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RA TALK
국립오페라단의 국내 초연작
코른골트 오페라 ‘죽음의 도시’ 예습하기
1920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3막의 독일어 오페라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유럽인들이 겪은 죽음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이를 회피하고자 발현된 환상적 향유의 실태를 담아낸 작품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 속 코른골트의 섬세한 관현악법이 빛나는 오페라를 자세히 알아보자.
Performance information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
5월 23~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로타 쾨닉스(지휘)/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CBS소년소녀합창단/줄리앙 샤바스(연출)/아넬리제 노이데커(무대)/장 자크 델모트(의상)/테너 로베르토 사카·이정환(파울),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오미선(마리·마리에타), 바리톤 양준모·최인식(프랑크·프리츠) 외
PART 1 성악가와의 대화
바리톤 양준모
현실을 일깨워주는 깊은 소리
예술의전당 뒤편에 위치한 N스튜디오, 국립 예술 단체들의 연습 소리가 가득한 장소에서 ‘죽음의 도시’ 연습을 시작한 양준모를 만났다. 수많은 오페라 무대를 거치고도 여전히 “연출의 방향을 맞추기 위해 내 역할에 대한 생각은 빈칸으로 만들어놓는다”는 그는, 대부분 오페라 속 악역을 맡는 바리톤이지만 작품마다 “그 강렬한 캐릭터성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죽음의 도시’는 오페라 가수에게 극한의 음역대를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마치 또 다른 ‘바그너’의 작품 같기도 하죠. 사실 바리톤보다는 테너와 소프라노에게 부담이 큰 작품입니다. 특히 테너가 맡는 파울 역의 음역대는 정말 넓어요. 이 오페라 공연 중간에 테너가 목에 부담이 되어 교체되는 경우도 여러 번 봤어요. 이번 공연에서 파울 역을 맡은 테너 로베르토 사카와는 예전에도 두어 작품을 함께 한 적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죽음의 도시’ 공연을 했다고 하더군요. 함께 어떻게 노래하게 될지 기대하면서 연습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2013년 독일 뤼벡 극장에서도 이 작품을 공연하신 적이 있죠. 실제로 작품을 올리며 이 작품에 대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나비부인’ ‘라보엠’을 포함해 제가 공연하면서 눈물 흘리는 몇 안 되는 오페라 중 하나에요. ‘죽음의 도시’는 공연마다, 무대 위에서 테너가 마지막 노래를 부를 때 분장이 지워질 정도로 울곤 했었죠. 제 노래는 다 끝나고, 테너의 노래와 연출을 보면서요. 그래서 동료들이 늘 공연이 끝나면 “야, 왜 네가 울어?”라고 하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바리톤이 발견한 감동 포인트
‘죽음의 도시’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빈 사람들이 마주한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 오페라기도 합니다. 이들의 모습이 ‘마리’라는 죽은 아내에게 집착하는 파울의 환상으로 표현되죠. 오페라는 현실과 꿈을 오가며 진행됩니다. 바리톤 역인 프랑크 또한 ‘꿈속의 프리츠’가 있고, ‘현실의 프랑크’가 있는데, 이 둘이 어떻게 다르게 표현될까요?
그 부분은 비워놓은 상태예요. 제가 그림을 미리 그리면, 나중에 연출가가 지우기 어렵거든요. 같은 오페라를 여러 번 공연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내가 옛날에 이 작품은 이렇게 했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연출이 변질됩니다.
프랑크 역을 맡은 바리톤은 사실상 1인 2역입니다. 특히 파울의 환상 속에서 진행되는 2막에서 ‘피에로의 노래’를 부르는데, 이 노래는 바리톤들의 대표 레퍼토리로 꽤 사랑을 받는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를 처음 공부했을 때는 고민되는 아리아이기도 했습니다. 바리톤들이 원래의 무거운 소리에서 벗어나 가성을 사용해 목소리를 띄워서 부르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막상 작품을 공부하다 보니, 코른골트가 이 작품을 작곡했을 당시 프랑크 역을 무거운 소리의 바리톤이 맡길 원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굳이 ‘피에로의 노래’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프랑크와 프리츠(피에로)의 캐릭터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구로서 충고하는 프랑크의 단호함이 피에로로서 노래할 때도 묻어나는 것이죠. 결국 프랑크가 원하는 것은 친구인 파울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잖아요. 꿈에서의 그 노래에 프랑크가 원하는 것이 담겨있기도 하고요.
