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출발해 클래식 음악과 영화의 경계를 넘다, 히사이시 조 & 탄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0월 30일 9:00 오전

히사이시 조 ©Nick Rutter


탄 둔

 

히사이시 조 & 탄 둔

아시아에서 출발해 클래식 음악과 영화의 경계를 넘다

 

일본과 중국 출신의 두 음악가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음악은 신비롭다. 다수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영화 음악을 쓴 히사이시 조의 멜로디는 마법 같은 동화를 꿈꾸게 하고, ‘붓다 패션’처럼 동서양의 시너지를 매력적으로 구사하는 탄둔의 작품은 감탄을 자아낸다. 두 아시아 출신의 음악가들을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글 허서현 기자 사진 유니버설뮤직

 


한때, 클래식 음악계의 비주류로 분류됐던 동아시아의 판도는 변하고 있다. 서양 음악의 교육이 보편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동양적 요소를 더해 차별화를 시도하는 아시아 음악가들의 활약이 도드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점차 중요성을 획득하고 있는 ‘영화음악’도 마찬가지다. ‘영화’라는 대중적 장르를 통해 아시아 음악의 특성과 특이성까지 확보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변방의 아시아라는 편견을 훌쩍 뛰어넘고 성장한 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이든 영화음악이든 그 사이를 오가는 장르적 줄타기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각각 중국과 일본에서 태어나 고국에서 음악적으로 성장한 두 사람은 ‘개성’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적 성을 쌓아가고 있다. 든든하게 무장된 음악적 색채로 20세기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더욱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우리에게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늘 가까이 있는 두 음악가의 인터뷰와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새롭게 엮어보았다.

 

 

1950년대 생 두 작곡가, 각자 조국에서의 음악적 성장

히사이시 조와 탄둔의 공통점이라면 두 사람 모두 1950년대 생이라는 것, 그리고 고국 내에서 음악 공부를 했다는 점이다. 1950년 일본의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히사이시 조는 어릴 때부터 여러 악기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국립음악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서른 살까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대 음악을 추구하고 있었다”

반면 탄둔의 시작은 히사이시 조가 태어난 7년 후인 1957년, 중국 장강의 남쪽에 위치한 후난성이다. 작은 시골 마을, 할머니 손에서 길러진 탄둔의 음악적 정체성은 마을의 생일이나 결혼, 장례에서 들려오는 음악이었다. 1974년, 문화대혁명(1966~1976)이 중국을 강타한 이후, 그는 베이징 중앙음악원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쇤베르크부터 불레즈까지 다양한 서양의 아방가르드 음악을 접했고 본격적으로 현대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두 사람은 모두 당대 현대음악에 영향을 받았으나, 이에 대한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10년쯤 지나는 사이에 꽉 막힌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한 ‘폐색감’(사방이 온통 꽉 막힌 느낌으로, 일본사회 현상을 지칭한 말)을 느끼며 내가 왜 음악을 하고 있는지 새삼스레 돌이켜 보게 되었다. 그동안 내 일상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내 음악적 실험을 전위예술로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어떻게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으랴. 나는 원래 요령 있게 이것저것 모두 잘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바늘이 흔들릴 때는 극단적으로 흔들린다. 그때도 그러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예술가의 길을 버리고 앞으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폭넓은 음악을 하자! ‘거리의 음악가’가 되자!’”(히사이시 조)

“서양 음악 작곡 기법을 수용하면서, 중국의 전통 음악 요소들을 수집했다. 콜롬비아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코즈모폴리턴 예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시간을 보냈다. 종종 누군가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면, 나는 내 고향이 ‘뉴욕과 후난’이라고 대답한다. 뉴욕에서 나는 그간 쌓은 중국의 전통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를 가졌다. 중국에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중국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서양 작곡가’가 되고 싶지 않았고, 이를 비교하기에 뉴욕은 최적의 장소였다.”(탄둔)

