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아이 이탈리아/프랑스/오스트리아/모나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5월 27일 8:00 오전

GAEKSUK EYE

 

FROM ITALY

 

카라칼라 욕장의 변신 ‘랩소디 인 블루’ 4.13

& 국립국악원 ‘세자의 꿈’ 5.4

 

이색적인 무용 공연으로 물드는 로마의 밤

 

카라칼라 욕장의 부활과 파란빛 춤

카라칼라 욕장의 ‘물의 거울’에서 펼쳐진 아테르 발레 ‘랩소디 인 블루’

지난 4월 4일, 문화예술의 중심지이자 로마의 기념비적인 장소로 꼽히는 카라칼라 욕장에 고대 건축과 조화를 이루는 현대 건축물이 세워졌다. 이는 카라칼라 욕장의 영광스러운 과거 역할을 다시 되살린다는 의미를 담은 ‘물의 거울(Uno specchio d’acqua)’이라는 공연장이다. 1800년 만에 채워진 가로 42m, 세로 32m인 물의 공간은 후면에 고대 욕장 유적을 비추며 고대와의 재결합을 상징했다. 이전까지 카라칼라 욕장이 그저 배경으로서 로마 오페라 극장의 여러 공연이 이루어지는 수동적인 장소였다면, ‘물의 거울’은 존재만으로 능동적인 장소가 됐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물의 거울’은 공연에 따라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물속에 20개의 워터제트와 여러 반사경을 설치해 물과 빛의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며, 중앙에 마치 구름과 같은 증기를 생성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었다. ‘물의 거울’에 설치된 무대는 춤·음악·연극이 수중 요소와 어우러져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표현의 공간이 된다.

이 화려한 부활의 첫 공연은 아테르 발레가 담당했다. 작곡 100주년을 맞이한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음악으로 한 이라체 안사(1976~)와 이고르 바코비치(1982~)의 안무작이 펼쳐졌다. 파란색 의상은 물과 하늘의 파란색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재즈와 블루스에 사용되는 선율 음계인 ‘블루 노트’를 의미하기도 했다.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내는 음성에 맞춰 짧은 동작들은 끊임없이 방향을 바꿨다. 음악으로 표현되던 랩소디의 자유로운 진행을 무용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준 순간이었다. 안무는 작품의 다섯 가지 주제에 따라 흩어지고 다시 결합했다. 피날레의 화려한 현악기는 공기와 지평선 사이의 틈을 열어 음악적 숨결을 우리에게 불어 넣는 듯하다.

‘물의 거울’은 로마의 위대함에 대한 증언이며, 예술·건축·역사가 인류애와 혁신에 포함되는 조각임을 보여준다. 고대가 어떻게 현대에 영감을 주고 개혁할 수 있는지 생생히 보여주었다.

 

한국춤의 아름다움에 젖어들다

‘세자의 꿈’ ©로마한국문화원

‘세자의 꿈’ ©로마한국문화원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5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주이탈리아한국문화원·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주최로 로마 중심부의 아르헨티나 극장에서 ‘세자의 꿈’이 뜻깊은 막을 올렸다. 공연 시작 전부터 극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좌석은 일주일 전에 매진되었다. 로마의 심장부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관심을 체감할 수 있었다.

80분간 진행된 공연은 국립국악원이 한국춤과 한복의 아름다움을 선보인 시간이었다. ‘세자의 꿈’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3막 작품으로, 세자가 궁정에서 성인식을 마치고 진정한 군주가 되기 위해 백성의 삶을 배우고자 궁 밖에서 하루를 지내는 내용이다. 1막에서는 웅장하고 위엄 있는 궁정을 보여주었는데, 화려한 안무뿐만 아니라 춤·음악·의상에 담긴 한국미를 은유적으로 이탈리아 관중에게 전달했다. 완벽한 대칭의 춤과 화려한 전통의상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궁 밖의 삶을 다룬 2막은 가야금병창 ‘방아타령’으로 열었다. 여인들의 춤과 남성들의 한량무로 백성들의 모습을 표현했으며, 이어 살풀이춤으로 애환을 표현했다. 마지막 3막은 풍물놀이패와 함께 소고춤·설장구·진도북춤을 차례로 선보였으며, 특히 소고 독무와 상모돌리기는 다채로운 볼거리는 물론 흥과 신명이 더해져 관중의 열기가 뜨거웠다. 한국적 아름다움에 매료된 박수갈채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이실비아(이탈리아 통신원·성악가) 사진 카라칼라 욕장·아테르발레·로마한국문화원

