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잇는 음악의 울림, 영화음악 작곡가 하워드 쇼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7월 11일 9:00 오전

THE MASTER CLASS

영화음악 작곡가 하워드 쇼어

영화를 잇는 음악의 울림

영화 ‘반지의 제왕’ 작곡가의 마스터 클래스 현장. 스크린과 음악의 다리를 놓았던 그의 삶과 예술관을 만나보았다

 

1927년 처음으로 음악이 삽입된 영화 ‘재즈 싱어’가 세상에 나온 지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음악 없는 영화를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없어서 안 될 요소인 영화음악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칸 영화제는 매년 사셈(SACEM, 프랑스 음악가·작곡가·편집자 연합)과 함께 영화음악 작곡가의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의 작곡가는 영화 ‘양들의 침묵’ ‘반지의 제왕’ 시리즈 ‘디파티드’ ‘에비에이터’ 등 수많은 영화의 음악을 작곡하고, 아카데미 음악상 3회 수상에 빛나는 하워드 쇼어(1946~). 그의 마스터 클래스는 지난 5월 22일 프랑스 영화음악 기획자 스테판 르루주와 쇼어와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대담 중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1942~)가 깜짝 방문해 쇼어와의 작업을 회고하기도 했다. 대담의 일부를 재구성해 옮긴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페르소나

어떻게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1950년대 캐나다에는 학생들의 음악적 흥미를 테스트하고, 점수가 높은 아이들에게 악기와 실기 교습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었어요.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클라리넷을 선택했죠. 마침 클라리넷 선생님이 작곡가 존 웨인즈웨이그(1913~2006)의 형제였는데, 그가 제게 대위법과 화성학을 가르쳐줬어요. 그때부터 연필로 악보를 그리며 작곡을 시작했죠. 영화계에 머물며 연기도 감독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바탕이 음악이어서인지 영화음악 작곡을 하게 되었네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1943~) 감독과의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는데요.

운 좋게도 그와 같은 동네에 살았어요. 1960년대에 크로넨버그는 토론토에서 영화를 찍고 멋진 모터사이클을 모는 유명한 소년이었죠. 저도 그의 영화를 잘 알고 있었고요. 캐나다의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브루드’(1979)의 음악 작업 제안을 시작으로 크로넨버그와 30년 동안 16편의 영화를 함께했어요. 신작 ‘미래의 범죄’(2022)의 음악은 아주 급진적이였어요. 전자음악은 영화음악 작업 초기부터 흥미롭게 실험해 온 장르입니다. 이번에는 전자음악에 펜데레츠키 현악 4중주단의 연주를 조합했죠. 어쿠스틱 음향은 전자음악에 인간미를 부여합니다. 이는 크로넨버그 영화가 보여주는 ‘기계와 사람에 대한 집착’과 연결되죠. 그의 작품은 언제나 무언가를 연결합니다. 한 작품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는 동안 음악도 함께 연결돼요. 예를 들어 영화 ‘비디오드롬’(1983)에 사용된 전자음악 오케스트레이션은 훗날 영화 ‘플라이’(1988)에서 완전한 심포니로 확장됩니다.

오케스트레이션이라면 영화 ‘M. 버터플라이’(1994)나 ‘크래쉬’(1996)도 빼놓을 수 없죠.

‘M. 버터플라이’의 음악을 위해 처음에는 두 대의 하프를 위한 2성 대위법 작품을 썼어요. 포디엄 양쪽에 하프를 두어 스테레오 음향이 되도록 했죠. 이후, 런던 필하모닉과 연주를 맞추는 과정에서 입체 음향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중앙에 한 대를 추가, 총 세 대의 하프를 위한 작품으로 개정했어요. 작품은 훗날 ‘크래쉬’ 속 여섯 대의 전자기타를 위한 3성 대위법으로 재탄생했어요. 이렇듯 전자 음향과 어쿠스틱 음향의 조합은 크로넨버그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연결하는 음악적 실마리입니다.

영화의 주요 장면에 사용되는 음악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나요?

영화음악은 ‘영화 중심의 울림’이에요. 따라서 감독과 함께 영화에 조응하는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데 시간을 들입니다. 마틴 스코세이지와 영화 ‘디파티드’(2006)의 음악을 고민할 때 “캐릭터가 서로 춤을 추듯 얽혀 있다”는 말을 듣고 탱고를 떠올렸어요.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여 궁극적으로는 나쁘게 끝나리라는 것을 음악으로 보여줘야 했죠. 조나단 드미(1944~2017) 감독은 영화 ‘양들의 침묵’(1991)에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 분)가 아닌, 클라리스 스탈링(조디 포스터 분)의 관점에서 음악을 써달라고 했어요. 그 결과, 긴장 속에 인간미와 서사가 담긴 음악이 탄생했습니다.

작업 방식도 궁금해지는데요.