그렇게 1986년, 뉴욕으로 떠난 탄둔은 미국에서 명성을 쌓아갔다. 바이올린 협주곡 ‘북경 오페라에서’, 교향곡 3번 ‘만리장성’, ‘거리에서’ 등 서양식 무조성 작품에 동양의 문화적 요소를 더한 작품들이 탄생했다. 필립 글래스, 존 케이지, 메러디스 뭉크,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고, 경극의 음색이 결합된 ‘실크로드’, 현대적 교향곡의 형식을 시도해 고대의 퍼포먼스를 함께 선보이는 ‘오케스트라 극’ 등의 새로운 음악 실험에도 적극성을 띄게 된다.

반면 히사이시 조는 첫 창작 음반 ‘Infor-mation’(1981)을 발매한다. ‘히사이시 조’라는 지금의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그의 본명은 후지사와 마모루. ‘히사이시 조’는 미국 팝 음악의 전설적인 녹음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일본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인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1978년 결성된 그룹으로, 사카모토 류이치가 멤버였다), 미국의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가 이 시기의 히사이시 조에게 영향을 미쳤다.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만남,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작이 되다

1984년, 스튜디오 지브리의 창시자이자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만남 또한 일본 내에서 히사이시 조가 이룬 커리어다. 첫 작품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시작으로, 그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음악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다.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부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르기까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세계적인 성공은 그에게 ‘일본의 존 윌리엄스’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Nick Rutter

 

“나는 결심했다. 예술가의 길을 버리고 앞으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폭넓은 음악을 하자!”

©Omar Cruz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 스즈키 토시오 ©히사이시 조 인스타그램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첫 만남이 기억나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작업할 때, 미야자키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처음 만나자마자, 갑자기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의 배경을 한 시간 내내 혼자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 열정적인 모습에 ‘함께 일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러 작품을 함께 하면서 추억과 에피소드도 다양할 것 같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음악은 33곡 가운데 무려 18곡에 메인 테마가 등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뜻이었다. 음악에 관해 회의하며 그가 나에게 “이번에는 철저하게 하나의 테마곡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두 시간짜리 애니메이션을 단 한 곡의 테마곡으로만 이끌어가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주인공인 소피가 18세 소녀에서 단숨에 90세 할머니로 바뀌는 부분이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도 소피와 똑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음악을 일관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의도가 너무 명쾌해,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결국 해가 바뀌고, 세 곡의 후보작을 가슴에 껴안고 그의 작업실로 향했다. 평소에는 데모 테이프를 들려주지만, 그때는 직접 피아노를 쳤다. 마치 입시를 보는 대학생이 된 듯했다. 좋다는 반응을 얻었을 때, 몇 달의 괴로움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수차례 그의 애니메이션 음악을 만들었지만, 한 번이라도 음악이 좋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의뢰를 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늘 절박한 심정으로 일하고 있고, 매번 진검승부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늘 인상 깊은 멜로디가 마음에 남는다. 이런 멋진 선율은 주로 어떻게 탄생하나.

정해진 패턴은 없다. ‘이웃집 토토로’(1988)에 나오는 ‘산책’ 멜로디가 떠오른 것은 목욕탕의 욕조 안이었다. 그 외 밥 먹을 때, 침대에서 잘 때,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을 때…. 일상생활을 하다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한 내에 영화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분이 내키든 내키지 않든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한다. 예를 들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만들 때는 다음의 일과를 유지했다. 아침 9시 45분 기상, 커피를 마시고 10시부터 한 시간 주변 산책, 11시 반에 점심 식사, 샤워를 하고 12시에 스튜디오로 들어가기, 6시까지 작곡에 몰두할 것. 이후 배가 고프든 고프지 않든 저녁을 먹고, 7시 반부터 12시까지 작곡에 몰두한 후 책을 읽다가 3시 반에 취침. 마치 마라톤 선수처럼, 일정한 페이스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마음가짐을 갖추어 놓는다.

