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FESTIVAL
올 여름 주목받는 페스티벌
스코틀랜드에서 펼쳐지는 세계인의 예술 축제 8.5~27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새로운 장(章)의 시작과 ‘포커스 온 코리아’ 특별 주간
Where do we go from here?
HISTORY 축제의 도시, 에든버러
PROGRAM 새로운 예술감독과 올해의 페스티벌
FOCUS ON KOREA 한국의 특별주간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갈 것인가?’
축제의 주제는 두어 개의 핵심어가 아닌, 열린 질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베네데티는 ‘꿈이 있다’라고 말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책 제목을 따, 올해의 축제 주제를 정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모든 예술 장르에 퍽 잘 어울리는 질문이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1947년 스코틀랜드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단절된 사회와 사람을 다시 연결하기 위해 시작됐다. 올해로 76회를 맞이하는 축제는 그 긴 세월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전쟁·인류·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오페라·연극·무용·재즈·팝·전시 등 관람을 할 수 있는 모든 예술의 종류를 축제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축제는 세 가지 하위주제를 발표했고, 모든 공연은 그 주제 아래로 들어간다.
첫째는 ‘혼돈을 넘어선 공동체(Community over chaos)’로, 지역 사회를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진 공연과 예술가를 모았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여러 교육 프로그램, 현대음악이 이 카테고리 안에 담겨 있다. 둘째는 ‘역경에 직면한 희망(Hope in the face of adversity)’으로, 힘든 시련에도 이를 극복하게 하는 인간의 힘과 그 행동 궤적을 의미한다. 삶을 직접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전쟁 시기에 작곡된 곡이 연주된다. 마지막으로 ‘우리 것이 아닌 것의 시선(A perspective that’s not one’s own)’은 우리 사회에 여러 의견이 존재하고 그 모두가 동시에 옳을 수 있다는 포용의 방향을 제시한다. 다양한 지역 출신의 아티스트가 출연하여 우리가 잘 아는 음악을 그들의 색으로, 또는 그들의 음악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공연이 이어진다.
어쩌면 막연하고 거대했을 주제, 또는 반대로 너무나 방대하고 결속되지 않았을 공연들의 교집합을 그들은 잘 묶어 우리에게 인사로 건네고 있다. 특히 ‘한국 특별 주간’(8.8~17)이라는 명칭으로 역대 최다 단체가 초청된 올해의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분명 새로운 분위기를 내뿜으며 우리를 지구 반대편으로 부르고 있다. 떠나보자, 에든버러로!
총괄 이의정 기자
HISTORY
20세기 예술사에 기록된 축제의 도시, 에든버러
매년 4백만이 방문하는 축제의 역사를 살펴보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예술이 가진 힘으로 단절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재결합하고 위로하는 임무를 띄고 스코틀랜드 수도에서 탄생했다. 8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축제는 이 정신을 간직하며,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좋은 뜻을 건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축제의 도시로 불리는 에든버러는 영국 전역에서 런던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은 도시이다. 숫자로 적어 보면 이 축제의 규모가 더욱 눈에 띈다. 에든버러의 인구는 약 50만 명, 도시 면적은 서울의 절반보다 조금 더 작지만, 8월 축제 기간의 방문객은 4백만을 넘기며, 공연을 위해 오는 예술가도 2,500명에 달한다. 공식적인 공연 외에 열리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는 4주 동안 3,000가지의 공연이 300곳의 장소에서 5만 번 펼쳐진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지만, 도시에서 펼쳐지는 국제적인 축제는 더욱 다양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페스티벌’로 1947년 예술 축제와 함께 시작하였고, 올해도 8월에 함께 열린다. 소설 ‘해리포터’가 창작된 땅인 만큼 ‘국제 마술 페스티벌’도 열리며, 올해는 12월로 예정돼 있다. 또,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는 왕실이 존재하는 영국 땅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다. 에든버러 성문 앞에서 불꽃놀이와 함께 펼쳐지는 이 군악대 행사는 이 땅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장면일 것이다. 몇 개의 미디어 행사와 공연이 더 있지만, 이번 특집에서는 매년 8월에 열리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만을 집중 조명해 보자.
