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6
콘세르트헤바우 대표
사이먼 레이닝크
완벽한 음향의 비결을 파헤치다
콘세르트헤바우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이 될 수 있었을까?
하루 평균 25개의 공연이 열리는 유럽에서 가장 ‘핫한’ 도시 암스테르담. 구시가지 전체가 2010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문화·역사적 가치가 높은 도시이다. 구시가지 대부분을 도로로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지만, 안네 프랑크의 집, 하이네켄 박물관 등 명소들이 곳곳에 있어 하루만 둘러보고 지나기엔 아까운 도시이기도 하다.
중앙역 광장에서 도보로 30분, 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뮈세윔플레인(Museumplein)이 나온다. 플리마켓과 공연이 상시로 열리는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잔디밭 광장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 그리고 콘세르트헤바우가 둘러싸고 있다.
네덜란드어로 콘서트홀을 의미하는 ‘콘세트르헤바우(Concer-tgebouw)’는 보스턴 심포니 홀, 빈 무지크페어아인과 함께 뛰어난 음향을 자랑하는 세계 3대 공연장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2021년 성시연이 정명훈의 뒤를 이어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이하 RCO)의 객원 지휘자로 나선다는 소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RCO의 전용홀이 바로 이 콘세트르헤바우다.
이 공연장의 역사는 약 13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888년 4월, 120명의 연주자와 500명의 합창단원이 성대한 개관식을 가졌고, 그해 11월 상주 관현악단인 RCO가 창단, 첫 연주를 가졌다. 당시 지휘를 맡았던 빌럼 케스(1856~1934)는 1895년까지 상임지휘자로 재임하며 오케스트라의 기초를 다져 나갔다.
현재 콘세르트헤바우를 책임지고 있는 대표 사이먼 레이닝크는 “콘세르트헤바우에서 음향이 뛰어나지 않은 객석은 단 한 곳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의 자부심이 무색하지 않게 20세기 본격적으로 음향학이 발달하기 전에 설립됐지만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공연장이다.
법조계, 출판업계에서 일하다가 콘세르트헤바우에 왔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부모님 덕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고, 첼로와 기타를 익혔다. 대학에서도 법학을 전공하면서 음악학도 동시에 공부했고, 직접 실내악을 기획하기도 했다. 콘세르트헤바우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고, 이후 감사하게도 대표직까지 맡을 수 있었다.
타 분야에서 일한 경력이 공연장 운영 업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대표로 일하다 보면 아무래도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법조계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된다. 출판업계의 경우 음악과 마찬가지로 지적재산권을 다루는 분야이니 공통점이 많다.
2006년부터 콘세르트헤바우에서 일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이곳에서 공연했던 많은 오케스트라들과의 추억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다.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과의 공연도 그렇고, 당연히 RCO와 네덜란드 필하모닉과의 작업도 즐거운 추억이다. 이야기하다 보니 2008년 인도 페스티벌 기억도 떠오른다.
콘세르트헤바우는 음향을 갖춘 홀이 먼저 만들어졌고, 이후 상주할 오케스트라를 찾은 특이한 경우다.
공연장과 오케스트라는 불가분한 관계다. 오케스트라가 공연장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상주 공연장이 있다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지휘자 하이팅크가 “콘세르트헤바우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가장 중요한 악기다”라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대변해 주는 말이라 생각한다.
RCO 공연 비중과 대관 공연 비중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다.
콘세르트헤바우에서는 실내악을 포함, 매년 약 700여 회 정도의 공연이 열린다. 이 중 450회 정도가 콘세르트헤바우의 자체 기획 공연이고, 80여 회의 RCO 공연, 40여 회의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그리고 NTR 자터다흐마티네(NTR Zater-dagMatinee/Public Broadcasting Union) 공연이 40회 정도 있다.
콘세르트헤바우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공연장이다. 1886년에 완공, 1888년 4월 11일에 첫 번째 콘서트를 열었다. 오래된 공연장인 만큼 공연장에 얽힌 전설들도 많을 것 같다.
콘세르트헤바우의 역사는 20세기 클래식 음악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말러, 라흐마니노프, 스트라빈스키 등 저명한 작곡가들이 이곳에서 공연했고, R. 슈트라우스는 그가 작곡한 ‘영웅의 생애’를 헌정할 만큼 콘세르트헤바우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전설이 있는 공간이라기보다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애정을 듬뿍, 오랫동안 받은 공간이며 앞으로도 쭉 그랬으면 좋겠다.
소리와 공간, 서로를 빛내주다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음향을 가진 공연장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건축 당시 음향 디자인은 건축가 돌프 반 젠트가 맡았다. 그는 당시 최고의 콘서트홀 중 하나였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영감을 얻어 슈박스 형태의 콘세르트헤바우를 건축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는 현대 음향학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음향을 자랑한다.
