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클라리네티스트·지휘자·예술감독
안드레아스 오텐잠머
진화하는 예술가의 ‘클래식 레볼루션’
이 연주자의 사전에서 ‘시간’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다른 걸까? 서른넷을 조금 넘긴 그의 나이와 커리어를 나란히 두고 나면, 몸이 두 개인지 의심이 될 정도이다. 스물하나에 이미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을 달았으며, 뷔르겐슈토크 예술감독으로 일한 지 어느새 10년 차. 2년 전부터는 지휘를 시작하여 이미 작년에 지휘자로서 아시아 데뷔를 마쳤다. 그리고 올해 여름, 그의 이력에 롯데콘서트홀의 ‘클래식 레볼루션’ 예술감독이 추가된다
총괄 이의정 기자 사진 롯데문화재단·SBU클래식앤컬처
INTERVIEW _박찬미 FESTIVAL PREVIEW _김강민 REPERTOIRE INQUIRY _이의정
INTERVIEW
Andreas Ottensamer
안드레아스 오텐잠머(1989~) 4살 때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2003년부터 클라리넷을 시작했고, 2011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 클라리넷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도이치 그라모폰과 독점계약을 맺었으며, 총 6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2021년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의 지휘 아카데미에서 우승하며 ‘네메 예르비 상’을 받았고, 2022/23 시즌에 도쿄 심포니, KBS교향악단과의 공연을 통해 아시아에서도 성공적인 지휘 데뷔를 마쳤다.
바쁜 음악가를 손꼽자면 안드레아스 오텐잠머(1989~)도 누구 못지않다. 꽉 찬 연주 스케줄 때문만은 아니다. 일정 사이로 촘촘히 채워진 취미 활동도 한몫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테니스를 치거나, 스쿠버다이빙으로 바닷속 세계를 만나거나, 타고난 옷맵시를 자랑하며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선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7월 초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베를린 필 시즌이 끝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브라질 여행을 떠난 참이었다.
일할 때나 놀 때나 오텐잠머는 늘 전력을 다한다. “뭐 하나를 해도 대충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은 집안 내력이다. 그의 아버지 에른스트 오텐잠머(1955~2017)와 형 다니엘 오텐잠머(1986~) 모두 빈 필하모닉 클라리넷 수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최고 완성도의 음악을 접하다 보니, 스스로 만족할 기준 역시 높아졌다. 2011년, 젊은 나이에 베를린 필 클라리넷 수석 자리를 꿰차기 전에, 자신이 세운 기준 먼저 넘어야 했을 정도로.
베를린 필에 입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에너지는 곧 스위스 산 중턱까지 도달했다.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그곳에 뷔르겐슈토크 실내악 페스티벌을 창설했다. 시작은 일회성 듀오 리사이틀이었다. 피아니스트 호세 가야르도(1970~)와 연주를 마치고 ‘내년에 여기서 공연 또 할까?’ 하고 쏘아 올린 질문이 매해 여름 축제가 되어 돌아왔다. “올해 뷔르겐슈토크 페스티벌 예술감독 10년 차”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하다. 다시 말하지만, 뭐든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몇 해 전부터는 지휘봉을 잡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세계 곳곳에서 지휘자로서의 데뷔를 치른 그는 올 상반기에만 루마니아, 스페인, 프랑스, 헝가리 등에서 지휘자로 무대에 섰다.
짧은 휴가로 재충전을 마친 오텐잠머는 8월 한국에 온다.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의 예술감독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달고. 매해 특정 작곡가를 집중조명하는 ‘클래식 레볼루션’은 올해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을 탐구한다. 20세기 만능 클래식 음악가였던 번스타인의 삶은 오텐잠머와 닮았다. 우리는 올해 다양한 모습의 그를 만날 참이다.
일주일 남짓 브라질에서 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베를린으로 돌아온 그와 영상 대화를 나눴다. 올해 서른넷, 젊은 음악가가 진화해 온 여정을 짚었다. 새로 더해지는 역할에 “정말 모든 부분을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하던 그. 그 표정에서 묻어 나온 건 형식적인 겸손함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는 이 모든 일에 진심이다.
#진심의 출발점
하고 싶은 게 많은 건 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음악대학이 아니라 미국 하버드 대학에, 그것도 자유전공으로 진학한 이유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였다. 전통을 중시하는 빈의 클라리넷 명가 ‘오텐잠머가(家)’이지만, 가족들은 그런 안드레아스의 자유분방함을 오히려 지지해 줬다.