시작점을 찾아서
축제에 대한 구상은 1942년부터 진행되었다.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루돌프 빙(1902~1997)과 소프라노 오드리 마일드메이(1900~1953)가 함께 에든버러에서 ‘거지 오페라’를 관람한 이후, 스코틀랜드의 수도①인 그곳에서 음악 축제가 열리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이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 사회가 황폐화②되기 전이었기에, 전쟁의 위로라는 사명을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축제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1945년 11월 24일 스코틀랜드 내 세 개의 신문사를 통해서였다. 전쟁 이후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 속에 있었기 때문에, 축제에 대한 반대도 존재했다. 특히 정부는 당시 축제기간 동안 에든버러성③을 계속 밝힐만한 연료공급이 어려워 밤에는 에든버러성의 불을 끄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이 축제에 오는 방문객에게 반드시 에든버러성의 야경을 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축제 기간 중 나흘 동안 에든버러성은 해질녘부터 자정까지 민간이 기부한 석탄을 통해 빛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초대 예술감독 루돌프 빙④과 함께한 축제는 첫 단추부터 전망이 밝았다. 방문자가 매일 2,500명이 넘어갔고, 초대받지 못한 극단은 거리에서 스스로 공연⑤을 이어나가 공연장 밖의 관광객과 시민을 즐겁게 했다. 첫해의 참가자에는 지휘자 브루노 발터(1876~1962)와 빈 필하모닉도 있었다. 그들은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곡,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연주했고, 메조소프라노 캐슬린 페리에(1912~1953)와 말러 ‘대지의 노래’를 공연했다.
① 영국과 스코틀랜드
영국은 4개의 구성국인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로 구분할 수 있다. 13세기에 전쟁을 지나며 웨일스는 잉글랜드로 편입됐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707년에 상호 대등한 권리로 합병했으며, 1801년 북아일랜드가 합병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됐다. 각 구성국이 자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수도도 각자 가지고 있다. 잉글랜드는 런던, 스코틀랜드는 에든버러, 웨일스는 카디프, 북아일랜드는 벨파스트가 수도이다. 영국의 전체 인구 중 약 83%가 잉글랜드에 거주, 약 8%가 스코틀랜드에 거주하고 있다.
② 제2차 세계대전과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연합국에 영국의 이름으로 함께 참여하였다. 섬나라인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해군이 매우 강했고, 전쟁 속 주요한 활약은 해군과 해양에서 일어났다. 내륙이 큰 피해를 보지 않아 전쟁 이후에도 산업은 이어 나갈 수 있었지만, 비효율적인 산업구조로 인해 1970년대 이전까지는 경제 성장을 빠르게 이루지 못했다.
③ 에든버러성
깎아지른 듯한 벼랑 위에 세월이 느껴지는 빛 바란 돌 색의 성. 수도 한 가운데 높은 곳에 위치한 에든버러성은 에든버러의 상징이다. 성의 동쪽을 제외한 세 방향은 80미터 높이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 고지대를 ‘캐슬 록’이라 부른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캐슬 록 위 웅장한 성의 정확한 건축 일자는 알 수 없지만, 12세기 스코틀랜드의 왕 데이비드 1세가 군림하던 시기에도 왕궁이 그곳에 있었고, 왕실은 1633년까지 에든버러성에서 왕실의 행사와 연회를 열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역사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거주 시설보다는 군사 요충지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④ 역대 축제의 예술감독
1947년에 시작된 축제감독 중 대다수가 연출가, 예술경영인 이었다. 약 60주년이 되는 2006년부터 작곡가, 작가 같은특정 예술가가 감독직을 맡아, 해당 장르를 적극 유입·지원하기 시작했다. 2022년 축제 감독을 맡은 니콜라 베네데티는 최초의 연주자 출신이며, 동시에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제1대 1947~1949: 오페라 감독 루돌프 빙(오스트리아, 1902~1997)
제2대 1950~1955: 공연 기획자 이안 헌터(잉글랜드, 1919~2003)
제3대 1956~1960: 예술행정가 로버트 폰손비(잉글랜드, 1926~2019)
제4대 1961~1965: 극장 경영 관리자 조지 레슬스 헤어우드 백작(잉글랜드, 1923~2011)
제5대 1966~1978: 예술행정가 피터 디어맨드(오스트리아, 1913~1998)
제6대 1979~1983: 예술행정가 존 드러먼드(잉글랜드, 1934~2006)
제7대 1984~1991: 연극 감독 프랭크 던롭(잉글랜드, 1927~)
제8대 1992~2006: 예술행정가 브라이언 맥마스터(잉글랜드, 1943~)
제9대 2006~2014: 작곡가 조너선 밀스(호주, 1963~)
제10대 2014~2022: 작가 퍼거스 리네한(아일랜드, 1969~)
제11대 2022~: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베네데티(스코틀랜드, 1987~)
