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음악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기계인가, 새 생명체인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2월 19일 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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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듣다

 

게임을 듣다

01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02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03 호그와트 레거시 04 모여봐요 동물의 숲 05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 06 음악게임 모음집 07 리그 오브 레전드 08 메이플스토리 09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10 포켓몬스터소드·실드 11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기계인가, 새 생명체인가

고도의 인공지능을 갖춘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2038년. 미국은 안드로이드를 통한 생산성·효율성의 극적인 혁신으로, 유례없는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일자리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소득 불평등은 극단에 치달았고, 미국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 도시에선 실업자들이 안드로이드를 향한 분노를 표출하며 끊임없이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었죠. 게임은 이러한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플레이어에게 세 개체의 안드로이드를 소개합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카라’ ‘마커스’ ‘코너’라는 안드로이드가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카라

카라 ©Quantic Dream

주제곡

카라는 토드라는 남성이 구매한 가정부 안드로이드로, 심각한 파손으로 인해 수리점에서 메모리가 초기화된 채로 눈을 뜹니다. 수리를 마치고 돌아온 토드의 집에선 앨리스라는 여자아이를 만나는데, 아이가 어딘가 굉장히 불안해 보였죠. 그렇게 밤이 되자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알고 보니 토드는 안드로이드로 인해 직업을 잃었고, 아내마저 그를 버리고 도망을 갔던 것이죠. 그는 자신의 비참한 인생을 술과 마약으로 달래며 살았고, 세상에 대한 비관은 곧 앨리스를 향한 가정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카라를 조작하는 플레이어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구매자의 명령에 복종해 로봇의 원칙을 지키며 가정폭력을 방관할 것인지, 아니면 불량품이 될지언정 앨리스를 토드로부터 구출할 것인지를 말이죠.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 카라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불꽃이 타오릅니다. 바로 앨리스를 향한 ‘모성애’죠.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작곡가 필립 셰퍼드(1969~), 존 페사노(1977~), 니마 파카라(1983~)가 각각 카라, 마커스, 코너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 작곡가이자 첼리스트이기도 한 필립 셰퍼드는 화롯불에서 장작이 타오르는 모습에 영감을 받아 카라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밝힙니다. 카라의 음악은 따뜻한 첼로의 음색이 주가 됩니다. 리코세 주법(편집자 주_현을 활의 탄력으로 튀기며 연주하는 것)을 통한 아르페지오 속주로 잔잔하게 시작되다 웅장하게 펼쳐지는 주제 선율은 앨리스를 지키겠다는 카라의 비장한 의지가 느껴지죠. 결국 주인인 토드에게서 탈출한 카라와 앨리스는 그야말로 고난의 여정을 떠나는데 아무리 힘든 과정에서도 앨리스를 향한 카라의 모성애는 절대로 좌절되지 않습니다.

 

가장 인간다운, 마커스

마커스 ©Quantic Dream

‘I am Markus’

마커스는 명성 높은 화가 ‘칼’의 비서 안드로이드입니다. 칼에게 마커스는 단순한 로봇 비서를 넘어 친구, 그리고 아들 같은 존재였죠. 평소와 같던 어느 날, 마약에 찌들어 방탕한 삶을 사는 칼의 실제 아들, ‘리오’가 찾아와 돈을 요구합니다. 마커스는 이 둘의 싸움에 휘말려 불량품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고 경찰들의 총에 맞아 폐기장으로 이송되고 말죠. 마커스가 폐기장에서 목격한 것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쓸쓸하게 기능이 정지 되어가는 안드로이드 동족들을 보며 마커스는 인간으로부터 안드로이드를 해방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마커스가 원하는 것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스스로 행동과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바로 ‘자유 의지’입니다.

마커스의 음악은 경건하고 신성한 분위기가 감돌며, 그 핵심적인 음향은 인성(人聲)에서 비롯됩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마커스가 인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음악’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커스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폭력 시위 혹은 평화 시위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평화 시위를 선택했다면, 인간들이 안드로이드를 무참히 학살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죠. 그때 마커스는 ‘조금만 더 버티면 되리라(Hold On Just a Little While Longer)’라는 찬송가를 부릅니다. 그리고 이 찬송가를 주변의 안드로이드도 따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광경을 본 인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음악을 통해 결속을 다지고, 연대감을 형성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곡의 가사는 신께 기도를 올리는 내용인데, 힘든 상황에서 신에 의지하는 생명체도 인간이 유일하지 않습니까? 마커스가 평화 시위에서 음악을 부르는 것은 선지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고, 새로운 지적 생명체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탁월한 장치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부서지기 쉬운, 코너

©Quantic Dream

‘캄스키’

코너는 인간이 인공지능에 기대하는,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논리와 계산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수사관으로, 인간에게 불복종하는 불량 안드로이드를 체포하고 제압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 대상에는 앞서 보았던 카라와 마커스도 포함되어 있죠. 기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코너의 음악은 무미건조한 전자음을 바탕으로 동일한 음향과 리듬이 집요하게 반복됩니다. 거기에 쇳소리 등의 마찰음들이 등장해 차가운 느낌을 주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가장 차가운 모습을 보이는 코너가 다른 두 등장인물과 비교했을 때 가장 불안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는 점입니다. 카라가 절대로 꺼지지 않는 모성애, 마커스가 안드로이드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코너는 수사 과정에서 여러 불량품을 마주하며 수없는 혼란을 겪습니다. 코너의 마음속에 스멀스멀 ‘감정’이 싹트고 있었죠. 감정에 휘둘려 불량품을 놓친 코너는 인간에게 가장 위협적인 마커스의 소재를 알기 위해 ‘캄스키’라는 공학자를 찾아갑니다. 캄스키는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회사의 CEO로 재직하며 안드로이드 발전과 보급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공지능을 넘어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고자 하는 괴짜였고, 자신이 ‘캄스키 테스트’라고 명명한 실험을 코너에게 실행합니다. 이는 ‘생각하는 기계’를 증명하고자 1950년 앨런 튜링(1912~1954)이 만든 ‘튜링 테스트’를 발전시킨 실험으로, ‘감정을 가진 기계’를 증명하고자 캄스키가 만든 실험이었습니다. 이 실험에서 코너는 권총 한 자루를 쥐고 눈앞에 있는 안드로이드를 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장면의 음악은 불안한 전자음과 어느 한 곳이라도 건드리면 부서지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량품을 수사하는 기계가 스스로 불량품이 될 것인지, 아니면 기계로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코너의 압박감을 묘사하고 있죠.

그러나 ‘부서지기 쉬운 것’은 결코 단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이는 인류의 핵심적인 속성이라 말하고 있죠. 이 게임에서 인간은 ‘부서지기 쉬운 기계’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과 비합리적인 생각에 휩싸여 자주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하는 나약한 생명체죠.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별 지어주는 차이일 것입니다. 인간은 늘 완전한 존재가 되길 바라지만, 이 게임에서 인공지능은 불완전한 불량품이 되기를 희망하죠. 앞으로 먼 미래가 되어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지게 된다면 인류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창성 서울대 작곡과에서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게임과 음악의 관계에 관해 관심을 두고 있으며 게임음악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KBS 1FM의 PD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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