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11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프랑스의 새로운 소리, 오늘의 소리
과거를 현재로 잇는 ‘음색’의 매력을 만드는 사람들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대표
올리비에 레마리
올리비에 레마리(1974~)는 클라리넷·피아노 ·작곡·음악학을 전공했으며 문화 정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악상타스 체임버 합창단, 오르세 미술관 오디토리움, 테아트르 듀 샤틀레, 시테 드 라 뮈지크 등에서 일했으며 2017년부터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연재 |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01 아라벨라 아츠 대표 스테파나 아틀라스 02 브라보! 베일 뮤직 페스티벌 대표 케이틀린 머리
03 루체른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헤플리거 04 브레겐츠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디엠
05 엘프 필하모니 대표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 06 콘세르트헤바우 대표 사이먼 레이닝크
07 에스플러네이드 대표 이본 텀 08 서구룡문화지구 대표 베티 펑
09 대만 국립가오슝아트센터 대표 치엔 웬핀 10 도쿄 산토리홀 대표 쓰쓰미 쓰요시
11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대표 올리비에 레마리
최근 작곡가 진은숙(1961~)이 프랑스 공영방송 라디오 프랑스가 주최하는 ‘2023 프레장스 페스티벌’에서 20세기 후반 이후 작곡가를 집중 조명하는 ‘작곡가의 초상 시리즈’ 주인공으로 선정되어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볼프강 림(2019년), 조지 벤자민(2020년), 파스칼 뒤사팽(2021년), 트리스탕 뮈라이유(2022년) 등이 선정된 바 있다(더 프리뷰). 1991년에 첫 막을 올렸던 프레장스 페스티벌은 올해로 33주년이 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음악 축제다. 진은숙이 현대음악에서 유의미한 궤적을 그려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30여 년간 이어온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과의 인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은 1976년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미셀 기의 지원 아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1925 ~2016)에 의해 창단되었다. 불레즈를 중심으로 모인 31명의 연주자는 음악·춤·연극·영화·비디오·시각 예술을 융합한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악기 연주법을 탐구하고 동시대 작곡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작품을 완성해나간다는 점은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만의 자부심이다.
앙상블은 1997년과 2006년 그래미 어워즈 ‘최우수 실내악·소규모 앙상블’상, 2022년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폴라음악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스티브 라이히 등 20세기 주요 작곡가들의 곡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생전의 불레즈도 자기 작품을 올렸다. 독일의 앙상블 모데른, 영국의 신포니에타, 오스트리아의 클랑포룸 빈과 함께 현대음악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악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 음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선율, 리듬, 화성뿐만 아니라 제4의 요소 ‘음색’이다. 그들은 “음색이야말로 작품의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이며 현대음악은 시끄럽고 듣기 싫은 소음이 아닌 아름답고 순수한 음의 결정체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오는 4월, 서울에서 연주를 앞둔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하 앵테르콩탱포랭)의 대표 올리비에 레마리를 서면으로 만났다.
프랑스 문화부와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앵테르콩탱포랭은 문화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 아래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부는 앙상블의 관리자 임명, 예산 변경 등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대음악에 대한 관객들의 낮은 관심도로 오케스트라들은 현대음악을 프로그램에 포함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하지만 문화부는 지원을 통해 현대음악이 설 자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20~21세기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오케스트라의 창립이나 운영 역시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앵테르콩탱포랭의 설립 배경이 궁금하다.
간단하다. 20세기와 21세기 현대음악의 매력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즐기게 하는 것이다. 앙상블 창단 이래 오늘날까지 약 950여 작품을 창작 발표했고, 이 곡들은 현대음악의 중요한 레퍼토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연주 활동과 더불어 여러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우선 미취학 아동, 초·중학생 그리고 젊은 전문음악가 및 작곡가, 관객 대상을 개괄적으로 분류해 교육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진행한다. 8~12세 아동들이 현대음악을 배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것도 그중 하나다. 여러 창작 워크숍을 포함해 해설이 있는 공연, 중학교 음악 수업, 청소년 오케스트라와의 협업, 코칭 등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바뀌지 않은 악보, 새로운 음향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불레즈가 창단에 관여한 만큼, 초창기 그의 작품들을 많이 연주한 것으로 안다. 자연스럽게 그만의 색이 깃든 소리가 악단의 전통적인 소리가 되었을 것 같은데.