⑤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주변’이라는 뜻의 ‘프린지(fringe)’의 단어가 포함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축제 기간 에든버러 도시를 즐기는 또 다른 방식 중 하나이다. 1947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초대받지 못한 8개의 팀이 길거리에서 자체 공연을 펼치면서 시작됐고,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에든버러 전역에서 길거리 공연, 학교나 강당을 빌린 공연으로 만나 볼 수 있으며, 이 모든 공연을 합치면 3주 동안 3,000여 개에 달하는 공연이 도시에서 이뤄진다. 1999년 ‘난타’ 공연 이후로 우리나라도 매년 참여하고 있으며, 올해도 극단 하땅세·무소의 뿔 등 여러 단체가 에든버러로 떠난다.
역사 속 명장면
1952년, 후원자 명단에서 특별한 이름이 적히기 시작했다. 영국 왕실①이 공식적으로 축제를 후원하고 참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후원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2017년부터는 엘리자베스 2세의 막내 아들인 에든버러 공작이 축제 70주년을 맞이하여 축하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1953년에는 슬픈 소식과 애도의 뜻을 함께하는 공연도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1916~1999)이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1920~ 2001), 조콘다 드 비토(1907~1994)와 함께 협주곡 공연이 있던 날 아침, 메뉴인의 동료 연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1880~1953)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메뉴인은 자신의 연주를 그에게 헌정②했고, 청중은 연주자와 함께 그를 추모하기 위해 공연의 박수를 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1899~1987)와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1925~ 2012)의 듀오 공연③도 손에 꼽히는 명연주였다. 그들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무료 공연에서 함께하며 브람스와 슈베르트, 볼프의 작품을 불렀는데, “아이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은 어른들 앞에서 부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다른 극장가와 협력을 본격적으로 증진하는 시기였다. 오페라 장르에서는 라 스칼라 극장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 코번트가든, 부다페스트 오페라와 발레 등과 협업을 했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는 독일 오페라 극장과의 협업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베를린 도이치 오퍼, 라인 도이치 오퍼,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등의 협업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세계인이 모여드는 축제인 만큼 세계 초연 작품도 여럿 발표됐다. 작년까지 세계초연작은 총 63개로 거의 매년 신작이 올랐으며, 그중 연극은 23작품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에 잘 알려진 작품 중 에든버러에서 초연된 작품을 꼽으면 작가 T.S. 엘리엇의 ‘칵테일 파티’가 있다.
20세기 최고의 안무가로 손꼽히는 피나 바우슈(1940~2009)의 공연도 명공연으로 기록됐다. 1982년 안무작 ‘카네이션’④은 1995년 에든버러에서 공연됐는데, 수많은 카네이션이 펼쳐진 무대에서 비극과 고통과 동시에 인류애를 보여주는 구성으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부터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이름을 올렸을까? 2011년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⑤, 안은미댄스컴퍼니의 ‘바리공주’, 정명훈/서울시향이 최초이다. 단체가 아닌 개인의 초청으로 살펴보면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명창 안숙선이 공식 초청된 것이 한국 최초이며, 판소리 ‘춘향가’를 5시간 넘게 부르며 완창했다. 한국 예술가(들)의 첫 진출 기준으로 볼 때, 올해는 에든버러 진출 30주년이 되는 해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PROGRAM
새로운 감독이 새로 빚은 축제
예술로 쌓아나갈 또 다른 역사
예술감독 니콜라 베네데티
76년의 역사를 가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도 아직 ‘최초’라는 글자를 적을 곳이 남아있다. 우선, 작년 10월에 제11대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베네데티(1987~)가 이에 해당한다. 그는 역대 예술감독 중 첫 스코틀랜드 현지 출신이자, 첫 여성이다. 선임 이후 처음 맡은 올해의 축제 참가자와 프로그램을 한 번 더 살펴보게 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갈 것인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1929 ~1968)의 서적 제목에서 가져온 이 문구는 올해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평등과 인권을 위해 싸웠던 루터 킹 주니어의 뜻과, 전쟁 이후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와 그들 사이의 유대라는 에든버러 축제의 창립 의지에 따라, 이번 축제에서 그는 사람간의 연결에 가장 밑줄을 긋고 있다. 축제는 다시 세 가지 하위 주제로 나눠진다. ‘혼돈을 넘어선 공동체’ ‘역경에 직면한 희망’ ‘우리 것이 아닌 것의 시선’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장르가 함께한다.
