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LIGHT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나만의 스타일을 물으신다면
라벨과 함께 병마의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피아노 앞에서 시대와 스타일을 탐색하는 그가 한국에 온다
알리스 사라 오트(1988~) 2002년 13세의 나이로 하마마츠 아카데미 콩쿠르 결선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2008년 도이치그라모폰과 독점 계약을 맺었으며, 지금까지 10개의 음반을 발표했다. 베를린 필·LA 필·런던 심포니 등과 협연했으며, 예르비·가드너·노세다 등의 지휘자와 호흡을 맞췄다. ©Pascal Albandopulos
2019년 1월, 알리스 사라 오트는 독일 뮌헨에서의 공연 도중 왼손이 갑자기 떠오르는 듯한 경험을 한다. 건반으로 화음을 누르려고 했지만, 왼손을 조절할 수 없었고, 공연은 그렇게 중단됐다. 며칠 후, 그는 자신의 ‘다발성 경화증’에 관한 진단과 투병 사실을 개인 SNS에 공개했다. 글에는 절망과 좌절이 아닌, 희망과 용기가 담겨 있었다. 병에 관해서 잘 모르지만, 알아나가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기다려달라고 전했다. 그리고 4개월 후, 그는 공연을 중단했던 뮌헨의 콘서트홀에서 다시 연주를 이어갔다. 2021년 사라 오트는 한국을 방문하여 크리스토퍼 에셴바흐/KBS교향악단과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여, 아티스트의 투병과 회복을 뉴스로만 접했던 국내 관객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인생의 고난이 찾아와도 두려움 없이 나아갈 줄 아는 이의 선곡이었다. 질문의 답변에서 느껴지는 그의 차분함과 밝은 아우라는 사라 오트가 앞으로도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추구할 것임이 느껴졌다.
2년 만에 방문했는데, 공연 외의 계획이 있나?
1년 중 250일 정도 집을 떠나 있지만, 공연이 있으면 연습과 자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좋은 음악을 나누는 게 항상 최선의 목표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을 하기보다 도시를 가만히 구경할 것 같다.
연습과 자는 것만 한다니! 다른 취미는 있나?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을 그리면 내 머릿속에 창의력이라는 불이 탁 켜지는 것만 같다. 또는 집 안에 인테리어를 조금씩 바꾸며 꾸미는 것도 즐긴다. 언제나 내 공간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더라. 가구 위치를 바꾸거나, 새로운 그림을 건다. 요리도 참 좋아한다. 이야기를 해보니, 나는 집 안에 머무는 것을 즐기는 편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완벽한 휴가는 집에 머물면서 보내는 시간이다.
집에서 즐기는 활동 중에서도 음악으로 연결되는 게 있을까?
영화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과 비디오 게임도 좋아한다. 요즘은 ‘할로우 나이트’라고 하는 게임에 푹 빠져있다. 그 게임에 거의 250시간은 들였을 것이다.(웃음) 언젠가는 비디오 게임 사운드 트랙에 어떻게든 참여하고픈 소망도 있다.
음반 ‘에코 오브 라이프’(DG 4860474, 2021)
14년간의 성실한 행보
사운드트랙 이야기가 나왔으니, 음반 이야기를 해보자. 2008년 DG와 전속 계약을 한 후,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음반을 내왔다. 그중 하나를 추천한다면?
나는 지난 음반을 듣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이걸 고르는 게 항상 어렵다.(웃음) 20대 때 오랜 시간 음악적 정체성을 찾아 헤맸고, 그 모든 과정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를 고르자면, 음악회 프로그램을 짤 때도 모든 부분을 직접 통제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반을 고를 것 같다. ‘원더랜드’(2016)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또 가장 최근에 완성했던 ‘에코 오브 라이프(Echoes of Life, 2021)’는 표지 디자인부터 음반 내에 모든 설명까지 영어와 독일어로 직접 적어 넣었으니, 이 음반을 추천 드린다.
작품을 해석할 때 당시 작곡가의 의도보다 오늘날 관객에게 그 작품이 무슨 의미인지를 더 고려한다고 들었다. ‘에코 오브 라이프’(DG)에서는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사이에 본인 삶에 의미가 있었던 현대음악 작품 7곡(리게티·니노 로타·패르트 등)을 섞어 넣었다.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건, 작품을 공부할 때는 과거의 당대의 시대상을 공부하고 작곡가의 음악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부분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그 작곡가들은 그 시대와 그 당대의 사람을 이해하여 작품에 반영하였다. 내가 연주자로서 하는 역할은 이 작품이 우리 시대에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시대와 사회에 관한 생각이 많아 보인다. 실제로 왼손의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을 때, 투병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도 했다.
우리는 단순히 음악가가 아니라, 지구에 함께하는 주민이자, 도시의 시민이다. 물론 요즘같이 소식이 너무나 빠르게 전파되고, 개인의 의견이 전문화된 이론인 것처럼 변질하는 시대에 모든 것을 이야기하며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예술이 사회의 풍토와 단절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사회와 제도, 정치가 안정됐을 때만 비옥한 문화예술이 번창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를 반성하는 책임은 시민으로서 가져야 한다.
준비된 베토벤을 들고 한국을 찾다
이번 내한에서 지휘를 맡은 크리스티안 라이프와는 처음 호흡을 맞춘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그와 한 무대에서 협연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크리스티안은 소중한 나의 친구이자 좋은 피아니스트이다. 언젠가 크리스티안과 한 공연에서 서로 다른 협주곡을 연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음악에 관해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리허설 때 호흡만 맞춰보고 돌아서는 게 아닌, 악보를 반복적이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대화를 나누는 작업을 선호한다. 그런 과정을 지나온 연주는 분명 내게 다르게 나타난다.
베토벤 협주곡 3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베토벤은 당신과 오랜 기간을 함께 해왔다. 12년 전에는 베토벤 소나타 음반을 냈고, 올해 1월에는 카리나 카넬라키스/네덜란드 라디오 필과 함께 베토벤 협주곡 1번 리코딩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 뮤직 클래식’에 공개하기도 했다. 베토벤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일까?
베토벤은 공간을 분리하고 대비를 주는 데에 있어서 정말 대가이다. 베토벤만큼 피아노를 교향곡처럼 사용하는 작곡가는 당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피아노 작품만 연주해도 무대를 오케스트라 공연, 오페라 공연으로 바꾸고, 음악으로 건축, 풍경, 도시를 만들 줄 안다. 간단한 음도 적재적소에 넣어 큰 효과를 만들어 내는데, 감상하는 사람은 이 효과를 미리 예상치 못해 깜짝 놀랄 때도 있다. 그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그 후의 작곡가를 이해할 때 도움이 되는 놀라운 작곡가이다.
해외 아티스트들은 ‘한국 관객은 젊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런 특징에도 관심이 있는 편이라고 들었다.
내가 한가운데서 자라온 클래식 음악 산업은 엘리트주의와 보수주의가 존재하며, 이를 항상 부수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많은 관객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우리가 주는 힘이 무엇인지 고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보다 어린 관객을 발견하면 전율을 느낀다. 호기심 많고 열정적인 한국 관객을 만나는 것이 매우 기대된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KBS교향악단
Performance information
크리스티안 라이프/KBS교향악단(협연 알리스 사라 오트)
7월 14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피아노 협주곡 3번,
R.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