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진은숙, 모든 명성 위엔 좋은 작품만이 남는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2월 26일 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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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수상한 작곡가 진은숙

모든 명성 위엔 좋은 작품만이 남는다

 

음악제의 틀을 잡고, 새 작품을 준비하는 진은숙의 ‘현재’는 예술의 ‘미래’를 그리는 시간이다

 

진은숙의 행진은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아니, 딱 한 번 있었다. 바로 1985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만났던 스승 리게티(1923~)가 작품의 독창성에 관한 혹평을 내리자, 단 한 곡도 쓰지 못한 3년이 있었다. 그러나 스승의 “네 언어를 찾으라”라는 말을 이해하고 일어서자, 그의 할 일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4년에 음악출판사 ‘부지 앤 호크스(Boosey&Hawkes)’는 아직 미지수인 동양의 젊은 작곡가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 1999년 사이먼 래틀은 그를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 2004년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그로마이어상을 받았고, 2005년 쇤베르크상, 2007년 하이델베르크 여성예술가상, 2010년 피에르공 작곡상, 2012년 호암상, 2017년 비후리 시벨리우스상, 2018년 뉴욕필 크라비스 음악상, 2019년 바흐 음악상을 받았다.

수많은 상의 종류도 감탄스럽지만, 이러한 상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착실히 발표하는 좋은 신작에 있다는 것은 더 대단했다. 그의 출중함은 꾸준하게 유지하는 높은 작품 수준에서 온다. 그래서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진은숙의 새로운 소식은 마르지 않는다. 전성기라는 단어를 사람들은 젊은 시절을 그리며 이야기하곤 하지만, 일생 간 작품 목록을 차분히 쌓아내는 창작인은 펜을 놓지 않는 한, 그것이 언제까지라도 이어질 듯하다.

지난 1월 진은숙의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수상소식이 담긴 국내 보도자료에는 ‘2028년까지 위촉이 정해져 있음’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바쁘고 치밀한 그는 흥미롭게도 언론의 연락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페라 작업이 급해 큰일 났어요”라고 전하면서도 기꺼이 전화 인터뷰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의 답변에는 허례허식이 없고, 숨기거나 과장하는 것도 없다. 본인의 수상 소식에 축하 인사를 건네자 담담하게 받아넘기지만, ‘객석’의 40주년 소식에는 매우 기쁘게 축하 인사를 전해주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이 잡지가 생겼던 게 기억이 나요. 당시에 다른 음악 잡지가 먼저 있을 때, ‘객석’이 창간했거든요. 상당히 세련된 화보도 많이 냈었죠. 대한민국 음악계·공연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잡지이니, 앞으로도 더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쁜 소식의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는 40여 분간 이어졌다. 그에게 ‘축하’를 건네자, 그는 젊은 작곡가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서 ‘초대’장 같은 설명을 풀어냈다. 그리고 신작에 관한 ‘귀띔’과 예술을 위한 ‘진언’은 값진 언어처럼 다가왔다.

 

축하, 지금의 나에게

우선 1월 25일에 수상한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자. 수상을 축하드린다. 소감이 어떠한가?

당연히 기쁘다. 이 음악상은 워낙 큰 상이기 때문에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오래도록 독일에 살고 있으니, 독일에서 큰 상을 받게 됐다는 사실과, 상의 방향도 좋아서 기쁘다.

다가오는 5월 18일 뮌헨에서 수상 축하 행사가 있다고 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 기념 연주에 참여한다고 들었는데, 시상식은 어떻게 진행되나?

본상 외에도 젊은 작곡가를 위한 ‘작곡가 상’ 시상이 함께 진행된다. 젊은 세 수상자에 관해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시청하고, 그 뒤에 내 작품이 두 곡 연주된다. 두 곡 모두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 초연했던 작품으로, 이십여 년 전에 쓴 피아노와 타악을 위한 ‘이중 협주곡’(2002)과 비교적 최근 작품인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그랑 카덴차’(2018)이다. ‘그랑 카덴차’는 한국인 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이 연주한다.

최근 잇따라 좋은 소식이 겹쳤다. 작년 11월에는 베를린필이 2005년부터 2022년까지 연주한 관현악곡과 협주곡을 모아 ‘진은숙 에디션’을 발매했고, 이 음반은 올해 2월, 디아파종 골드 음반으로 선정됐다.

