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공연예술계, 완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2월 27일 2:46 오후

* 본지에 실린 ‘일이관지’의 공연일자는 10월 17~19일, 10월 24~26일로 정정됐습니다. 독자분들께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정확한 보도를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SPECIAL ARTISTS&STAGES OF THE YEAR

2023년, 공연예술계 완결!

올해 주목받은 예술가&무대 선정

 

수많은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부터, 전국의 다양한 축제까지 공연계가 완전히 수복된 2023년!

그 한해의 마무리를 위해 전문가들이 주목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 공연은?

총괄 이의정 기자

PART 1. 각 장르 결산

PART 2. 못다 한 이야기

PART 3. 올해의 ‘객석’ 모음집

PART 4. 서포터즈’s PICK

 


CLASSICAL MUSIC: ORCHESTRA

클래식 음악: 관현악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관현악, 브람스와 라흐마니노프로 물들다!

전통의 악단부터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까지

체코 필하모닉 ©인아츠프로덕션

수많은 오케스트라 공연의 객석에 앉았던 한해였다. 그중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있는 악단은 체코 필하모닉(10.24·25)이다. 체코 필 특유의 쌉싸래한 풍미는 일반화되어 가는 세계 오케스트라의 경향을 역주행했다. 첫 내한이었던 세묜 비치코프는 암보로 지휘하며, 적재적소에 기를 불어넣었다. 전통의 앙상블은 낮은 무게 중심으로 안정감 있게 다가왔으며, 현악 군은 세월의 바람을 맞아 착 가라앉은, 흉내 낼 수 없는 웅숭깊은 소리를 선보였다. 악장의 구성진 바이올린 소리와 바위를 연상케 하는 호른 소리를 비롯해, 보헤미안 악사들의 연주 솜씨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 밖에도 올해에는 다시 보고 싶은 명연주가 많다. 그중 아담 피셰르/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의 공연(3.9~12)은 아직도 생생하다. 100년 넘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는 ‘진정한 모차르트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지휘자’의 합은 달랐다. 이들의 공연은 너무 흔해서 일반화하곤 했던 모차르트의 음악을 거울 앞에 세우고,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는듯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잘 연주할수록 맑고, 속이 훤히 보이는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그 투명함의 최고치를 경신하는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며 장난꾸러기 같은 무구함이 묻어나는 피셰르의 열정이 교향곡 38번과 41번이라는 순수한 두 곡의 얼개를 명료하게 전달했다.

아담 피셰르

27세의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의 첫 내한 무대였던 오슬로 필하모닉 공연(10.28·30)도 화제를 모았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은 인간적인 온기와 자연의 냉기가 교차했으며, 교향곡 5번의 피날레는 차창 밖으로 보는 북극의 피오르처럼 따스했다. 북유럽에서 온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선보이는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또다시 이 작곡가의 음악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파보 예르비/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10.12·13)의 브람스 교향곡 1번과 미하엘 잔덜링/루체른 심포니(6.27~7.1)의 베토벤 교향곡 5번 연주는 두 악단의 지휘자 모두 ‘지휘자 2세’라는 공통점뿐 아니라, 해석에 있어서도 ‘일필휘지(一筆揮之)’의 동일한 면모가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필리프 헤레베헤/샹젤리제 오케스트라(5.17~21)는 드물게 시대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의 공연으로 손에 꼽을 만했다.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서 트라베르소(바로크 플루트) 연주는 새가 지저귀는 듯 고왔고, 거트현과 논(non) 비브라토로 연주하는 현악 군은 단아했다. 불에 그을린 나무의 향이 나는 듯한 밸브 없는 내추럴 호른과 내추럴 트럼펫의 음색은 거칠지만 자연스러웠다. 케틀드럼은 적재적소에서 맥을 짚었으며, 전체 파트 간의 응집력도 훌륭했다.

내년 1월 취임을 앞둔 얍 판 츠베덴서울시향의 브람스(1.12·13)·베토벤(7.20·21) 연주는 강렬한 환골탈태로 시선을 끌었다. KBS교향악단을 이끌며 순항 중인 피에타리 잉키넨도이치 방송 오케스트라(9.13~20)를 지휘하며 정통 바그네리안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외에도 고잉홈프로젝트(8.1~3), 발트앙상블(6.23~25·8.10), 필하모니코리아(9.7), 말러리안 오케스트라(7.30) 등 여러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줄을 이었다. 전반적으로 새로운 시도와 참신한 연주를 선보이는 오케스트라의 등장으로 악단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양상이었다.

올해의 트랜드는 역시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독주와 실내악도 마찬가지겠지만, 작곡가의 주 종목인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 관현악곡이 자주 공연됐다. 오케스트라들은 그 어느 해보다 다양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선보였다. 특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3번과 교향곡 2·3번 그리고 ‘파가니니 랩소디’가 자주 연주된 해였다.

올해 라흐마니노프 못지않게 연주된 작곡가로는 브람스를 꼽을 수 있다. 런던필(10.5~7),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10.12·13), 빈필(11.7·8), 베를린필(11.11·12) 등 해외 악단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으로 눈에 띄었다. 아마도 치밀하게 쌓아 올리는 곡의 구조상 대중에게 인기가 많고, 티켓 파워가 있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년에는 탄생 200주년을 맞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이 자주 연주될 전망이다. 오르간적인 앙상블을 만들어야 하는 단원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서거 150주년을 맞는 드보르자크의 작품들이 더 연주될지도 모르겠다. 많든 적든, 브루크너 프로그램으로 국내 악단들의 실력이 한 층 업그레이드되는 내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CLASSICAL MUSIC: ENSEMBLE

클래식 음악: 앙상블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존재의 이유, 낯섦

시각 정보 활용으로 확장되는 청각 자극

에머슨 콰르텟 ©Jurgen Frank

실내악 부문에서 큰 주목을 받은 단체는 단연 에머슨 콰르텟이다. 약 40년 동안 활동하며 일찌감치 정상의 자리에 올라 현재까지 이를 지켜온 이 거대한 이름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기에, 이들의 해체는 세계적인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에머슨 콰르텟의 고별 투어는 한국(5.26·27)을 비롯해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어졌으며, 헨리 퍼셀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서로 다른 다양한 프로그램을 들려주었다. 넓은 공간을 이상적인 하모니로 채우며 작별을 고한 에머슨 콰르텟의 연주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공연 중 하나이다.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예술의전당

7년 만에 내한한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4.26)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공연장에는 이 세계 최고 앙상블의 연주를 듣기 위해 많은 음악가와 애호가가 운집했다. 국내 작곡가인 진은숙·최우정·홍성지를 비롯하여 불레즈·라이히·마누리·리자 림 등 열 곡의 작품을 쉼 없이 연주하며, 현대음악의 강렬하고 직설적인 표현들로 평소에 경험하기 힘든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냈다.

이외에도 신선한 자극을 선사한 다양한 실내악 공연들이 여러 화제를 모았다. 세종솔로이스츠와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3.16)가 선보인 작곡가 토드 마코버의 ‘오버스토리’는 시청각 무대로서의 클래식 음악 공연의 방향을 제시했다. 무대 앞에 선 디도나토뿐만 아니라 연주자들과 지휘자까지 무대 연출에 참여하며 클래식 콘서트 무대에 낯선 환상을 펼쳐놓았다. 피아노와 거문고, 전자음악이 어우러진 ‘Project tHinG’의 공연도 쿠프랭부터 가브리엘 프로코피예프, 그리고 신작 초연까지, 어제와 오늘, 내일을 연결하는 낯선 공연이었다. 익숙함으로 소외된 우리에게 이러한 낯섦은 새로움을 일깨우며 존재의 이유를 다시금 감각하게 한다.