한국 영화 ‘웰컴 투 동막골’(2005)의 음악을 맡았고, 같은 해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각본을 읽어보자 영화로서의 재미가 느껴졌다. 전쟁물은 경험한 적 없는 장르라서 끌리기도 했다. 당시 신비한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오키나와의 음계를 사용했었다. 한국 영화계는 참 재밌다. 한국의 국민성처럼, 모든 것이 격렬하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면 ‘이 영화는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조건입니다’라고 처음부터 부정했을 것을, 한국인들은 만들어낸다. 한국은 결과적으로 작품을 완성해내고, 시기를 맞춰서 꼭 영화를 개봉해낸다. 이 얼마나 뜨거운 에너지인가! 뜨거운 에너지는 내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

‘좋은 영화음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해선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모두 쏟아내지 말아야 한다. 음악의 역할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영화 전체를 싸구려로 만들 수도 있다. 영상과 음악이 대등한 관계에서 상승효과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자신의 음악적 주장을 지나치게 내세워선 안 된다. 물론 나는 영화가 골치 아픈 예술 작품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라도 좋으니 ‘그 부분이 마음에 남는군’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전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1층으로 들어온 사람이 2층으로 나가는 듯한 느낌이 가장 좋습니다.” 이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용기가 생겼다든지, 현명해졌다든지, 내가 참여한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가치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이웃집 토토로©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홈페이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홈페이지


붉은 돼지©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홈페이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홈페이지

 

 

 

 

 

 

 

 

 

 

 

 

 

중국 영화 음악의 또 다른 부흥을 만든 탄둔

독창적인 교향곡과 현대 오페라를 선보이던 탄둔은 2000년대에 들어 무협영화음악 작업에 뛰어든다. 영화 ‘와호장룡’(감독 이안, 2000), ‘영웅’(감독 장예모, 2002), ‘야연’(감독 펑샤오강, 2006)은 일명 ‘탄둔의 무협 3부작’으로 불린다. ‘와호장룡’으로는 2000년 아카데미 상과 2002년 그래미 상을 수상했다. 서양 음악과 중국 전통 음악 사이의 다리를 놓았던 그의 음악은 또 한 번의 ‘차이나 무비 파워’를 전 세계에 불어 넣었다.

 

 

 

“나는 영화 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아우르는 작곡가로서 차이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적으로 두 장르 모두 창의성이 필요하다.”

 

 

‘워터 패션’ 공연 모습

 

 

영화 음악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이안 감독과 첼리스트 요요 마와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뉴욕에서 10년 넘게 친구였고, 이안이 내게 같이 작업을 해보자고 작업했다. 그는 홍콩 영화가 보여준 폭력적인 무술이 아닌, 예술적인 중국 전통의 무술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술과 예술의 간극을 채우기 위한 완벽한 다리는, 요요마가 되어주었다. 그 자체가 동서양의 음악을 잇는 역할을 하는 연주자였다.

‘와호장룡’의 음악을 쓰는 데에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음악을 써내려가는 데에는 열흘이 걸렸지만, 4년간 음악적 구상을 계속 해왔다. 단지 악보로 옮기는 데에 걸린 시간이 10일이었던 것뿐이다. 내가 작업을 빨리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전에 개념을 생각하는 데에서 무척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 속에서 음악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음악의 역할은 영상 속 숨은 감정을 끌어내는 것, 그리고 리듬을 끌고 가는 흥미진진한 엔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양식들까지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다. 아주 환상적인 예술의 형식이다.

