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바이올리니스트 제이미 라레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4.23~5.5 에서 만나다
올해 주제가 ‘가족’인 축제를, ‘가족’과 함께 하는 80대 거장의 내한이 반갑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이하 SSF)의 음악감독 강동석은 그를 “어느 날 스승이 건네준 우표 속 인물”로 기억한다. 강동석의 스승이자, 제이미 라레도의 스승이기도 했던 이반 갈라미언이, 제자인 라레도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1959년)한 것을 기념하며 그의 조국인 볼리비아에서 나온 우표를 강동석에게 보여주었던 것. “라레도의 바이올린 연주 모습과 오선지 위의 음표 ‘라-레-도’가 그려져 있는 재미있는 디자인이었어요. 볼리비아의 수도 라 파스에는 라레도의 이름을 딴 스타디움이 있을 정도로 국민적인 영웅이지만, 그는 내가 아는 음악가 중 가장 따뜻하고 인품이 훌륭한 ‘좋은 사람’입니다.”(강동석)
라레도는 볼리비아의 음악 영웅, 파블로 카살스와 음악적 교분을 나누고, 글렌 굴드와 바흐의 작품들을 녹음한 바이올리니스트다. 루돌프 제르·조지 쉘과 함께 해온 전설이자 아이작 스턴·이매뉴얼 액스·요요마와 함께 한 브람스 4중주로 그래미를 수상한 실내악의 대가 제이미 라레도. 올해 SSF를 위해 그가 내한한다. 라레도는 자신의 최정예 앙상블, ‘에스브레시보! 피아노 콰르텟(ESPRESSIVO! Piano Quartet)’ 멤버들과 SSF에서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다음은 그와 서면으로 나눈 인터뷰다.
멈추지 않는 실내악 열정에 참여한 동료들
“에스프레시보 피아노 콰르텟은 지금 제 마음을 한가득 차지하고 있어요. 안나 폴론스키(피아노)와 밀레나 파자로 반 드 슈타트(비올라)는 꿈의 멤버이지요. 제 아내이자 음악적 동반자인 샤론 로빈슨(첼로)과 저는, 피아니스트 조셉 칼리히슈타인과 함께 KLR(Kalichstein-Laredo-Robinson) 트리오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어요. 2022년 칼리히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계속 실내악 연주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이름의 트리오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깊고 넓은 피아노 4중주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생 시절부터 대단한 음악적 깊이와 진득함을 보여준, 저 두 명의 멤버를 음악적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었죠.”
라레도가 1977년 1월로 기억하는 트리오 ‘KLR’의 역사는 현대사와도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1977년 그해에, 우리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주했습니다. 당선된 대통령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지미 카터였습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했어요! 우리는 뉴욕의 카네기홀, 런던의 위그모어홀,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허바우, 빈의 무직페어아인 등 각국의 대표적인 공연장에서 바쁘게 연주했습니다. 음반으로는 아렌스키·차이콥스키가 있고, 특히 자부심을 느끼는 전곡 시리즈(베토벤·브람스)도 있죠. 라벨·쇼스타코비치·패르트의 곡들도요. 전 사실 제가 녹음한 음악들을 자주 챙겨듣는 편은 아니지만, 라벨의 작품을 이들과 함께 녹음한 음반은 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듣기도 합니다. 참 좋은 음반이에요.”
45년간 이어진 영화로운 앙상블의 역사를 뒤로하고, 다시 꾸린 4중주단(에스프레시보! 피아노 콰르텟)이 이번 SSF에서 보여줄 작품들은 멘델스존·브람스·드보르자크이다. “세 작곡가 모두 어느 연주회에서나 많은 사랑을 받죠. 그러나 각 악기의 연주자들에겐 명인기(Virtuosity)를 요구합니다. 저는 항상 소리의 아름다움과 색채를 깊게 연구합니다. 또한 작곡가 내면의 바람이 무엇인지, 그 원(願)을 잘 드러내고자 하죠.”
음악 안에서 이룬 가족의 따스함
이번 SSF는 ‘All in the Family’, 가족을 주제로 한다. 부부가 바이올린과 첼로를 맡은 ‘에스프레시보! 피아노 콰르텟’만큼 이 주제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음악가도 찾기 힘들 것이다. 약 9년 전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가 ‘객석’에 기고한 글에서도, 두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그려진 바 있다.
“학교와 콘서트장을 막론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 언제나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다니신다. 특히 제이미가 야내 샤론 로빈슨을 보는 그 눈빛은, 하트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들까지 ‘심쿵’할 지경이다. 시크한 샤론은 정작 눈 하나 깜짝 안 하지만!”(‘객석’ 2015년 7월호)
부인인 첼리스트 샤론은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이제 함께한 지 50년이 넘었습니다. 개인적인 삶, 그리고 음악적인 생을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연주도 함께 하지만, 여행을 하며 세상의 새로운 곳을 함께 보고, 음식과 와인을 즐깁니다. 수영·카약·등산을 하며 자연을 즐기죠. 클리블랜드에서는 함께 재능 있는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제 삶은 그녀로 인해 풍요로워집니다.”
한편 올해 SSF에서는 앞서 묘사된 라레도의 가족과 같은, 행복한 가족의 모습만 그리지는 않는다. 여러 작품을 통해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그릴 예정. ‘비극의 가족들’로 딕(V. Dyck)과 글리에르(R. Glière)의 작품을 다루기도 하고, ‘비극의 피날레’를 주제로 그라나도스와 무소륵스키의 실내악 작품을 연주하기도 한다. 그만큼 ‘가족이란 무엇일까’라는 주제를 궁구해볼 수 있는 자리이다.
제이미 라레도는 음악을 함께 하는 연주자들, 그리고 제자들 모두를 따스한 가슴으로 품에 안을 ‘음악적 가족’으로 여기고 있다. 끝으로, 음악으로 이어진 후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다.
“재능 넘치는 음악가들과 연주와 다른 활동들을 함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저는 11살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데뷔했고, 17세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일찍 세상에 알려졌지만, 최대한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지금 만나는 다른 음악적 영재들에게도 그러한 삶을 권유합니다. 음악적으로는 현재 활동하는 연주자뿐 아니라 과거 연주자의 음악을 연구할 것을 추천해요. 당시 연주자들은 지금만큼 획일화되어 있지 않지요. 저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오이스트라흐와 밀슈타인에게서 큰 영감을 얻었답니다. 제게 성공은(사람마다 그 정의는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갖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발전하려고 노력하세요. 저는 지금 82세이지만 여전히 발전하고 싶고, 어제보다 더 나은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그러한 꿈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글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이미 라레도(1941~) 볼리비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195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후 모든 협주곡 데뷔 무대를 메이저 오케스트라와 가지며 예후디 메뉴인·아이작 스턴의 뒤를 이을 연주자로 떠올랐다. 부인 첼리스트 샤론 로빈슨과 앙상블 팀으로 활동하며 현재 클리블랜드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PREVIEW
제19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SEOUL SPRING FESTIVAL OF CHAMBER MUSIC
올해로 제19회를 맞이한 SSF가 올해는 ‘All in the Family’를 주제로 찾아왔다.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양한 음악 사조와 악파들의 작품에서 찾았다. 총 13일간의 공연을 위해, 60인의 예술가들이 무대를 준비 중이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일정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