물론 낯섦만이 존재의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김준호의 작곡발표회 ‘오늘 우리는’(10.31)은 ‘버르토크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이런 음악을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러한 청각적 공감에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익숙한 일상과 심리를 더해, 음악회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으로 확장했다.

이렇게 올해는 음악회가 관객들이 직접 참석하여 눈으로도 관람하는 공연으로서, 시청각적 무대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 현대무용단 아트프로젝트보라와 함께한 TIMF앙상블의 ‘발레메카닉’(10.6·7)도 이 관점에 포함된다. 이미 많은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재연에서도 큰 주목을 받으며 무수한 낯섦과 질문을 던졌다. 오르가니스트 박은혜의 ‘한국을 품은 오르간’(3.13)에서도 동서양이 공존하는 악기와 프로그램에 무용과 조명을 더하여 음악이 가진 보편적 언어로서의 잠재력과 압도하는 공연으로서 시청각적 공간이 만드는 숭고미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여러 공연이 보여준 낯섦의 확장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동서악회소피아뮤직위크의 국제교류 음악회(11.4)는 우리가 몰랐던 세계로 시야를 확장하며 클래식 음악의 종주국에서 벗어난 낯섦을 통해 보편성을 제시하는 독특한 경험을 주었다. 또한 한 명의 한국 작곡가의 여러 작품과 그에게 영향을 준 작품을 함께 연주하는 현대음악앙상블 소리의 ‘동방신곡’ 시리즈는 한국 작곡가의 삶과 고민 속에 구축된 또 하나의 소리 예술의 세계를 조명한다.

내년에도 클래식 음악은 익숙함을 성찰로 확장하고,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 것이다. 이로써 ‘나’의 다른 가치를 인식하게 하고,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로서 그 면모를 드러낼 것이다.


CLASSICAL MUSIC: SOLOIST

클래식 음악: 독주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공연의 수만큼 다양하게

개성이 살아나는 시대

양인모 ©Studio Bob

올해도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루돌프 부흐빈더 등 세계적인 솔리스트가 내한하여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럼에도 훌륭한 솜씨를 지닌 여러 국내 연주자의 무대가 빛났던 해이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으로 또다시 화제를 몰고 왔던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피아니스트 김다솔과 함께 가진 공연(3.29~4.7)에서 베토벤과 브람스, 그리고 베베른과 베아트 푸러까지 이어지는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성공적으로 연주하여 감상자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음악가들에게 귀감이 됐다.

김수연

금호아트홀의 상주예술가인 피아니스트 김수연은 악보가 원하는 소리를 연주해 내는 것을 넘어,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함께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로 인도했다. 낭만 시대 음악이 좋은 소리를 넘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를 만들며 감상자에게 내면적 움직임을 유도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음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들려준 낭만적 연주였다.

화제가 됐던 혹은 독특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던 여러 독주 공연도 인상에 남았다. 슈베르트의 소나타로 프로그램을 구성한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2.9)는 비교적 덜 알려진 중기 소나타인 13·15·16번을 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광기 어린 폭발적인 타건으로 거인을 만들어 냈다.

뿐또블루(서울시 성동구 소재)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정다슬의 베토벤 ‘발트슈타인 소나타’ 연주(6.21)는 공연으로서의 음악회에 대해 큰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작곡가 배승혜의 기획으로 작가 김윤신과 배우 지현준이 참여한 이 공연은 작곡가가 베토벤의 소나타로부터 받는 감흥을 연극의 포맷으로 서술하며, 200년 전 음악을 지금 만들어진 음악으로 재설정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모놀로그’ 시리즈는 또 다른 미학적 관점을 제시한 무대였다. 정연두의 설치 작품 ‘날의 벽’을 주제로 위촉한 네 명의 한국 작곡가의 독주곡을 초연함으로써, 음악과 미술의 공존이 불러일으키는 ‘조화와 충돌’이라는 고찰의 지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날의 벽’이 전하고자 하는 한인 멕시코 노동자의 삶이 지금으로 옮겨지고, 그들의 경험이 우리의 경험으로 체화됐다.

폴 루이스 ©Kaupo Kikkas

독주회는 큰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전통적인 무대가 많은 편이지만, 대신에 고전음악을 연주하는 전통적인 스타일부터 현대화된 프로그램과 색다른 포맷으로 연출하는 음악회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첼리스트 요요 마도 이번 내한 연주회(11.2)에서는 클래식 음악 연주로서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소품부터 프랑크와 쇼스타코비치의 진지한 소나타까지, 점점 깊어지는 프로그램의 시나리오도 11월 가을의 깊이와 함께 관객들을 첼로 음악의 아름다움과 고전음악의 무게감을 느끼게 했다. 반면에 우리 시대 음악으로 클래식 음악 공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피아니스트 지유경(2.7)은 19세기의 베토벤과 20세기의 베르크, 그리고 21세기의 베리오까지, 세 세기의 피아노 음악을 한 무대에서 선보였다. 과거의 음악에는 자신의 호흡으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최근의 음악은 정확한 연주로 작품이 원하는 최상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독주회는 자신을 보여주는 자리이다. 그런 만큼 예술가로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공연의 수만큼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과 무대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CLASSICAL MUSIC: OPERA

클래식 음악: 오페라

글 손수연(오페라 평론가)

다채롭게 만발한 오페라의 향연

제작 오페라부터 축제까지

‘노르마’ ©예술의전당

올해의 오페라계는 한마디로 백화제방(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고, 서로 다른 많은 학파가 논쟁을 벌인다)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오페라가 공연됐다.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시기를 한꺼번에 떨쳐내려는 듯 올해는 국공립오페라단과 민간오페라단 나눌 것 없이 적극적으로 오페라 제작에 나섰다.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5.4~6.25/예술의전당 외)도 모처럼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올해 페스티벌에 참여한 단체 중 라벨라오페라단은 2015년 ‘안나 볼레나’ 2019년 ‘마리아 스투아르다’ 그리고 올해 ‘로베르토 데브뢰’(5.26~28)까지 한국 초연하며 여왕 3부작을 완성하는 의미 있는 성취를 거뒀다. 내년이면 어느새 15주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회전문처럼 반복되는 선정단체, 안일한 기획 등 몇 가지 문제점에 봉착해 있으나, 쇄신을 통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귀한 오페라 축제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9.6~11.10/대구오페라하우스)는 올해 20주년을 맞이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시작한 축제는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존재감을 인정받는 국제 오페라 축제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대구문화예술진흥원으로의 흡수와 예산 축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유일의 오페라 전문 제작극장으로의 유·무형적 가치가 경제 논리로만 평가되고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1813년 탄생한 동갑내기 작곡가 베르디와 바그너가 올해로 탄생 21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베르디의 오페라는 많이 공연됐지만, 바그너 작품은 거의 공연된 바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국립오페라단은 네 차례의 정기 공연을 모두 베르디 작품으로 채웠다. 국립오페라단이 바그너 오페라를 한 작품 정도 공연했다면, 한국 오페라의 고질적 문제인 레퍼토리 편중 현상이 다소 나아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공립오페라단 중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단체는 서울시오페라단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적은 예산에 코로나19로 더해진 위기 등을 극복하며 건재함을 알리더니 10월, 테너 이용훈(1973~)의 국내 데뷔 오페라 ‘투란도트’(10.26~29)를 화려하게 무대에 올렸다. 화제성 측면에서도 이 작품이 압도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용훈은 한국에서 선보이는 첫 오페라 둘째 날 무대에서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부른 뒤, 계속되는 박수에 앙코르까지 했다.

