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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국제음악제 이사장·총감독 백수현
성장을 도모하는 축제, 그 실천에 관하여
베를린필 카라얀 아카데미와 혐약을 맺어 한국에서 첫 오디션(2024. 2. 2·3)을 개최하는 곤지암국제음악제의 성과와 그 미래
매년 전국 각지에는 다양한 음악 축제가 개최되며, 각자는 그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치열하다. 지역 관광에 방점이 찍혀 자연 풍경과 어우러지는 야외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고, 레퍼토리에 방점이 찍혀 특정 작곡가나 시대의 작품으로 축제가 완성되기도 한다. 그중 ‘곤지암국제음악제’는 이사장 겸 총감독인 플루티스트 백수현이 2016년에 ‘곤지암페스티벌’로 시작하면서 ‘목관’과 ‘교육’에 밑줄을 그었다.
“문화예술후원이 가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믿습니다. 그것은 예술가의 사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학생들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를 직접 만나 많은 것을 전수받을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백 감독의 이러한 뜻은 내년에 더 거대해진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카라얀 아카데미와 곤지암국제음악제가 업무협약을 맺고 한국에서 카라얀 아카데미 예선 오디션을 개최하게 된 것. 카라얀 아카데미로서는 역사상 첫 해외 오디션인 셈인데, 앞으로 있을 두 기관의 협력에 관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연·문화와 함께 하는 축제, 그리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축제를 꿈꾸면서 경기도 곤지암밸리 부지에서 ‘곤지암국제음악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민간 축제 운영은 쉽지 않을 텐데, 어떤 이유로 축제 개최에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2008년에 제 인생의 첫 반환기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임신으로 신체의 변화를 겪으니, 내면에서 다양한 생각이 나더군요. 그때까지 스스로 연습하고 공연하는 것은 저만의 열정이었고, 그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이 너무 없었던 거예요. 내가 왜 음악을 하는지 이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방문한 일본 나오시마 예술의 섬은 제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쓰레기 폐기물로 버려졌던 섬이 여러 기부자와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힘을 받아 새롭게 설계됐는데, 그것을 보니 제가 무엇에 가슴이 떨리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게 2016년 곤지암페스티벌의 첫 시작으로 이어졌군요.
맞아요. 결심한 인생의 방향이 실행으로 옮겨지고, 가치가 날로 커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진짜 수확이란 것을 깨닫게 됐죠.
올해까지 축제를 진행하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참가자를 꼽자면요?
2017년 제2회 축제 때 플루티스트 패트릭 갈루아(1956~)가 보여준 존재감이 어마어마했죠. 제가 그리는 진정한 대가는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꿈을 줄 수 있는 아티스트이고, 그런 분들을 축제에 초청하고자 하는 욕심이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치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아티스트가 패트릭 갈루아였어요.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아티스트는 어떤 사람인가요?
아무리 날고 기는 대단한 연주자들의 음악도 가슴으로 전달이 안 되는 때가 많아요. 연주를 잘해도 마음을 울리는 그 단계는 정말 쉽지 않은 것이죠. 청자로서 연주자의 내면과 동화된 음악을 들었을 때는 첫소리에도 울림을 느끼고 눈물이 날 정도예요. 그건 정말 다른 세상의 음악가인 거예요. 우리가 ‘전설’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그런 것이죠.
카라얀 아카데미와의 협약으로 새 도약판을 만난 축제
곤지암국제음악제는 매년 마스터클래스를 준비하여 교육의 장을 열어왔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린 학생들은 본인의 의사가 아닌 부모나 주위의 권유로 악기를 시작한 예도 많고, 쉽지 않은 음악인으로서의 길에서 무엇이 좋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도 해요. 음악(音樂)이란 ‘소리를 즐긴다’ 혹은 ‘즐거운 소리’라는 의미잖아요? 연주하는 사람이 즐기고 감동하지 못하면 평생 이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순간에 위대한 아티스트를 만나 대화하고 배우고, 좋은 소리를 듣는 시간은 무척이나 귀중합니다. 그게 성장할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하기도 하고요.
이번 곤지암국제음악제에서는 베를린필 카라얀 아카데미와 업무협약을 맺고 세계 최초로 베를린이 아닌 지역에서 오디션을 개최하게 됐습니다. 이런 협업의 장은 어떻게 성사됐나요?
처음에는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 관심이 있어서 이에 관한 협력 진행을 구상하기 위해 베를린에 방문했습니다. 베를린에는 저와 친분을 이어가고 있는 여러 아티스트가 있는데, 그중 베를린필의 수석인 벤젤 푹스(클라리넷)와도 8년 동안 인연을 이어온 사이입니다. 인사차 베를린 필하모니에 들렸더니, 그가 저를 무대 뒤편으로 안내해 주며, 여러 사람을 소개해 줬습니다. 그중 카라얀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이미 곤지암국제음악제에 관해 들은 바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오디션을 아시아로 확장할 마음이 있었는데, 그 뜻이 저랑 맞닿게 된 거죠.