죽음 앞에 느끼는 무력감과 이를 회피하기 위해 도피적 향유를 찾는 현상은 지금 시대의 관객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페라가 건넬 수 있는 동시대적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프랑크가 원하는 오페라의 결말은 결국, 파울이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죠. 더 이상 과거에, 환상 속에 살지 말고 말이죠. 요즘 마약이 사회의 쟁점이 될 정도로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는 여전한 것 같아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지만, 오페라는 어렵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결국 프랑크는 파울을 끝까지 돕고, 파울은 죽은 아내의 그림을 붙잡고 울며 그녀를 잊기로 합니다. 프랑크가 현대인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현실로 돌아와 너의 자리를 찾으라’는 것 아닐까요.
강렬하고, 깊은 소리의 정체성
작년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맥베스’ 공연에 이어, 올해도 함께 하게 됐습니다.
잊지 않고 꾸준히 불러주셔서 감사하죠. 이제는 외국에서 활동하고 들어오는 젊은 성악가들도 많아졌고, 저도 어느덧 중견 성악가가 되었더라고요. 언제까지 노래할지는 모르지만, 성악가로서 잘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기 위해 모든 공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중견 성악가’라는 말이 나온 김에, 작년에 국내 오페라 무대와 교향악 협연 등 다수의 무대에 올랐습니다. 50대를 맞이하는 바리톤에 주어지는 또 한 번의 전성기일까요?
성악가의 삶이란 등산과도 같습니다. 한 발 한 발 힘들게 정상을 올라가서, 정상을 잘 누리고, 올라간 것보다 두 배 느리게 내려와야 안 다치는 원리죠. 저도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중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중인 것 같기도 해요. 만약 그 정상에 오른다면, 삶을 잘 누리다가 제 자리를 잘 찾아서 내려오는 게 마지막 임무죠. 바리톤의 레퍼토리는 젊을 때에는 모차르트·로시니 등에서, 40대로 접어들면 베르디·바그너로 자연스럽게 이동합니다. 50대에 들어서면서 달라진 점이 또 하나 있다면 곡 해석이에요. 예전에는 힘으로 고음을 내면서 몰입했다면, 지금은 오페라가 하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노래합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말을 한다는 생각으로 부르니 소리내기도 더 편해지더군요.
이번 오페라도 그렇지만, 오페라에서 바리톤이 주인공인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아요. 주인공인 테너의 친구거나, 아버지거나 악역인 경우도 많고요. 바리톤 음색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리톤은 한 마디로 ‘캐릭터 바리톤’이에요. 테너는 선한 역할인 반면, 바리톤은 특히 베르디나 푸치니 작품에선 어김없이 악당 역이죠. 하지만 바리톤이 빠지면 오페라에서 스토리를 진행할 ‘캐릭터’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요. 가끔 베이스가 이 역할을 맡지만, 바리톤 특유의 악마적이면서도 깊은 강렬한 캐릭터성이 나오기는 쉽지 않죠.
앞으로도 더 많이, 오래 무대에서 양준모의 ‘캐릭터 바리톤’을 보고 싶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공연하는 게 참 좋아요. 유럽에서는 공연이 끝나면 혼자 모자를 푹 눌러쓰곤 집으로 걸어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알아봐 주시는 관객들이 있으니까요. 국립오페라단과는 12월에 ‘서부의 아가씨’로 다시 만나고, 9월에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에도 오를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프로덕션으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전막을 만들 때가 된 것 같아요. 언젠가 공연이 된다면 꼭 참여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국립오페라단
ABOUT ‘죽음의 도시’를 미리 걷는다
줄거리를 미리 알면, 더욱 재미있다!
(원작은 조르주 로덴바흐의 소설 ‘죽음의 도시 브뤼주’)
여기, 슬픔에 잠긴 한 남성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파울’. 그가 슬픔에 빠진 이유는 죽은 아내 ‘마리’를 잊지 못해서죠. 이야기의 배경은 19세기 말, 벨기에의 한 도시인 브뤼주입니다. 파울은 아내의 초상화와 그녀가 쓰던 물건, 심지어는 머리카락까지 고스란히 보관한 방을 만들어놓았습니다.
