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16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대표 안드레아스 슐츠
11월, 조성진과 함께 한국 무대에 오르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본진을 만나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작은 파리’라는 별명을 얻게 된 라이프치히는 독일 작센 주의 가장 큰 도시다. 동독 시절 ‘월요 시위’의 시작점으로 독일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바흐(1685~1750)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으며 바그너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큰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피아노의 건반이 연상되는 유리창과 벽돌 지붕의 조화가 인상 깊은 건물이 등장한다. 지금의 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세 번째 건물로 280여 년의 긴 시간을 거쳐 지금까지 클래식계의 동맥으로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1743년 창단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관현악단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게반트하우스(Gewandhause)’,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직물 공장을 공연장으로 활용한 것이 그 시초이다. 멘델스존(1809~1847)이 재직한 악단으로도 유명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부활시키고,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을 초연하는 등 음악 역사에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왔다.
게반트하우스의 대표, 안드레아스 슐츠를 화면으로 만났다. 안드리스 넬손스(1978~)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다가오는 11월 내한을 앞두고 있다.
전통과 혁신이 만들어낸 시너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다른 오케스트라들과 분명한 차별점이 있으리라 본다. 꾸준한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1743년 왕족이 아닌 시민 60명의 모금으로 창설되었다는 점에서부터 우리의 시작점은 조금 다르다. 18~19세기 라이프치히가 음악의 도시로 발돋움할 당시, 베토벤·부르크너 등 당시에도 유명했던 음악가들과 함께 공연한 것도 라이프치히의 음악적, 역사적 성장에 많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멘델스존이 함께 했던 시간(1835~1847년)은 우리 오케스트라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멘델스존이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을 성공적으로 공연에 올리기도 했고,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다시 주목받게 했던 것 역시 우리 오케스트라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다. 1843년 멘델스존이 설립한 최초의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한 덕에 유럽 전역의 음악학도들이 라이프치히로 몰려들었고 우리 오케스트라를 거쳐 갈 수 있었다.
게반트하우스 공연장 설립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도 궁금하다.
사실 오케스트라가 설립된 1743년부터 약 40여 년간은 공연장이 따로 없었다. 당시 라이프치히시 재원 담당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직물업자들과의 협의 하에 1781년 직물회관을 개조해 500석 규모의 공연장을 설립한 게 ‘게반트하우스 공연장’의 시작이다. 당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인기는 500석 중 496석이 회원 전용 객석일 정도로 상당했다. 정기 공연 시작일은 항상 목요일이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전통이 되어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도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1884년 두 번째로 개관한 게반트하우스 공연장 역시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공연장은 빈의 무지크페어아인과 더불어 유럽에서 손꼽히는 공연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2차 세계대전으로 소실되어 1981년 세 번째 공연장 설립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동독에서 유일한 공연장이었던 이곳에서 현재까지 공연하고 있다.
멘델스존이 카펠 마이스터로 재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도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 등을 연주하는 것으로 아는데. 오케스트라에게 있어 멘델스존은 어떤 의미인가.
멘델스존은 우리의 DNA에 살아있는 존재다. 1835년부터 1847년까지 음악감독으로 역임하며 바이올린 협주곡(e단조)을 작곡했고, 슈만의 여러 교향곡들을 초연했다. 이곳에서는 주말이면 늘 멘델스존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당장 오늘 저녁에도 멘델스존을 공연한다.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리카르도 샤이 그리고 안드리스 넬손스 등 굴지의 음악가들이 음악감독을 역임해왔다. 감독 선발 절차가 따로 있나.
음악감독은 단원들이 직접 선발한다. 이를 위한 오케스트라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위원회가 1~2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그들의 이력 및 레퍼토리, 라이프치히 체류 가능 기간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음악감독의 주요한 조건 중 하나는 정기 공연의 50% 이상을 지휘하고 투어를 감독하는 것이다. 현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는 평균 13주 정기 공연 및 투어 공연 지휘를 맡고 있다.
음악감독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음색에도 변화가 있어왔을 것 같은데.
블롬슈테트가 1988년 부임한 이후 7년간은 특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로 45명의 단원이 은퇴하고 새 단원들이 그만큼 영입되었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자리를 재배치하기도 했는데, 제1바이올린을 무대 왼편에, 제2바이올린을 무대 오른편에 배치했다. 이는 전통 독일식 배치로 오케스트라 음색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우리 악단만의 투명하지만 따뜻하고 깊은 음색을 만들어냈다고 자부한다.
25년의 역사와 함께 해온 산 증인
게반트하우스에서 근무해온 25년이라는 시간은 상당히 길고 그간 우여곡절이 있었으리라 감히 짐작해본다. 자신만의 위기 극복 노하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곳에서 느낀 점은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임 전, 사무실에는 단단한 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소통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벽을 모두 없애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픈 네트워킹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내 다양한 소통 회의를 만들었고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지금까지도 중점을 두고 있다.
변화를 위해 수많은 결정을 내려왔으리라 생각한다.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하는지.
