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RIER-FREE
장애인들이 모여 만든 오케스트라 이야기 ①
한빛예술단 원장 천성애
강렬한 빛을 품은 어둠 속의 음악
시각장애인 음악가들의 직업 창출을 위해 걸어온 한빛예술단의 지난 20년
‘직업’은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한빛예술단은 시각장애인 음악인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였다. 장애인들이 음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한빛예술단은 20년 동안 애초 창단 목적인 장애인 고용을 멈추지 않고 이어오며, 모든 단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한빛예술단의 천성애 원장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가 한빛예술단에 처음 발걸음 했을 때, 시각장애 음악가들이 만든 소중한 음악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어떻게 하면 대중이 기대를 가질까 고민이 깊었다.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에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한빛예술단 이름으로 나가는 이미지들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이후 시각장애인들과 더 나은 소통을 위해 사회복지와 심리를 공부하게 됐다.
이후 그는 금관 악기 중심이었던 한빛예술단의 규모를 오케스트라로 확장했다. 조금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는 주변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빛예술단의 음악성을 굳건히 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원장 취임 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생각하는 건 “시각장애 음악인들이 직업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 원장에게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은 한빛예술단의 지나온 시간에 대해 물었다. 그는 “우리의 걸음은 느렸지만 세계 유일의 프로페셔널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가 되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한빛예술단 초창기에는 비장애인 연주자와 함께하다가 이후, 시각장애 연주자로만 구성된 악단으로 정체성을 바꿨다.
초기에는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 비장애인 음악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간 공연을 진행해 보니 시각장애인 연주단이라는 정체성에 비장애인 연주자가 함께 한다는 것이 맞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시각장애인만으로’라는 변화에는 굉장한 어려움이 있어서 여러 고된 과정이 수반됐다. 사실 비장애인과 함께하면 연습 과정부터 수월하다. 장애인 연주자들이 충분히 암보하지 않아도 본인의 소리가 묻히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있다. 한편 시각장애인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각 연주자가 음악적 흐름을 알고 전부 암보해야지만 연습이 시작된다.
한빛예술단은 시각장애인의 직업 창출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구성원 모두 정당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단체를 운영하며 현재 모든 단원이 월급을 받는 정직원이라고.
한빛예술단이 직업 예술단으로 본격적인 접근을 시작한 것은 2008년이었다. 당시 시각장애인의 생계 수단 중 하나였던 안마독점권이 상실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당장의 생존이 문제가 되는 절박한 시점이었다. 음악 분야에서 직업 창출을 하겠다는 접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예술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지금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당시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이라 여겨졌고, 더군다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만연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장애예술은 거의 불가능한 과제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청각이 발달한 시각장애인 특성상 음악에 강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예술단을 구성해 어떻게든 일자리를 제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전체 연주자를 정직원으로 고용해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이 연주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원장 위치에서 자금 조달에 고민이 깊을 것 같다.
오랜 기간 함께한 연주자들의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지만, 연주 활동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일은 참 요원해 보인다. 적극적으로 공모 사업에 도전하고, 기업 후원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지만 늘 힘든 게 현실이다.
매년 단원 오디션을 개최하는 점도 인상 깊다.
2003년 창단 시점에는 한빛맹학교 학생이 중심이 된 연주단이었다. 2008년 사회적기업으로 조직이 개편된 이후, 매년 전국 시각장애인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인원을 채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진 않아 필요한 파트에서 2~3명 정도의 신규 단원을 선발한다.
한빛오케스트라, 한빛챔버오케스트라, 한빛브라스앙상블, 한빛타악앙상블, 프로젝트더밴드 등 다양한 편성의 공연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성과 규모를 다양하게 나눠서 음악 단체를 운영하는 이유는.
2003년 브라스앙상블로 창단된 이후 타악앙상블, 현악앙상블 등으로 분야가 확장됐다. 팀들이 다양해지면서 관현악단 구성도 가능해져 한빛오케스트라까지 만들게 됐다. 시각장애인들의 다양한 음악적 취향과 자질이 반영된 구성이자 다양한 대중적 기호를 맞추기 위한 전략이다. 다채로운 무대에 참여하기에도 용이하여 활동에 도움이 된다.
음악적 완성도를 갖춘 예술단이 되기 위하여
작년, 오디오가이와 협업해 돌비 애트모스 오디오 기술을 적용한 콘서트 ‘이머시브 블라인드 콘서트’를 진행했다.
