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테마가 있는 추천 음반
THEME RECORD
매력적인 음색으로 새로 쓰다
소프라노 색소폰을 위한 고독한 시
앤더스 폴슨·테오 힐보그(소프라노 색소폰)/ 브루스 코플리(디저리두·목관)
BIS BIS2644
아호: 리코더와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외
에로 사우나마키(리코더)/ 에사 피에틸라(테너 색소폰)/ 얀네 발케아요키(아코디언)/
에르키 라손팔로(지휘)/사이마 신포니에타
BIS BIS2646
매일 음악을 듣다 보면 유사한 음색이 지루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평소에 자주 듣지 않던 음색으로 귀를 환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주 발매되지 않는 독특한 편성의 현대음악 음반을 두 장 모아봤다.
색소폰 연주를 접할 기회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무반주로 흐르는 색소폰 독주는 흔치 않다. 음반의 23개의 트랙 중 3개 작품을 빼고는 모두 소프라노 색소폰 독주이다. 이 곡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소프라노 색소폰을 위해 여러 작곡가에게 위촉했던 작품을 모은 것으로, 이 음반으로 처음 녹음되는 작품들이다. 음반 후반부에 위치한 셸 페르데르(1954~)의 ‘어떻게 네가 감히?(How dare you?)’는 매우 독특한데, 호주의 전통 목관악기인 디저리두의 음색을 접해볼 수 있다. 둔탁한 디저리두와 재빠른 색소폰이 충돌하는 재미가 있다.
핀란드 작곡가 칼레비 아호(1949~)는 시벨리우스 아카데미 출신의 작곡가로 거대한 규모의 음악을 주로 작업해 왔다. 지금까지 8곡의 교향곡, 40곡에 가까운 협주곡, 5개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첫 번째 교향곡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핀란드의 대표 작곡가로 일찍이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 음반에는 그의 작품 중 리코더, 테너 색소폰, 아코디언처럼 자주 작곡되지 않는 협주곡을 모았다. 그중 리코더 협주곡은 현대적인 주법을 시도하여 바로크 음악의 리코더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심어준다. 이의정
다시 발굴하는 거장의 음악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전주곡 Op.32
루카스 게뉴서스(피아노)
Alpha ALPHA997
슈미트 교향곡 전곡
조너선 버만(지휘)/BBC 웨일즈 내셔널 심포니
Accentus Music ACC80544
동시대를 살다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와 프란츠 슈미트(1874~1939)는 살아온 환경도, 추구한 음악의 궤적도 다르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는 점에서 그들의 음악을 다시금 꺼내 보게 한다.
2010년 쇼팽 콩쿠르,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루카스 게뉴서스(1990~)가 러시안 피아니즘을 계승하는 젊은 연주자답게, 라흐마니노프 음반을 발매했다. 연주에 앞서, 눈길을 사로잡는 노란빛 음반 표지의 배경은 루체른 호수 근처의 ‘빌라 세나르’다. 게뉴서스는 라흐마니노프가 머물렀던 이곳에서 소나타 1번을 연주했다.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 S108에서 영감을 얻은 이 곡은 그 규모나 기교적인 측면에서 극적인 표현을 요구한다. 그는 이번 음반에서 소나타 1번의 원본 버전을 연주하며, 작곡 당시 작곡가의 의도를 음반에 고스란히 담았다.
조너선 버먼이 지휘하는 BBC 웨일즈 내셔널 심포니가 슈미트의 4개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했다. 2020년부터 2년간 이어진 녹음은 버먼의 슈미트 교향곡 4번에 대한 특별한 애정에서 시작됐다. 특히, 올해는 프란츠 슈미트 탄생 150주년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슈미트가 이어간 후기 낭만주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대편성의 웅장한 음색에 작품에 대한 지휘자의 열정이 더해져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홍예원
화제의 신보
new & good
헨델: 메시아
존 넬슨(지휘)/잉글리시 콘서트 & 콰이어/
루시 크로(소프라노)/ 알렉스 포터(카운터테너)/
마이클 스파이르스(테너)/ 매튜 브룩(베이스)
Erato 5419774160(2CD/DVD)
바로크음악과 베를리오즈에 대한 선명한 해석으로 호평받은 지휘자 존 넬슨(1941~)이 지난해 11월 영국 코번트리 대성당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선보였다. 영국의 바로크 관현악단인 잉글리시 콘서트, 고음악 합창단 잉글리시 콘서트 콰이어, 그리고 지난해 잉글리시 콘서트와 헨델의 ‘세르세’를 녹음한 바 있는 소프라노 루시 크로와 함께한 이번 공연은 전쟁의 참상을 건축으로 승화시킨 평화의 장소에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음반은 2장의 CD와 1장의 DVD로 구성돼 있다.