예술의전당도 오페라를 두 편이나 올렸다. 8월에는 토월극장에서 ‘투란도트’(8.15~20)를, 10월에는 서울시오페라단과 같은 날짜에 ‘노르마’(10.26~29)를 공연했다. ‘투란도트’는 4년 전 공연의 재연이고 ‘노르마’ 역시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의 2016년 프로덕션이라는 점에서 참신함은 떨어졌지만, 예술의전당이 자체 제작 오페라에 관심을 다시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올해 초, 오세훈 서울시장이 노들섬을 글로벌 예술섬으로 새롭게 조성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하며 서울문화재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들섬에서 시민을 위한 야외 오페라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부산오페라하우스도 2026년 개관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오페라 공연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하드웨어와 인프라가 확장되어 가는 느낌이다.

특히, 올해 바리톤 김태한(2000~)과 테너 손지훈(1990~)이 각각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젊은 성악가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큰 두각을 나타냈다. 내년에도 오페라 공연은 왕성할 것이다. 우리 성악가들의 기량이 세계 정상급에 도달하고 있는 만큼, 대한민국 오페라의 질적 향상이 더욱 요구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CLASSICAL MUSIC: RECORD

클래식 음악: 음반

글 이재준(음반 칼럼니스트)

익숙한 명장들이 만든 좋은 레퍼런스

분야별로 꼽아 본 열 개의 음반

올해도 매주 수십 종의 신보들이 쏟아졌다. 내년, 내후년에도 기억될 명반은 몇이나 될까. 최근 추세대로 20세기 이후 작곡된 근현대 음악 비중이 늘고 있지만, 여기선 장르별로 가급적 대중적인 레퍼토리 안에서 꼽아봤다.

이탈리아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가 녹음한 북유럽 거장 닐센의 교향곡 전집 ➊DG은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조합이었다. 그간 저평가되던 루이지의 첫 DG 녹음이자, 이 작곡가의 DG 첫 전집 녹음으로, 정명훈(BIS), 블롬슈테트(EMI), 길버트(Dacapo) 등이 녹음한 디지털 시대 명반을 일거에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준다. 덴마크 국립교향악단이 조형한 4번의 청량감과 5번의 그로테스크한 음률은 마치 드보르자크와 체코 필처럼 필연적인 ‘신토불이’의 조화를 느끼게 한다. 키릴 카라비츠가 지휘한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 ➋Audite 역시 오랜만에 나온 이 작품의 호연이다. 헤비급의 번스타인(DG)보다 중량급 이반 피셔(Philips)에 가까운 해석으로, 디테일에서 조감도까지 정교하며 절정으로 치닫는 작곡가 특유의 진행이 아주 좋다.

한국인이라면, 또 리스트 마니아라면 임윤찬의 밴 클라이번 콩쿠르 실황인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➌Steinway & Sons도 잊지 못할 것이다. 최고 수준의 기교는 물론 이성과 광기의 스펙트럼을 극한으로 확장한 해석은 유튜브에서 익히 들은 바이다. 같은 콩쿠르 우승 경력을 지닌 중국의 장하오천도 공교롭게 같은 작품(BIS)을 녹음했는데, 대륙 제1의 실력파답게 흠결이 없다. 다만 스튜디오 녹음으로 인해, 정갈한 대신 감정의 진폭은 좀 떨어진다. 장하오천은 올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집 ➍BIS도 발매했는데, 피에르 로랑 에마르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집 ➎Pentatone과 함께 협주곡 장르에서 돋보이는 수작이다. 신보마다 호평을 부르는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➏DG은 그의 전작에 실린 라모가 그랬듯, 바로크의 새 비전을 담았다. 느린 악곡은 평균 빠르기로, 빠른 악곡은 굉장한 속주로 표현했다. 음표, 프레이즈마다 완벽한 통제력을 발휘하고 독특한 타건 음향이 결합하면서 낯설지만 금세 익숙해지는 바흐를 빚는다.

성악으로는 멕시코 테너 하비에르 카마레나의 도니체티 아리아집(Pentatone)도 좋았지만, 칠레 태생의 미국 테너 조너선 테틀먼푸치니 아리아집 ➐DG을 먼저 꼽고 싶다. 지중해 풍광의 탁 트인 고음과 본토박이의 아티큘레이션이다. ‘스리 테너’ 이후 수많은 후계자가 명멸했지만 이보다 더 푸치니의 감성에 근접한 이는 없었던 듯하다. 데뷔작인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집(DG)을 능가한다. 카운터테너 마이클 챈스의 대를 이은 아들 알렉산더 챈스의 첫 솔로 앨범 ‘영국 류트 가곡 모음집’ ➑Linn도 특필할 만한데, 눈물이 스며든 고아한 음률은 부친의 명연(Archiv)에 필적한다.

오페라로는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의 푸치니 ‘투란도트’ ➒Warner Classics데이비드 베이츠의 퍼셀 ‘디도와 아이네이아스’ ➓Pentatone를 소개한다. 실황이 대세인 오페라 음반 시장에서 음향이 꽉 찬 스튜디오 녹음이 나와 우선 반갑고, 유명 레퍼토리에서 오랜만에 레퍼런스 수준의 완성도를 지닌 음반이라 설레고 기쁘다. 사조는 크게 다르지만 가수, 합창, 기악 사이의 앙상블과 밸런스가 핵심인 만큼 각각의 요소가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음질도 양쪽 모두 최상급이다.

❶ DG 4863471

❷ Audite AUDITE97761

❸ Steinway & Sons STNS30217

❹ BIS BIS2581

❺ Pentatone PTC5187029

❻ DG 4864553

❼ DG 4864683

❽ Linn CKD711

❾ Warner Classics 5419740659

❿ Pentatone PTC5187032


CLASSICAL MUSIC: COMPETITION

클래식 음악: 콩쿠르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건강한 콩쿠르 세계를 위한 고민들

경연이라는 이름의 ‘모두를 위한 축제’

쇼팽시대악기콩쿠르 ©Narodowy Instytut Fryderyka Chopina 2023

지난 여러 해 동안 피아노·바이올린·첼로 이외 여러 악기 부문에서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값진 성과를 거뒀다. 이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올해도 그 다양성을 한 뼘 더 넓힌 인물들이 특히 주목받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주관하는 경연에서 우승해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4.3~8.6)의 주인공이 된 윤한결(1994~)과 말러 지휘 콩쿠르(7.7~15)의 준결승에 이름을 올린 이승원(1990~)이 그 예다. 한편 홍혜란, 황수미 등을 우승자로 배출하며 소프라노와 특별한 인연을 이어온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5.21~6.3)에서는 한국 남성 성악가 최초로 바리톤 김태한(2000~)이 우승을 거뒀다.

콩쿠르 자체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사례로는 폴란드의 제2회 쇼팽시대악기콩쿠르(10.5~15)가 대표적이다. 쇼팽 협회는 1849년 제작된 에라르사(社)의 피아노를 구매한 이래 시대별 피아노를 수집하고, 시대악기 사본을 개발해 연주 기회를 제공해 왔다. 2018년 첫 대회를 치른 콩쿠르는 더 많은 연주자와 관객이 이 악기를 체험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당대 연주에 관한 관심을 높이는 촉진제로 역할을 해나갈 예정이다.

