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떠난 음악가의 노스탤지어, 라흐마니노프 국제 오케스트라 창단 공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2월 27일 2:35 오후

ORCHESTRA ISSUE

라흐마니노프 국제 오케스트라 창단 공연

러시아를 떠난 음악가의 노스탤지어

플레트뇨프가 새 악단을 창단한 이유와, 창단 공연을 지휘한 켄트 나가노와의 인터뷰

 

 

미하엘 플레트뇨프(1957~)가 ‘라흐마니노프 국제 오케스트라’(Rachmaninoff International Orchestra, 이하 RIO)를 창단했다. 지난 10월, 자신이 살고 있는 스위스 롤(Rolle)에 위치한 로제이 콘서트홀(Rosey Concert Hall)에서 창단 연주를 했다. 지휘는 켄트 나가노(1951~)가 맡았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이자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이하 RNO)를 창단(1990)한 그가 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한창인 이 시기에 다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을까? 그 현장에 다녀왔다.

 

©Aurelia Thys

 

 

오케스트라를 빼앗긴 자의 선택

망명 아닌 망명의 삶을 사는 플레트뇨프는 러시아를 떠나 스위스 롤의 호수 변에 안착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며 일부 러시아 예술가들은 푸틴의 편에 섰고, 일부는 비판했다. 플레트뇨프는 그 어떤 편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에선 그가 러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보이콧을 당했고, 러시아에선 공개적으로 푸틴 편을 들지 않은 그를 거부했다. 자신의 분신인 RNO와도 생이별을 당한 셈이다. 플레트뇨프는 오케스트라의 독립성에 대해 강조하며, 새 오케스트라 창단에 부쳐 이에 대해 강조했다.

“푸틴 정부는 모든 것이 그들의 통제 아래 있기를 원한다. 이점이 바로 RNO가 국가 오케스트라이기를 원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푸틴은 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단지 한 결과일 뿐이다. 진짜 원인은 러시아가 아직 민주주의의 길을 다지지 못한 점이다.”

새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지난해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의 수도)에서 이를 결성했다. 현재 단원은 71명으로, 18명은 RNO 단원들이고 나머지는 우크라이나·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크로아티아 등 동서 유럽 연주자들이 합세했다.

RIO의 이름에 ‘라흐마니노프’가 사용된 이유에 대해 오케스트라의 제너럴 매니저인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라흐마니노프의 삶과 유사한 플레트뇨프의 상황을 설명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해 외롭고 슬픈 삶을 보냈다. 지금의 플레트뇨프 또한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라흐마니노프의 그것과 같다고 느꼈다. 라흐마니노프의 내면적 고충과 노스탤지어는 그 자신의 것이 되었고, 라흐마니노프 15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그의 피아노 협주곡 헌정 연주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켄트 나가노와 플레트뇨프 ©Aurelia Thys

 

 

망명자의 황홀한 피아니즘

연주회가 열린 10월 30일, 비가 내리고 추웠지만, 근사한 청중이 줄을 이었다. 로제이 콘서트홀은 800석으로, 나무로 장식된 홀의 음향이 아주 좋았다. 오후 5시, 플레트뇨프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과 협주곡 3번을 리허설 중이었다. 청바지 차림의 켄트 나가노는 7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학생처럼 생생했다.

플레트뇨프는 이따금 연주를 멈추고 오케스트라를 향하며 마치 자신이 지휘하듯 신경 썼다. 그러나 그의 피아노 연주는 더 인상적이었다. 연습이라 힘을 절약하며 한 번도 어깨를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을 건반에 붙인 채 초연하게 한 구절씩 풀어나갔다. 강렬한 타건이 아니어도 강도 깊은 뭉클함이 느껴졌고, 극도의 피아니시모가 최대의 음향 효과를 냈다. 특히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멜로디 감각이 일품이었다. 때로는 광시적으로, 때로는 러시아 정교회적인 영감을 가진 멜로디를 추려내며 강조와 입체감을 통해 이 여러 멜로디가 어떻게 장송의 춤 멜로디와 합쳐지며 강렬한 퍼즐을 완성하는지 보여주었다. 또한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는, 테크닉적 난제를 망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음악적 흐름에 중점을 뒀다. 강도 깊은 반전과 우아함, 내면적 밀도가 놀라웠고, 이는 힘과 테크닉으로 몰아붙이는 요즘 젊은 인재들의 연주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우릴 인도했다.