 


 

FROM FRANCE

 

파리 오페라 ‘살로메’ 4.9~5.8

충격적 연출로 ‘피해자’ 살로메의 아픔을 그리다

 

©Charles Duprat/OnP

지난해 미국 연출가 리디아 스타이어(1978~)에 의해 엄청난 화제를 모은 ‘살로메’ 프로덕션이 재공연됐다. 성경에 나오는 헤롯 왕과 살로메,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오스카 와일드에 의해 소설화되었지만, R. 슈트라우스가 오페라 대본을 직접 쓰고 1905년 초연했다.

4월 9일 첫 공연은 듣던 대로 충격적이었으나, 청중은 갈채로 이 문제작에 감사를 표했다. 일반적으로 살로메는 에로틱한 춤을 추는 사악한 여성으로 그려지나, 이번 연출은 색다른 일면을 제시한다.

헤롯 왕의 궁전은 최악의 타락에 빠져 있다. 그는 형의 아내 헤로디아와 부도덕한 결혼을 했고, 이를 고발한 세례 요한은 감옥에 있다. 무대는 현대식으로, 검회색 벽 아래 테라스와 거대한 유리가 달린 방이 보인다. 왕의 생일 잔치에서는 귀족들이 마약을 삼켜가며 음란한 집단 성행위를 즐기고 있다. 효과적인 몸짓을 통해 그 현장이 얼마나 구토를 일으킬 만한 곳인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그 가운데 회색 바지 차림의 살로메(리스 다비드센 분)가 보인다. 잘생긴 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 요염한 베일의 살로메와는 전혀 다르다.

테라스에는 무기를 장착한 군인과 핵 오염 당시 노란 안전복을 입을 사람이 보인다. 그들은 잔치에서 강간과 살인을 당한 시체를 치우는 이들이다. 극 중반까지 선물처럼 빨간 리본으로 치장된 나체의 남녀들이 쉬지 않고 죽어서 내려온다. 이처럼 한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당한 곳에서 사는 살로메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그들과 같은 인간이 되는가 아니면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사춘기 소녀 살로메의 심리적 표류가 이 연출의 문제의식인 듯하다.

©Charles Duprat/OnP

살로메는 헤롯 왕과 헤로디아의 불륜을 힐책하는 요한의 음성을 듣는다. 감옥에 갇힌 요한을 유혹하지만, 요한은 그녀를 뿌리친다. 이어 헤롯이 살로메를 찾아와 춤을 추라고 종용한다. 하객들이 모두 테라스에 등장하고, 살로메는 춤을 추겠다며 감옥 천장 위로 올라간다. 관능적이기로 유명한 ‘일곱 베일의 춤’이 연주되지만, 춤은 볼 수 없다. 대신 헤롯 왕이 살로메의 옷을 하나씩 벗기고 강간한다. 이어서 하객들도 모두 나서 집단 강간을 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장면이 헤롯 왕에 의한 성적 유린으로 대치된 것은 장면이 가진 성적 교감을 뜻하기에 해석상 무리는 없다. 그러나 집단 강간으로 연출된 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무리를 헤치고 일어난 살로메의 하체는 피범벅이다. 그녀는 은쟁반에 담긴 요한의 머리를 대가로 요구한다. 중앙 벽이 양분되며 요한의 머리를 든 시종이 등장한다. 이때 살로메는 두 명으로 분열된다. 한 살로메는 육체적으로 미쳐가는 역할(엑스트라)로, 바닥을 기며 요한의 머리를 껴안고 애무한다. 다른 살로메는 꿈속의 역할(리즈 다비드센)로, 감옥 속 살아있는 요한과 만나 사랑을 나눈다. 그 사이 감옥이 하늘로 올라가고, 마치 그녀의 영혼은 구원받은 것 같지만 사실은 도착적 욕구의 완성이다.