그 역시 굉장히 의미 있고 기쁜 일이다. 베를린필이 살아있는 작곡가의 전집을 내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존 애덤스(2016/17 시즌 상주작곡가) 이후 내가 두 번째가 아닐까?

음반 발매 과정은 어떠했나?

베를린필이 연주한 내 작품을 음반으로 내겠다는 아이디어는 2015~2016년경부터 나왔다. 이후 위촉받은 작품과 피아노 협주곡까지 함께 담기로 계획했는데, 팬데믹이 오면서 연주가 전부 취소됐고, 녹음이 미뤄졌다. 그러나 팬데믹이 지나고는 다시 빠르게 진행됐다. 특히 베를린필 쪽에서 이 음반의 완성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줬다.

 

조언, 젊은 작곡가에게

2021년 TIMF 아카데미 ©TIMF

권위 있는 여러 상을 받으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 작곡가’로 거론된다. 이에 대해 분명 책임감도 느낄 것 같다. 당신의 뒤를 따라 걷고 싶은 젊은 작곡가에게 조언을 건넨다면?

분명한 것은 내게 상이라는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는 정말로 상복이 가득한 사람이지만, 수상은 운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상을 많이 받아서 ‘대표’ 또는 ‘선두’ 작곡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작품이다. 젊은 작곡가가 나를 바라본다면 반드시 상이 아닌 작품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작곡가를 안다는 것은 곧 작품을 안다는 뜻’이겠다.

그렇다. 나는 국내의 언론과도 많은 인터뷰를 나눴기 때문에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것과 높이 평가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지 않은가. 스스로 한국에서 높이 평가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건 내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이 손에 꼽을 만큼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과 같다. 작곡가인 나를 이해했다는 것은 작품을 듣고 그것을 이해했다는 말이다.

젊은 작곡가에게 출판에 관해서도 조언을 줄 수 있을까? 1990년대 일찍이 음악출판사 ‘부지 앤 호크스’와 계약해서 본인의 작품을 알리는 데에 도움을 얻었다.

처음 출판사에 들어갔을 때가 90년대 초인데, 그때의 음악계는 지금과 너무나 달랐다. 유럽에서 외국인, 특히나 여성이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20~30년 지속되다가, 불과 몇 년 전부터 상당히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젊은 작곡가에게 출판사는 더이상 필수 요소가 아니다. 컴퓨터 악보 작업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출판사 없이 매니저만 두는 사람도 있다.

디지털 악보 시대가 판도를 바꾼 것이겠다.

어쩌면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기 좋은 시대이다. 젊은 작곡가는 출판과 비즈니스에 대한 우려보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것에 정진해야 한다. 작품이 좋으면 정말로 성공할 수 있다. 요즘은 공연 프로그램을 위해 인물을 추천하려고 해도 좋은 작품과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추천을 못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한마디로, 예술은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때이다.

‘작곡가 진은숙’에게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이 많을 것 같다. 이전에는 서울시향 상임작곡가(2006~2018)로 있으면서 마스터 클래스로 제자를 키워냈다. 현재는 통영국제음악재단의 TIMF 아카데미를 직접 진행하고 있다.

TIMF 아카데미를 진행한 지 이제 3년이 됐다. 우리는 오케스트라가 없기 때문에 서울시향에서 했던 규모로 마스터 클래스를 할 수는 없지만, 유럽에서 유수 앙상블 단원을 초청해 TIMF 앙상블과 함께 리허설과 신작 초연을 꾸준히 진행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초대, 봄과 새로움이 아름다운 통영으로

2022년에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시작하여 5년 임기를 약속했으니, 이제 딱 중반에 돌입했다. 현재 통영국제음악제의 흐름이 만족스러운가?

모든 방향성은 내가 정하는 것이니, 당연히 나는 만족스럽고 뿌듯하다.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장르를 생각하는 것, 그러면서도 청중에게 선사할 최고의 퀄리티를 선별하는 것이 언제나 우선순위이다.

올해의 상주작곡가로 페테르 외트뵈시(1944~)를 선정했다. 국내 관객은 그를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작품과 지휘를 선사했던 아티스트로 기억한다. 어떠한 기준으로 그를 상주작곡가로 결정했나?

그분이 올해 팔순(八旬)을 맞이했다. 지금의 연세에도 작곡가로서 작품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굉장히 드문 사례 중 한 명으로, 지난 수십 년간 해온 작곡·지휘 업적으로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예술가이다. 게다가 부다페스트에서 자신의 아카데미를 만들어 오래전부터 젊은 작곡가와 지휘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이처럼 음악계 전방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보면 상주작곡가로 모실만한 충분한 인물이라고 자신한다.