오디션은 어떻게 진행되고, 이번 오디션에 합격하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지난 11월 6일부터 접수를 받고 있고, 12월 8일에 종료됩니다. 카라얀 아카데미 오디션은 예선과 본선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오디션에 합격하면 독일 베를린 현지에서 본선 오디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지금까지 카라얀 아카데미 오디션은 예선과 본선 모두 현지에서만 이루어지거나, 영상 심사를 봤기 때문에, 해외에서 심사위원이 직접 찾아오는 이번 한국 오디션은 이례적인 첫 사례이죠. 카라얀 아카데미는 이를 발판으로 곤지암국제음악제에서 계속 오디션을 개최할 의사가 있다고 해요.
글 이의정 기자 사진 곤지암국제음악제
한국에서 열리는 베를린필 카라얀 아카데미 오디션
이미 교육을 받은 전문 연주자를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키워내는 카라얀 아카데미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1972년에 시작한 것으로, 당시에는 혁신이었다. 이러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오케스트라는 거의 전무했고, 출범부터 비영리 단체로 이윤을 추구하지 않고 기부를 받아 학생을 가르쳤기에 더욱 그렇다. 대다수의 음악학도가 독주자가 되는 과정을 밟기 때문에, 이러한 공동체 생활과 연주에 관한 실질적인 경험을 주는 것은 지금도 여러 연주자에게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의 3분의 1이 카라얀 아카데미 출신이다.
아카데미 학생들을 교육하는 연주자 역시 베를린 필하모닉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현재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아 밴딕스 밸글리, 다이신 카시모토를 비롯하여 각 악기군의 수석 연주자들이 교수로 직접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교의 석사과정과 마찬가지인 단계에 있으며, 한 번 입학하면 인턴십 과정까지 밟을 수 있다.
곤지암국제음악제의 2024년 첫 시작은 베를린 필하모닉 목관 단원들이 선보이는 공연과 한국에서 열리는 카라얀 아카데미 예선 오디션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크리스토프 하르트만(오보에), 벤젤 푹스(클라리넷), 슈테판 슈바이게르트(바순), 안드레이 주스트(호른)는 이 아카데미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안드레아스 블라우(플루트) 역시 베를린필 수석으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카라얀 아카데미에서 많은 후학을 길러낸 바 있다. 이들이 진행했던 마스터클래스 영상을 온라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교육에 열정적인 교수들이 포진되어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곤지암국제음악제는 이번 오디션을 시작으로 카라얀 아카데미와의 지속적인 협력 계획을 밝혔다.
안드레아스 오텐잠머(베를린필 클라리넷 수석)
“카라얀 아카데미 오디션을 보기 직전까지 음악을 전공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 도전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주저했는데, 베를린으로 이주하면서 전문 연주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본지 21년 6월 호).”
조성현(현 연세대 교수·플루티스트, 전 쾰른 필하모닉 수석)
“카라얀 아카데미에서 이반 피셰르와 함께한 연주가 기억에 남아, 마침 그가 상임지휘자로 있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 플루트 수석 자리에 응시했었다(본지 15년 12월 호).”
함경(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오보에 제2수석)
“카라얀 아카데미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유럽 오케스트라 여러 곳에 원서를 넣던 중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잉글리시 호른 수석 1년 계약직 오디션에 운 좋게 합격했었다(본지 15년 12월 호).”
카라얀 아카데미 심사위원단
안드레아스 블라우(플루트) 베를린필 활동 연도: 1969~2015년
1972년 카라얀 아카데미 설립 당시 창립 멤버이다. 46년간 베를린필의 수석으로 활동한 이후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부터 상하이 콘서바토리의 명예교수직을 이어오고 있다.
크리스토프 하르트만(오보에) 입단 연도: 1992년
1993년부터 카라얀 아카데미의 교수로 활동 중이다. 툴롱·제네바 등 다양한 지역의 콩쿠르 입상하여 자신의 실력을 알렸으며, 1999년 베를린필 단원과 함께 ‘앙상블 베를린’을 창립했다.
벤젤 푹스(클라리넷) 입단 연도: 1993년
현재 베를린필 클라리넷 수석으로, 카라얀 아카데미 교수 활동을 비롯하여 도쿄예술대학 초빙교수, 상하이 콘서바토리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슈테판 슈바이게르트(바순) 입단 연도: 1985년
1987년부터 카라얀 아카데미의 교수를 맡고 있으며,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12년 동안 ‘앙상블 베를린’ 멤버로 활동했으며, 기돈 크레머의 로켄하우스 페스티벌에서 여러 차례 공연했다.
안드레이 주스트(호른) 입단 연도: 2011년
2002년 슬로베니아 젊은 음악가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다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2009년부터 2011년 1월까지 카라얀 아카데미의 장학생이었으며, 2011/12 시즌에 베를린필 호른 주자로 합류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베를린필 솔리스트 & 곤지암 우드윈드 페스티벌
2024년 1월 30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카라얀 아카데미 예선 오디션
2024년 2월 2·3일 한국예술종합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