헤롯 왕은 살로메를 죽이라고 명한다. 하지만 총알은 헤롯 왕에게 겨냥된다. 마지막은 한 시종이 하객 모두를 죽이는 장면이다. 모든 이미지가 충격적이었지만, 이 작품에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도덕의 지표를 잃은 현대인의 허상과 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살로메가 원했던 것은 육체적 쾌락이었을까? 아니면 사랑, 혹은 죽음일까?

살로메 역의 소프라노 리스 다비드센은 이번 공연의 백미였다. 뛰어난 드라마틱 소프라노로서 풍성한 음역과 음폭, 다양한 음색까지 시원스럽게 투사되는 발성으로 장내를 장악했다. 모든 재능을 다 가진 이 성악가는 드물다고 말할 수 있는 압도적인 어떤 것을 가졌다. 이 무겁고 흉측한 연출이 성공작이 된 이유는,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지닌 관능적 아름다움과 드라마틱한 심리적 복선이다. 바그너적인 선율, 때로는 모더니즘적인 리듬은 베르그 등 독일 오페라 작곡가의 도래조차 예고한다. 슈트라우스의 천재성이 여기에 있다.

배윤미(프랑스 통신원) 사진 파리 오페라

 


 

FROM AUSTRIA

 

빈 콘체르트하우스 ‘랩소디 인 블루 100’ 4.14

100년 전 작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조지 거슈윈

1924년 2월 12일, 뉴욕 에올리언홀에서 조지 거슈윈(1898~1937)의 ‘랩소디 인 블루’가 초연됐다. 이를 기념하는 공연 ‘랩소디 인 블루 100’은 길이 기억될 감동을 선사했다.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1944~)는 그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이끄는 체코의 브르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랩소디 인 블루’를 지휘·협연했다. 뉴욕필을 지휘하면서 동시에 피아노를 협연했던 번스타인(1918~1990)의 뒤를 이은 것이다.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는 ‘미국 줄리아드가 낳은 100년 동안의 가장 훌륭한 졸업생’으로 선정된 인물이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랩소디 인 블루’의 여러 판본 중 오리지널 재즈 밴드 판본을 선택했고, 오케스트라 규모로 새로이 옷을 입힌 연주를 선보여 갈채와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이번 공연은 거슈윈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세 유대인 작곡가의 작품을 기념하는 콘서트이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뉴욕으로 이민 온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외에도, 프라하에서 태어나 나치의 포로가 돼 바이에른에서 사망한 슐호프(1894~1942)와 체코 브르노에서 출생하여 빈에서 활동하다 나치를 피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 간 코른골트(1897~1957)의 교향곡도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미국 문화가 담긴 음악적 만화경