영국 라디오 방송사 ‘클래식FM’에서 그에게 축제를 방문하는 관객에게 무엇을 기대하냐 묻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축제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관객들 마음에 인간애·관용·호기심이 늘어났으면 합니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놓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말이죠.” 의문형으로 제시된 축제 주제에 대한 베네데티 감독의 응답은 이렇다. “우리는 당신에게 가고,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 이 축제는 당신의 축제이고, 축제 속의 기쁨과 발견의 정신을 만들어 가는 사람은 당신입니다.”
23일 동안 도시의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장르를 모두 아우르는 축제의 도량 덕에 축제를 둘러볼 방법은 다양하다. 앉아서 읽는 ‘객석’에서는 공연 유형별로 살펴보는 것이 안성맞춤이다!
클래식 음악 콘서트
클래식 음악도 연출이 중요할 때!
세계인이 모이는 축제인 만큼 영국의 악단을 선보이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다. 라이언 위걸즈워스/BBC 스코티시 심포니 오케스트라(8.6)와 축제의 예술감독인 니콜라 베네데티가 축제 초반에 21세기 작품을 소개한다. 한스 아브라함센(1952~)·헬렌 그림(1981~)·엘리자베스 오고넥(1989~)·마크 앤서니 터니지(1960~)의 작품을 연주하며, 베네데티와 음악 라디오 진행자인 톰 서비스가 함께 오늘날의 작곡가와 작곡 경향을 해설한다.
영국의 대표 악단인 사이먼 래틀/런던심포니의 공연(8.18)의 구성 역시 독특하다. 같은 날 오후 6시와 8시에 공연을 연속해서 올리는데, 서로 다른 프로그램에 연결점을 두었다. 오후 6시 공연에는 강연과 함께 폴 뒤카의 ‘페리를 위한 팡파르’, 다리우스 미요의 ‘천지창조’, 드뷔시의 ‘바다’를 선보이고, 오후 8시 공연에는 세 곡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된 메시앙의 교향곡 ‘투랑갈릴라’를 선보여 네 곡을 관통하는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실내악에서는 세 하위 주제 중 하나인 ‘역경을 마주한 희망’의 레퍼토리가 눈에 들어온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작성된 여러 편지를 독일 베이스-바리톤인 토마스 크바스트호프(1959~)가 낭독하며 베베른·슈베르트·코른골트 등의 작품을 연주하는 영국의 아마티스 트리오의 공연(8.14)이 그것이다. 런던 심포니 단원 4명(8.17)이 연주할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수용소에서 초연된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역시 이 주제에서 빠질 수 없다.
추천PICK! ★★★★★
8월 5일 탄 둔/로열 스코티시 국립 오케스트라
이날 연주하는 ‘붓다 수난곡’ 음반(Decca) 발매가 코앞!
8월 10일 이반 피셔/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스코틀랜드에서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연주한다고?
8월 26일 코파친스카야&카메라타 베른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에 영상이 더해진 공연!