그동안 한빛예술단을 보며 복합적 예술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기반을 둔 한빛예술단이 본연의 연주로 인정받을 때까지는 한 방향을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바로 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양성을 위해 헤매다 보면 오히려 지금까지의 노력조차 무너질 것이라 생각해, 그동안 오로지 실력 향상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다. 20년 가까이 그렇게 달려 한국 최고의 무대 중 하나인 예술의전당에도 서는 등 목표했던 실력 수준에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젠 다양성을 함께 추구하려고 시도중이다. 그중 ‘이머시브 블라인드 콘서트’는 한빛예술단의 음악 활동을 극대화하는 시도였다.
아울러 창작음악극 ‘노래가 나를 데려가’를 제작하기도 했다. 음악가를 꿈꾸는 청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빛예술단의 한빛오케스트라, 프로젝트더밴드가 음악 전곡을 연주하고 예술단 보컬과 일부 연주자들이 배우 역할을 맡는다. 현실의 벽 앞에서 분투하는 ‘아름이’가 힘든 과정을 이겨내며 음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아름이로 대변된 한빛예술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람이 있다면 7개의 넘버가 모두 호평을 받으며 첫 공연을 마무리한 만큼, 다양한 무대에서 더 많은 청소년 관객을 만나고 싶다.
반면, 그림자극 ‘Shadow Theater’는 융복합 공연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활동의 제한이 있더라도 음악을 통해서는 무한의 자유를 가졌음을 표현하고자 기획된 작품이다. 음악과 현대무용을 결합해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작품 전체에 반영시켰다. 스토리, 무용, 영상 등 비주얼 퍼포먼스까지 고루 힘을 실었다. 이 작품은 아직 공연 전체 중 일부분만 완성됐기 때문에 앞으로 확장 제작할 계획이다.
최근 진행한 ‘음악에 피어나는 시의 향기’ 역시 다원예술 공연인데, 이 작품에선 시와 국악이 함께 어우러진다.
국악인 오정해의 참여로 맛깔스러운 국악을 느낄 수 있으며, 영화음악과 시, 노래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작품이라고 자부한다. 공연 중 시각장애 시인 서해웅과 한빛예술단 음악감독 김종훈의 대담 코너를 통해 관객에게 각 장르의 예술을 더 쉽게 소개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성신여대 대공연장, 광림아트센터에서 2회 공연을 마무리했고, 마지막으로 오는 10월 14일 노원문화재단과 함께 노원구민을 찾아갈 계획이다. 특별히 노원구에서 펼쳐질 공연은 노원구 지역 연합합창단이 참여해 규모가 더욱 확대됐다. 마지막 곡인 ‘내마음의 아리랑’에는 오케스트라와 보컬, 테너, 합창이 함께 대미를 장식한다. 당현천 가변 무대에서의 아름다운 연주가 벌써 기대된다.
작년 4월에는 52곡 6시간 44분으로 최다 암보 최장시간 오케스트라 연주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동기는 무엇인가.
한빛예술단 연주자들의 지난한 노력을 수치화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어쩌면 그간 20년의 노력이 ‘6시간 44분’으로 함축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무대를 감상하는 관객은 그 연주가 만들어진 과정을 사회자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빛예술단의 연습 과정을 지켜보면 그 치열함 때문에 무대가 몇천 배는 더 감동스럽다. 사실 연주자의 건강을 고려해 52곡으로 한정한 것이다. 전체 준비 과정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없기 때문에 ‘6시간 44분’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로 대신 널리 알리고자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각장애인은 청각이 굉장히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빛예술단의 예술가들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면.
시각장애인 연주자들은 다양한 재능을 가졌다. 우리 연주자들의 80% 이상이 절대음감을 지녔다. 생활 소음을 음으로 다 짚어내는 단원들도 있다. 수년 전 공연의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하는 단원, 성대모사가 탁월한 단원, 4배속으로 점자 읽기를 하는 단원 등 이들이 모두 나에게는 초능력자로 보인다.
그렇지만 함께 눈을 보며 호흡을 맞춰야 하는 합주에 있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지휘자를 보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을 텐데, 이러한 점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휘자와는 연습 과정에서 충분히 호흡을 맞춘다. 무대에선 송수신기를 통해서 시작점 호흡을 공유하고, 마디마다 리드하는 악기를 기준으로 두기도 한다. 분명 시간과 노력이 일반 오케스트라보다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기술공학적으로 발전할 여지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20년의 시간을 머금은 한빛예술단만의 예술성
이번 20주년 공연은 오케스트라 외에도 뮤지컬, 가요, 타악, 브라스 앙상블을 만날 수 있다. 아무래도 20주년 공연이다 보니, 한빛예술단이 잘하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가 읽히는데.
한빛예술단의 음악적 실력을 확장하는 무대로 구성했다. 한빛타악앙상블 무대에는 김덕수 사물놀이가 함께해 멋진 무대를 만들 예정이다. 앞으로 한빛예술단이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앞으로 한빛예술단이 더 전문적으로 발전하려면 어떠한 점이 보완되어야 할까.