매년 다양한 초연 작품은 물론, 바로크 시기부터 20세기까지의 다양한 시대, 나아가 국악도 포함하여 축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한국은 이 모든 음악의 다양성을 하나의 축제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이 열려있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파생된 음악이 아닌, 서양 유럽의 것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구성된 프로그램에 오히려 선입견 없이 다가갈 수 있다. 전통음악은 욕심 같아서는 더 여러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싶었지만, 장소와 공연장이 한정되어 있어 아쉬움을 안고 지금과 같이 편성하게 됐다.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하나의 공연을 하나 꼽자면?

이 질문은 통영국제음악제에 불가한 질문이다. 여타 페스티벌이 하나둘의 공연에 큰 예산을 짜고, 이에 맞추어 주변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잖느냐.(웃음) 전체 페스티벌의 모든 공연이 중요하다.

 

귀띔, 다가올 신작에 대해

현재는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1900~1958)와 정신의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을 소재로 한 오페라를 작업 중이다. 기존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대본도 직접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대본의 기초가 되는 이야기는 이미 완성했다. 그것을 토대로 리브레토(오페라 대본)를 만들고 있는데, 작곡과 병행해서 하고 있다. 작업은 현재 3분의 1 정도 끝난 상태이다.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4/2007) 이후 작업하던 후속작 ‘거울 속의 앨리스’의 로열 오페라 초연이 취소되면서 작업을 중단했다. 지금 작업 중인 오페라는 내년 독일 함부르크 극장에서 5월 초연이 예정인데, 이것이 두 번째 오페라가 되는 걸까?

‘거울 속의 앨리스’는 취소된 이후로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 뒤로는 피울리와 카를 융에 관한 책도 여럿 읽고 관심이 새롭게 생기면서 이것을 두 번째 오페라로 작업하게 됐다. 첫 구상은 6~7년 정도 지났는데 곡 작업은 작년부터 이어오고 있으니, 상당히 늦게 시작한 상황이다.

오페라 작업이 오랜만인데, 어려운 점은 없는가?

무엇을 써도 곡을 쓴다는 행위는 어렵다.(웃음) 글을 쓰는 머리와 음악을 쓰는 머리가 상당히 다른데, 이를 동시에 하고 있는 점이 어렵다고 할까? 작곡가로 일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힘든 만큼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완성한다는 것은 분명 색다른 경험이다.

현대 오페라는 내용을 추상적으로 구성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작품의 내용은 어떠한가? 파울리와 카를 융이 주인공인가?

둘의 관계를 토대로 이야기를 썼지만, 이는 픽션이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이름은 전혀 다르다. 이야기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유사하게 훨씬 심리학적이고 극적이며, 추상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상당히 전통적인 극이다. 물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 부분은 그 나름의 관현악 요소의 가치가 살아있어야겠지만, 드라마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게 핵심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대가 된 ‘스내그스 앤 스널스(snagS &Snarls)’(2004) 같은 성악 작품은 추상적이고 언어유희가 많은 가사를 사용했다. ‘사이렌의 침묵’(2014)도 가사를 분절하여 문장보다는 단어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청중이 음악보다 가사에 집중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라는 의도가 있었는데, 이런 과거의 경향과 이번 작품은 다소 거리가 있는 걸까?

아주 젊었을 때엔 성악가의 목소리를 악기로 취급하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보다 통상적인 의미가 있고, 내용이 있는 가사를 사용하는 곡도 쓰게 됐다. 현재는 언어 체계부터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작업을 안 하고 있다. 앞으로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진언, 예술의 길을 걷는 자라면

2023년 통영국제음악제 ©TIMF

명확한 가사가 들리는 예로는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2015/2016)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에는 천문학을 향한 관심이 담겨있다. 지금 작업 중인 작품도 마찬가지고 현실 사회의 실제 사건보다는 보다 본질적·추상적 대상을 작품 소재로 삼는 편이다.

작품 소재는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사를 따라간다. 말하자면 나는 인간·우주와 같이 보다 본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렇다.

소재를 얻는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특별히 하는 활동이 있는가?