극장가
화제작을 모아 영국 초연으로 선보이다
오페라와 극장가는 낯설고 신선한 작품으로 포진돼 있다. 베를린 코미셰 오퍼에서 20년간 좋은 호평을 내며, 극장을 이끌었던 배리 코스키(1967~)의 연출작이 그중 하나이다. 지난 2021/22 시즌으로 코미셰 오퍼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했던 코스키가 이번 축제에서는 쿠르트 바일(1900~1950)의 ‘서푼짜리 오페라’(8.18~20)를 영국에서 초연 무대로 올린다. 베를린 앙상블 팀과 함께하는 이번 프로덕션은 2019년에 선보인 것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연극도 영국 초연작이 가득하다. 영화·연극 감독인 크리스티안 자타히(1968~)의 ‘황혼’(8.5~8)은 영화 ‘도그빌’(2003)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이민자에게 얼마나 관대할 수 있는가”라 묻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열렬한 환대를 받지만 머지않아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이민자 여성을 그리며 감독 자타히는 우리 시대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돌아본다.
추천 PICK! ★★★★★
8월 17~19일 피나 바우슈 ‘봄의 제전’ 외
아프리카 14개국에서 온 34명의 무용수가 모래 위에서 선보일 춤!
8월 5~27일 스코틀랜드 국립극단 ‘쓰론(thrown)’
그들은 왜 진흙탕에서 대립하다가 서로를 꼭 끌어안는 걸까?
무용·행위예술·다원
예측할 수 없는 신선함
예술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무용이다. 지난 2018년에 이어 초청된 이스라엘의 L-E-V 댄스 컴퍼니는 이 축제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단체이다. 이번 무대의 제목은 ‘제3장: 마음의 잔혹한 여정’(8.13·14)으로 5년 전의 무대와 이어지는 시리즈이다. 9명의 무용수는 사랑과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며, 삶의 손실이 올 때 이를 어떻게 보수해 나가는지 표현할 예정이다.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축제인 만큼 형식의 경계를 지을 수 없는 공연도 여럿이다. 포커스 컴퍼니와 샬리와테 컴퍼니의 협업 작품인 ‘일요일’(8.15~19)은 무대 소품들이 눈에 띈다. 벨기에의 마임 단체와 인형극 단체가 만나 그리는 디스토피아와 아포칼립스는 기후 위기의 내용을 담아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추천 PICK! ★★★★★
8월 23~25일 앨빈 에일리 아메리카 댄스 시어터
화려한 군무의 정석! 에너지 넘치는 춤이 좋다면 바로 이 공연!
8월 5~26일 행위예술가 제프 소벨 ‘음식’
왜 우리는 먹어야 할까? 식품 생산에 질문하다!
FOCUS ON KOREA
에든버러의 한국 특별주간 8.8~17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아 대거 초청된 한국 아티스트들의 향연
2003년 명창 안숙선의 판소리로 시작, 2011년 음악(정명훈/서울시향)·무용(안은미댄스컴퍼니)·연극(극단 목화) 3박자 초청을 시작으로 국내 아티스트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여럿 초청된 기록이 있다. 2016년 소프라노 서예리, 2017년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바리톤 조병익, 2018·2019년에는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2022년에는 다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안무가 왕현정이 참가했다. 그렇게 올해도 한두 명의 아티스트 명단을 확인하려 접속해 본 축제의 공식 홈페이지에선 뜻밖의 표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포커스 온 코리아’(이하 한국 특별주간)라는 마크였다.
축제에 참가하는 한국의 단체와 개인은 총 다섯 팀이다. 슈베르트·브리튼·브람스의 작품을 연주하는 노부스 콰르텟(8.8), 트로이의 전쟁 이후 남겨진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는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을 공연할 국립창극단(8.9~11), KBS교향악단과 음악감독의 강점인 드보르자크와 차이콥스키를 보여줄 피에타리 잉키넨/KBS교향악단(협연 한재민)(8.11), 올해 모차르트 독주회 전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피아니스트 손열음(8.15), 그리고 지난해 BBC 프롬스 데뷔를 마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8.17)이 그 주인공이다. 축제의 주 축이 되는 두 주요 공연장인 어셔홀과 퀸즈홀에서 연속적으로 공연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공연을 한국 특별주간이라는 이름으로 묶게 됐다.
