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ZOOM IN
올 봄엔 현대음악과 친해지자!
탄생 150주년을 맞은 쇤베르크를 기점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3인 아티스트의 무대
계절의 시작인 봄에는 언제나 새로운 현대음악이 가득 울린다. 이달엔 특별하게도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작곡하는 이가 셋이나 찾아왔다! 언젠가 배워야지 하고 현대음악을 한쪽에 밀어 놨더라면, 바로 지금 그 의지를 꺼내올 때이다
글 이의정 기자
1874년 9월 13일,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슈타트에서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가 탄생했다. 그의 음악이 우리가 흔히들 ‘현대음악’이라고 부르는 모든 20~21세기 음악의 시작점은 아니지만, 그 시작점처럼 여겨질 정도로 ‘현대음악’이라는 정신의 상징적인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의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그가 오늘날의 현대음악에 미친 영향을 살짝 들춰보자.
이미 1900년대부터 그는 무조성을 실험하고, 기존의 화성 이론을 벗어나고 있었다. 처음으로 조성을 벗어나 발표된 곡은 1908~1909년에 작업한 연가곡 ‘공중정원의 책’ Op.15이다. 작품에서 피아노는 고의적으로 협화음을 회피하여 불편하고 낯선 분위기를 조성하며, 성악 선율은 아름다운 노래 대신 기악적인 움직임으로 이전 세기와 다른 표현 전략을 취한다. 이와 같은 스타일은 더 자주 연주되는 ‘달에 홀린 피에로’ Op.21(1912)로 접해 봤을 지도 모른다. 두 작품이 모두 담긴 메조소프라노 얀 데가에타니(1933~1989)의 음반(Nonesuch)을 들어보자. 각각 1970년과 1974년에 녹음됐는데, 2005년에 발매되어 좋은 음질로 20세기의 목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얀 데가에타니는 20세기에 여러 현대음악을 꾸준히 부른 성악가로 작곡가 조지 크럼(1929~2022)과의 협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크럼의 ‘옛 어린이들의 목소리’(1970) 초연에도 데가에타니가 참여했다.
1910년대 작품은 무조성의 시작으로 의미가 있지만, 쇤베르크의 작품세계에서 음악이론으로 확립된 것은 역시 ‘12음 기법’이다. 이는 서양음악에서 한 옥타브 사이에 존재하는 12개의 음에 임의의 순번을 부여해 음악을 구성하는 작곡 기법이다. 그가 이를 두고 “앞으로 100년간 독일 음악의 위상을 보장할 이론”이라고 음악학자이자 동료인 요제프 루퍼에게 말한 것은 이제 너무나 유명한 틀린(?) 문장이 됐지만, 12음 기법의 위상은 적어도 제2 빈학파가 유지된 반세기 동안 전 세계 서양음악 작품 발표에 영향을 줄 정도였다. 21세기인 현재, 이 기법만을 활용해서 발표되는 작품은 소수이지만, 이 이론의 일부 개념을 활용하는 작품은 여전히 빈번하게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대학을 막론하고 작곡과 학생이라면 반드시 이를 활용한 작품에 손을 대야 한다.
12음 기법은 1921년경 고안됐고, 이를 활용한 쇤베르크의 첫 작품은 ‘다섯 개의 피아노 소품’ Op.23이지만,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 Op.25을 조금 더 자주 접할 수 있다. 작년 말에 온라인으로 발매된 유자 왕의 싱글(DG)로 작품의 마지막 곡인 ‘지그’를 들어보자. 화성과 선율의 완전한 변화를 꾀하다 보니 리듬의 반복성이 증가하고, 음정이나 음역이 달라져도 유사한 음형을 그리며 곡이 진행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한쪽의 지면에서 그의 작품을 충분히 돌아보기는 어렵지만, 무조성과 12음 기법이란 두 개의 키워드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그가 일으킨 작곡계의 변화에 접근하는 데에 부족하지 않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새로운 작법을 시도하며 작곡가가 가졌던 마음가짐이다. 그가 오늘날 현대음악의 상징이 된 이유에는 구체적인 이론도 있지만, 익숙했던 기존의 도구를 내려놓고 새로운 방법과 소리를 마주하자는 의식적 사명감도 빠뜨릴 수 없다. 그럼, 이 마음가짐을 견지하고, 이어지는 지면에서 올해의 봄을 새롭게 만들어 주는 몇 개의 공연을 만나보자.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쇤베르크보다 훨씬 친절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recommended album
Nonesuch 0349710826
DG 4865676
4월 공연을 앞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3인
1 다닐 트리포노프
그의 새로운 면모를 만날 시간
스타 피아니스트가 선보이는 20세기 음악 특강
2010년 쇼팽 콩쿠르 3위를 달성한 이후부터, 다닐 트리포노프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내한하는 독주회마다 잘 짜인 프로그램을 준비해 오기 때문에 혹자는 그를 그저 피아니스트로 바라보겠지만, 그는 사실 빈 오선지에 음표를 직접 적어 넣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클리블랜드 음악원 재학 시절 작곡을 함께 공부했으며, 피아노와 실내악을 위한 작품 작업을 즐긴다고. 그가 편곡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데, 원곡인 c# 단조 대신 직접 여러 조성을 연주하여 가장 적합하다고 느낀 b♭단조로 전조하여 연주한다.