공연기획과 홍보 면에서 더욱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예술단의 기본기, 즉 연주력을 갈고닦는데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보다 기획력 있는 작품을 가지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선다.
한빛예술단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역할을 몇 가지 꼽는다면.
한빛예술단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돕기 위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협력해 4대 법정의무교육 중 하나인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공연과 결합한 ‘일 더하기 우리’를 진행하고 있다. 한빛예술단 전체 공연 활동 중 상당 부분을 ‘일 더하기 우리’에 쏟는 이유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동료로서의 인식이 발전해야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이 이뤄 낸 연주를 보고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가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한빛예술단 단원들을 포함해 모든 장애인 음악가들이 연주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아 자긍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꼭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글 장혜선(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한빛예술단
Performance information
창립 20주년 기념 음악회 ‘Darkness to Light’
9월 13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천성애(1969~) 2008년 한빛예술단에 입사해 2017년 원장으로 취임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장애인공연예술단 사무국장을 거쳐 2020년부터 이사로 재직 중이다. 기독교출판사 두란노서원 아버지학교 간사로 재직한 바 있으며, 서울시민교회 문화센터를 총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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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모여 만든 오케스트라 이야기 ②
하트-하트재단 회장 오지철
음악가로 성장한 작은 거인들
발달장애인이 전문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하트하트오케스트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8월, 제18회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의 1악장을 메인 레퍼토리로 내세웠다. 우리는 말러를 낭만파 끝자락에 위치한 인물이라기보다는, 현대음악을 본격적으로 연 작곡가로 기억하고 있다. 혁신적인 그의 교향곡은 당대 비평가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미로 자리 잡았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역시 창단 당시에는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이 가득했지만, 현재 장애예술 오케스트라들의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 악단을 국내에 장애예술을 연 음악 단체로 기억해야 한다.
문화예술 복지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차별 없이 참여하는 데서 시작된다. 1988년에 설립된 하트-하트재단은 2006년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운영해왔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나눔과 섬김을 모토로 하는 하트-하트재단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 이 오케스트라의 궁극적 목표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실천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하트-하트재단의 오지철 회장은 공직에 입문한 이후 1995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사무국장, 문화산업국장, 문화정책국장 등 주로 문화예술 행정 업무를 다루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퇴임했다. 이후 TV조선 대표이사,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원장 등을 거쳐 2018년부터 하트-하트재단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책과 언론, 교육에 이어 복지까지 문화예술계 기둥이 되는 부분에서 두루 활동해 온 그는 “이러한 경험이 통합적 사고나 균형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도움을 받는 오케스트라에서 도움을 주는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말러의 교향곡 ‘거인’은 이른 새벽, 동이 트는 느낌으로 고요하게 시작한다. 자연의 소리를 고스란히 묘사한 듯한 이 곡은 생동하는 기운을 청중에게 전달한다. 오는 8월, 음악가로 성장한 작은 거인들이 연주하는 이 희망의 선율을 통해 뭉클한 감동을 느껴보기를. 다음은 오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
2018년 하트-하트재단 회장 취임 당시가 재단 창립 30주년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을 것 같다.
그 30년 동안 하트-하트재단은 장애와 가난, 질병 등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내외 소외계층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헌신해 왔다. 우리 재단은 여러 후원을 받기 때문에 신뢰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취임 당시 작지만 강하고, 전문성이 뛰어난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 모든 구성원이 매일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임기 중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무엇인가.
2022년 삼성호암상 사회봉사상 수상이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좀 더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 하트-하트재단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싶다. 앞으로 UN과 같은 국제기구, 세계적인 NGO와의 협업도 당연한 과제라고 본다.
하트-하트재단은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발달장애인의 사회 통합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2006년부터 발달장애인의 오케스트라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운영 중이다. 재단 내에서 오케스트라 설립을 모색한 이유는.
재단은 1990년부터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 청소년들에게 본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의 일상생활 훈련, 사회적응 훈련, 직업재활 훈련 등 여러 지원 사업을 실시하던 중 음악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것이다.
회장으로 부임한 시기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던 때이다. 프로 악단의 공연도 대부분 취소, 연기되곤 했는데, 하트하트오케스트라도 이러한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연간 100여 회 진행했던 오프라인 공연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고, 온라인 공연 콘텐츠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확산시키기로 했다. 먼저, 코로나 극복을 위한 릴레이 연주 ‘힘내자 대한민국! Play 하트’ 영상을 51개 제작했다. 트럼피터 에릭 오비에, 바이올리니스트 김덕우, 지휘자 윌슨 응 등 저명한 연주자들이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2021년에는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로는 최초로 디지털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작곡가 박인영과 함께 ‘다시 부는 바람’ 음원을 발매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시 부는 바람’은 뮤직비디오로도 제작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내실을 다지는 다양한 지원 사업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실력이 우수하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디션을 볼 때 가장 눈여겨보는 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오디션에 참여해 연주 실력을 확인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 특성을 감안한다. 인터뷰를 통해 발달장애 연주자의 소통 방식도 함께 보고 있다.