이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아 왔는데, 항상 답변이 불가하다. 무엇이든 원천은 밖에서보다 ‘나’라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이 종합되어 그것이 원천이 된다. 전시를 관람하거나 독서를 하는 것은 영감을 얻기 위해 하는 목적 있는 행동이 아니라, 관심이 있으므로 하는 자연스러운 생활이다. 이렇게 느낀 것은 내게 와서 나의 것이 되고, 이렇게 뭉쳐진 내 안의 복합체가 내 음악에 반영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작곡을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사항은 무엇인가?

곡마다 다르기도 하고 명확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다만 작품을 쓸 때마다 새로운 것을 하려는 게 가장 중요하겠다.

이제는 숙련된 원로 작곡가 대열에 들어섰다. 젊은 시절 작곡을 하며 겪었던 어려움은 이제 더 이상 겪지 않고, 작품을 만드는 일이 전보다는 수월하다고 느끼는가?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붙들고 매달렸던, 그런 부분을 놓는 것에는 분명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그 외에 어려운 일은 하면 할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잘 모르기에 쓸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의 작품이 있지만, 철이 들면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같이 굉장히 유명한 원로 피아니스트를 떠올려 보아라. 그 사람의 능력으로는 분명 세상 어떤 작품도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을 테지만 점점 독주회를 줄이지 않는가. 치기 어렸을 적, 굉장히 많은 것에 대해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음악적 시도는 의식이 늘어가며 무서워진다. 음악에 대한 경외감이 점점 더 높아져, 이제는 감히 못하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다.

4년 뒤인 2028년까지 위촉으로 계획이 빠듯하다고. 정해진 작업 외의 다른 활동 계획이 있는가?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가 있다고 해도 작업 중인 오페라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것을 끝내는 목표만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곡가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다면?

모든 예술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웃음) 이는 물어볼 필요가 없는 질문이지 않나.

이의정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진은숙(1961~) 서울대 작곡과에서 강석희를 사사, 독일 함부르크에서 리게티를 사사했다. 통영국제음악제 상임작곡가,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를 지냈으며, 202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2024년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비롯하여 십여 종에 달하는 국제적인 음악·작곡상을 받았다.

 

Performance information

2024 통영국제음악제

3월 29일~4월 7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블랙박스

 


베를린필의 진은숙 관현악 작품집

 

Berliner Philharmoniker BPHR230411(2CD/Blu-ray)

사이먼 래틀·정명훈·사카리 오라모(지휘)/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바이올린)/알반 게르하르트(첼로)/김선욱(피아노)/베를린 필하모닉 외

 

 

베를린 필하모닉이 2005년부터 2022년까지 연주한 총 6곡의 진은숙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2014년 DG에서 발매되었던 정명훈/서울시향의 녹음(DG 4810971) 이후 작곡가의 협주곡 작품을 모은 음반이기에 더욱 뜻깊다. 이중 세 개의 협주곡인 바이올린 협주곡(사이번 래틀·테츨라프), 첼로 협주곡(정명훈·게르하르트), 피아노 협주곡(사카리 오라모·김선욱)은 ‘디아파종 골드’에 선정됐다.

게르하르트와 김선욱이 연주한 각각의 협주곡에 특히 눈길이 간다. 10년 전 발매된 음반 속 둘의 연주는 작곡가가 직접 여러 번 찬사를 전했기에, 그들의 연주로 작곡가의 의도를 감상할 수 있을 거라는 든든한 안심이 생긴다.

성악 작품인 ‘사이렌의 침묵’은 초연을 맡았던 소프라노 바바라 해니건의 연주이며,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던 사이먼 래틀이 이 작품에서도 함께 했다. 진은숙은 과학과 문학 등의 분야를 음악에 접목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밀도를 담아냈다. 그 외에 대니얼 하딩이 지휘한 ‘로카나’(2008), 사이먼 래틀이 지휘한 ‘코로스 코르돈’(2017)이 담겨있다.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예후디 메뉴

레너드 번스타인

아시아 최초로 진은숙이 받은 이 상은 바이에른 순수예술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것으로, 1974년부터 매년 작곡가·연주자·음악학자를 통틀어 단 한 명을 선정한다. 수상 대상이 독특한데, “작곡·해석·평론·교육을 통해 세계의 음악에 봉사하고 기여한 인물”이어야 한다. 이외에도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작곡가 상’이 따로 있으며, 매번 약 3명씩을 선정하고 있다.