영화 음악은 클래식 음악에 비해 ‘순수 예술’로서 인정받는 경향이 적다.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나.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두 장르를 아우르는 작곡가로서 차이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적으로 두 장르 모두 창의성이 필요하다. 다만 기술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마치 실내악 곡과 오페라를 작곡할 때, 두 작업이 같지만 다른 작곡 기술이 필요한 것과 동일한 개념이다. 교향곡을 쓰든 영화 음악을 쓰든, 인간이 예술가로서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지휘까지 확장되는 음악 세계

지난 6월,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히사이시 조의 지브리 영화 대표곡을 관현악 버전으로 편곡한 음반 ‘심포닉 셀레브레이션(Symphonic Celebration)’이 발매되었다. 로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히사이시 조가 직접 지휘했다. 히사이시 조의 작품들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DG에서 발매된 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전에 그는 일본의 엑스톤(EXTON) 레이블에서 교향악단(퓨처 오케스트라 클래식)과 함께 베토벤과 브람스의 교향곡 전곡을 지휘한 음반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 일련의 음반 발매 소식 외에도 히사이시 조의 음악 세계와 클래식 음악의 관계는 꾸준히 밀접하게 유지 되어 왔다. 2014년부터 히사이시 조가 시작한 콘서트 시리즈 ‘뮤직 퓨처(MUSIC FUTURE)’는 그의 지휘로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공연이다. 2019년, 퓨처 오케스트라 클래식스(FOC)를 창단해 이끌기 시작한 그는 꾸준히 고전 음악 지휘에도 시간을 쏟고 있다.

 

지휘에 비중을 두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는, 작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작품을 오케스트라로 지휘하면서 ‘왜 이렇게 썼을까?’를 알게 된다. 클래식에 평생을 바친 작곡가의 악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그들은 악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두꺼운 총보를 분석하고 지휘할 시간에, 누군가는 내가 한 곡을 더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휘를 하면서 얻게 되는 감각은 실제로 관객들이 수용하는 작곡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클래식 음악과 영화음악을 모두 다루면서 느끼는 공통점이 있나.

오래전부터 연극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오페라가 연극과 음악이 결합한 예시다. 그 시대였기 때문에 오페라를 만들었을 뿐, 당시 오페라를 만들었던 클래식 음악가들, 예를 들어 모차르트나 베토벤, 베버나 로시니, 바그너, 베르디 등이 지금 살아 있다면 모두 영화음악을 만들지 않았을까?

창작의 시작 지점이었던 20세기 음악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지금 미니멀리즘 작곡가이자, 컨템퍼러리 작곡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곡가로서 의미 있는 표현을 하고 싶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오늘’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 사람들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최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새삼스레 생각하곤 한다. 그러자 지난 25년간, 현대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입으로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현대 음악을 그만두었다는 것 자체가 장르에 구애받는 것 아닐까. 결국 나는 필립 글래스나 마이클 니만처럼 영화음악뿐 아니라 미니멀 뮤직을 만들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베버나 로시니, 바그너, 베르디가 살아 있다면 모두 영화음악을 만들지 않았을까?” – 히사이시 조

 

히사이시 조 ©Nick Rutter

 

 

 

 

 

 

 

 

 

 

 

 

 

탄 둔

 

 

 

 

 

 

 

 

 

“음악에는 각자의 ‘억양’이 있다. 음악에 이 억양이 묻어난다는 것이 정말 좋다.” – 탄 둔

동서양 음악의 만남을 구현하다

탄둔의 음악적 정체성은 동서양의 문화가 오가고 충돌하는 실크로드 그 자체다. 중국 전통의 요소를 기본기로 서양의 클래식 어법과 실험적인 기법에서 영향을 받는 탄둔의 작품은 서로 다른 전통의 만남의 장이다. 그는 오페라 ‘진시황’ ‘차: 영혼의 거울’을 선보였고, 오페라 ‘마르코 폴로’를 통해 그라베마이어 상까지 수상한다. 더 나아가 그는 문화의 만남을 넘어 더 넓은 동시대적 범위로의 결합을 시도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탄둔은 물이나 돌, 종이 등의 소재를 관찰하고 그 물질적 경향이 드러난 ‘워터 패션’이나, 스마트폰을 활용한 오케스트라 작품 ‘파사칼리아’ 등 고유의 동시대성을 확보한 작품을 선보였다. 최신작 ‘붓다 패션’은 2018년 드레스덴 뮤직 페스티벌에서 초연됐고, 올해 리옹 국립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음반이 발매되었다.