1막, 파울의 친구 ‘프랑크’가 찾아옵니다. 파울의 가정부 ‘브리기타’는 프랑크에게 파울의 방을 보여줍니다. 친구가 죽은 아내의 머리카락까지 보관하고 있는 모습에 놀란 프랑크는 그녀를 보내주라고 권유하지만, 파울은 마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프랑크는 오는 길에 마리와 꼭 닮은 여자를 보았다며, 그 여인을 파울의 집에 초대했다고 말하죠. 아내를 꼭 닮은 무용수 ‘마리에타’가 등장합니다. 그녀에게 마리의 류트를 주자, 마리가 불렀던 노래를 부릅니다. 마리에타가 공연 준비를 위해 떠나고 파울은 자신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1막은 자신을 잊으라고 말하는 마리의 유령이 나타난 이후, 춤추는 마리에타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2막, 파울이 마리에타의 집 밖에서 서성이고 있네요. 가정부 브리기타는 기괴한 주인을 견디지 못해 수녀가 되겠다며 나타났고, 좀 전까지 다정했던 친구 프랑크는 왜인지 자신도 마리에타를 사랑한다며 언성을 높입니다.
곧 마리에타가 공연을 함께하는 동료들과 등장합니다. 공연단 피에로인 프리츠가 감상적인 ‘피에로의 노래’를 들려주네요. 마리에타는 남자 무용수 앞에서 노골적인 춤을 춥니다. 이를 본 파울은 화가 나서 연극을 중단시키라고 소리치죠. 파울은 마리에타에게 ‘너에게 끌린 이유가 죽은 아내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마리에타는 죽은 아내를 제치고 파울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합니다. 마리에타가 말합니다. “죽은 마리의 물건을 없애자!”
3막, 다음날입니다. 마리에타가 마리의 초상화 앞에 서있네요. 파울은 당장 방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는데, 마리에타는 비켜줄 수 없다고 버팁니다. 파울은 자신이 유혹에 넘어갈 뻔하자 죄책감에 시달리고, 마리에타는 마리를 이기고 싶은 생각에 방에 있는 머리카락을 쥐고 유혹의 춤을 춥니다. 그러자 파울은 이성을 잃고, 마리의 머리카락으로 마리에타의 목을 조릅니다.
어두웠던 방에 불이 켜집니다. 마리에타의 시신은 보이지 않고, 마리의 머리카락도 원래대로 놓여있습니다. 가정부 브리기타가 들어오더니 “마리에타가 두고 간 우산을 찾으러 잠시 다시 돌아왔다”고 전합니다. 파울은 현실의 ‘진짜 마리에타’의 말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네요. 긴 꿈이 끝났습니다. 친구인 프랑크가 찾아옵니다. 파울은 현실의 꿈이 환상 때문에 깨졌다며 마리에타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죠. 프랑크의 제안에 따라, 파울은 마침내 이 ‘죽음의 도시’를 떠납니다.
PART 2 연출가와의 대화
연출가 줄리앙 샤바스
무대에 대립과 대조의 언어를 풀어놓다
줄리앙 샤바스(1982~) 패테르 외트뵈시의 ‘황금용’, 제럴드 베리의 ‘진지함의 중요성’, ‘차이콥스키 ‘오네긴’ 등 십여 작의 오페라·연극을 연출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스위스 프리부르 누벨 오페라에서 예술감독으로 재직했으며, 현재 마그데부르크의 극장 총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독일 마그데부르크 극장에서 총감독을 맡고 있는 줄리앙 샤바스는 이번 ‘죽음의 도시’ 연출로 국내 관객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활동이 전무한 연출가라 확인해 보니, 오페라 연출계에 입문한 지 아직 10년이 안 된 신예(?)이다. 이런 경력치고 역대 연출작이 독특한데, 페테르 외트뵈시(1944~2024), 제럴드 베리(1952~), 토마스 아데스(1971~) 등 현대 작곡가의 작품들을 연출해 왔다. 이번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가 1920년 초연작이니, 제격인 사람을 찾은 듯하다.
오페라와 첫 인연은 언제였나요?
제가 4살 때부터였죠. 부모님은 저를 데리고 오페라 공연을 다니셨어요. 모든 부분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제 또 다른 모국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스위스의 취리히, 프랑스의 파리와 리옹,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영국의 런던까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오페라와 관련된 일을 해왔습니다. 각 도시의 문화 차이가 느껴졌나요?