©Štěpán Plucar

공연 당일, 빈 콘체르트하우스 그레이트홀(1천 8백석)이 가득 찼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이 구소련·영국·프랑스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10년간 체류하면서 미국문화를 알려 둔 탓인지, 빈의 청중은 재즈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거슈윈은 ‘미국 음악의 소리’ ‘미국의 느낌’ ‘미국 팝 음악의 아이콘’ 등으로 불리며 미국적인 음악의 창시자처럼 사랑받고 있다. 오페라 ‘포기와 베스’와 아리아 ‘서머타임’, 관현악곡 ‘파리의 미국인’ 등은 불멸의 재즈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랩소디 인 블루’는 거슈윈이 흑인 음악가들보다 더 뛰어난 재즈적 기법으로 작곡한 곡으로 오늘날 ‘재즈 협주곡의 왕’이라고 높이 평가받는다. 거슈윈은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고, 미국이 발산하는 거대한 용광로 같은 상황을 음악적인 만화경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국민에게서 한결같이 우러나오는 삶을 긍정하는 열정, 우리들의 블루스, 대도시의 광기를 융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스/브르노필은 이날 조지 거슈윈의 작곡 정신을 그대로 훌륭하게 표상해 내면서 100세를 맞은 ‘랩소디 인 블루’를 생생한 젊은이로 부활시켰다.

 

음악으로 아픈 역사를 반추하기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슐호프는 체코 최초의 재즈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춤 모음곡, 재즈 오라토리오 ‘H.M.S. 로열 오크’ 등 그의 초기 작품에 재즈 양식을 가미했다. 이날 연주된 그의 교향곡 2번(1932)에도 3악장에 ‘스케르초 알라 재즈. 알레그로 아사이’가 삽입돼 있다. ‘재즈풍의 스케르초. 매우 경쾌하고 빠르게’라는 뜻이다.

4살 때 부모를 따라 브르노에서 빈으로 이사 온 코른골트는 말러, R. 슈트라우스 등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며 유망한 작곡가로 성장했다. 1934년 나치가 대두하며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할리우드에서 막스 라인하르트(1873~1943) 연출가의 요청으로 영화음악 작업에 착수, 이후 영화 ‘로빈 후드의 모험’ 등으로 오스카 음악상을 받았다. 이번에 연주된 그의 교향곡 Op.40은 제2차 세계대전 전 빈의 아름다운 시절,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태양 아래서 느끼는 망향, 수백만 명이 학살당한 역사로 인한 유대인의 트라우마와 유럽 의식의 문제성이 융합된 작품으로, 청중은 숙연한 태도로 감상했다.

김운하(오스트리아 통신원) 사진 빈 콘체르트하우스

 

데이비스/브르노필은 올해 10월 내한해 2일(롯데콘서트홀), 4일(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 공연을 갖는다.

 


 

FROM MONACO

 

조성진 피아노 독주회 5.3

모나코에서 펼쳐진 풍부한 색채의 향연

 

조성진의 연주를 들을 때면 늘 섬세한 페달링에 감탄한다. 페달을 밟는 속도와 미세한 장력 조절, 패시지에 따라 싣는 힘의 정도, 댐퍼와 소프트 페달을 동시에 사용할 때의 인상적인 멀티 컨트롤. 손으로 빚은 음들을 매끈하게 감싸 안는 잔향은 깨끗하고 조화롭다. 하이든과 라벨, 그리고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엮은 5월 3일 모나코 연주회에서는 그 페달의 농도와 미묘한 음 빛깔의 변화가 더욱 돋보였다. 특히, 연주 장소인 몬테카를로 오페라 가르니에홀은 약 500석의 작은 규모로, 디테일에 귀 기울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다.

 

시대를 꿰는 영리한 큐레이션

조성진 ©JL Neveu

조성진은 내년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그의 작품 전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올 시즌 공연에서 라벨 레퍼토리를 조금씩 바꿔 선보이는 것은 그 준비 과정으로 짐작된다. 모나코에서는 하이든의 소나타 53번 Hob.XVI:34, 라벨의 ‘하이든 이름에 의한 미뉴에트(이하 하이든 미뉴에트)’와 ‘쿠프랭의 무덤’, 그리고 리스트 ‘순례의 해 2년’ 전곡을 택했다. 각 작곡가의 작품이 논리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균형이 잘 잡힌 프로그램이었다.