앙상블의 음색은 정확하고 투명하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다른 여러 음악적 표현이나 음색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테면 회색은 다른 색들과 비교적 잘 어우러지지만, 채도에 따라 그 정도도 달라지지 않나. 우리의 음색 역시 그러하다. 회색은 아니지만 정확하고 투명하며 다른 소리와 조화를 이룬다.
현대음악 외에 다른 시대 곡은 연주하지 않는가?
연주하는 고전 레퍼토리는 거의 없지만, 바흐를 종종 연주한다. 바흐는 모든 음악의 원천이고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19세기 후반 곡을 연주하게 된다면 브람스(1833~1897)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리게티(1923~ 2006)를 엮어서 연주하거나 제2빈악파를 바그너와 리스트의 작품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
바흐의 음악과 21세기 현대음악이 한 무대에 오르는 풍경은 이색적일 것 같다.
과거와 현재의 음악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해석 또한 완전히 새롭게 바뀌기도 한다. 과거의 음악이 현재에 연주된다는 이유만으로 재창조되고 새로운 해석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지 않은가.
작품의 새로움을 위해 이르캄(IRCAM)과 정기적으로 협력한다고 들었다.
1977년 불레즈가 이르캄(IRCAM)을 창단한 이후 정기적인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앵테르콩탱포랭의 주요과제는, 과학기술을 어떻게 다시 음악으로 표현하는가이다. 이르캄은 음악에 과학을 융합해 현대음악을 만들고, 그 창의적인 시도들은 우리의 모든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편집자주_이르캄은 프랑스어로 Institut de Recherche et Coordination Acoustique/Musique, 영문으로 Institute for Research and Coordination in Acoustics/Music의 약자)
앙상블과 상생하는 공연장들
필하모니 드 파리와 악기박물관이자 소규모 공연장인 시테 드 라 뮈지크의 상주단체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상주단체로서 그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2015년 필하모니 드 파리의 기관이 된 시테 드 라 뮈지크와는 1995년부터, 필하모니 드 파리와는 2015년부터 함께하고 있다. 시즌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새로운 작품을 위촉하고 공연제작과 관련해 공연장과 긴밀하게 협력해나가고 있다.
파리 오케스트라와도 함께 무대를 꾸며오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협업이 이루어지는가?
앙상블의 창립자인 불레즈는 현존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앙상블이 라 빌레트 지역(파리 19구에 위치한 복합문화예술 공간) 문화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라 빌레트 지역의 파리 고등음악원과 복합공연장 시테 드 라 뮈지크 그리고 필하모니 드 파리를 하나로 묶어 라 빌레트 지역 자체를 생동감 넘치는 음악 지역으로 재탄생시켰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음악 역사상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라 믿고 있으며 이런 사례가 프랑스를 넘어 널리 퍼졌으면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많은 오케스트라가 재정적인 이유로 위촉이나 세계 초연을 꺼리고, 작곡가들은 작품 발표 기회가 적어지는 악순환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 발굴이 가능했던 팁을 한국 단체들에도 알려달라.
현대음악을 공연하기 위해 작곡가들에게 주는 창작료는 비싸다. 그렇지만 그들을 위한 예산을 지켜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단원과 지휘자들이 창작곡을 연주하기 위해 더 많은 리허설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 비용을 충당키 위해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1931~)는 성공적인 연주회를 위한 조건으로 재능 있는 작곡가, 연주자, 그리고 청중을 언급한 바 있다. 프랑스 음악계는 이러한 조건들이 잘 어우러진 것 같은데, 특별한 ‘비법’이 있는가?