공연장에 설치된 오르간은 189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샬커위어드 오르겔(Maarschalkerweerd Orgel)’이 오르간의 정식 명칭이다. 1891년 위트레흐트에서 온 제작자 미카엘 마샬커위어드가 제작한 것으로 완벽한 소리를 위해 1990년부터 2년 5개월간 매일 밤 보수작업을 거쳤다. 덕분에 현재의 완벽한 오르간 음향을 구현해낼 수 있게 됐다.
공연장 내부벽에는 46명의 작곡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공연장을 건축할 당시 유명한 작곡가들이다. 네덜란드의 작곡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다. 벽 위쪽에는 작게 연대순으로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당시 음악사에 대한 해석을 반영한 것이다.
콘세르트헤바우는 메인 홀(Main Hall), 리사이틀 홀(Recital Hall), 거울 홀(Mirror Hall), 합창 홀(Choir Hall)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공연장의 특성을 간단하게 소개해 준다면.
메인홀은 1,974석으로 슈박스 형태의 무대, 무대 뒤 아레나 형태의 객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인홀의 가장 큰 특징은 지휘자와 솔리스트가 등장하는 긴 계단으로 관객들에게 인상 깊은 장면을 선물할 수 있다. 리사이틀 홀은 437석 규모로 타원형 형태다 보니 실내악에 최적화되어 있다. 합창 홀은 150석으로 합창, 재즈 혹은 가족 공연으로 적합한 규모다. 합창 홀의 경우 음향이 건조한 편이다.
훌륭한 음향을 가진 공연장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공연장이기에 유지 보수비용도 높을 것 같다.
공연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지보수에 많은 투자를 한다. 암스테르담시의 보조금 역시 많은 도움이 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재정지원 비율이 궁금하다.
전반적인 수입 구성을 살펴보면, 30%는 티켓 판매 수입, 25%는 임대 수입, 20%는 후원금, 5%는 국가 보조금 그리고 20%의 기타 수입으로 이루어진다.
콘세르트헤바우는 주주들이 있는 공연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
콘세르트헤바우는 암스테르담 시민들이 설립한 공간으로 공공 유한 회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다만 시민 개개인의 부담 위험을 제한하기 위해 건설을 위한 자금을 모금할 기회를 갖는다. 오늘날 콘세르트헤바우는 법적으로 재단과 결합되어 개인기부와 장기 프로젝트(어린이 교육 공연 및 특별 프로그램)를 지원하고 있다.
교육 공연에 대한 애정도 깊은 공연장인데.
매년 삼만 명 정도의 어린이들이 교육 공연을 위해 콘세트르헤바우를 방문하고 있다. 매해 음악교육을 위해 새로운 콘셉트를 개발해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네덜란드 전역의 아이들과 가족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초등 및 중등 교육콘서트, 패밀리 콘서트, 그리고 콩쿠르까지. 공연장이 콩쿠르까지 진행하는 면이 특이하다.
특별한 기부자의 꿈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콘세르트헤바우가 모든 어린이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이 되기를 꿈꿨고, 그의 기부가 그 꿈을 실현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말러 페스티벌이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다. 앞으로 말러 페스티벌을 다시 할 계획이 있는지.
물론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재개하고 싶다.
최근에 열었던 평화를 위한 자선음악회(Benefit concert for peace)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를 꾸렸다. 인상 깊은 공연이었다.
우크라이나의 피아니스트 안나 페도로바는 우리의 단골 연주자다. 그녀가 콘세르트헤바우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유튜브로 상영됐고 5천만 명이 시청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할 무렵에 자선음악회를 제안했는데, 그녀는 곧바로 러시아 연주자들을 포함해 네덜란드, 미국, 우크라이나 연주자들을 모아 자선음악회를 열었다.
하반기에 추천할 만한 공연은 무엇인지.
11월 5일 공연할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의 연주를 기대해도 좋다.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네덜란드 실내악단과 함께 선보일 예정으로, 그의 타고난 재능을 만끽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를 꼭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객석’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면.
콘세르트헤바우의 공연은 관객에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주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만들어간 수많은 공연들, 작곡가 그리고 지휘자의 숨결을 느끼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고 가길 바란다.
오래전 필자가 일하던 뉴욕 필과 함께 콘세르트헤바우를 찾은 적이 있다. 경이로운 음향, 귀를 감싸오는 풍요로운 음색이 그날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때의 감동을 잠시나마 되새길 수 있었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올린 콘세르트헤바우의 자부심은 앞으로도 클래식 음악계를 발전시킬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그려나갈 새로운 여정이 기대된다.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