그렇게 입학한 하버드 대학을 안드레아스는 베를린 필 카라얀 아카데미 오디션을 위해 그만뒀다. 그때도 가족들은 격려해 줬다. “프로 음악가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없었지만, 날마다 오지 않는 오디션 기회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가족들은 ‘우선 기회를 잡아보고 안 맞으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힘을 보태줬다.”
베를린에서 안드레아스 오텐잠머의 진격이 시작됐다. 카라얀 아카데미에 입단했고, 곧이어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의 수석으로 발탁됐다. 한 시즌이 지나기도 전에 그는 베를린 필 수석 자리를 꿰찼다.
전통을 중시하는 빈에서 음악의 기본을 익혔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굉장히 개방적이다. 근데 클라리넷을 연주할 땐 빈 출신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악기도, 연주법도 빈 클라리넷 악파를 따르고 있는데.
빈의 클라리넷 악파는 보다 둥글고 포근한 소리가 특징적이다. 클라리넷은 흔히 독일식과 프랑스식으로 나뉘는데, 그중 빈 식도 있다. 악기 내부가 더 넓다. 소리를 내기 위해 더 많은 숨이 필요하고, 이것이 다른 음색을 만들어 낸다.
오스트리아의 독일어 억양은 둥글고 귀엽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목관악기도 숨으로 소리를 만드니 비슷한 걸까?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 악기는 연주하는 사람들이 추구한 소리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연주법은 공식이 아니다. 일상과 세대를 관통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데 베를린 필의 클라리넷 파트는 이런 빈 악파에 점령당했다고 봐야 한다.(웃음) 현재 세 명의 단원이 모두 오스트리아식 악기와 연주법을 쓴다.
연주법은 늘 변하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신의 음색도 시간이 흐르며 변했다고 보나?
그러기를 바란다. 어제와 오늘이 또 다를 거다. 매일의 경험이 나의 성향에 반영되고, 조금씩 변한 내가 연주하는 거니 다를 수밖에. 음악은 그렇게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몸에 밴 실내악
베를린 필 입단(2011)과 동시에 스위스에 뷔르겐슈토크 실내악 페스티벌을 만들었다. 일찍부터 실내악에 대한 대단한 열정이 있었던 건데.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연주해서 그런지 실내악은 내게 일상이었다. 세 부자가 결성한 ‘클라리노츠’도 그 결실 중 하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은 뷔르겐슈토크 실내악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다져진 인연들이 축제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다. 정말 가족 같다. 연주자들이 스케줄에 맞춰 자기 역할만 하고 자리를 뜨는 그런 곳이 아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끼를 함께 먹고, 같이 등산을 간다. 뭐가 잘 안된다 싶어도, 뭔가를 만들어 보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 금방 해결책이 나온다.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베를린 아트슈트롬 페스티벌은 음악과 스포츠를 아우른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관객이 무엇을 감상할 수 있나?
아직 실험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클래식 음악, 발레, 설치미술, 심포지엄 등을 결합한 축제다. 친구이자 전직 테니스 선수인 헨릭 순드슈트롬이 부상으로 은퇴하면서 지역 개발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는데, 베를린 외곽의 슈티엔니츠 호수 인근을 문화지구로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아트슈트롬 페스티벌로 발전했다. 과거 발전소였던 건물은 ‘힙’한 테크노 클럽으로 쓰였고, 이제 축제의 주 무대로 쓰인다. 지금 테니스 코트가 지어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여러 실험을 할 계획이다. 설치 작품이 놓이는 전시장이 될 수도 있고, 테니스 경기를 진행하는 건 당연하다. 그 경기 인터미션 중 발레가 공연된다면 어떨까?
예술감독이기 전에 세계 여러 음악제에 초청받는 클라리네티스트다. 연주자로서 특히 인상 깊었던 축제가 있나?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의 상주예술가 제도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예술감독인 크리스토퍼 뮐러는 어렸던 내게 상주음악가로서의 기회를 주었고, 5~6년 연속으로 초청해 내 음악 세계를 넓혀갈 수 있도록 했다. 한 해 축제에 4~5회 무대가 주어졌는데, 매년 다른 테마 아래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책임감이 주어질 때, 음악가는 자신의 최대치로 공연에 임하게 된다. 예술감독으로서도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는 방법이다. 당시만 해도 이런 제도를 축제에 적용한 사례가 거의 없어서 더 멋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휘자로 처음 선 무대 중 하나도 이곳이라 더 의미가 있다. 축제 재단이 주관한 지휘 아카데미 콩쿠르에서 우승해 ‘네메 예르비 상’을 받았다. 축제가 한 음악가의 성장에 모든 걸음을 함께한 셈이다.