그중 눈에 띄는 곡은 ‘하이든 미뉴에트’였다. 라벨이 하이든의 철자를 음이름으로 치환해 만든 작은 푸가형 소품이다. 1909년 하이든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며 작곡한 오마주로,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조성진의 행보와 맞닿는다. 음악적으로도 하이든 소나타와 ‘쿠프랭의 무덤’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든 소나타의 e단조 조성은 ‘하이든 미뉴에트’에서 나란한조인 G장조로 넘어갔다가, 다시 e단조 ‘쿠프랭의 무덤’으로 돌아오는 조성적인 다리가 된다. 하이든 시대의 철저한 조성음악이 그리스 선법으로 장단조의 구분을 흐린 라벨식 조성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미뉴에트 형식은 바로크 모음곡 형식을 따른 ‘쿠프랭의 무덤’과도 잘 어우러진다. 라벨의 작품은 2부의 리스트와 어떻게 연결될까. 리스트의 ‘순례의 해’는 인상주의의 효시쯤으로 여겨지는 상당히 묘사적인 작품이다. 풍경이나 감정에 따라 화성을 옮겨나가는 색채는 이후, 드뷔시와 라벨에 큰 영향을 미쳤다. E장조와 e단조를 오가는 ‘순례의 해 2년’ 중 첫 곡 ‘혼례’는 ‘하이든 미뉴에트’가 지닌 중심 선율 위주의 구조와 ‘쿠프랭의 무덤’의 화성적인 뉘앙스를 이어준다.

다시 하이든으로 회귀해 보자. 하이든의 e단조 소나타는 피아노포르테가 막 상업화되기 시작하던 시절 작곡됐다. 하이든은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 피아노의 셈여림과 음색적 가능성을 탐구했다. 결론적으로 ‘색채’라는 커다란 틀 안에 쿠프랭이라는 바로크와 하이든이라는 고전, 라벨의 신고전주의와 인상주의, 그리고 리스트의 전인상주의와 낭만주의가 한꺼번에 꿰어진다.

 

섬세한 페달, 잘 다듬은 색채

몬테카를로 오페라 가르니에홀

관건은 이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연결하는가’다. 견고한 타건과 조금은 차가운 조성진의 음색은 인상주의를 한 겹 벗기면 드러나는 라벨의 탄탄한 구조를 건실히 구축했다. 건반 하나하나를 독립시켜 미세하게 조절하는 셈여림과 루바토는 하나의 잘 다듬어진 오케스트레이션처럼 입체적인 색채를 쌓았다.

연주를 완성하는 건 역시 페달링이다. 하이든 소나타의 1악장은 건조함과 산뜻함의 경계가 인상적이었으며, 2·3악장에서는 소프트 페달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예컨대 소프트 페달을 밟아 작고 부드러워진 음색과 페달 없이 손으로만 조절한 피아니시모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소프트 페달을 사용하면 해머가 두 개의 현만 때리게 되면서 울림 자체가 물리적으로 달라지는데, 타건의 심도를 조절해 그 접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피아노의 포르테적인 면모는 ‘순례의 해 2년’의 마지막 곡 ‘단테를 읽고’에서 폭발했다. 불길이 휘몰아치는 지옥보다는 거대하게 얼어붙은 지옥이랄까. 같은 홀에서 베르트랑 샤마유(1981~)의 ‘순례의 해’ 전곡을 감상한 적이 있는데, 힘과 체력 그리고 완벽한 테크닉으로 정평이 난 그의 ‘단테를 읽고’보다 훨씬 견고하고, 흡인력 있게 다가왔다. 모나코의 연주회에서 이례적으로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오늘의 중심은 라벨이었다. 멜랑콜릭한 색채가 감싸지만, 그 속에 드러나는 철저함은 조성진과 퍽 잘 어울렸다. 앙코르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와 여유로움이 묻어 나는 쇼팽 폴로네즈 6번 ‘영웅’을 듣고 나니 더욱 여실히 느껴졌다. 내년 라벨 전곡 프로그램은 그의 인생에 대단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사진 몬테카를로 오페라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