는 한국바그너협회에서 인연을 맺었는데요. 1993년에 설립된 바그너협회가 역사적인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니 자료들을 잘 보관해야겠다는 이야기부터 하게 됐죠. 저도 국내 오페라 자료들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어요. 이러한 이야기들이 발전되어 박물관 추진으로 구체화가 된 거죠. 현재 한국 1세대 오페라 가수들이 대부분 별세하셨습니다. 그분들이 소장한 귀한 오페라 자료들을 후손들이 잘 모르고 폐기해버리니, 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모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우리 외에도 성악가 이규도·박성원·김성길·정은숙·정영자·김태현·박형식, 작곡가 이건용, 연출가 김홍승, 지휘자 김덕기가 모여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어요.
성규동 저는 유일한 기업인인데요.(웃음) 회사 업무 때문에 1980년대부터 해외 출장에 많이 다녔습니다. 전 세계 유명 오페라하우스에서 자주 공연을 봤죠. 해외 주요 극장들을 보면 웬만하면 단체 역사를 정리한 뮤지엄을 갖추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서는 오페라 자료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어요.
현재 추진위원회는 어떠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나요? 우선 자료 아카이브가 첫 발걸음일 것 같은데요.
박수길 이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지 자료를 수급할 수 있으니까, 우선 홍보에 신경을 쓰고 있고요.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 연락을 취할 성악가·연출가·평론가 등 오페라 관계자 명단을 짰어요. 김자경오페라단·서울오페라단·한국오페라단·고려오페라단 등 현재 활동이 중단된 단체에도 연락을 취해볼 예정이고요. 당대에는 언론사에서도 오페라 협찬을 많이 했거든요. 언론사 쪽에도 접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성규동 아! 원로이신 최정호 교수가 쓴 ‘세계의 공연예술기행 2’에도 다양한 공연이 언급되고 있어요. 최 교수에게도 연락을 드려봐야 할 것 같아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의 김민 감독님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계시거든요. 자료들 좀 기증해 주실 수 있겠냐고 말씀은 드려놨어요.
민간오페라단의 역사가 길다고 하더라도, 박물관은 국공립 주도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니까요.
박수길 물론 국립오페라단이 주도해 주면 제일 좋죠. 제가 국립오페라단 단장(1995~2001년 재직)에 있을 때 자료를 많이 모았거든요. 그런데 퇴임 후 오페라단 자료 보관 창고가 홍수 때문에 물에 잠겨 많은 부분이 소실됐어요. 국립오페라단도 지금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요. 오히려 개인이 가진 자료들을 모으면 의외로 좋은 자료가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다행히 성규동 공동위원장이 1차 자료들을 보관할 사무 공간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자료는 역사의 ‘재발견’
현재 수급된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재발견’한 사실들이 있나요?
성규동 전 서울예대 국악과 김희조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1962년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의 프로그램이 1호 기증 자료인데요. 고인의 차남인 김덕기 교수가 간직하고 있던 자료를 제공했어요. 당시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안익태 선생이 1962년 제1회 국제음악제 기획에 참여했는데 축제 기간에 공연한 오페라 ‘피델리오’ 공연 프로그램을 보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 당시 독일에서 크게 활약했던 테너 프리츠 울(1928~2001)이 내한하여 공연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박수길 1954년에 공연한 현제명(1902~1960) 작곡 ‘왕자호동’ 공연 프로그램도 기증받았는데 프로그램의 인사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미국에 가서 그곳의 음악 수준을 보면서 많은 충격을 받았고, 또한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가곡 ‘고향생각’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귀국했을 때 한국의 오케스트라 운동이 시작된 것을 보고 멋진 오페라를 올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오페라 ‘왕자호동’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성규동 또 당시의 오페라들은 거의 10일 동안 하루에 두 번씩 공연을 했더군요. 어지러운 시국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이 공연을 했었는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오페라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박물관 건립 시기는 언제쯤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장소 선정도 중요한 과제일 것 같습니다. 박수길 아웃라인은 금년 말까지 1차 자료를 수급 완료하는 걸로 목표 세웠어요. 관건은 귀중한 자료를 많이 모으느냐가 되겠죠.
박물관 건립이 한국 공연사에 주는 의의는 무엇일까요?
박수길 74년의 오페라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한국 오페라의 시작과 발전의 역사를 정리하고 그 자료를 전시하는 것은 현재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지휘자, 연출가 그리고 작곡가들에게 긍지를 심어주고 또한 그들의 활동도 역사의 한 장을 더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심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성규동 종합예술로서의 오페라는 음악은 물론 문학과 무용, 무대 예술까지 함께 어울러지는 예술이기에 각광을 받는 건데요. 오페라 자료들을 잘 정리해두면 음악극뿐만 아니라 당시 공연예술사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활용 가능성이 있습니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송종석(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