우선 연주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음악에 대한 헌신’이다. 단원들은 작곡가의 스타일과 무관하게 주어진 음악을 열정과 힘을 다해 연주한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자질이다.
두 번째 내한, 한국과의 인연
‘좋은 관객’을 위해 악단이 힘써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양한 공연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객이 돌아다니며 듣는 각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식은 어떨까? 이는 앉아서 듣는다는 전형적인 관람 방식에서 탈피하여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시도들이 새로운 관객 유입으로 이어지고 현대음악을 지속시키는 방법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현대음악 작곡을 전공했다. 현대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
나는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예술가들이 예리하고 섬세한 안목으로 해석해낸 결과물(작품)을 만날 때마다 호기심이 되살아난다. 그들은 세상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확대하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한다. 이는 예술에서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냄으로써 대중이 놀라는 그 순간이 무엇보다 매혹적이다. 물론 고전 곡의 연주와 해석을 통해서도 삶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때로는 답을 찾을 수 있지만, 현대음악 작곡가가 표현할 새로운 세상이 나에게는 가장 커다란 의문이며 매력적이다.
진은숙의 작품도 종종 연주한다. 그녀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녀가 올해 프레장스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뻤다. 우리는 그녀와 30년 이상 함께 해왔고, 세계적인 작곡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음악은 추상적이지만 음악 자체는 기쁘고 따뜻한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한마디로 다채롭고 창의적이며 웅장하고 매혹적이다.
오는 4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2016년 통영국제음악페스티벌에 이어 올해 4월 한국에서 연주할 기회가 생겨 기쁘다. 강혜선 단원(바이올린)과 함께 한국 작곡가들의 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들의 작품은 생생하고 급변하는 동아시아의 현 상황을 반영한 것 같아 신선하고 즐겁다.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을 상상하면 벌써 가슴이 설렌다.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역임한 작곡가 이건용(1947~)은 현대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당대에 탄생하는 예술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문제와 언어·취향·미학이 담겨있는 말 그대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음악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대음악의 존속과 발전이라는 사명 아래 창단된 앵테르콩탱포랭은 이건용의 말처럼 현재의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현대음악이 가진 난해함과 실험성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현대음악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부러움을 자아내는 지점이기도 했다.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싱가포르 국립대 객원교수) 사진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PERFORMANCE INFORMATION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리사이틀
4월 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피에르 불레즈, 하비에르 알바레즈, 진은숙, 최우정의 작품 외
작곡가 최재혁, 앵테르콩탱포랭과의 무대를 마치고
토비 대처/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3월 11일 필하모니 드 파리
2021년 가을,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에 객원 부지휘자로 초대받아 파리에 갔을 때, 올리비에 레마리가 2023년 작곡가 프로젝트를 위한 작품을 위촉해 이번 연주가 성사되었다. 앵테르콩탱포랭은 과연 그 명성답게 단원 개개인이 새로운 음악과 소리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새로운 작품에 경험이 많고, 작품에 대한 평가가 빠르고 냉철하다고 느꼈다. 이들이 작품에 호감을 느낀다면,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현대음악 악보 표기법과 연주법에 정평이 나 있는 단원들이기에 리허설은 말소리 거의 없이 음악으로만 진행됐다. 내가 느낀 앵테르콩탱포랭의 음색은 비교적 날카로웠다. 그래서 리허설 중 한 부분을 “브람스와 같이 따뜻하게 연주해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주문했더니, 그 어느 악단보다도 브람스의 깊은 소리를 내어주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다만 아무리 어려운 작품이라 해도 두 번 이상 리허설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만큼 사전 준비가 어느 악단보다 완벽하게 되어 있다고 느꼈다. 첫 리허설에서 일반적으로 초견으로 악보를 읽는 연주자가 있지만, 앵테르콩탱포랭의 단원 모두 악보에 숙달되어 있었고, 오히려 딱딱할 수 있는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단원들이 모인 곳이 앵테르콩탱포랭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글 최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