오페라는 여러 나라가 조금씩 공유하고 있는 작은 공동 문화인데, 그 공통 영역 밖에 존재하는 각자의 문화 차이는 참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독일은 작품 배경을 현대로 설정하는 걸 좋아하고, 영국은 코미디를 소중히 여기죠. 네덜란드에서 공연할 때는 반드시 사회적 문제를 반영해야 합니다. 이렇게 관객의 취향이 다양해서 우리의 오페라가 계속 살아 있는 것이죠.
인간의 불안함을 들여다보다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는 작곡가가 살았던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 빈의 사회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나 인상은 무엇일까요?
‘죽음의 도시’는 현대의 분위기와도 잘 맞는 작품입니다. 비탄·폭력 그리고 각자가 가진 견해를 바꾸지 못해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죠. 우리가 남에게는 비밀에 부치는 자신의 인간성, 표현할 힘이 부족해서 말하지 않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죠. 코른골트의 천재성은 강력하고 파괴적인 머릿속의 생각들을 표현해 내는 힘이 있어요.
‘죽음의 도시’ 속 주요 인물에 대한 해석이 궁금합니다. 파울·마리에타·프랑크·브리기타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파울의 성격은 정말 복잡하죠. 아내 마리의 죽음으로 슬픔에 사로잡혔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강박증은 불능을 만들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마리에타는 유혹의 상징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상징입니다. 파울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인물이죠. 프랑크는 파울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파울이 격동이라면 프랑크는 논리죠. 그가 가진 실용성은 파울의 내향성과 대조됩니다. 브리기타도 이성과 실용성을 가졌지만, 파울을 걱정하는 인물입니다. 브리기타의 행동으로 우리는 자기 주변의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감정적 영향을 받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코른골트는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 단막 오페라로 고민했었다고 하죠. 그만큼 장면의 전환이 중요한데, 무대 연출은 어떻게 계획했나요?
일관성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단일 세트를 사용했어요. 창문이 있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주인공들을 관찰하는데, 이것으로 파울의 세계는 더 위축되죠. 파울이 마리를 향한 기억을 모아둔 공간과 마리에타네 극장 사이에도 연결점을 두었습니다. 의상을 활용해서 마리와 마리에타 사이의 연결고리도 만들었어요.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감정을 무대에 어떻게 풀어놓았나요?
이 작품이 가진 우울함, 어둠, 불안감에서 영감을 받았는데요. 무대는 산업단지 같고, 불편한데, 그게 점점 가중됩니다. 색상은 물 빠진 색채를 사용했고, 파울의 집은 실내에서 비가 내리는 듯해요. 이런 색은 파울이 천천히 자신의 존재를 퇴색시키고 있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죠. 의상도 1930년대와 1950년대 복식을 참고했는데, 그 시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시대가 가졌던 우울감에 주목한 것입니다.
‘죽음의 도시’의 배경은 19세기 후반의 벨기에 브뤼주인데, 이런 배경이 한국인으로서는 단번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관객이 미리 알면 좋을 사전 지식이 있을까요?
벨기에의 브뤼주는 종종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립니다! 가톨릭 신앙이 중요한 도시라서 ‘죽음의 도시’에도 예배와 장례 행렬이 표현되죠. 노스탤지어와 우울이 공존하는 운하가 있는 도시예요. 아, 그리고 이 작품이 상징주의 예술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알아두면 유용하겠네요.
개인적으로 ‘죽음의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2막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어린이 합창단이 파울의 집 밖에서 기쁜 노래를 부르는데, 평화로운 정원의 분위기와 파울 내면의 괴로운 감정이 극적 대조를 만들어서 강렬하거든요. 코른골트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음악이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드는 거죠!
고전 오페라보다 현대의 오페라가 더 와닿는다
지금까지 연출작에서는 페테르 외트뵈시(1944~2024)와 토마스 아데스(1971~) 등 현대작품이 많았습니다. 고전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도 있지만, 현대 오페라의 비중이 큽니다.