십여 년간 이어진 그의 4번의 내한(2013·2014·2018·2023)에서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크게 느끼기 어려웠지만, 올해 돌아온 레퍼토리는 사뭇 다르다. ‘몇십 년(Decades)’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공연은 자신이 살았던 1990년도를 제외한 20세기를 십 년 단위로 끊어서 조명한다. 1900년도의 작품 하나, 1910년도에서 하나, 1920년도에서 하나… 이렇게 총 9곡의 20세기 음악이 다가오는 4월 1일 독주회의 프로그램이다. 마치 지난 세기 작곡 양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언어 없이 알아보는 강의 같다.
알반 베르크(1885~1935), 프로코피예프(1891~1953), 버르토크(1881~1945), 에런 코플런드(1900~1990)로 이어지는 1부는 190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로, 무너진 조성이 생생하게 들리는 작품이 이어진다. 화성은 익숙한 방향으로 가는 듯하다가 기대를 저버리고, 선율은 따라 부르기 불가능할 정도로 ‘노래하지 않는’다. 한 작품에 일관성을 부여해 주던 화성과 선율이라는 편한 도구를 버리고, 당대 작곡가들이 새로 찾은 일관성의 도구가 무엇이었을지 고민하며 들어보자. 좋은 도구를 버리면 인간은 보다 원초적인 방법을 택하게 되니, 복잡하지 않게 접근하는 것이 좋은 열쇠일 것이다.
2부의 메시앙(1908~1992), 리게티(1923~2006), 슈톡하우젠(1928~2007)에 해당하는 1940년대에서 1960년대는 조금 다르다. 이 작곡가들은 새로 찾은 울퉁불퉁한 도구를 꽤 날카롭게 벼렸다. 작곡가가 새로 부여한 규칙을 미리 알지 못하면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는 정보가 너무 많을 테니, 이들의 작품은 사전 지식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존 애덤스(1947~), 존 코릴리아노(1938~)는 다시 색다르다. 그들은 버렸던 화성과 선율을 이전과 다르게 활용하는 법을 익혀, 새로운 도구와 적절히 혼합해 낸 작곡가다. 덕분에 익숙한 화성과 따라갈 수 있는 선율이 이전 세기와는 다른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다. 들리는 음악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이것이 왜 익숙한지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2시간 동안 듣는 완벽한 20세기 음악사 요약에 관심이 있다면, 이번 내한 독주회는 최고의 ‘특강’이 될 것이다.(트리포노프는 고전적인 레퍼토리로 2일(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5일(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내한 리사이틀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Performance information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독주회
4월 1일 오후 7시 30분 | 롯데콘서트홀
알반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슈톡하우젠 피아노 소품 9번, 존 애덤스 ‘차이나 게이츠’ 외
다닐 트리포노프(1991~)
2010년 쇼팽 콩쿠르 3위,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으며, 2019년 뮤지컬 아메리카에서 올해의 아티스트상,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했다. 자신의 독주회 무대에서 직접 편곡한 작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다양한 인상을 선사하고 있다.
2 나래 솔
어려운 음악이론은 이제 그만!
전공자도, 비전공자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소리’에 관한 친절한 설명
대다수 사람은 시각 정보를 가장 편하게 여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어휘도 함께 발달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 본 것을 꽤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청각 정보는 다르다. 음악을 설명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위한 어휘를 몰라 두루뭉술한 다른 감각의 어휘를 섞어서 묘사한다. 클래식 음악처럼 가사가 없으면 더욱 어렵다. ‘부드러운 느낌’ ‘달려 나가는 모습’ 등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이미지를 활용하여 음악을 설명하는 것이 이미 기본이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피아노 작품을 여러 섹션으로 나누어 작은 영상으로 만드는 것이 즐거웠어요. 그게 발전되니 점점 영상의 주제가 넓어져서 공연·교육·스토리텔링·엔터테인먼트를 모두 혼합하여 영상을 만들게 됐죠.