차이콥스키: 이올란타와 호두까기인형
오메르 마이어 벨버(지휘)/빈 폴크스오퍼 오케스트라/빈 슈타츠발레/
올레샤 콜로프네바(이올란타)/ 게오르기 바실리예프(보데몽 백작) 외/ 안드레이 카이다노프스키(안무)/
로테 드 베어(연출) C Major 765108(DVD), 765204(Blu-ray)
2022년 극장장 로테 드 비어와 음악감독 오메르 마이어 벨버가 빈 폴크스오퍼에 부임한 첫해에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차이콥스키의 단막 오페라 ‘이올란타’와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결합된 특별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이올란타’를 기본으로 하되 주요 장면에 ‘호두까기 인형’의 음악이 사용되어 두 작품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이올란타’는 자신이 장님이란 사실조차 몰랐던 이올란타 공주가 사랑의 힘과 아라비아 명의의 수술로 눈을 뜬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소프라노 올레샤 콜로프네바가 이올란타 공주 역을 맡아 극을 이끌어 나간다.
라모: 플라테
마르크 민코프스키(지휘)/루브르의 음악가들/
파리 오페라 합창단/로렌스 브라운리(플라테)/
줄리 푹스(라 폴리)/마티아스 비달(테스피스)/ 장 테트장(주피터) 외/로랑 펠리(연출)
Bel Air Classiques BAC224(DVD), BAC524(Blu-ray)
파리 오페라가 준비한 라모(1683~1764)의 오페라 ‘플라테’다. 연출가 로랑 펠리와 지휘자 마르크 민코프스키가 함께한 프로덕션이 완전히 새로운 출연진들과 함께 돌아왔다. 못생긴 개구리 요정 플라테가 주피터의 구애를 받는다고 착각하면서 신들과 벌이는 유쾌한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벨칸토 레퍼토리로 특히 유명한 테너 로렌스 브라운리가 플라테 역으로 열연을 펼치고, 바로크부터 20세기까지 넓은 시대를 소화하는 베이스 장 테트장은 주피터 역을 맡았다. 독특하고 화려한 무대 의상과 시대악기 오케스트라 루브르의 음악가들의 연주가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재닛 베이커(오르페오)/ 엘리자베스 스페이저(에우리디케)/
엘리자베스 게일(아모레)/ 레이먼드 레파드(지휘)/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합창단 외
Opus Arte OA1372D
1982년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의 공연 실황이다. 메조소프라노 재닛 베이커(1933~)는 이 작품을 은퇴작으로 선택하고, 오르페오를 맡았다. 당시 좋은 평가를 이끈 성공적인 결정이었다. 40년이 넘은 프로덕션이지만, 지옥의 붉은 빛과 지상의 푸른 빛의 대비가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잘 알려진 신화의 내용과 다른데, 아내를 데려오는 데에 실패한 오르페오가 모든 구혼을 거절하다가 여자들에게 살해당하는 내용 대신, 슬픔에 빠져 자살하려는 오르페오를 위해 에우리디케를 살려주는 밝은 내용으로 마무리 짓는다.