#풀트 앞에서 포디움으로
이제 지휘로 주제를 돌려보자. 지휘에 대한 열망은 언제 시작됐나?
빈 국립음대 재학 중이던 10대 때, 어머니가 날 지휘 수업에 데려가곤 하셨다. 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셨단다. 사실 그렇게 엄마 손을 잡고 갔을 땐 큰 감흥이 없었다. 나중에 클라리네티스트로 지휘자 없는 소규모 앙상블을 이끌면서 지휘의 감각을 느낀 것 같다.
지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했을 때, 베를린 필 단원들 반응은 어땠나?
‘또?’ 이런 반응이었다. 목관악기 수석 겸 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연주자가 많다. 나 이전의 클라리넷 수석도 지휘에 집중하기 위해 악단을 나갔다.
독일 바이마르와 스위스 취리히에서 지휘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악기 연주자가 지휘를 이해하지 않은 채 지휘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꽤 많더라. 협연자로서 지휘를 겸해야 하는 프로젝트들을 맡다 보니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사람도 있다. 내가 향해 있는 방향은 그쪽이 아니다. 난 지휘에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쏟을 생각이다. 그리고 지휘는 그렇게 쉽게 다뤄질 분야가 아니다. 클라리네티스트가 갑자기 바이올린을 하겠다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제대로 배워야 할 영역이다.
유럽 곳곳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리카르도 무티, 프랑수아 그자비에 로트, 얍 판 츠베덴 등 다양한 성향의 지휘자를 만나고 있다.
각각으로부터 다른 경험과 통찰력을 배우기 위함이다. 때로는 레퍼토리 기획력을 고려해 남들이 하지 않은 프로젝트들을 선택하기도 한다. 가장 불편한 선택을 일부러 하는 거다. 배움에 부끄러움이란 없다.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게 아니겠나. 이런 생각이 음악계와 사회에 더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각 선배 지휘자로부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나?
며칠 전에는 프랑수아 그자비에 로트의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을 보조했다. 곧 이 곡을 지휘할 예정이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사이먼 래틀과 리카르도 무티에게서는 오페라에 관해 많은 배움을 얻는다. 내가 선배 지휘자들로부터 주로 배우고자 하는 건 지휘법보다는, 지휘자가 전 프로덕션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해서다. 누구와 언제 리허설을 진행하는지, 성악가들에게 의견을 전달할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꼼꼼히 관찰한다.
지휘에 있어서 지금 가장 고민이 되는 지점, 개선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
정말 모든 부분에서 더 잘하고 싶다. 지휘의 기술적인 부분도 포함해서 말이다. 보디랭귀지가 정말 중요하다. 무언가를 분명하게, 동시에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몸의 단어들이 필요하다. 그 단어의 팔레트가 다채로워야 하는데 여기엔 끝이 없다.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것과 나란히 간다. 다른 곡을 지휘하기 위해선 다른 제스처가 필요하다. 음악의 언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베를린 필을 지휘하게 될 날도 올까?
내가 지휘하게 될 마지막 악단이 아닐까.(웃음) 악단을 이끌기 위해서는 포디움 위에서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솔로이스트, 실내악 연주자, 지휘자, 예술감독 등 수많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취미까지 섭렵 중이다. 이 모든 것을 해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곧 ‘클래식 레볼루션’을 앞두고 있으니 레너드 번스타인을 예로 들어보자. 그도 다양한 활동을 동시에 해냈던 인물이다. 나 역시 다른 걸 하기 위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개의 평행선을 그릴 뿐이다. 다양한 취미는 곧 풍부한 삶을 위한 일이다. 완벽한 기교가 작품의 감정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 강렬한 기쁨 등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를 어떻게 악기로 표현할 수 있겠나. 즐거움과 행복의 순간, 그 압도적인 감정을 표현하려면 연주자 스스로 그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당신을 느낀다. 나는 내 감정과 표현 수단의 팔레트를 다채롭게 하고 있는 셈이다.
#선배였던 총천연색 지휘자를 따라
‘클래식 레볼루션’ 예술감독 첫해에 번스타인을 주제로 택했다. 여러모로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마따나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번스타인과 당신 사이의 연결고리 때문이다.