올해 비올리스트 이해수(1999~)가 2위 없는 1위로 독보적인 우승을 차지한 독일 뮌헨의 ARD 콩쿠르(8.28~9.15)는 다른 이유로 화제였다. 바이에른 방송국(BR)이 주관하는 독일 최대 규모의 콩쿠르가 지속된 예산 삭감, 불안정한 방송 수신료 등으로 축소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매해 4개 악기 부문으로 개최되던 콩쿠르는 이후 3개 부문으로 축소될 예정이며, 개최 주기도 2년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한편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가 콩쿠르계로도 이어졌다. 팬데믹은 온라인 경연의 불씨를 지폈는데, 직접 경연장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콩쿠르 참가비를 노린 가짜 온라인 콩쿠르들이 성행했다. 이에 따라 세계국제콩쿠르연맹(WFIMC)은 이런 가짜 온라인 콩쿠르의 참가 유도에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여러 콩쿠르가 러시아·벨라루스 출신 연주자들의 참가 금지조치를 취했는가 하면,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개최되던 호로비츠 콩쿠르(4.13~21)는 올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기도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연주자가 음악을 매개로 만난 현장은, 국적을 이유로 연주자 개개인에 차별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콩쿠르 참가자의 국적 표기 자체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적은 대부분의 콩쿠르 내내 연주자를 따라다닌다. 참가자 리스트뿐만 아니라, 연주 시작과 끝에 이름과 함께 소개된다. 올해 이탈리아의 부소니 콩쿠르(8.23~9.3)는 참가자 국적을 소개하지 않고 진행됐다. 콩쿠르 예술감독 피터 폴 카인라트(1964~)는 “미국 여권을 소지하고, 독일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연주자가 이탈리아 콩쿠르에 참여하는 시대에, 국적을 표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반문하며 “콩쿠르의 탈민족주의를 향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20세기 중후반 문화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 콩쿠르는 세계인의 축제로, 그리고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네트워킹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콩쿠르의 진정한 세계화에 대한 논의와 실천은 밝아오는 해에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CLASSICAL MUSIC: BOOK

클래식 음악: 서적

글 김강민 기자

책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

음악 애호가들에게 권하는 열다섯 권의 책

올해도 어김없이 많은 책이 출간됐다.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책을 이곳저곳에 쌓아두어야 했을 정도였다. 한 권씩 읽을 때는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특징들이 1년간 열심히 쌓아둔 ‘책 탑’들을 살펴보니 선명히 드러났다. 장벽을 낮추고 쉽게 쓰인 입문서부터 우리가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진심을 담아 써내려 간 에세이까지, 한 해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예술 서적들을 골라보았다.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책은 입문서로, 저자가 독자를 음악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큐레이션’이었다. 큐레이션의 테마는 다양했다. 일하며 듣기 좋은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전은경) ➊과 아침을 활기차게 열어주는 ‘조희창의 하루 클래식 365’(조희창)처럼 순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소개하기도 했고, 미술과 음악을 조화시킨 ‘미술관에 간 클래식’(박소현) ➋, 음악에 철학을 더한 ‘철학자의 음악서재, C#’(최대환)처럼 서로 다른 분야를 엮어 풀어내기도 했다. 저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감상 노하우와 친절한 해설을 책에 듬뿍 담아내면서, 음악 초심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입문서와 더불어,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혀주는 책도 여럿 출판됐다. 눈길을 끈 책은 고대·중세·현대로 구분하지 않고 음악이 일으킨 혁명으로 음악사를 설명하는 ‘음악의 시대’(테드 지오지아)와 예술가의 창작 과정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소개하는 ‘예술가의 해법’(에이미 E. 허먼)이다. 특히 ‘우정의 언어 예술’(공윤지) ➌은 ‘기후 위기 시대 예술로 공존하기’라는 부제답게, 환경을 고려해 인쇄·제작되어 특별함을 남겼다.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내가 슈즈를 신은 이유’), 안무가 김윤정(‘펜으로 쓰는 춤’), 지휘자 김성진(‘경계에 서’) 등 여러 아티스트들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 예술과 한 뼘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이들은 피아니스트로,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백혜선)➍, ‘아르헤리치의 말’(마르타 아르헤리치·올리비에 벨라미) ➎, ‘안드라스 쉬프’(언드라스 시프) ➏에는 자신이 보낸 고민과 시련의 시간들까지도 진솔하게 담아내 독자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했다. 무대 위에서만 만나던 아티스트를 책으로 만날 때 느껴지는 반가움은 덤이다.

올해가 바그너·베르디 탄생 210주년이자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이었던 만큼 서점에서 이들을 많이 만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의외로 자주 마주친 작곡가는 바흐였다. 바흐는 여러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호퍼의 빛과 바흐의 사막’(김희경)과 같은 입문서로, 때로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안내서’(스티븐 이설리스) ➐ ‘마태수난곡’(이소야마 타다시) ➑처럼 바흐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저자가 5년에 걸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배운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 ‘피아노로 돌아가다’(필립 케니콧) ➒도 눈여겨 볼만했다. 그렇지만 가장 반가웠던 바흐 서적은 역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알베르트 슈바이처) ➓다. 출간된 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 책이 드디어 우리말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바흐의 삶부터 작품 연주법과 미학적 논의까지 모두 담겨, 1,344쪽이라는 방대한 페이지 수만큼 바흐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THEATER

연극

글 배선애(연극 평론가)

불안한 시대에 대한 연극의 대답

본격적 ‘코로나 이후’, 몇 가지의 양상들

‘라스트세션’ ©파크컴퍼니

2023년 연극계는 재난 이후, 엄밀하게는 ‘코로나 이후’로 정리할 수 있다. 팬데믹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 지속됐다. 연극인들은 연극이 멈춰 있는 동안 자신의 질문으로 침잠했고, 당면한 재난을 어떻게 연극적으로 말해야할지를 고민했으며, 존재 이유에 대해 자문했다. 올해 연극계에 나타난 ‘코로나 이후’의 여러 양상은 이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이다.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불안한 미래’, 둘째는 젠더와 노동 이슈의 확장, 셋째는 고전 작품·원로의 귀환이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불안한 미래’다. 코로나로 현실은 비대면이 되었지만, 기술적으로는 오히려 공간적·거리적 경계를 허물었다. 기술의 발달과 그것에 반하는 재난 상황, 두 가지 모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수렴되었다. 근미래를 다룬 SF 작품들이 대거 공연되었으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이 많았고 이들은 대체로 디스토피아의 정서를 담았다. ‘노스체’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 ‘[Bae]; Before Anyone Else 어느 누구보다 먼저’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어부의 핵’ ‘지상의 여인들’ ‘뉴클리어 패밀리’ ‘멋진 신세계’ ‘지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젠더와 노동 이슈는 내용과 형식이 모두 확장된 양상이다. 젠더의 경우, 페미니즘은 물론 돌봄과 세대 등으로 영역을 넓혔으며, 이슈 파이팅에 머물지 않고 연극적 만듦새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작가와 작품도 소개했다. ‘장녀들’ ‘히어’ ‘정희정’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오르막길의 평화맨션’ ‘어느날 와르르’ ‘댄스네이션’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열녀를 위한 장례식’ 등이다. 노동의 경우, 다채로운 방법으로 연극화했다. 현실적 문제인 산업 재해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고, 사무 노동자의 현실을 블랙 코미디로 보여주기도 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특정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조망하기도 했다. 다채로운 접근이 노동 자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냈다. ‘발목’ ‘산재일기’ ‘번아웃에 관한 농담’ ‘고쳐서 나가는 곳’ 등이다.