‘워터 패션’은 소리와 빛, 퍼포먼스가 결합된 공연이다. 무대에 십자가 모양으로 투명한 물그릇(워터 퍼커션)을 놓고, 실제로 물을 이용한 소리가 다양하게 접목된다. 2004년 한국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현대 사회에서 시각성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항상 ‘음악은 보여질 수 있고, 이미지는 들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곡한다. 바흐 서거 250주년인 2000년에, 지휘자 헬무트 릴링과 슈투트가르트 바흐 아카데미가 의뢰해 탄생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대륙에 있는 네 명의 현대 작곡가들에게 바흐의 작품을 토대로 한 ‘신 수난곡’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미 수많은 수난곡이 있는데, 새로운 작품이 굳이 또 필요할까라는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이 늘 동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현대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데서 답을 찾았다.

최근에도 수난곡의 하나로 ‘붓다 패션’을 선보인 바 있다. 둔황에 위치한 ‘막고굴’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하게 됐다고.

8년 전 이곳에 초청받아 동굴을 방문했다.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인 둔황에는 수백 개의 석굴이 있는데, 막고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불가사의한 곳이다. 수천 개의 벽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오늘날의 음악으로 바꿀 수 있을지에 매료되었다. 교향곡과 중국의 전통음악을 접목해 6개 악장의 교향곡을 만들었으며, 가사는 부처의 가르침과 삶을 묘사한 산스크리트어로했다. 몽골의 전통 성악창법인 흐미(khoome)로 반야심경을 노래하기도 한다.

아방가르드 음악으로 불리던 앞 세대의 음악과 자신의 음악이 가진 특징 차이를 말해본다면.

20세기 음악은 전통과 음악, 박자 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작을 해보려는 노력이었고, 이전에 없는 자신만의 작곡 방식을 찾으려했다. 이는 음악으로부터 나오는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끊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음악에는 각자의 ‘억양’이 있다. 내가 중국어 억양으로 말하고, 누군가는 독일어 억양으로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에 이 억양이 묻어난다는 것이 정말 좋다. 20세기의 음악은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나 자신은 그 음악의 접근 방식을 이어가고 있진 않다.

 

아시아의 두 작곡가가 남긴 결심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두 사람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아시아적 소재의 적극적인 활용과 차용을 기대하게 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던 한 영화 감독의 수상 소감처럼, 두 아시아 음악가들이 선보이고 있는 독특한 색채의 발현은 클래식 음악과 영화음악의 장르적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 음악의 공통 언어로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본인의 음악에 고국의 음악적 전통을 활용하는 데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히사이시 조 일반적으로 영화 감독들은 전통악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모노노케 히메’(1997)의 음악 작업을 할 때도 고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일본 전통악기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기존의 전통 악기가 가진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영화로의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오히려 특정 시기에 미야자키의 영화는 굉장히 유럽적이었다. 일례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유럽의 분위기, 구체적으로는 동유럽의 세계관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왈츠를 접목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아시아’라는 것은 내게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영화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공연을 하면서, 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전통 음악은 그냥 내버려 두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 계속 새로운 시도 속에서 위화감 있는 음악을 제거해주면 자연스럽게 남아야 할 것만 남게 된다. 앞으로는 아시아를 주제로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 광대한 지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과 다채로운 문화, 깊은 전통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옴짝달싹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시아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내 핏속에 흐르고 있는 아시아와 아시아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탄 둔 중국 음악의 미학과 클래식 음악을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는 데에 가장 큰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을 통해 ‘로컬과 비로컬’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지엽적인 특징이 강할수록 글로벌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버르토크는 이런 점에서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우리 마을의 음악이 세계 음악의 흐름을 바꿀 수 있고, 고향 후난에서의 영감이 ‘모더니즘’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용한 히사이시 조와 탄둔의 인터뷰는 잡지 ‘ONTOMO’ ‘OPERA WIRE’, 도서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등에 게재된 문장들을 참조했다.