이어진 저녁의 본 공연은 놀라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협주곡 3번 1악장을 수려하게 완주한 다음, 2악장을 기다리는 청중 앞에 켄트 나가노가 나와 “마에스트로가 앙코르를 하고 싶답니다. 연주 중 그가 앙코르를 하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습니다”라며 말을 전했다. 놀라운 점은, 그가 난도 높은 1악장을 다시 연주한 것이었다. 이 연주는 메디치 티비(medici.tv)에 중계될 예정이었는데, 청중은 기쁨으로 1악장을 다시 경청했고, 대단한 감동이 연출됐다. 이후 2·3악장 연주를 모두 마치자 다시 켄트 나가노가 놀란 표정으로 묘한 웃음을 띠며 다시 말을 건넸다. “연주 중 두 번의 앙코르를 하는 경우는 전혀 본 적이 없는데, 플레트뇨프가 또 앙코르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3악장을 다시 연주했다. 거대한 플레트뇨프의 피아니즘으로 보아, 완벽주의자인 그의 엄청난 의지와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마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체험을 한 최정상의 연주였다.

31일 연주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과 4번,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2번을 연주했다. 노스탤지어적 감성이 있지만 절대 범람하지 않는 자제력과 우아한 구성미를 잘 부각한 1번에 이어, 4번 3악장에서는 쉬지 않고 용솟음치는 멜로디 간의 대화가 대위법 예술의 극치를 이뤘다. 압권은 2번으로, 청중으로는 그 어떤 연주와 비길 수 없는 예외적인 공연이었다. 1악장은 느리지만 쳐지지 않는 템포로 드라마틱한 무거움을 고상하게 승화했고, 2악장에선 때로 연주자에게만 들릴 만큼의 극도로 작은 소리를 고수했다. 오케스트라의 관악 파트 또한 작은 음향으로 이를 받쳐 주어야 했다. 켄트 나가노는 놀라운 카리스마로 이 어려운 패시지를 완벽하게 끌고 나갔다. 그 결과, 아주 사적이고 은밀한 모놀로그 같은 협주곡 2번 연주가 탄생했다. 이 독백은 누구를 위해서였을까. 플레트뇨프 그 자신, 혹은 라흐마니노프 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Aurelia Thys


로제이 콘서트홀에서의 창단 연주 ©Aurelia Thys

냉철한 카리스마 뒤에는 아픔의 상처가

31일 리허설 후, 플레트뇨프를 잠시 만났다. RNO 단원 출신으로 이번 연주에 참여한 한 연주자는 플레트뇨프와의 20년간의 교감을 “현실이 아닌 어느 곳에서 오는 영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플레트뇨프 역시, 이번 기회로 그들을 다시 만나 아주 기뻤다고 밝혔다. 그러나 “음악이 아무리 영적이더라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나!”라며 코로나 백신 접종이 강제적이며, 중국 우한 지방 사람들을 격리한 것에 대해서는 강제 수용소에 비교한다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파시스트적인 전쟁이라며 “이런 세상에서 음악은 단숨에 ‘녹다운’됩니다”라며 한탄했다.

그는 비관론자일까? 플레트뇨프는 자신에 대해 “단지 현실적일 뿐입니다”라며 “나는 곧 죽겠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우리 할아버지는 나치에게 이렇게 죽음을 당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손으로 목을 대며 학살 장면을 재현했는데 충격적이었다. 냉소적이고 차가운 카리스마의 플레트뇨프는 알고 보니 가슴에 분노와 한이 많은, 상처받은 사람이었다. 이후 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를 들으니, 그 어떤 파토스(Pathos) 없이 연주하는 음악이 오히려 왜 그렇게 슬프게 다가왔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음악만으로는 이러한 아픔과 역사에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왜 이렇게 적극적인 활동과 음악 연주를 하고 있는 걸까. 한 크로아티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죄를 응징하기 위해 다른 죄를 저지를 수는 없다. 전쟁은 누가 시작했든, 누가 옳든, 결국 죄다. 누가 전쟁을 시작하는가? 어리석은 정치인들이다. 전쟁은 복수심에 의해 종용 되고, 그 누구에게도 좋을 수 없다. 이런 굴레를 벗어나려면 좋은 것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음악을 한다.”