고전 작품·원로의 귀환은 “연극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 중 하나다. 근원에 대한 탐색을 통해 현재의 고민에 답을 찾으려는 태도인데, 올해 ‘겟팅아웃’에서 ‘콜렉션’에 이르기까지 서울시극단의 행보 자체가 고전의 귀환이었다. 국립극단도 ‘벚꽃동산’을 통해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갈매기’ ‘오셀로’ ‘맥베스’ 등도 중대형 극장에서 공연됐다. 인상적인 것은 고전 그대로를 공연하기보다 현대적 감수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들이었다. ‘말광량이? 길들이기’ ‘고추장수 서일록씨의 잔혹한 하룻밤’ 등 셰익스피어 작품의 번안과 각색이 특히 돋보였다. 연극계 원로들 또한 고전 작품만큼이나 존재감을 보여주었는데, 연출가 김우옥·손진책, 배우 이순재·신구·박근형·박정자 등이 ‘리어왕’ ‘라스트 세션’ ‘세일즈맨의 죽음’ ‘고도를 기다리며’ 등에서 건재함을 증명했다.

이외에 청년들의 불안한 현실을 보여준 ‘EXIT:출구는 저쪽입니다’ ‘위시리스트’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 전쟁을 다룬 ‘나무 위의 군대’ ‘몬순’ 등도 화제가 되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문삼화 연출, 이하 괄호는 연출가명), ‘싸움의 기술, 졸’(김풍년),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이철희), ‘어부의 핵’(장한새), ‘고쳐서 나가는 곳’(박주영), ‘림보’(이태린) 등의 연출가들이 주목받았고, ‘오르막길의 평화맨션’ ‘몬순’ 등에 출연한 권은혜 배우의 팔색조 매력이 돋보였다.


MUSICAL

뮤지컬

글 박병성(뮤지컬 평론가)

대작과 함께 돌아온, 강자의 화려한 귀환

K-컬처의 주역이 된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Manuel Harlan

올해 공연계는 팬데믹 이후 온전한 한해를 맞은 첫해였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뮤지컬 시장은 코로나 이후 빠른 회복세를 넘어 지난해 역대 처음으로 4천억 원대 시장을 기록했다. 올해 뮤지컬 시장은 5천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등 대형 라이선스 작품들이 좋은 성적을 올렸고, ‘캣츠’ ‘시카고’ ‘식스 더 뮤지컬’ ‘시스터 액트’ 등 내한 작품들도 활발히 공연되며 뮤지컬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일조했다.

해외 뮤지컬의 내한과 함께 우리 뮤지컬의 해외 진출도 많아졌다. 아직은 중국·일본·대만 등 아시아권에 한정된 성과이긴 하지만, 엔데믹에 접어들며 세계 공연 시장이 활기를 띠는 것과 함께 해외 진출작도 급격히 늘어났다. 드라마·영화·K팝 등 K-컬처의 인기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도 있지만, 아시아권에서 한국의 뮤지컬 제작력이 가장 뛰어나고, 제작되는 작품 수도 많은 편이다. 한해 제작되는 뮤지컬 작품 수로만 따진다면 한국이 전 세계 1위일 것이다.

팬데믹 이전부터 다년간 누적된 작품 중 우수 작품들이 아시아권에 진출해 왔는데, 특히 올해는 ‘마리 퀴리’ ‘전설의 리틀 농구단’ ‘비더슈탄트’ ‘엑스칼리버’ ‘베토벤’ 등 8편가량이 일본에 라이선스 수출되었고, 중국에는 ‘팬레터’ ‘도리안 그레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 ‘더 캐슬’ 등 10여 편이 진출하며 역대 최고의 해외 진출 성적을 거두었다. 일본·중국 이외에도 대만에 3편이 진출했고, 국가의 지원 프로그램에 힘입어 영미권 시장에서 쇼케이스를 선보이는 등 세계 시장 진출에 획기적인 성과를 올린 해이다.

올해 가장 기대를 모았던 작품은 13년 만에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2001년, 2009년 이후 세 번째로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이다. 공연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써왔던 만큼,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작품의 명성에 비하면 완판 정도는 아니었지만, 배우 조승우의 출연 회차는 티켓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시간에 매진되었고, 부산·서울 공연 모두 좋은 매출액을 기록했다. 1986년 초연한 작품이 현재 한국 관객들에게 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으나, 아름다운 음악과 지금의 기술로도 놀라운 무대 메커니즘 그리고 매력적인 이야기와 감동적인 넘버가 관객을 매료시켰다.

올해는 1980년대 뮤지컬 ‘빅4’ 네 편 중 ‘미스 사이공’을 제외한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 세 편이 모두 공연된 해이다. 고전과 더불어 현재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최신 히트작 ‘식스 더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도 선보였다. 창작 뮤지컬 중에는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오랜 시간 공들여 제작한 대형 뮤지컬 ‘베토벤’이 소개되었으나 기대만큼의 작품성을 올리지는 못했다.

올해 뮤지컬 분야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배우는 단연 최재림(1985~)이다. 올해는 ‘최재림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전히 A급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능력을 인정받은 배우였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몇 해 되지 않았다. 2021년 ‘시카고’의 복화술 영상으로 대중에게 주목받았다. 특히 2022년 ‘킹키부츠’ 롤라와 ‘마틸다’의 미스 트런치불 교장 역 등 개성 강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내며 자신의 가치를 한 단계 높였다. 올해는 모든 배우의 꿈의 배역인 ‘오페라의 유령’ 팬텀과 ‘레미제라블’ 장발장 역에 캐스팅되었고, 드라마의 주연배우로도 출연하며 공연 관객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DANCE

무용

글 장광열(춤 비평가)

전 세계로 확장되는 춤판

새로운 춤축제와 제작 무대가 풍성했던 나날

네덜란드 댄스시어터 II ©국립극장

올해는 예년에 비해 춤 공연이 전국적으로 늘어났다. 문화재단의 청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지역문화재단의 자체 기획 시도, 전문 공연장을 탈피한 공연장소의 다변화, 국제 춤 축제의 지역 개최, 장소-특정성 공연의 증가 등을 그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문화부의 ‘창·제작 유통 지원’ 사업도 지역 춤 공연 활성화에 기여했다. 특히 전통춤 공연의 양적 확장이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두드러졌다. 전통춤 공공 예술 단체와 중요무형문화재 관련 단체의 공연에 더해 전통춤 축제 프로그램의 다양화, 전통춤 전용 공연장과 연계한 기획공연의 증가가 확장을 주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주요 공연을 살펴보자.

국립국악원이 주최한 조선춤방 ‘일이관지’(10.17~ 19·24~26)는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에서 탈피한 대한민국 전통춤의 맥 짚기(총 17개 프로그램) 작업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룬 광주시립발레단의 ‘Divine’(7.14·15/주재만 안무)은 선명한 주제 의식과 미장센으로 호평을 받았다.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20주년 기념 무대에서 선보인 취리히 발레의 무용수 임수정의 14년 만의 귀국 공연 작품은 댄서의 빼어난 작품 해석력으로, 34명의 댄서들이 출연한 김용걸 안무작은 음악과 매치된 스펙터클한 춤 조합력으로 좋은 공연을 만들어 냈다.