번스타인은 분명 한 길만 판 사람은 아니었다. 콘서트 피아니스트·지휘자·작곡가·강연자로 활동하면서 폭넓은 시각을 보여줬다. 나도 어렸을 때 피아노·첼로·클라리넷 등 여러 악기를 배웠고, 현재 교향악단·실내악 연주·지휘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경험이 음악적 시각을 훨씬 넓혀주었다. ‘클래식 레볼루션’이 나를 새 예술감독으로 낙점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축제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진 다양한 경험이 새 예술감독 상과 부합했다고 생각한다.
번스타인도 클래식 음악계에 ‘레볼루션’을 가져온 인물이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공연 전후로 강연이나 토크쇼가 진행되는 문화는 그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지성과 카리스마, 위트가 어우러진 강연을 펼쳤다. 복잡한 음악을 잘게 쪼개 가장 쉽게 설명했다. 또, 음악을 둘러싼 모든 것에 관심을 쏟았다. 스스로를 그와 비교하지는 않겠지만, 번스타인의 이런 면모가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 건 사실이다.
번스타인의 음악을 어떻게 보여줄지 더 기대된다.
어떤 작품을 묶느냐에 따라 청중의 경험이 달라진다. 개막 공연(8.11)을 예로 들면, 번스타인 ‘캔디드 서곡’의 화려한 음향으로 목을 축이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으로 아주 낭만적이고 진한 교향악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폐막 공연(8.20)에서는 번스타인과 거슈윈을 페어링했다. 재즈의 영향을 받은 두 미국 음악가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축제 전반에 걸쳐 번스타인의 여러 작품을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대다수 재즈를 기반으로 하지만, 다른 소리 양상을 띠는 게 주목할 점이다.
‘재즈’도 번스타인과 당신의 공통분모로 보였다. 클라리넷은 재즈에 자주 활용됐고, 본인도 재즈에 관심이 많지 않나.
맞다. 축제 마지막 날(8.20) 연주될 번스타인의 ‘프렐류드, 푸가, 리프’도 클라리넷과 재즈 앙상블을 위한 곡이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교향곡에서도 클라리넷이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트럼펫이나 색소폰, 타악기도 마찬가지다. 번스타인은 한 작품 안에서 다채로운 색을 내려고 했다. 악기들이 채색하는 전체 그림을 봐야 한다. 자유롭게, 그러나 정확하게 필요한 곳에서 그 색을 다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번스타인 음악을 지휘하는 데 있어서 가장 도전적인 부분이다.
‘캔디드 서곡’ ‘심포닉 댄스’ ‘프렐류드, 푸가, 리프’까지 번스타인의 세 곡을 지휘한다. 이밖에 교향곡 2번 등 매력적인 그의 작품들이 축제 전반에 걸쳐 연주되는데, 직접 지휘하고 싶은 다른 작품은 없나?
지휘자로서 답한다면… 정말 모든 곡을 맡고 싶었다.(웃음) 하지만 예술감독은 전체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니 타협하기 쉬웠던 것 같다.
#한국에서의 만남을 기대하며
브람스도 축제 프로그램의 한 축을 이룬다. 당신의 주요 레퍼토리이기도 한데, 선택의 이유는 ‘자신감’이었나?
번스타인과 브람스를 평행선상에서 보고 싶었다. 교향곡에 강점을 둔 두 작곡가에게서 두 가지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감정적인 접근법. 말하자면, 첫사랑에 빠진 순간을 상기시키는 음악을 썼다. 완벽한 형식을 목표로 삼은 게 아니었다. 베토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구조에 감탄하게 되지 않나. 두 번째는 ‘민속음악’의 씨앗에서 곡이 발현됐다는 것. 번스타인이 재즈와 쿠바 민속음악의 리듬을 주재료로 쓰고 마라카스 같은 악기를 등장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브람스 작품에서는 호른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선율 아래로 헝가리 민속음악의 리듬이 두드러진다. 이 이야기가 음악을 듣는 행위에 보충이 되었으면 좋겠다.
강연하던 번스타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아! 번스타인 이야기에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지휘자’ 번스타인도 축제에서 보여주려고 한다.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그가 발견해 선보이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작품들이 있다. 믿지 않겠지만 말러가 그랬다. 번스타인은 말러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래서 이번 축제에도 말러 교향곡을 더했다. 이런 문맥을 형성하는 게 예술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스위스 뷔르겐슈토크 페스티벌 10여년 차 예술감독의 ‘연륜’이 느껴진다.