2024년 12월, 플레트뇨프는 RIO와 함께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들이 무슨 작품을 연주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들 가슴 저편에서 우러나는 연주는 경청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글 배윤미(프랑스 통신원) 사진 라흐마니노프 국제 오케스트라

 

 

INTERVIEW

©Antoine Saito

현지에서 만난 켄트 나가노

오랜 우정으로 새로운 음악을 열다

 

31일 오전 리허설 후, 켄트 나가노를 만났다. 피곤하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연주 후는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가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 이유는, 미하엘 플레트뇨프와의 오랜 관계 때문이었다.

 

‘라흐마니노프 국제 오케스트라’(이하 RIO) 창단 연주의 지휘를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플레트뇨프와 1990년대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연주했다. 35년 정도 된 사이로, 친분이 깊고도 길다. 내 연주에 거의 매번 참여했고, 나 또한 그가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을 때 후원을 위해 러시아에 갔을 정도다. 항상 느끼지만, 플레트뇨프는 아주 특이하고 가공할 만한 연주자다. 함께 연주할 기회가 있으면 늘 기쁨으로 연주했다.

두 사람이 선보인 라흐마니노프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은 자주 접한 곡은 아니었다. 젊었을 때는 공부하고 연주했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연주한 적 없다. 플레트뇨프가 보는 라흐마니노프 해석은 아주 설득력 있었고,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즉각 승낙한 이유다. 모든 해석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각자의 해석은 합법하다. 그러나 악보에 쓰인 것이 다 들리는 플레트뇨프의 해석에서 일련의 심오함을 체험했다.

RIO는 이제 막 창단된 오케스트라다. 4일간의 리허설을 거치면서 느낀 점은.

아주 긍정적이다. 재능 있는 연주자들이며, 함께 연주해 나갈 시간은 조금 필요하다. 이미 이들과 음반을 녹음해 친숙해진 상태지만, 스튜디오에서의 연주와 실황 공연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피아노와의 협업이 아주 원활했던 것은 플레트뇨프의 오케스트라이기 때문 아닐까!(웃음)

최근 원전 연주를 기반으로 바그너의 링 프로젝트에 도전했다고 들었다.

7년 전에 시작된 것이다. 원천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내 아이디어는 바그너의 의도를 좀 더 명료하게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역사주의 연주에 집중한 원전 연주는 1960년대에 시작해 바흐에서부터 고전으로 확산했다. 아이디어는 쾰른 앙상블 단원들이 “당신의 주된 레퍼토리를 쾰른 앙상블로 연주할 수 없겠느냐”라는 질문에서 시작됐고, 어떤 레퍼토리가 적절할지 고민하던 중 바그너라는 작곡가가 떠올랐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7명의 음악학자가 참여했고, 지난 6월에 드레스덴에서 ‘라인의 황금’을 연주하며 그 시작을 알렸다.

학구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 바그너는 독일 방언을 썼다. 텍스트나 음향적인 고증뿐 아니라 무대 장식이나 의상, 일련의 동선까지도 고증했다. 그러나 당시의 연출 버전으로 오늘날의 무대에 올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현재로서는 150년 전 바그너 당시의 연출이 20세기의 현대적 관점을 지닌 우리에게 어떻게 이해될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대 버전을 새로 구상했고, 텍스트나 악보 등에서는 바그너 당시의 악기를 수집하고 성악가들에게도 당시의 관점으로 노래하게끔 주문하는 데에 엄청난 노력이 들었다. 내년 4월, ‘발퀴레’가 이어서 공연될 예정이다.

한국에서의 연주도 계획하고 있는가.

아직 구체적이진 않다. 한국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불행히도 단 이틀뿐이었다. 그러나 한국 문화에 무척 반했고, 친구인 작곡가 진은숙을 통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음식도 맛이 있어 자주 먹는다. 베를린이나 샌프란시스코에도 한국 식당이 많은데, 본토에서 맛본 것과는 달랐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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