강요찬 안무의 ‘구조와 의식’(10.19)은 다양한 안무 기법이 눈에 띄었다. 그룹 ‘시나브로가슴에’와 권혁 안무의 ‘Earthing’(10.6~8), 춤판 야무와 안무·연출 금배섭의 ‘닮아 가는’(9.27)은 댄서들의 집요한 움직임 탐구가 돋보였다. 이주민들과 지역민들의 삶을 대사·영상과 전시 등과 연계한 박수영의 ‘Map Project in Hwaseong’(11.2~4), 영남춤축제에서 공연된 봉산탈춤의 사자춤을 소재로 한 알티밋무용단과 한정미 안무의 ‘사자’(8.5)도 꼽을만한 무대였다.

해외 단체의 내한 공연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선보인 곡예적인 움직임과 휴머니즘이 결합된 라시드 우람단(10.6·7), 모다페(MODAFE/국제현대무용제)에서 공연된 네덜란드 댄스시어터 II(9.23~29), 인발 핀토(10.8), 호페쉬 섹터(10.14·15)가 주목을 끌었다. 파리 오페라 발레의 ‘지젤’(3.3~11),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잉크’(5.12~14), 몬테카를로 발레의 장 크리스트프 마이요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10.7~15), 다나카 민의 유목적인 춤 여정을 다룬 이누도 잇신 감독의 댄스 필름 ‘이름 없는 춤’도 화제였다.

소식 중에서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 강미선의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여성무용수상 수상, 서울시발레단 창단, 서울문화재단이 마련한 노들섬 ‘백조의 호수’ 야외공연, 석촌호수 수변무대에서의 서울발레페스티벌 개최,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의 4회 연임(2014년 취임), 국립현대무용단 김성용 예술감독 선임이 화제였다. 무용의 불모지로 불리던 제주에서의 국제무용제 출범도 주목을 끌었는데, 제주토속민요와 제주 만만 춤, 길 위에서의 춤 등 제주의 자연과 연계한 프로그래밍으로 여타 축제와의 차별성을 살려냈다.

국내 아티스트와 단체의 해외 활동도 눈여겨볼 만하다. 안무가 김재덕이 루체른시립무용단을 위해 ‘JE_UI 제의’를, 김보람이 가극단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타트팔라스트에서 ‘falling in love’를 안무했다. 모두 신작이다. 국립발레단 ‘해적’(스위스·독일), 서울시무용단 ‘일무’(미국), 모던테이블 ‘속도’(이탈리아), 아트프로젝트보라 ‘별양’(영국)과 ‘소무’(브라질),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프랑스)와 ‘인간의리듬’(영국)이 있었다. 프로듀서 박신애가 기획하여 11월 파리에서 진행된 국제춤축제 숨(SOUM)에는 안무가 김수정, 표상만, 안겸 등이 참여했다.

올해는 ‘즉흥’이 무용예술의 한 장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만큼 활발하게 이루어진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국제즉흥축제를 필두로 제주·부산·원주에서 즉흥춤 축제가 열렸고, 전문 공연장뿐만 아니라 미술관, 지역 곳곳의 야외 공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무용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늘어난 점도 주목할 만했다. 배리어프리, 장애인 춤, 무용 치유, 그리고 일반인들이 직접 공연에 참여하는 커뮤니티댄스 공연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2024년에도 무용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정착된 우수 작품의 공연이 더욱 확장될 것으로 전망한다.


TRADITIONAL MUSIC

전통음악

글 윤중강(음악 평론가)

세련되고 진지하게 전하는 국악의 매력

전통의 격조에 동시대적 의미까지 담아내다

‘가야금 동해안별신굿’ ©서울돈화문국악당

2023년 최고의 연주자는 이지영(가야금)이다. 동해안별신굿을 가야금으로 옮긴다는 건 쉽지 않았지만, 이지영은 ‘가야금 동해안별신굿’(9.14) 공연을 통해 소리와 춤과 가야금을 아울러 품격있게 만들어 냈다. 고제(古制) 산조의 묵직한 기품을 잘 연주한 두 명의 연주자, 박세연(가야금)과 이필기(대금)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박세연은 거문고 명인 신쾌동(1910~1977)이 만든 가야금산조를 가져와, 공연 ‘신쾌동의 가야금’(9.2)을 선보였다. 박세연은 이 산조 특유의 흐름과 성음을 잘 살려내며, 고제 산조의 재현은 가락을 그대로 타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이필기의 ‘강백천류 대금산조’(3.28) 무대는 마치 고전영화를 리마스터링한 필름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의 연주는 오래된 산조로서의 격조뿐 아니라, 이 산조에 내재한 매력을 현대적으로 만들어 내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올해 연희 분야에서는 탈춤공연과 인형극 공연이 좋았다. 특히 탈을 중심에 둔 전통인형극단체 ‘연희공방 음마갱깽’은 국악 또는 연희의 범주를 넘어서서 대한민국의 주요 극장과 축제가 사랑하는 단체로 크게 성장했다. 음마갱깽은 ‘절 대목(大木)’(2.3~5) ‘연희도깨비’(6.10~11.4) ‘괴물도감’(7.29·30), 세 작품을 모두 히트시키며 가장 바쁘게 한 해를 보낸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재미있는 공연과 그 안에 존재하는 ‘전통연희의 동시대성’에 대한 이들만의 논리와 방법은 음마갱깽 공연의 최대 장점이다. 이들에 의해 극장과 축제가 빛났다.

국악관현악은 1965년에 시작되어, 60년의 역사를 앞두고 있다. 이 시점에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축제(10.10~21)는 국악관현악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어주면서,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성국(1971~)과 원일(1967~)이 각각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보여준 예술감독으로서의 역량도 돋보였다. 국악계 젊은 지휘자의 실력을 확인시켜 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시나위, 춤 그리고 씻김’(9.23)은 판소리와 산조에 비해 덜 알려진 시나위의 가치와 매력을 무대에서 유감없이 들려주었다. 이태백(아쟁)을 음악감독으로, 지순자(가야금)·이용구(대금)·김태영(장구) 등 신구세대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한편, 올해 국악 공연의 트렌드는 ‘굿’이었다. 성악·기악·연희 분야에서 굿을 다루는 방식이 다채로워진 한 해였다. 굿이 예술 간의 경계를 없애고, 아티스트의 자유로운 창작에 바탕이 된다는 생각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해마다 굿을 주제로 시리즈 공연을 선보이는 기업 ‘예술숲’은 지난해 ‘상가(喪家)에서의 하룻밤’(22.12.3)에 이어, 올해 ‘동간네’(11.12)라는 제목으로 세 개의 굿판(동해안별신굿·남해안별신굿·진도씻김굿)을 한 무대에 올렸다. 굿 공연이 점차 세련되어지고 진지해지면서, 한국만의 고유한 공연 양식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기분이 든다.

내년의 트렌드는 ‘산조’가 되리라 예상한다. 그간 국악계는 퓨전, 현대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그러나 ‘전통음악의 결정체’라고 부를 수 있으며, 동시에 아티스트의 진정성과 역량을 가장 잘 부각할 수 있는 작품으로는 산조만 한 것이 없다는 인식이 더욱 뿌리내릴 것으로 보인다.


BEHIND STORY

취재 수첩

기자들의 못다 한 이야기

‘객석’ 한 권을 마무리할 때마다 기자들의 취재 수첩에는 못다 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공연 뒷이야기부터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인터뷰 답변까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여러 이유로 지면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를 모았다.

 

허서현

쓰기만 하면 흥행 보증, 그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

기자 연주 시작 전에는 어떤 생각을 하나요. 연주해야 할 곡의 첫 마디? 아니면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의 시각적 이미지?