영상을 위해 새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영상 편집을 배울 때는 많이 헤매서,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도 익혀야 했죠. 지금은 모두 익숙해졌지만요.
업로드한 영상 중 맘에 드는 것을 꼽자면 무엇일까요?
2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와 함께 만든 영상이 있어요. 엄마는 음악가가 아니지만,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견디고,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해 음악을 써보라고 격려했어요. 그 작업은 정말로 마음을 치유하는 데 효과가 있었고, 엄마와 특별한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여러 예술 중에서도 특히 음악은 너무나 추상적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래 솔님의 영상을 보면, 그런 음악을 이해하기 쉽게 좋은 비유와 단어로 쏙쏙 알려주더라고요.
눈치채 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그런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하기 위해 정말 공을 많이 들이고 있거든요. 잘 압축된 쉬운 설명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개념을 정리해야 합니다. 저도 이해하는 과정을 헤매면서 더 간단한 언어를 새로 떠올릴 때도 많고요. 음악을 무척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친구나 가족에게 전달한다고 생각하고 설명을 씁니다.
지난해부터 엘프필하모니의 제1호 상주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입니다. 엘프필하모니와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함께하고 있나요?
저와 엘프필하모니가 동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주제로 함께 영상을 제작하고 있어요. 상주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서 더 다양한 장르에 관해 알리는 교육 영상을 만들려고 하고요. 최신 영상으로는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탐구한 영상이 있죠.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연주했던 안네 조피 무터와 나눈 인터뷰도 영상 안에서 보실 수 있어요.
연구, 그리고 작곡
최근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테마곡을 다양한 작곡가 스타일로 연주하는 영상을 봤어요! 이전에 큰 인기를 얻은 영상도 4년 전에 업로드했던 10명의 작곡가(바흐·베토벤·슈만·쇼팽·리스트·드뷔시·사티·라흐마니노프·케이지·라이히) 스타일로 편곡한 ‘생일 축하 노래’ 연주였죠.
작곡가 스타일과 관련된 영상을 만들 때는 작곡가를 연구할 충분한 시간과 신중함, 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작업해요. 그러나 그들의 작곡 스타일만 가지고 작곡가를 완전히 ‘모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이 편곡 작업에 너무 엄격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익히고 편곡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데, 그래서 한 작품에 걸리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아요. ‘생일 축하 노래’ 영상은 작곡가의 역사까지 다루면서 전체 과정이 꽤 오래 걸렸고,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훨씬 적게 걸린 게 기억나네요.
연구했던 작곡가 중 가장 스타일을 정의하기 어려웠던 작곡가는 누구예요?
개인적으로는 슈만과 멘델스존이에요. 쇼팽이랑 비교해 보자면, 둘은 정해진 꾸밈음 스타일이나, 유사한 구절이 적은 작곡가예요.
이 작업을 통해 작곡에도 도움을 얻었겠어요.
앞서 말한 쇼팽, 그리고 베토벤·라벨·바흐의 스타일은 제 작곡 작업에도 정말 많은 영감을 줬어요. 제 작품에도 그런 스타일이 반영됐다고 느끼고요. 그들의 스타일을 너무 따라가게 될까 봐 우려되지는 않나요? 작곡할 때 떠오르는 영감을 ‘이 부분은 누구, 저 부분은 누구’하면서 세세하게 기록하지 않아요. 그렇게 작업할 수 없는 것이, 영감이란 그 모든 게 얽힌 혼합물이라 그 출처를 가를 수 없이 모호할 때도 있거든요. 제가 작품을 공부할 때 집중하는 것은 걸작의 훌륭한 디테일이고, 그런 세세함을 배워 작곡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2020년에 발매한 음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표제와 함께 발표했습니다. 작곡 과정에서 대상을 묘사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쓰나요?
작품에 표제를 많이 쓰고, 실제로도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작곡하지만, 대상을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곡은 정말 직관에 의존해서 하는 편이고, 대상보다는 감정 표현에 더 관심을 둬요. 물론 감상자가 저와 동일한 감정을 느끼며 들을 필요는 없어요!