HISAISHI JOE label

 

히사이시 조 : 심포닉 셀레브레이션

DG 4877352

히사이시 조(지휘)/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난 6월, DG가 히사이시 조와의 독점 계약을 발표한 후 처음으로 발매한 음반.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 등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대표작들을 교향악적으로 재편곡해서 선보였다.

 

 

 

베토벤 : 교향곡 전곡집 & 브람스 : 교향곡 전곡집

EXTON OVCL00790, OVCL00820

히사이시 조(지휘), 퓨처 오케스트라 클래식스

히사이시 조가 창단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한 음반. 베토벤 녹음은 2016년부터 2년간, 브람스 녹음은 2021년부터 3년간 걸쳐 녹음했다. 클래식 음악 작품에 대한 히사이시 조의 접근 방식을 들어볼 수 있는 음반이다.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히사이시 조 지음 | 이선희 옮김 | 샘터

히사이시 조가 직접 자신의 작업 현장 등 명곡 탄생의 숨은 이야기를 풀어 놓은 에세이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영화음악계에서 일하기 위해 가진 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의 비하인드, 그리고 영화 음악과 현대 음악을 오가며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확신 있는 어조로 담아냈다. 그가 말하는 ‘창조성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가볍게 열어보기 좋은 책.

 

 

영화 예고편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은퇴를 번복하고 10년 만에 선보인 신작. 지난 10월, 한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그가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라 선언한 만큼, ‘자서전’같은 성격을 가졌다. 내용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로운 세계에 우연히 발을 들인 소년 ‘마히토’가 미스터리한 왜가리를 만나게 되며 펼쳐지는 시공초월 판타지다. 이번에도 히사이시 조가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고, ‘어쩌면’ 이번엔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가 함께 하는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TÁN DÙN label

 

탄둔 : 와호장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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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마(첼로), 상하이 심포니·상하이 국립 오케스트라 외

주윤발·양자경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출현한 중국의 무협영화 ‘와호장룡’의 OST를 모은 음반으로, 탄둔의 음반 중 스테디셀러다. 요요 마가 연주하는 첼로 선율 외에도 주제가 ‘A Love Before Time’도 잘 알려져 있다. 올해 7월, 주제가를 부른 코코 리는 별세했다.

 

 

 

탄둔 : 붓다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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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둔(지휘), 리옹 국립 오케스트라, 뤼벡 국립 합창 아카데미 외

올해 9월에 발매된 탄둔의 ‘붓다 패션’ 연주 음반. 6명의 타악기 연주자와 대규모 합창단,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불교 서사에 대한 ‘열정’을 담았다. 매혹적인 음향은 삶에 대한 명상과 성찰을 담았다. 2019년 상하이 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녹음됐다.

 

 

 

탄둔 ‘워터 패션’ 실황

17개의 크고 투명한 물그릇(워터 퍼커션)이 무대 중앙을 십자 모양으로 가로 지르고 있다. 타악기 주자들은 물을 손으로 튀기거나 치면서 소리를 만든다. 합창은 ‘소리가 물 속에서 들린다’라는 가사를 반복적으로 노래한다.

 

 

 

 

탄둔 ‘파사칼리아: 바람과 새들의 비밀’

연주 중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스마트폰을 든다. 새소리가 녹음된 스마트폰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의 방법을 함께 가져와 만들었다는 개념이다. 스마트폰에 녹음된 새소리는 6개의 중국 고대 악기로 만들었다. 탄둔은 “디지털 새소리를 연주하는 스마트폰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영혼을 반영하는 축으로 설정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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