올해는 한·영 수교 140주년 기념해이다. 물론 이 문구로 한 회에 이렇게 여러 팀이 초청됐다는 것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올해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공식적으로 협력하는 5개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이 이러한 문구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정황을 이해하기 위해 에든버러 페스티벌 주관·협력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하 진흥원)과 주영한국문화원(이하 문화원)에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NTERVIEW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KOFICE
원장 정길화
‘한류’ ‘K-문화’ 등 한국적 자원을 활용한 예술 외에 이번에는 ‘K-클래식’도 눈에 띈다.
많은 분이 알다시피 ‘한류’의 성장에는 K-팝의 인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진흥원에서는 K-팝을 포함하여, 전통문화와 한국의 클래식 연주자까지 아우르면서 한국의 다양성과 심층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한국 특별주간’이 포함된 배경에는 진흥원의 노력이 있었다. 진흥원에서 이 축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진흥원에서는 작년부터 ‘코리아시즌’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국제 축제에 참여하여 한국의 문화예술을 선보이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작년에는 멕시코 세르반티노 축제에 주빈국으로 참여했고, 올해는 유럽에 문화적 파급력을 가져다주길 기대하며 영국을 사업 대상지로 정했다.
올해는 한·영 수교 140주년이라, 영국과의 교류가 더욱 중요한 해이다. 이번 축제 참여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번 축제에는 다양한 장르의 클래식 음악과 전통음악인 창극까지 참가한다. 영국 현지에서 조명 받았던 한국의 드라마와 가요 외 ‘한류’ 범위가 확장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류행사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이후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영국의 바비칸 센터, 라우리 극장, 테이트 모던 등에서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공연하고 전시할 예정이니 올해를 발판으로 더욱 문화 교류를 늘릴 수 있지 않겠나.
기관장으로서 ‘K-문화’의 저력과 미래가 더욱 기대되겠다.
지난해 멕시코 세르반티노 축제에 참가하면서 그 저력을 몸소 느꼈다. 한·미 수교 140주년 기념으로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개최한 ‘코리아가요제’도 그러했다. 한국 교민뿐 아니라 현지인도 대거 참석한 행사에서 ‘떼창’이 터져 나왔다. 인상적이었다.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 열린 축제의 반응까지 생각하면 다 말하지 못할 정도이다. 앞으로도 한국은 문화 강국으로 나아갈 것이고, 진흥원은 그 길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주영한국문화원 KCCUK
원장 선승혜
실무관 장민정
현지인에게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무슨 의미인가?
선승혜 스코틀랜드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긴다. 전체 도시가 축제가 되는 분위기를 다들 즐기고, 이 시기에는 에든버러로 휴가도 많이 떠난다. 기차표도 호텔도 모두 매진 행렬이고,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도 무척 늘어난다.
축제에는 다양한 국가의 아티스트와 예술이 많이 참여한다. 이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가?
선승혜 영국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향한 호기심이 굉장히 높다. 그래서 이번 한국 특별주간의 공연 중에서도 ‘트로이의 여인들’에 대한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나라인 영국은 극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극의 내용이 어떻게 음악과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고 싶어 하고, 특히 여성이 주제가 되면 해석의 지평은 더욱 넓어진다.
이번 축제에 참여하는 한국 아티스트는 어떻게 선별됐는가?
장민정 올해가 한·영 수교 140주년이다 보니, ‘한국 특별주간’에 대한 이야기는 작년부터 오가기 시작했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클래식 음악 담당자가 작년부터 한국을 방문하여 여러 악단의 공연을 감상하며 신중히 결정을 내리더라. 올해 참여하는 국내 아티스트들은 모두 축제 측에서 공연을 관람한 후 직접 아티스트를 초청했다. ‘트로이의 여인들’의 경우 파리와 뉴욕에서 무대를 올린 적이 있었던 점을 관심 있게 보더라.
축제에는 다양한 국가가 초청되지만,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한국 특별주간이라는 명칭을 받았다.
장민정 매년 국내 아티스트들이 초청됐지만, 이렇게 집약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문화원과 축제 측이 작년부터 나눈 긴 대화가 좋은 성과로 연결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신 많은 분께 감사를 느끼며, 앞으로의 문화원과 축제 측의 협력도 더욱 기대가 된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P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