음악가로 처음 선 한국 무대
통영국제음악제에는 처음으로 참가합니다.
전문가로서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제 가족의 뿌리인 한국과, 그곳의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강연과 공연을 함께 하는데, 제목이 ‘오픈 보더스(Open Borders)’예요.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음악은 ‘깔끔하게’ 상자로 분류해 낼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흑백으로 나눠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다양한 음악은 이리저리 통합되어 제 작업에 영향을 주는데, 이들을 탐구하는 과정에 관객을 초대하고 싶어요.
자작곡과 즉흥연주를 모두 감상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주제는 무엇인가요?
클래식 음악 작곡가의 작품 속 디테일한 부분을 감상하는 방법론에 대하여 논의할 예정입니다. 각 시대마다 존재했던 당대의 스타일을 꼼꼼하게 이해하면, 사람들의 귀는 더 예민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요. 관객에게 음악을 듣는 귀를 키워주고 싶습니다. 또, 이런 과거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소리를 만드는 방법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올해는 무엇으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이번 해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공연을 소화하고 있어요. 또, 영화음악, 게임음악 등의 부분을 연구 중이고, 여러 협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곧 유튜브에서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나래 솔의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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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국제음악제 ‘나래솔의 오픈 보더스’
4월 6·7일 |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
나래 솔(1991~)
줄리아드 음악원과 토론토 왕립음악원의 글렌 굴드 스쿨에서 수학했다. 월트디즈니홀을 비롯한 북미에서 주로 연주했으며, 음악이론·피아노·작곡에 관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2023년부터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의 상주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3 티에리 위에
4월에 온다면 3월부터 기다려지는 공연
문학과 음악의 결합으로 다층적 감상을 완성한 그의 작품
티에리 위에는 클리블랜드 피아노 콩쿠르,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 등에서 수상하며 국제적인 피아니스트로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33세가 되어서 돌연 작곡을 시작하였는데, 충분한 전문 연주자 경력 덕분에 그는 “작곡할 때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연주할지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어서, 내게 음악은 보이지 않게 흐르는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분명한 것으로 느낀다”라고 말한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아와 작곡가로서의 자아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묶인 것이다. 그가 총체적인 만큼, 그의 작품은 문학·회화·언어·예술 등을 총체적으로 담아 다양한 층위의 감각을 자극한다. 티에리 위에가 작곡한 ‘어린왕자’가 4월 무대에 오른다. 특히 올해는 생텍쥐페리(1900~1944)의 서거 80주년이라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2012년에 작곡한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의 동명소설과 내용뿐만 아니라 특징도 닮아있습니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게 단순하면서도 복잡해요.
맞아요. 원작 ‘어린왕자’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감정·원칙의 본질을 다루는 철학 소설이죠. 덕분에 이를 견지하고 작곡했더니 음악이 자연스럽게 모든 연령층을 아우르고 있었고, 그 사실에 정말 행복했어요.
음악으로 탄생한 ‘어린왕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다양한 버전으로 작곡한 이유가 있을까요?
여러 단체의 위촉 덕분이었죠! 이번에 서울에서 연주하는 2012년의 첫 버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어린왕자’는 프랑스 툴루즈의 우주비행센터(Cité de l’espace) 위촉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019년에 쓴 관현악을 위한 버전은 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포페이 드 베아른 오케스트라의 공동 위촉 덕분이고, 마지막 버전인 피아노와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은 2022년 툴루즈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위촉이었어요.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 이 모든 버전을 전부 좋아해요!
작은 편성의 작품을 큰 편성으로 바꾸는 작업이 복잡하지는 않나요?
큰 편성을 작은 편성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쉽죠.(웃음) 피아노와 바이올린에만 있던 선율을 여러 악기에 아이디어를 더해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재밌습니다.
작품에는 내레이션이 등장합니다. 프랑스 문학인 ‘어린왕자’를 프랑스 언어권에서 낭독할 때와 다른 언어권인 나라에서 자막과 함께 낭독할 때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겠어요.
이 작품을 해외에서 연주할 때마다 하는 고민입니다. 자막을 택할지,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할지 말이죠. 저는 이 선택권을 공연 주최 측에 넘깁니다. 예술의전당 공연은 ‘어린왕자’가 가진 ‘프랑스 고전 문학’의 특징을 더 파고들었어요. 이 공연에서는 프랑스 문학과 음악의 고유함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음악과 내레이션이 혼합된 이 작품의 장르는 무엇일까요?