어떤 오페라 감독들은 현대 오페라를 곤란해하는 편이지만, 저는 완전히 매료당했죠! 특히, 광기와 부조리, 복잡함이 얽히면 더 매력적이에요. 음악에서 불협화음이 강해지면, 저는 더 단순하고 순박하게 꿈같은 장면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연출하면 다소 난해하다고 느껴지는 음악에 빠져드는 새로운 입구를 관객들에게 마련해 줄 수도 있고요. 페테르 외트뵈시의 ‘황금용(Der goldene Drache)’은 특히 좋았어요. 성악가와 오페라 극장이 겪을 수 있는 물리적 난관이 가득한데, 이 부분의 연기를 어떻게 지시해야 할지도 정말 골치 아픈 문제죠. 그 가운데 들리는 외트뵈시의 음악은 정말 눈물이 나요. 작품 막바지에 마림바로 연주하는 몇 개의 음이 마지막 순간의 온도를 확 바꿔버려서, 제 삶도 같이 바뀌는 경험 같았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샤를 구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제럴드 베리), 연극 ‘호욧호! 호욧호! 하이야!(Hojotoho! Hojotoho! Heiaha!)’ 등 지금까지의 연출작을 보면 무대의 색채감이 눈에 띕니다. 연출에서 색상 활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저는 색에 극도로 집착합니다. 연출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내리는 결정은 ‘주요 색을 무엇으로 할지’ ‘극 진행에서 색에 무슨 역할을 부여할지’예요. 가끔은 한밤중에 자다가 깨서 ‘아, 내가 그 색을 고르는 게 옳았을까’하고 걱정한다니까요. 무대 위에서 가장 쉽게 보이는 것을 건드리는 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나 최고의 작품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대담한 선택을 감행할 때 탄생하죠.
출연진과 리허설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여기에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관객이 눈치채기 어려울 테지만, 연기 지시에 특히 신경을 씁니다. 가수에게 올바른 제스처, 동선, 긴장감, 타이밍을 정확하게 전달하는게 중요합니다.
오페라 연출가로서 가진 이상이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쉴 때도 무대에 올리고 싶은 장면을 항상 상상하며, 언젠가 실현되길 바랍니다. 만들고 싶은 장면이 생기면 머릿속에 몇 개월간 장면이 아른아른 춤을 춰요. 잠을 못 잘 정도로요! 쇼스타코비치의 ‘코(The Nose)’는 제 꿈의 오페라예요. 끝도 없는 수렁에 빠지는 풍자적인 악몽이 정말 매력적인 작품으로, 언젠가 꼭 연출을 하고 싶습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국립오페라단·줄리앙 샤바스 공식 홈페이지
ABOUT 작곡가 코른골트의 삶을 살펴보다
천재는 늘 의심 받고, 시대를 대변했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는 “천재”였다. 이 칭호가 말러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그의 천재성이 보증됐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영향력 있게 활동한 음악 비평가 율리우스 코른골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 어린 시절부터 여러 작곡가와 음악가를 만나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고, 선배 작곡가들에게 그의 놀라운 음악성을 칭송받으며 자랐다. 그의 이름에 들어간 ‘볼프강’으로 또 다른 오스트리아의 천재 음악가 볼프강 모차르트를 언급하며 감탄하는 이도 있었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고, 7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그가 11살에 쓴 발레를 위한 작품 ‘눈사람’은 빈 슈타츠오퍼에서 공연됐으며,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관람했다. 첫 관현악 작품은 14세에, 첫 오페라는 17세에 완성했다. 2시간이 넘어가는 ‘죽음의 도시’를 완성했을 때 그는 23세였다. 이 때문에 대리 창작의 의혹도 받았지만, 이는 정말로 코른골트의 창작이었다.
코른골트는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할리우드에서 크게 성공하며 영화음악 작곡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초기의 작품은 R. 슈트라우스와 푸치니 등 당시에 활동했던 여러 작곡가의 영향을 받았으며, 라이트모티브를 활용한 반음계주의 음악에 탁월했다. 동시대 오페라 작곡가의 장점을 흡수할 줄 알았고, 이런 인물을 표현하는 능력은 영화음악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던 비결이었다. 영화음악은 ‘로빈 후드의 모험’ ‘바다 매’ 등이 유명하며 총 16개의 영화음악 작품을 썼다.
미국에서 영화음악으로 성공한 이후, 그의 작풍은 유럽에서 옛것으로 취급되어 유럽 활동을 재개하는 데는 제약이 많았다. 1940~1950년대 유럽은 후기 낭만주의적 성격이 섞인 그의 작품을 연주하기에는 너무 ‘모던’했다. 그는 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 LA에서 향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은 잘 연주되지 않다가, 1970년대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