윤찬 곡마다 아예 달라요. 하지만 푸르트벵글러가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연주하기 직전에 사람의 마음에 집중된 열정을 불태웠던 것처럼, 연주 전에 항상 그 곡에 맞는 이미지를 떠올린 다음 완전히 분위기를 흡수한 후 연주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떨 때는 그냥 앉자마자 피아노를 치기도 하지만요.

(+) 당시 기사에 공개됐던 ‘최근 읽고 있는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지만, 실제 답변엔 한 권이 더 있었다. J. 호로비츠의 ‘아라우와의 대화(Conversations with Arrau)’.

#5월 호 #피아니스트 임윤찬

 

홍예원

자, 이제 누가 한국인이지?

가을비로 젖어가는 10월의 어느 저녁, 편집부 기자들은 모두 오페라 ‘노르마’를 보러 서초동으로 떠나고, 홀로 타로의 연주를 듣기 위해 신촌으로 향했다. 화려하고도 섬세한 프렌치 레퍼토리의 연주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공연이 끝난 후 로비는 타로의 사인을 받기 위한 이들로 가득 찼다. 여러 차례의 커튼콜과 앙코르로 예상했던 귀가 시간은 한참 지났고, 길게 늘어선 줄에 피로가 몰려왔지만

귓가에 아른거리는 ‘라 발스’ 선율에 못 이기는 척 사인 대열에 합류했다. 어느덧 내 앞에 있는 그와 지난 인터뷰 기사에 대해 영어로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용기를 내어 할 수 있는 유일한 프랑스어를 건넸다. “Merci!” 그리고 돌아온 익숙한 언어의 대답 “감사합니다!” 어라? 이 억양 너무 자연스러운데… 자, 이제 누가 한국인이지?

#10월 호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

 

이의정

의외의 취미

인터뷰 도입 인사를 위해 한국에서의 여행 일정이나 취미를 질문했는데, 답변에서 이른바 ‘내적 친밀감’이 넘쳐흘렀다.

“여행에서는 잘 먹고, 잘 자야겠죠? 저 잡채 좋아해요! 아, 그리고 제가 비디오 게임을 조금 좋아해요. 요즘은 ‘할로우 나이트’의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고 있어요.”

#7월 호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허서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공연이 취소될 수 ‘없습니다’!

2020년부터 모든 공연은 ‘불확실’했다. 몇몇 지면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공연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 매달 마감 때마다 “이 문구, 이제 지워도 될까요?”를 여러 번 논의했다. 이제는, 이번 해에는, 이번 달에는 이 문구로부터 모두가 자유로워지길 희망하며. 그렇게 4월, 드디어 이 문구를 지워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우리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4월 호 #MUST GO

 

이의정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른 좋은 예

축제 전 셋이 합쳐 완창 판소리 경험 0의 세 기자(이·홍·김)가 뭉쳤다! 이 기자들은 과연 완창 판소리를 끝까지 들을 수 있을까?

축제 후 (중얼중얼) “인터뷰 해야 해요” “리뷰 써야 해요” “이건 세상에 없는 공연이에요” “올해 최고의 공연” “자극 없이 지루한 일상, 완창 판소리 들으면 타파 가능” 다들 완창 판소리 들으세요!

#9·11월 호 #전주세계소리축제

 

허서현

현장이 주는 힘

체코 출장을 앞두고, 사전 답사를 하며 구글의 생생한 ‘스트릿 뷰’ 기술에 놀랐다. ‘이 정도면 이젠 굳이 가지 않아도 방구석 여행 충분한데?’라는 생각으로 오른 체코행 비행기였지만, 섣부른 생각이었다. 음식과 사람들, 역사로 새긴 극장 구석구석의 조각들, 내 손으로 직접 연주해 본 스메타나와 야나체크의 피아노, 그 모든 순간은 분명 한국에선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지식이었다. 낮에는 트립을, 밤에는 마감을 하는 살인적인 일정 속에 코로나까지 걸려 정말 힘들었지만, 코로나에 또 걸리더라도(!) 이런 현장은 놓치지 않고 싶다는 열정을 불태웠던 시간. 아직 게재되지 못한 나머지 트립 이야기들은 2024년에 곧 기사로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길. Czech is Coming Soon!

#7월 호 #체코 미디어 트립

 

김강민

나도 재주를 키워야겠다!

더하우스콘서트의 무대에는 기성 연주자뿐 아니라, 학생 시절의 김선욱·조성진 등 아직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도 많이 올랐다.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는 방법을 묻자 “제가 좋은 연주자를 발견하는 재주가 있나 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허허. 그의 소탈한 웃음은 덤이었다. 나도 재주를 키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정성스럽게 글에 담겠다고 다짐하며 11월 호를 준비했다.

#11월 호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

 

홍예원

강아지도 양인모는 못 참지

기자 새로 촬영한 프로필 사진에 등장하는 강아지가 무척 귀여워요.

인모 사진작가의 집에서 촬영을 하는데, 강아지가 자꾸 제 앞에 와서 앉더라고요. 촬영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귀여운 강아지였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귀여운 강아지 사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꽤 친해 보이는 모습에 키우는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사진작가의 반려견이란다. 저 작고 포슬포슬한 강아지도 양인모를 알아보는구나. 역시, 강아지 청력이 사람보다 16배 좋다더니…

#10월 호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이의정

답변지가 어딨죠? ‘빛’뿐인데요.

기부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는 이혁에게 목적과 과정에 관해 이런저런 질문을 적어 보냈는데, 답변지에서 아름다운 빛이 나서 읽을 수가 없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때 병원에서 힘든 치료를 이어가는 어린이에게 세상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 공연 경비를 최대한 절감해서 조금이라도 기부 금액을 더 늘려보고자 백방으로 애써주신 많은 분의 수고가 있기에 가능했죠. 모두 감사드려요!”

세상에, 날개 없는 천사가 피아노를 쳐요!

#1월 호 #피아니스트 이혁

 

김강민

영영 잊을 수 없는 11월

그리고 11월 호가 출간되고 얼마 되지 않아, 파이퍼 출판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저희 책을 마음 가득 담아 소개해 주신 글도 감사히 읽었습니다. 막 출발하는 저희 팀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짧은 편지를 읽으며, 이 순간을 영영 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 마음 잊지 않고, ‘숨겨진 보물’ 같은 이야기를 찾아 마음을 다해 글을 쓰겠습니다!

#11월 호 #신간 #마법 같은 뮤지컬 생활 안내서


MEMORY

정리 김강민 기자

2023 ‘객석’에 실린 12개의 커버스토리 & 특집기사

올해엔 이런 일이!

매달 종횡무진 활약한 아티스트와 공연계를 뜨겁게 다룬 이슈들이 있었기에 2023년에도 ‘객석’이 풍성했다. 올 한 해 공연예술계의 시간을 되짚어보며, 열두 권에 담긴 특별한 이야기들을 추려보았다.

 

2023.01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 기부·서커스·환경 등 키워드 12개로 2023년 공연예술 트렌드 완벽 예측하기

– 신드롬의 주인공 조성진과 임윤찬, 두 피아니스트의 활동 비교

 

2023.02

피아니스트 박재홍·브루스 류

– 빨간색 볼펜 준비! 올 한해 공연을 살펴보며, 누구보다 빠르게 공연을 예매할 기회

– 작곡가의 사랑스러운 뮤즈, 개와 고양이, 반려동물이 꼽은 최고의 음악은?