이런 장르가 새로운 것은 아니죠. 예를 들면 프란츠 리스트는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의 작품을 작곡했어요. 음악과 말하는 텍스트가 혼합된 작품이죠. 내레이션은 음악과 함께 등장하기도 하고, 음악 없이 등장하기도 하고, 또는 음악만 연주되는 순간도 많습니다. 마치 가수 없는 오페라처럼 느껴지기도 하겠네요. 관객은 75분 동안 다양한 듣기 전략을 활용하게 될 거예요. 사진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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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위에 ‘어린왕자’
4월 12일 오후 7시 30분 |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티에리 위에(작곡·피아노), 클라라 세르나(바이올린), 미헬 볼코비츠키(내레이션)
티에리 위에(1965~)
클리블랜드 피아노 콩쿠르 1위,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도쿄 피아노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33세부터 작곡을 시작해 120곡 이상의 작품을 완성했으며, 그의 작품은 풍부한 감정과 내용을 전달한다고 평가받는다.
REVIEW
피아니스트 조재혁과 무용수들의 협연
현대발레 ‘메시앙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복잡하고 난해한 선율을 따라 익숙한 인간 신체가 떠다니는 무대
3월 8~10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메시앙이 1944년 발표한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은 이 곡과 얽힌 모두에게 도전적인 작품이다. 작품을 쓴 작곡가도, 연주하는 연주자도, 이를 감상하는 관객에게도. 이 작품을 연주하는 2시간은 다른 시간선에 놓인 듯이 힘겹게 흐른다. 이번 공연에는 그 난경에 무용수가 동참했다.
어려움은 나누면 낫다던가. 복잡하고 난해한 선율을 익숙한 인간 신체에 담아내니, 쫓아가기 어려웠던 음악에서 조금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나아가 그 조금의 이해는 복잡한 구조로 얽힌 스무 섹션의 음악을 계속 따라가도록 만들었다.
‘메시앙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은 메시앙의 피아노 모음곡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에 현대발레가 더해진 공연이다. 안무가 유회웅이 연출·안무를,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연주를 맡았으며, 무용수 김주원·최낙권·김현웅·김유식·김소혜·이창민이 출연했다. 공연 제목 속 ‘두 개의 시선’은 안무가의 것이다. 작품 자체를 바라보는 감상자로서의 시선, 그리고 이에 영감을 얻어 안무로 재생산하는 창작자로서의 시선이다.
작품의 소재가 성경에서 파생됐듯이, 이를 표현한 본 공연의 무대는 전반적으로 신성했다. 우선 무대 공중에 매달린 유리창이 이러한 역할을 했다. 유리창은 4개의 불투명한 유리를 이어 붙여 만든 듯한데, 조명이 서로 다른 재질의 유리 표면을 투과하며 조금씩 다르게 굴절됐다. 공연에 사용한 조명은 하얀빛·푸른빛·노란빛·붉은빛 등으로, 불투명한 유리에 색빛이 투과되니, 스테인드글라스가 떠올랐다. 이러한 조명 아래의 무용수는 분명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춤을 췄다. 관객에게 이 역할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상징을 담은 그들의 의상과 안무는 각자의 역할을 추측하게 만들었다. 무용수는 스무 개의 모든 시선에 등장하지는 않았고, 각자의 역할이 필요할 때만 등장했다.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시선도 여러 곡이었다. 그로 인해 공연을 주요하게 이끈 것은 쉼 없이 2시간 넘게 연주한 피아니스트 조재혁이었다.
공연을 마친 뒤 조재혁에게 이번 작품의 준비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연습하며 지낸 것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근데, 이 12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연습했어요. 성경에는 ‘신묘막측’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신통하고 묘해서 앞을 추측하기가 막막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작품에는 그런 곡이 잔뜩 있었는데, 그 신묘함에 오히려 빠져든 게 아닐지요”라며 어려움과 매력이 공존한 이번 공연에 대해 말했다.
규칙이 없는 무작위성이 계속 이어지면 감상자는 그것에 금방 질린다. 그러나 규칙을 알 수 있도록 조금의 힌트를 계속 제공하면, 낯섦은 순식간에 흥미로 변모한다. 이 공연은 작품의 분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앙의 시선에 안무가가 지시등을 더하여 관객이 완주할 수 있도록 도운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국내에 도전적이던 과거 작품에 새로운 도전을 더한 이러한 작품이 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 인아츠프로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