작품을 큐레이션해 축제를 구성하는 데는 이미 익숙했으나, ‘클래식 레볼루션’이 더 규모가 커서 고려할 게 더 많았다. 일곱 오케스트라와 세계 곳곳의 독주자들이 모이는 자리다. 각 악단의 규모와 가능성, 홀 상태, 효율적인 리허설 운영 등이 고민 대상이었다.
2025년까지 축제를 이끈다. 다양한 시도를 해볼 시간이 주어졌다. 이미 아이디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다. 지금은 축제를 알아가면서 무엇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다. 우선 내년에는 엄청난 라인업을 기대해달라. 궁극적인 목표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다. 공연이 연속적으로 열리는 게 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와서 즐길 기회를 만들고 싶다. 예컨대 백화점 내부에서 팝업 공연을 열거나,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해보고 싶다. 음악이 꼭 철학적일 필요는 없다.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되는 것만으로도 멋지다. 스포츠 이벤트와 엮으면 어떨까? 근처 농구 코트에서 공연을 연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지역 커뮤니티와 접점을 늘리고, 음악으로 소속감을 만드는 게 내가 이곳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성취일 것이다.
새 프로필 사진 중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컷이 눈에 띄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엿보이던데.
축제 테마 사진으로도 잘 어울리지 않나? 참, 올해 넷플릭스에서 번스타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마에스트로’도 나온다. 이 예술가를 알아가기 좋은 해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사진 롯데문화재단·SBU클래식앤컬처
Performance information
클래식 레볼루션 8.11~20
안드레아스 오텐잠머/서울시향(협연 레이 첸)
8월 11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체임버 뮤직 콘서트Ⅱ
8월 15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안드레아스 오텐잠머(지휘·협연)/경기필하모닉
8월 20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이민형·안드레아스 오텐잠머/롯데백화점 키즈 오케스트라
8월 16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협연 신창용)
미리 듣는 ‘클래식 레볼루션’
올해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의 예술감독을 맡은 그는 “번스타인과 브람스를 평행선상에서 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의 브람스 연주를 통해 축제의 번스타인을 미리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취미에도 진심인 그의 SNS 엿보기
동명이인이 아니다.
SNS에서 만난 그는 다양한 스포츠로 전 세계 땅과 바다를 모두 스치고 있었다.
FESTIVAL PREVIEW
올해의 ‘클래식 레볼루션’ 8.11~20
번스타인으로 만나는 음악의 혁신과 전통
번스타인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8월 11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지는 올해 롯데콘서트홀의 ‘클래식 레볼루션’ 집중 작곡가는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캔디드’ 등 번스타인의 대표작과 번스타인에게 영향을 끼친 브람스의 작품, 번스타인의 친구이자 스승에게 영향을 준 슈만·거슈윈·차이콥스키·말러·드보르자크의 작품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무대에 오른다.
올해로 4회를 맞은 ‘클래식 레볼루션’은 매년 특정 작곡가를 선정하고 그의 작품을 조명하는 클래식 음악 축제다. 올해는 베를린 필의 클라리넷 수석이며 지휘자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안드레아스 오텐잠머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그는 “우리는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번스타인은 이러한 신념을 대표하는 작곡가이기에 올해의 주제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오텐잠머는 11일 직접 지휘봉을 잡고 서울시향·레이첸과 함께 축제의 포문을 연 후, 축제 기간 지휘자·협연자·실내악 주자로 무대에 올라 관객과 적극적으로 만날 예정이다.
세계에서 활동을 펼치는 국내 아티스들도 한 데 모여 축제에 즐거움을 더한다. 에스더 유·홍수진(바이올린)·홍수경(첼로)·김유빈(플루트)·황수미(소프라노) 등이 협연하여 청중의 귀를 사로잡을 예정이다. 1999년에 창단한 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뭉친 오텐잠머(클라리넷)·윤홍천(피아노)·레이 첸·조진주(바이올린)·김사라(비올라)·한재민(첼로)·조정민(더블베이스)이 실내악의 매력을 전한다. 교향곡·협주곡·실내악까지 풍성한 레퍼토리를 통해 번스타인의 삶과 음악을 음미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글 김강민 수습기자 사진 롯데문화재단
8. 11. 안드레아스 오텐잠머/서울시향(협연 레이 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Op.77 외
8. 12. 이승원/성남시향(협연 에스더 유·김유빈)
번스타인 바이올린, 현악 오케스트라, 하프와 타악기를 위한 세레나데 외
8. 13. 홍석원/한경arte필하모닉(협연 황수미)
번스타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 외
8. 14. 체임버 뮤직 콘서트 I 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
브람스 피아노 3중주 1번 Op.8 외
8. 15. 체임버 뮤직 콘서트 II
안드레아스 오텐잠머·윤홍천·레이 첸·조진주·김사라·한재민·조정민
슈만 피아노 3중주 1번 Op.63 외
8. 17. 이병욱/인천시향(협연 홍수진·홍수경)
브람스 이중 협주곡 Op.102 외
8. 18. 최희준/수원시향(협연 신창용)
번스타인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 외
8. 19. 지중배/KBS교향악단(협연 윤홍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Op.83 외
8. 20. 안드레아스 오텐잠머/경기필하모닉
(협연 안드레아스 오텐잠머)
브람스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2개의 왈츠(편곡 스테판 콘츠) 외
REPERTOIRE INQUIRY
레퍼토리 집중 탐구!