Focus RECORD 1
이예린 ‘플래시백’
순박한 울림을 따라가 본 도도새의 행방
유니버설뮤직 DU42280
이예린(플루트), 김영욱(바이올린), 이한나(비올라), 심준호(첼로),
아렌트 흐로스펠트(하프시코드), 김현준(바순)
조반니 베네데토 플라티(1697~1763)의 플루트 소나타 Op.3-6로 시작되는 이 음반의 도입은 청순하기 그지없다. ‘알레그로’라도 그렇게 빠르지 않고, ‘아다지오’라도 그렇게 느리지 않은 느긋한 맥박이 전해져온다. 많은 바로크 시대 작품들이 그렇듯이, 단순함 속에 연주자의 목소리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연주자 음색의 품성은 물론, 한 음 한 음의 준비 과정에서 드러나는 명징함과 정교함, 정확성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이예린의 연주는 이 한 곡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서두르지 않고 우아하게 오르는 스케일 진행이 특히 일품이다.
조제프 보댕 드 부아모르티에(1689~1755)의 트리오 소나타 Op. 37-2는 이예린의 플루트 소리도 중요하고 좋지만, 다른 악기의 선율도 아름답게 들려오는 곡이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객원,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수석, 강남심포니 수석, 그리고 한예종의 겸임교수로 활동 중인 바수니스트 김현준의 무게감이 적절하다.
가장 궁금했던 곡은 작곡가 김신(1994~)의 ‘도도 모음곡(Dodo Suite)’이었다. 한예종을 졸업하고 현재 영국 왕립음악원에 재학 중인 김신은 제오르제 에네스쿠 콩쿠르 및 제네바 콩쿠르에서 연이어 1위를 수상해 이목을 모은 작곡가이다. 첫 30초부터 ‘이건 재미있는 작품이다’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국무용의 발디딤새를 연상시키는 1악장(프렐류드)은 ‘음(音)’만큼이나 ‘숨’도 중요한 곡이다. 음반에서는 현악 주자들인 김영욱(바이올린), 이한나(비올라), 심준호(첼로)의 피치카토를 통해 편안하게 호흡한다. 마지막 플루트로 표현되는 이제는 없는 무(無)의 존재, 도도새의 노랫소리는 처연하다. 2악장 ‘알망드…?’에서는 플루트의 귀여운 독무가 펼쳐진다. 검색창에 도도새라 하면 나오는 그 이미지는 다소 둔탁하지만, ‘알르망드…?’ 속 도도새는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쫄랑거린다. 3악장 ‘사라방드…?’는 다시 ‘프렐류드’처럼 많은 공기를 포함하는 느린 악장이다. 그가 ‘작곡가의 말’에서 밝힌 “인간의 욕심으로 멸종한 도도새와… 복원하기 위해 애쓰는 현대인의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인데, 비탄에 잠기기보다는 약간의 서글픔에서 멈춘다. 4악장 ‘지그…?’에서 다른 악기들은 하프시코드의 화음을 짚듯 움직이고, 노래는 플루트가 주로 맡는다. 이런 면에서 협주곡이 연상되는데, 스케일들이 이리저리 튀어나와서 비발디 ‘사계’의 빠른 악장에서 얻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혹자는 ‘도도 모음곡’의 진행 방식이, 또는 기획이, 지나치게 안전한 선택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한 작곡가의 지문이 선명하다면 그곳으로부터 어떤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 그의 지문은 선명했다.
모차르트의 플루트 4중주 K285는 이예린의 색과 질감을 잘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첫 곡이었던 플라티의 작품보다 훨씬 밝은 톤을 들려주는 플루트는 뛰어난 앙상블 속 하나로서의 모습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대·장르별로 달라지는 모습에서 이예린이 지닌 교육자적인 면모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각 시대 배경의 차이를 지식적으로 알고,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어야 후학을 훌륭히 양성할 수 있을 테니.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3악장에서는 연주자들의 순박한 인사를 만날 수 있다.
바로크에서 고전, 현대를 거치면서도 형식과 고정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노련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음반이다. 과거가 좋지만, 미래의 새로운 미학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일청을 권한다.