마음속에 무언가 느껴지는 순간이 올 때 그것을 수집합니다. 매일의 기록이 모여 음악적 모티브가 되고, 그 모티브들이 모여 하나의 카탈로그가 되죠. 이것이 제 작곡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주로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작곡하는데요. 시나리오를 읽은 뒤, 단어와 문장에서 아이디어에서 끌어내는 편입니다. 소설이 원작일 때는 그 배경을 연구하고, 당시의 세계와 가치관들을 떠올리죠. 이러한 바탕 작업이 끝난 다음에 스코어를 씁니다. 악보를 쓰는 건 꿈꾸듯 수집한 모티브와 테마를 현실로 옮기는 기술적인 작업이에요.

 

하워드 쇼어(1946~) 캐나다에서 태어나 재즈 뮤지션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미국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음악감독(1975~1980)을 맡았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과의 작업을 기점으로 팀 버튼·마틴 스코세이지 등의 유명 감독과 그동안 80편이 넘는 영화의 음악을 작업했다. 크로넨버그의 영화 ‘플라이’를 각색한 오페라를 작곡했고, 지난 5월, 라디오 프랑스 필은 그에게 헌정하는 세 차례의 공연을 개최한 바 있다.

 

하워드 쇼어와 마틴 스코세이지가 함께 한 마스터 클래스 현장 ©Tom Franck

음악적 동료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만남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등장한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쇼어 마티(마틴 스코세이지의 애칭)와 저는 1980년대에 뉴욕에서 같은 빌딩을 썼어요. 저는 6층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작업했죠. 오가며 마주치다 영화 ‘특근’(1985)을 함께 작업하게 됐어요.

스코세이지 이전 영화에서는 제가 직접 음악을 선곡하고 작곡까지 하곤 했는데요, ‘특근’은 독립영화여서 그에 걸맞은 실험적인 ‘뉴 웨이브’가 필요했어요.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가 필요했을 때 하워드를 만나게 된 거죠. 그의 음악은 유머가 있으면서도 기묘했어요. 완벽했죠.

시계 초침 소리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트랙이 인상적인데요.

쇼어 스튜디오에 실험적인 장비가 많았어요. 진자운동을 하는 작은 전자악기가 있었는데, 마티와 함께 메트로놈처럼 앞뒤로 움직이며 놀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규칙적인 소리가 주는 긴장감이 영화와 잘 어울릴 것 같았죠.

1920년대가 배경인 영화 ‘에비에이터’(2002) 작업은 어땠나요.

스코세이지 저는 1920년대 무성영화를 좋아합니다. 거기엔 들리지 않는 음악적 요소가 가득해요. 후에, 무성영화에 오케스트라 연주가 붙어 풍성지기도 했고요. 우리는 그 지점에서 영감을 받아 ‘에비에이터’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쇼어 마티와의 음악 작업은 언제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연구하는 식이에요. ‘에비에이터’ 음악은 사전 조사만 9개월가량이 걸렸어요. 배경의 히스패닉적 요소를 부각하기 위해 캐스터네츠를 쓰고, 초창기 할리우드 사운드의 구현을 위해 벨기에의 플레미시 방송교향악단과 협업하기도 했어요. 극 중 시험 비행에 성공하는 장면에서는 바흐의 푸가를 썼습니다. 하워드 휴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할 때도 이 푸가의 일부를 발전시켰죠.

스코세이지 맞아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1882~1977)가 지휘한 바흐의 ‘파사칼리아와 푸가’ BWV582였어요.

영화 ‘휴고’(2011)를 위해 스코세이지는 큰 규모의 관현악 작품을 원했었죠.

쇼어 ‘크래쉬’의 모티브를 교향적 사운드로 발전시켰어요. 당시 6중주 작품을 쓰고 있었는데, 런던 필과 함께 음악 전체를 관현악 버전으로 확장했습니다. 장고 라인하르트(1910~1953) 스타일의 기타 연주와 함께요. ‘휴고’에는 오케스트레이션을 거치치 않고 데모를 바로 사용한 트랙도 있어요. 마티는 편집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스케치나 데모 단계의 음악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아요.

‘영화 편집은 정치와 같아서 힘이 필요하지만, 그 반대의 힘도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어요. 편집실의 마티와 하워드는 어떤가요?

쇼어 우리 둘 다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에 대한 견해가 비슷한 편이에요. 그래서 영화에 쓰이는 음악을 가져오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은 늘 즐겁죠. 이는 ‘좋은 영화’라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스코세이지 편집실에서는 서로의 관점을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에게 편집 과정은 전투가 아닌 협업이죠. 다만,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기까지의 과정이 때때로 어려울 뿐이에요.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사진 사셈(SACEM)

 

RECORD

‘미래의 범죄’(2022)

Decca 4802395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담은 음반이다.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 오보에 등의 악기를 활용한 하워드 쇼어의 음악 구성을 통해 그가 말한 ‘영화 중심의 울림’을 느끼기에 좋은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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