에른스트 폰 지멘스 상은 1974년에 첫 시상이 이뤄졌으며, 설립자는 독일의 유명 기업 ‘지멘스’의 에른스트 폰 지멘스(1903~1990)이다. 초대 수상자인 벤저민 브리튼(1974)을 비롯하여 올리비에 메시앙(1975),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77), 예후디 메뉴인(1984), 레너드 번스타인(1987), 리게티 죄르지(1993) 등 음악계와 대중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은 이들이 수상자 목록에 이름을 남겼다. 최근 10년 내의 수상자로는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2017),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2015) 등이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시상식에서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상을 받은 음악가 외에 작곡가 상을 받은 이들의 작품도 연주되는 축하 공연이 펼쳐진다. 올해의 시상식은 5월 18일 재단의 근거지인 뮌헨의 헤라클레스홀에서 열리며, 진은숙의 작품을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 연주할 예정이다.

 


진은숙 예술감독이 펼치는

통영국제음악제 3.29~4.7

즐김 포인트 4

 

집중탐구! 상주작곡가 페테르 외트뵈시

페테르 외트뵈시 ©Marco Borggreve

헝가리 작곡가이자 지휘자, 교육자로도 알려진 페테르 외트뵈시(1944~)는 그의 뿌리인 헝가리 음악을 핵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 경향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표제를 사용한 작품이 여럿 있고, 언어의 억양을 음악으로 살려내는 작업에 탁월하다.

바로 이 공연 4월 3일 오후 7시 페테르 외트뵈시 ‘시크릿 키스’ 연주: 바스 비허르스/클랑포룸 빈(협연 서예리)

작은 규모의 기악 그룹과 소프라노로 편성된 작품이다. 2018년 작품으로 료코 아오키가 부른 일본어 버전을 온라인 영상으로 들어 볼 수 있는데, 작곡가의 모국어가 아닌데도 일본어의 억양이 음악에 담겨있어 신비롭다. 소프라노 서예리와 함께 할 한국 초연에서는 어떤 모습을 들려줄지 기대된다.

 

고전 음악이 된 20세기 음악

베르트랑 샤마유 ©Marco Borggreve

통영국제음악제는 낯선 작품을 만나는 창구가 되는 만큼 ‘초연’이라는 표시를 달고 있는 공연이 매일 이어진다. 다른 곳에서는 현대음악이라고 불리던 20세기 음악이 지금 갓 만들어진 새 음악들 사이에 들어가니 상대적으로 고전 음악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통영국제음악제가 아니면 언제 실황으로 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귀한 작품들임을 잊지 말자!

바로 이 공연 4월 1일 오후 7시 메시앙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연주: 베르트랑 샤마유

바로 이 공연 4월 4일 오후 7시 윤이상 ‘바라’ 연주: 홍석원/광주시향(협연 에마뉘엘 파위)

 

 

밴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 이들만이 가능한 음악

벤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 ©Alistair Eagle

작년에 파치 앙상블이 있었다면, 올해는 밴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이다. 프로그램을 넘기다 보면 연주하는 모든 작품이 초연인 공연이 있다. 밴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는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여러 민족의 음악적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다. 2000년에 창설된 단체로, 이들이 연주하는 작품은 각 문화를 융합하여 창조한 캐나다 작곡가들의 신작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서양악기와 세계 여러 민족의 민속악기가 어우러진 작품은 낯선 것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관객을 위한 선물이 될 것이다.

바로 이 공연 4월 1일 오후 9시 30분 연주: 밴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

 

 

 

축제는 역시 다양성! 스타 연주자들의 향연

에마뉘엘 파위 ©Fabien Monthubert

만약 통영국제음악제가 처음이라면 이 모든 낯선 정보와 곡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때는 친숙한 국내 연주자를 따라가 보자.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소프라노 서예리,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등이 다양한 공연에 배치되어 있다.

바로 이 공연 4월 4일 오후 9시 30분 연주: 베르트랑 샤마유, 양인모

올해의 상주연주자 중 한 명인 샤메유와 양인모의 조합이다. 올해의 상주연주자는 특별히 프랑스 연주자 세 명이 선정됐는데, 덕분에 프랑스 레퍼토리도 가득 만나 볼 수 있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와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한다.

바로 이 공연 4월 6일 오후 9시 30분 연주: 에마뉘엘 파위, 조인혁, 양인모, 선우예권

또 다른 상주연주자 파위와 국내 연주자 세 명이 뭉쳤다. 공연은 2중주, 또는 3중주 작품으로,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외트뵈시·버르토크·하차투리안의 각양각색의 곡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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