글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드로잉더뮤직
Focus RECORD 2
유지숙 ‘관산융마·수심가’
그리움의 한숨이 노래가 될 때
저스트 뮤직 (2CD) 유지숙(서도소리), 최경만(세피리·향피리)
보통 ‘남도소리’라 불리는 노래는 전라도를, ‘경기민요’라 불리는 노래는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된 전통음악이다. 그리고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된 민요나 잡가를 일컫는다.
한반도의 허리가 잘렸지만, 서도소리를 비롯해 북청사자놀음(함경남도), 봉산탈춤(황해도) 등 북한의 무형유산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이북5도 무형문화재’를,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은 북한음악자료실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그곳의 음악들은 지역적으로 ‘멀리’ 있고, 감각적으로는 ‘이질적’이다. 서도소리가 펼쳐내는 음악적 상상력은 바로 이 ‘멀리’와 ‘이질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서도소리를 대표하는 두 노래 ‘관산융마’와 ‘수심가’가 담긴 음반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리꾼 유지숙(1963~). 그리고 피리연주자 최경만(1947~)이 함께 했다. 배로 모여 가슴을 거쳐 목구멍을 통해 나오는 숨이 노래와 피리로 스며들고, 북녘 가락과 독특한 음계를 걸고 귓가를 맴돈다. 유지숙은 “서도소리의 대표적인 노래를 음반으로 남겨 우리 소리를 지키고 전승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음반을 제작했다”고 한다. 사재로 만든 소리의 기록이고, 3년의 시간이 빚은 정성의 흔적이다.
가사의 내용을 알면 노래의 근육이 보인다. ‘관산융마‘는 신광수(1713~1775)의 한시를 읊은 노래다. 등악양루탄관산융마(登岳陽樓嘆關山戎馬)라. 악양루에 오른 이가 북쪽의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수심가’도 제목 그대로다. 슬프고 근심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세월의 아쉬움, 젊은 날의 회한, 임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 이러한 향수의 노래(관산융마), 근심의 노래(수심가)가 각각 2장의 CD에 담겼다. 유지숙은 “그리움이 가득한 실향민의 심정을 긴 호흡으로 담아내고자 힘썼다”고 한다. 84쪽 분량의 두툼한 해설지에는 김해숙(전 국립국악원 원장)이 쓴 두 노래에 대한 해설이 담겼다.
유지숙의 노래와 최경만의 피리가 함께 한다. 피리가 길을 내고, 노래가 따라 걷고, 노래가 잠시 쉬면, 피리 소리가 그늘이 되어준다. ‘관산융마’에서 최경만이 보여주는 최고의 기법은 ‘배려의 수사학’이다. 가는 소리를 낸다고 하여 세(細)피리라 불리는 피리로 노래의 사이를 옅고 은은하게, 그러면서도 듬직하게 채우고 율을 달랜다. ‘수심가’에서는 두터운 소리의 향피리를 활용해 묵직한 소리의 골격을 짓고, 그속에서 유지숙의 노래가 노닐게 한다. 부부의 배려가 음악에도 녹아들었다.
유지숙은 20대에 취미로 하던 민요가 좋아 이 판에 뛰어든 늦깎이 예술가다. 어린 시절 북에서 온 피난민들이 유독 많았던 강화군에서 성장했던 그녀는 노래를 잘 부르던 소녀였다. 일상에서 익숙하게 듣던 북한식 사투리가 노래에 녹아들기 시작한 것은 회사 생활 중에 틈틈이 오복녀(1913~2001) 문하에서 배운 서도소리에서였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에 입단한 후에도 북한의 노래를 재발견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특히 그가 복원한 북한의 전통연희 ‘향두계놀이’는 이북5도 무형문화재 중 평안도 무형문화재로 2011년 지정되기도 했다. 2015년 북한의 토속민요와 서도소리 등을 담은 음반 ‘북한의 전통민요’는 라디오 프랑스에서 출시되기도 했다.
44구로 되어있는 ‘관산융마’는 높은 기교를 필요로 하여 4구까지 부르곤 한다. 유지숙은 이 음반의 14구 녹음을 시작으로 남은 30구도 음반으로 제작할 계획을 밝혔다.
글 송현민(편집장) 사진 저스트 뮤직·국립국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