‘발달장애’라는 특수성 때문에 리허설이나 콘서트 운영에 있어서 특히 신경 써야 하는 점도 있을 텐데.
발달장애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관계를 형성하거나, 이후 소통할 때 단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반복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특이점을 반영해 연습과 연주를 진행하고 있다.
2014년에는 트럼피터 성재창,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같은 유명 교수들과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지휘자 윌슨 응, 이병욱, 여자경 등과 ‘마스터즈 시리즈’를 진행했다. 전문 연주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계속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들 사이에서 꼭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코스로 소문났어요”라고, ‘마스터스 시리즈’가 끝나고 한 지휘자가 농담 섞인 말을 건넸다. 이는 현재 여러 시향 상임지휘자들이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지휘를 한 번쯤은 맡았단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동안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모든 지휘자, 협연자들은 연주가 매우 감동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명 음악가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전문 음악가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계속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오케스트라 내부에서 다양한 육성 프로그램과 장학 사업도 개최하고 있다.
창단 초기만 하더라도 발달장애 연주자가 음악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 재단은 대학과 협력해 인식 개선 교육, 장애 학생 지원 등을 적극 모색했고, 이를 통해 발달장애 학생이 음악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그 결과 단원 중 90% 이상이 음악대학을 졸업하게 됐다. 또한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협연하는 성과를 이뤘다.
올해는 발달장애 음악가를 대상으로 하는 제1회 하트하트음악콩쿠르를 진행한 것이 인상 깊었다.
개인 연주자로서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발달장애인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더 많은 연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처음 시작한 콩쿠르임에도 불구하고 150명이나 되는 발달장애 연주자들이 응시했다.
음악성과 전문성을 놓치지 않는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인상 깊은 점 중 하나는, 수준 높은 교향곡을 레퍼토리로 올린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연주에 도전한다고.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클래식 음악 외에도 영화음악, 게임음악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발달장애 연주 단체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 전 악장을 비롯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콥스키 등 다양한 교향곡을 선보여왔다.
이러한 정통 레퍼토리를 소화하려면 많은 연습 기간을 할애해야 할 것 같다. 한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연습 기간을 얼마나 잡나.
앞서 소개했듯이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마스터즈 시리즈’ 공연을 2021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현재까지 8회 공연을 진행했는데, 매 공연마다 지휘자와 협연자가 바뀌고, 그에 따라 공연 레퍼토리도 계속 달라졌다. 이를 계기로 단원들은 더 이상 낯선 연주자와의 협연을 어려워하지 않게 됐고, 새로운 작품을 익히는 데도 몇 주가 채 걸리지 않는다. 물론 곡의 난도에 따라 연습 기간은 상이하다. 이번에 선보이는 말러 교향곡 1번의 1악장은 올해 2월부터 준비했다. 완성도 있는 연주를 위해 지금도 열심히 연습 중이다.
이번 공연의 포디엄에 서는 안두현 지휘자와는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다.
안두현 지휘자는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6년간 활동했다.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발달장애 연주자 35인과 합주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에도 뜨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해 줘서 늘 고마운 마음이다. 그는 단원들 실력뿐 아니라, 그들의 심리 상태와 감정을 잘 파악한다. 또한 행정 파트와의 소통도 긴밀하게 해주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이번 공연에는 성악가 홍혜란, 최원휘가 협연한다. 프로 연주자들을 섭외하는 과정이 힘들진 않나.
아무래도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과 일정을 맞추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혜란, 최원휘 성악가처럼 많은 시간을 할애해 우리 오케스트라에 도움을 주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앞으로 오케스트라가 더 전문적으로 발전하려면 어떤 점이 보완되어야 할까.
단원이 충원된다면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또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 투어를 통해 더 넓은 세계를 보여준다면 큰 발전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남은 임기 동안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통해 꼭 이루고 싶은 점은.
발달장애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연주 실력만으로 관객을 공연장으로 이끌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됐으면 한다.
글 장혜선(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하트-하트재단
오지철(1949~)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한국관광공사 사장, TV조선 대표이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원장을 거쳐 2018년부터 하트-하트재단 회장을 맡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제18회 정기연주회 ‘하트 투 하트 콘서트’
8월 29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모차르트 ‘마술피리’ 서곡,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1악장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