우선순위는 혼자 정하지 않는다. 1년에 2회, 이틀간 각 부서의 팀장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며 분야별 우선순위와 목표를 정하고 세부 전략을 짠다. 더불어 요즘의 우선순위를 꼽자면 공연장 리모델링이다. 40년간 운영되다 보니 여기저기 손볼 곳이 많다. 하지만 재정의 상당 부분을 리노베이션에만 할애할 수 없기에 프로그래밍 및 다른 재정운영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1998년 블롬슈테트와 함께 임기를 시작해 지금까지의 오케스트라 역사를 더불어 만들어온 것이나 다름 없다. 여러 활약 중, 교육 부분을 크게 확장했다. 미래 관객 형성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다루기 어려운 요소들도 많은데. 교육에서 특히 중점을 둔 사안은 무엇인가.
부임한 1998년에는 교육팀이 없었고 오픈 리허설 정도로만 운영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영국·미국에서는 음악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독일은 좀 뒤처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현재는 연간 200여 회의 음악교육 공연을 진행하고 있고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아우르는 음악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관객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교육 분야에 더 많은 힘을 쏟으려 한다.
멘델스존 오케스트라 아카데미(Mendelssohn-Orchesteraka-demie)도 부임 이후 직접 설립했다. 아카데미 운영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또,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별도의 혜택이 있는지.
사실 아카데미 설립 당시 재원 대처 방안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다. 그래서 2002년부터 2년 동안의 회의를 거쳐 약 20여 명의 아카데미 학생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단원에게 직접 레슨을 받고 오디션을 위한 훈련을 받으며, 오케스트라와 함께 투어를 다니며 연주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또 2018년부터 아카데미 학생 중 2~5명이 매년 보스턴 탱글우드 페스티벌에 참석하고 있는데 관련 비용을 우리가 모두 지원하고 있다.
현재 브레멘 대학교와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직접 음악·문화예술경영(Music and Cultural Management)을 가르치고 있다. 교수로서 생각하는 예술경영인의 자질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한 한국의 미래 예술 경영인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고 이런 이야기를 남길 수 있어 기쁘다. 이런 질문은 사실 좀 더 근본적이고 폭넓게 숙고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공연기획이나 재원조성, 기부금 형성 등의 기술적인 부분은 책에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실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부분이 더 크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예술경영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당부하고 싶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책임감과 사명감이 몹시 중요하다. 더불어 경영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또, 예술가와 공연관계자 모두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며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예술경영인들에게는 특히나 필요한 자질이다.
게반트하우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데카, 악상투스 등 메이저 음반사를 통해 음반과 영상물을 발매해왔다. 상품성 높은 음반을 출시하고 있는데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 따로 있는지.
음반 시장은 매년 축소되고 있다. 그렇지만 음악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라기보다 모두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로모션 중에 베토벤과 브람스의 박스물(CD)을 발매할 때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빈·파리·런던 투어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래서 각 도시의 공연장, 당시 음반사인 데카, 그리고 우리까지 3개 단체가 모여 전략회의를 진행했다. 당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을 구성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상생이야말로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 아닐까 싶다.
설립 초기에는 시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정기 회원제·개인 기부금 등으로 재정을 마련해온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재원조성이 이루어지고 있나.
50% 정도는 정부지원금, 나머지 50%는 티켓 수입·투어·대관 등으로 이루어진다. 더불어 올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재단을 공식적으로 설립한다. 재단 설립이 교육 프로그램, 현대음악 공연 기획 등의 자금 운용에도 효율성을 더해주리라 기대한다.
앞으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계획은.
음악감독의 후임을 결정하는 것이나 관객 개발 방안, 페스티벌 기획 등 정말 다양하다. 특히 2025년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벌 이후 2027년 페스티벌 계획도 지금부터 세워야 한다. 더불어 ‘지속 가능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공연장 지붕에 태양광 에너지판 설치나 기차 투어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 팬데믹 이후 급속화된 디지털화에 단계별 목표를 설정해 진행 중이다.
한국의 관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11월, 조성진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 관객들은 집중력이 대단하고 열정적이라 빨리 만나고 싶다. 특히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우리 악단이 초연했던 곡들(슈만 피아노 협주곡, 멘델스존 교향곡 3번)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투어 때마다 우리 악단의 역사를 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려고 한다. 그 자체로도 특별하고,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울림이 남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방문 동안 공연 외에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쉽게도 투어는 늘 바쁘게 흘러간다. 항상 공연장과 호텔을 오가며 준비하고 기자회견까지 하면 곧장 떠나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번에는 기필코 서울을 즐겁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웃음)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안드레아스 슐츠(1961~) 함부르크에서 음악과 문학, 음악 교육 등을 공부했고, 지휘 수업을 받았다. 슐레비스비히 홀슈타인 음악 축제를 담당했고, 함부르크 음악대학, 뤼베크 음악대학에서도 관련 분야를 가르쳤다. 1998년부터 게반트하우스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안드리스 넬손스/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11월 15·17일 예술의전당·대구콘서트하우스(협연 조성진)
멘델스존 ‘아름다운 멜루지네’ 서곡, 교향곡 3번, 슈만 피아노 협주곡
11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브루크너 교향곡 9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