미리 알아보는 ‘클래식 레볼루션’ 속 번스타인 작품
9일간의 축제 동안 연주되는 번스타인 작품은 총 8곡이다.
지휘자로 더 익숙하지만, 작곡가인 그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3곡을 꼽아보았다
글 이의정 기자
뮤지컬 ‘피터 팬’
‘Dream with me’ 8.13
초연된 뮤지컬 ‘피터 팬’에서 번스타인의 역할은 미미했다. 1950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에는 다섯 곡의 넘버만 포함돼 있었고, 뮤지컬보다는 음악이 곁들여진 연극에 가까웠다. 오늘날 이 뮤지컬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1998년 지휘자 알렉산더 프레이(1972~)가 작곡가의 필사본을 연구하여 악보로만 남아있던 여러 작품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복원 작업은 7년 간 이어져 2005년에 음반으로 발매됐으며, 그중 가장 사랑받는 넘버가 ‘나와 함께 꿈을 꿔요(Dream with me)’이다.
한 번의 도약 이후 천천히 상승하는 선율은 마치 밤하늘에 날아오르는 피터 팬과 웬디 같다. 중간 첼로 선율 이후 한 음씩 밟아 올라가는 최고음에서 반복되는 가사는 이 노래의 몽환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마무리가 불안한 화성으로 끝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꿈은 환상이고, 피터 팬과 웬디는 마지막에 헤어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추천음반
‘피터 팬’
린다 이더(보컬)/대니얼 나르두치(바리톤)/알렉산더 프레이(지휘)/앰버 체임버 오케스트라
(KIC-CD 7596)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 8.18
작품의 부제인 ‘불안의 시대(The Age of Anxiety)’는 영국의 시인 위스턴 휴 오든(1907~1973)의 1948년 퓰리처상을 받은 동명의 시집에서 가져왔다. 시는 여섯 부분으로 나눠지며, 산업화가 가속되는 시대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다. 번스타인은 이 서적을 두고 “처음 읽었을 때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라고 호평했다.
‘교향곡’이라 장르를 붙였지만, 네 악장으로 구분되는 형식도 아니고, 피아노 독주자도 필요하다. 작품은 시와 같이 여섯 부분으로 나눠진다. 번스타인은 이를 세 부분씩 묶었는데, 앞의 세 부분은 프롤로그와 14개의 변주이며, 뒤의 세 부분은 장송곡·가면극·에필로그이다. 첫 주제로 나오는 A조 클라리넷의 2중주는 ‘불안’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선율을 들려준다. 긴 이야기를 지나 에필로그에서 다시 듣는 이 선율은 처음의 불안을 떨쳐냈을까? 그 마지막 소리는 직접 공연장에서 확인해 보자.
추천음반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피아노)/사이먼 래틀(지휘)/베를린 필하모닉
(DG 4835539)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심포닉 댄스’ 8.20
번스타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이 아닐까. ‘심포닉 댄스’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등장하는 넘버가 아니라 그 뮤지컬의 넘버들을 꼽아 20분가량의 관현악 작품으로 편곡한 것이다. 효과음을 제외한 가사가 전혀 나오지 않는데도, 어렴풋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노랫말은 작품의 명성을 실감케 한다. 재즈·스윙·블루스 등의 다양한 장르가 섞여 목관의 고운 소리부터 타악기의 신나는 리듬까지 모두 들을 수 있다.
1957년 초연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적대적인 두 가문이 대립하는 두 갱단으로 각색되어 등장한다. 당시 미국의 예술문화에서 등한시되던 인종차별 문제를 적극적으로 앞세운 작품으로, 같은 문제를 앓고 있는 오늘날까지 작품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