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STAGE
첼리스트 · 작곡가 임이환
오래된 민요를 첼로 선율로 바꾸다
‘민요 첼로’로 선보인 독특한 질감의 연주 스타일, 첼로의 한계를 뛰어넘다!
임이환 ‘빅 바이올린 플레이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작곡가이자 첼리스트. 서울예대 졸업 후, 버클리 음대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우리펑크’ ‘13 발렌시아’ ‘서울 657’ 등의 음반 작업을 통한 작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수행하는 공연예술 분야의 지원사업인 ‘공연예술창작산실’ 선정 작품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지난 1월 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빅 바이올린 플레이어’ 임이환의 ‘민요 첼로’도 그중 하나로, 민요·첼로·밴드라는 서로 다른 소리, 서로 다른 장르가 한 무대에 올라 관객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끌었다.
겹겹이 쌓아 올린 민요와 재해석
‘민요 첼로’라는 제목부터 흥미로웠습니다. 민요와 첼로는 여러 방면으로 상충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밴드도 함께 했습니다. 이러한 공연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쪼개진 사회 속에 살고 있어요. 음악을 듣는 취향 역시 다 다르죠. 그래서인지 음악적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에 대한 답이 민요였어요. 오랜 역사를 지닌 민요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쉽고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에요. 그 안에 인간의 본능이 담겨있을지도 모르고요. 민요는 매우 짧은 멜로디의 음악이기에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많습니다. 시도해 볼 수 있는 게 다양한 만큼,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첼로와 밴드만으로 말이죠. 그렇게 ‘민요 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민요를 재해석했다고 하셨는데요. 소나타나 론도처럼, 민요의 선율과 작곡한 선율이 각각의 주제로 진행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민요는 짧은 음악이에요. 보통 네 마디, 길면 여덟 마디인데 4분 정도의 음악에 그 주제만 반복되면 뻔하게 들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민요를 모티브로 삼지만, 그 안에 저의 새로운 멜로디를 함께 담았어요. 그 주제가 두 개가 될 수도, 세 개가 될 수도 있지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저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한 작품이 바로 ‘민요 첼로’입니다.
이렇게 복합적인 장르를 시도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많이 접했어요. 팝 음악부터 펑크, 재즈 등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음악이 있더군요! 이런 음악들을 첼로로 구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유튜브 영상을 보며 버클리 음대 교수님들을 비롯해,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의 틀을 깨는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했어요. 영상을 통해 마이크, 루프스테이션(녹음된 구간 위에 다른 음악을 쌓아 올리는 기계), 미디(MIDI) 등 여러 장비를 익히고, 직접 구매해 조립하고 실험하면서 독학했습니다. 루프스테이션을 쓴 지도 벌써 10년이 됐네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저만의 독특한 질감을 지닌 첼로 연주 스타일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조금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하고자 버클리 음대 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루프스테이션을 이용한 음악은 베이스 오스티나토(반복되는 일정한 음형의 반주)를 만들고, 이를 쌓아서 파사칼리아(오스티나토를 사용하는 음악의 장르)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번 ‘민요 첼로’ 공연에서는 첫 곡부터 관객에게 이를 강하게 각인시켰어요.
맞아요. 첼로 한 대의 소리를 탑처럼 계속 촘촘히 쌓아 올리면서 음악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루프스테이션 퍼포먼스의 묘미입니다. ‘완성된 음악’이 아닌 ‘과정의 음악’인 거죠. 이러한 음악에는 색다른 접근이 가능합니다. 공연 역시 같은 의도로 연출했고, 결과에도 만족했습니다. 이를 클래식 악기인 첼로로 구현하다 보니 관객들이 더욱 신기하게 느끼고 좋아해 주신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은 악보로 완성된 작품을 구현하지만, 실용음악 연주자들은 연습과 소통을 통해 음악을 구축합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밴드와 연주할 때는 단순히 코드 악보만 준비해요. 즉흥성에 기반을 둔, 열린 연주를 지향하는 게 밴드의 특성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은 즉흥성에 기반을 두지 않으니, 정확한 악보가 있어야 하죠. 그래서 첼로 다섯 대를 위한 편곡과 악보를 그리는 데에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함께 연주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으나 매우 의미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신선한 해석으로 새로운 판을 만들다
이러한 과정으로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앞서 말씀하신 ‘공감을 확대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공연 소개 글의 ‘첼로의 한계를 부순다’는 표현도 이와 연결되어 보입니다.
첼로는 유독 클래식 음악에서만 사용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첼로도 다른 장르의 음악, 다른 주법의 시도가 가능한 악기예요. 이러한 행보를 대중에 자주 노출하다 보면 언젠가는 첼로에 대한 편견도 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하나의 ‘점’이라면, 저와 같은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그 ‘선’들이 ‘면’이 되어 결국 어떠한 판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와 같은 시도를 하는,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그들과 함께 생각을 바꿔나가고 싶어요.
‘민요 첼로’에서 다섯 대의 첼로는 이색적이면서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동일한 악기의 앙상블은 그 수가 많아도 표현 범위를 넓히지 못하기 때문이죠.
첼로는 무려 4옥타브라는 꽤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집중했어요. 첼로의 음역을 다섯 부분으로 나눠 고음과 저음에 각각 두 대씩, 그리고 한 대는 첼로 본연의 음역과 선율에 집중하도록 편곡했습니다. 또한, 일반적이지 않은 첼로의 주법, 예를 들어 현을 뜯고, 긁고, 몸통을 두드리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완성되는 음악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악기이기에 무대를 정적으로 만들곤 하는데요. 이번 공연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조명이 이를 보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명도 직접 구상하신 건가요?
맞아요. 이번 공연에서는 소리의 흐름을 조명으로 드러내고자 했어요. 세밀한 큐(공연 중 조명의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를 통해 소리의 흐름이 시각화될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 썼죠. 연출 및 조명 감독님과도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음악 공연에서 이렇게 많은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 자리를 빌려 연출님과 조명 감독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계속 재밌고 신선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저는 한자리에 머물며 정착하기보다, 변화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에요. 우선, 예전부터 영화음악을 하고 싶었기에 영화를 공부하며 미리 곡을 많이 써두려고요. 앞으로 어떤 재밌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돼요. 더 부딪치고 깨지며 단단한 사람, 단단한 작곡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일정 (1/4분기)
2008년부터 시작된 공연예술창작산실(이하 창작산실)은 예술의 동시대성과 다양성·수월성·실험성을 지향하는 우수 신작을 발굴하기 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 공연제작 지원사업이다.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창작산실은 3월까지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에서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27개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