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음악 이시바시 에이코
출연 오미카 히토시, 니시카와 료, 코사카 류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과 자연의 경계, 재난 이후의 삶을 묻는 이 영화
질문은 있지만 답은 없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 풀어보려고 했던 신의 영역, 인간이 도달하려고 했던 우주의 영역, 인간이 극복해 보려고 했던 자연의 영역은 인간에게 답이 없는 질문이다. 전부 아는 척하며 자연 위에 군림해 온 인간들은 무엇이든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이 무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념을 꺼내고 분석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해 기어이 해석을 내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팬데믹 이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다
타쿠미(오미카 히토시 분)와 하나(니시카와 료 분) 부녀는 도쿄와 가까운 어느 산골 마을에 살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가는 시점, 마을엔 글램핑(화려하다는 뜻의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을 조합한 신조어) 야영장을 만들겠다는 주민 설명회가 열린다. 주최 측은 글램핑장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설득하지만, 주민들은 반대한다. 외지인이 타쿠미에게 접근해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묘책을 갖고 마을을 다시 찾아온 날, 타쿠미의 딸 하나가 사라진다. 하마구치 류스케(1978~)감독은 ‘우연과 상상’(2021)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후 ‘드라이브 마이 카’(2021)로 칸영화제 극본상과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거머줬다. 그리고 이번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까지 휩쓸며 세계 4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기록을 남겼다. 이로써 그는 40대에 벌써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류스케 감독의 작품 중 상영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줄거리도 꽤 단순한 편이지만, 어리둥절한 결말 때문에 계속해서 곱씹어 보게 된다. 해석이 분분해 실제 관객들의 평도 많이 갈린다. 하지만 묘하게도 처음 영화관에서 느꼈던 당혹스러움은 집에 돌아가며 곧 궁금증으로 바뀌었고, 며칠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면 감탄으로 변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겪은 가장 기묘한 사건은 팬데믹이다. 아주 요란스럽게 시작했던 것과 달리, 제대로 끝난 건지, 이제는 괜찮은지, 앞으로는 괜찮을지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팬데믹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인류에 대한 경고라고 떠들던 사람들은 다시금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팬데믹은 요란했지만, 그것을 품어낸 예술 작품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팬데믹 이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작품처럼 보인다. 영화 속 글램핑장의 오수 방류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와 묘하게 겹치면서, 사람들에 의해 끝나지 않는 또 다른 재난을 보여 준다.
글램핑장 건설을 위한 설명회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도쿄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척이나 선진적인 계획을 세운 것처럼 군다. 그러나 산골 사람들이 보기엔 엉성하기만 해, 그 계획은 계속해서 비판받는다. 도시 사람을 미개인 취급하는 산골 사람들의 역설은 글램핑이라는 변종을 만들어 낸 도시인의 미개함을 꾸짖는 것처럼 보인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영화의 제목은 호텔처럼 편하게 캠핑을 즐기자는 ‘글램핑’이라는 합성어처럼 기묘하게 거슬리는데, 이러한 이물감은 영화의 메시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일본은 전쟁을 통한 침략과 약탈, 오염수 방류까지 역사적으로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다. 그럼에도 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과거를 청산하려는 노력보다는 감상에 빠지는 방식으로 반성을 피해 왔다.
반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자행되는 자연 파괴를 비판하며, 일본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 일본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재난을 이야기하기에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열린 문 사이로 길게 남은 꼬리
류스케 감독의 영화는 종종 낯선 카메라의 시점을 사용해 영화 속 인물들의 시선 속으로 관객을 급히 불러들인다. 예를 들어 타쿠미의 차량이 하나를 쫓는 장면에선 도로 뒤편을 블랙박스처럼 담아내, 관객에게 마치 타쿠미의 차량를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도시에서 산골로 들어서는 타카하시와 마유즈미의 뒤통수를 비춰, 그들과 동승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숲과 사람을 잇는 카메라의 시점이다. 류스케 감독은 피사체를 관객의 시선에 맞추기보다는 사건의 시점에 맞춰, 관객이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사람이 숲을 올려다보며 걷는 듯한 롱테이크 장면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 이르면 숲이 사람을 내려다보는 시선일 수도 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줄곧 모든 사람에게 반말하고 뚜렷하게 하는 일 없이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며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타쿠미, 마치 새끼 사슴처럼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나는 하나. 어쩌면 타쿠미와 하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계를 이어주는 일종의 전령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 해석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논쟁적인 결말로 인해 다양한 해설이 쏟아지겠지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은 종종 인간에 맞서 인간을 공격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자연의 불가해한 공격, 그 경계선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결국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타쿠미의 행동도 인간이 자연의 선택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로 바라볼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처럼, 이미 류스케 감독의 작품은 인간 세계를 살짝 뛰어넘은 것처럼 보인다. 악의 존재 여부를 이야기할 것 같은 단정적인 제목과 달리 류스케 감독은 어떤 것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재난과 그 이후를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결말에서 관객과 영화의 시간은 뚝 끊긴다. 그리고 장면과 장면 사이를 복기하는 사이, 영화는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류스케 감독의 메시지는 개념이 아닌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고 나면 그가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정작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열린 문틈 사이로 길고 긴 꼬리가 남아있기에, 누구도 그 문을 닫을 수 없다.
[OST] 이시바시 에이코
이 영화는 싱어송라이터 이시바시 에이코(1974~)의 라이브 퍼포먼스 영상으로 기획되었다가 극영화로 발전했다. 그만큼 음악과 영상은 각자의 역할을 한다기보다 처음부터 한 쌍처럼 보인다. 음악은 황량한 숲의 풍경과 계속해서 시점이 바뀌는 카메라, 그리고 미스터리한 감정을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으며 그 정서를 그대로 따른다. 아직 정식 OST는 발매되지 않았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