 

2023.03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견을 깨다, 청중의 마음을 뒤흔든 현대음악 살펴보기

– 여성 중심 서사의 클래식 음악·뮤지컬·창극, 무대 전면에 나선 여성이 선사하는 감동

 

2023.04

통영국제음악제·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 미사와 예배, 그리고 음악. 종교를 넘어 문화유산으로 전승되는 예수의 ‘부활’

– 안녕, 인공지능(AI)! AI가 작품 창작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 AI 작곡가와 편곡 악보에 대해 알려줄래?

 

2023.05

#‘신드롬’의 내면을 듣다 #피아노로 탐험하는 우주

피아니스트 임윤찬

– 잊고 있던 동심을 찾아 떠나는 여행 어린이날, 어린이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

– 개교 70주년을 맞은 서울예술고등학교, 빛나는 예술가가 되어 세계무대를 누비는 졸업생은 누구?

 

2023.06

에머슨 콰르텟

–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는 예술이 전쟁과 인류의 고난을 표현하는 방법

– 3명의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송지원·윤소영. 그들이 음악에 담아낸 정체성·문학·기술을 듣다

 

2023.07

창단 50주년을 맞은 국립합창단

– 한 편의 소설은 어떻게 공연으로 재탄생했을까? 공연이 된 소설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외

– 객석 기자의 체코 여행기, 프라하부터 스메타나(1824~1884)의 고향 리토미슐까지!

 

2023.08

#진화하는 예술가 #폭발하는 흥겨움!

클라리네스트·지휘자 안드레아스 오텐잠머

–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뭉쳤다. 축제에 의한, 축제를 위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열린 ‘한국 주간’.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들을 살펴 볼 시간!

 

2023.09

소프라노 여지원

– 스승과 제자가 함께 완성하는 특별한 ‘완창 판소리’, 소리꾼이 경지에 오르는 순간을 엿볼 기회!

–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까지 재즈가 된다. 한국 재즈의 역사부터 운치와 즐거움이 가득한 재즈 페스티벌 현장까지.

 

2023.10

#오보에의 매력 파헤치기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 테츨라프부터 클라라 주미 강까지, 유명 오케스트라가 선택한 협연자들

– 한강에서 오페라를 노래하고, 트럭 위에서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고?

 

2023.11

작곡가 히사이시 조·탄둔

– 유수의 공연장·차세대 음악가·교육현장으로 살펴보는 중국 공연예술의 현재와 미래

– 누가 ‘고(古)음악’이 지루하다 했는가? 시대악기 살펴보며 힙(H.I.P.)음악 힙하게 즐기기

 

2023.12

지휘자 이승원

– 예술의 온도는 과연 몇 도? 예술이 연말을 훈훈하게 만드는 방법

– 관악기 연주자 모두모두 모여라! 청소년과 대학생을 위한 관악 오디션 즐기기


SUPPORTERS’s PICK

서포터즈가 뽑은 올해의 기사

‘객석’, 새 변화를 품은 예술계 현장을 담다

‘객석’ 서포터즈 6기는 예술을 사랑하는 대학생·대학원생으로 구성됐다. ‘객석’ 편집부의 취재를 보조하고, 함께 글을 쓴다.

 

삶이 극이라면 주연은 항상 ‘나’

9월 호│커버스토리 ‘소프라노 여지원’

작년 ‘객석’ 서포터즈 면접을 봤던 날이 생각나는 날씨다. 한껏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 건물에 들어서던 1년 전의 나는, 당시 여러 문제를 마주하고 있었다. 예술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품었던 강한 사랑과 확신이 사그라들고, 하고 싶은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마음에 괜히 조급해지던 시기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으로 객석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온라인 기사 정리를 담당했던 올해 9월 호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은 소프라노 여지원이었다. ‘인생의 조연에서, 오페라의 주역으로’라는 그 제목처럼, 무명이었던 시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던 그는 차근차근 세계적인 오페라 주역의 위치까지 올랐다. 그의 삶이 가슴에 박혀왔다. 주역의 자리를 쟁취해 낸 그의 성취보다 그가 밟아본 치열한 삶의 가치에 주목하게 됐다. 단 한 번도 그는 인생의 주연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덧 객석과 함께한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새로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있으며, 여전히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는 조급함은 사라져간다. 1년 동안 나는 이렇게 차차 성장했다. 한 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히 실현한 모습이 아닌, 오늘과 내일의 작은 목표를 하나둘 이뤄가는 모습으로 말이다. 조금 더딜지라도 먼 훗날, 참 찬란한 시간이었음을 돌아볼 수 있는 2024년을 꿈꾸며, 이만 마지막 에세이를 줄여본다.

구다은 예술이 만연하길 꿈꾸다

 

마음으로 하는 음악, 마음으로 듣는 음악

8월 호│인터뷰 ‘한빛예술단 원장 천성애·하트-하트재단 회장 오지철’

지난달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3’이란 전시회에 다녀왔다. 전시회장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질 수 있는 문화재 모형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축소된 성덕대왕신종 모형을 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듯했다. 시각장애인의 처지에서 문화재를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재고해 본 적이 있었던가? 전시를 관람하면서 장애인에 의한 또는 장애인을 위한 음악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머릿속 물음표에 마침표라도 찍듯이, 불현듯 생각난 객석의 기사는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인 한빛예술단의 천성애 원장과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인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속한 하트-하트재단의 오지철 회장의 인터뷰 기사였다. 그중 한빛예술단 단원들의 특징과 연습 과정을 설명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다수의 단원이 절대음감을 가졌고, 일반 오케스트라보다 연습 시간이 배로 든다고 하니, 여느 공연 정보를 읽었을 때보다 더 그들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 궁금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의 범위를 고려했을 때, 이를 뒷받침할 제도나 현실에 대해서는 분명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두 오케스트라 수장의 인터뷰를 읽으며 존경심이 들었고 희망을 느꼈다. 두 수장 모두 오케스트라 운영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의 직업 창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예술이 만들어 내는 선순환을 알게 됐고, 내가 모르던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는 걸 느꼈다.

나혜원 음악으로 세상을 봅니다

 

인간과 나란히 설 AI를 기대하며

4월 호│특집 ‘AI와 음악’

아직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던 인공지능은 어느 날 갑자기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들어와 당연한 것이 돼버렸다. 초기엔 사람의 일자리는 단순한 반복에 가까운 일부터 점차 대체되고 창작자들의 일자리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실제로 그런 듯 보였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은 그럴듯한 소설을 써 내려가게 했고, 몇 가지 핵심어만 있으면 필요한 일러스트를 1분 내로 만들게 했다. 그중 음악은 딥러닝에 있어서 표절 문제가 불가피하니 아직 인공지능의 영역에서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몰랐을 뿐 이미 너무나도 가까이에 와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단 1분 만에 새롭고도 완성도 있는 음악을 제작하는 AI 작곡가 이봄(EvoM)은 GIST 안창욱 교수가 개발한 것이다. 이봄은 기존의 작품을 학습하는 딥러닝과 달리 무작위적인 음을 뿌려 재조합을 거듭하여 중급자 이상의 음악으로 진화시키는 방식으로 작곡한다. 나는 과거의 음악가가 작곡한 클래식 음악에 시선을 두고 있었는데, 이 기사를 접한 후 앞으로 만나게 될 미래의 음악이 보다 궁금해졌다.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음악과 공연은 늘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림을 남겼다.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활동함에 따라 기존의 음악과 다른 영역을 만들어 갈 인공지능의 음악, 그리고 그들이 줄 감동이 어떨지 기대된다.

손율이 콘텐츠 위를 유영하는 나룻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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